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양력으로 2월 4일경에 지내는 세시 풍속.
[개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보통 양력으로 2월 4일이 되는데, 이날부터 새 봄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는 지역에 따라 입춘을 부르는 말이 다르다.
노형동 광평마을에서는 ‘문전멩질’이라고 하는데, 영평동 가시나물마을의 경우 ‘새철 드는 날’로 불렀다. 이외에도 ‘새잇절 드는 날’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는데, 이는 새 절기가 드는 날이라는 의미로 쓰인 듯하다.
[입춘 풍경]
제주 지역에서 입춘은 ‘신구간(新舊間)’이 끝나서 하늘의 1만 8천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새해의 일들을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특히 농사와 관련이 깊은 날이기도 하여, 기록에 의하면 이날
제주목 관아에서는 관과 민이 합동으로 풍농을 기원하는 입춘굿, 곧 춘경(春耕)을 벌였다.
1841년
이원조 목사가 쓴 『탐라록(耽羅錄)』에 보면, “춘경(春耕) 또는 입춘춘경(立春春耕)이라 불리는 입춘굿의 풍속은 고대 탐라시대 왕이 몸소 밭갈이하는 모습을 흉내 낸 것으로, 나무로 만든 소가 끄는 쟁기를 잡고 가면 양쪽 좌우에 어린 기생이 부채를 흔들며 따르게 된다.”고 쓰여 있다.
1924년의
제주도청 기록에는 “매년 입춘절 목사청에 모여 마을마다 검은 소 한 마리씩 바쳐 목사와 도민의 행복을 기원함과 동시에 농작물의 풍요를 산신과 해신에게 빌고 여흥으로 가면극 형태의 고대극과 유사한 연극이다.”라고 입춘굿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입춘굿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어졌다가 1996년부터 ‘탐라국입춘굿놀이’로 그 명칭이 바뀌어 전통 민속놀이로서 계승되고 있다.
[입춘 맞이]
입춘에 복을 맞이하고 잡귀를 예방하는 의미로 여러 가지 좋은 글귀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집 안 곳곳에 붙이는 것을 ‘입춘 써붙인다’, 또는 ‘입춘축 붙이기’라고 불렀다. 입춘서의 왼쪽 아래 곁에는 ‘정춘녀(丁春女)’라고 조금 비뚤어지게 작은 글씨로 써놓았는데, 이렇게 써 놓으면 뱀이 나다니지 않는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글씨 대신 ‘돌하르방’을 그려서 붙이기도 했는데, 이때는 돌하르방에 오방신장의 푸른 옷, 붉은 옷 등을 입혔다.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치는 입춘점(立春占)은 지역에 따라 형태가 달랐다.
제주시 이호동이나
노형동 광평마을의 경우 ‘보리뿌리점 보기’나 ‘키점(푸눈체점) 치기’로 그해의 보리농사와 조농사가 잘 될지 못 될지를 점쳤다.
보리뿌리점은 입춘이 드는 시간에 보리밭에 가서 보리를 세 개쯤 뽑은 뒤, 보리뿌리가 있으면 그해 보리농사가 잘 되고 보리뿌리가 없으면 보리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키점(푸눈체점) 치기는 부녀자들이 부엌에서 화덕 앞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 입춘 시간에 키(푸눈체)를 덮어 두었다가 입춘 시간이 지난 후 열어 보고, 좁쌀이 몇 알 있으면 그해 조농사가 잘 된다고 믿었다. 어떤 집에서는 조 대신 깨알로써 점쳤다고 한다.
또 입춘 시간에 바람이 많이 불면 그 해 내내 바람이 많아 밭농사가 어려워진다고 믿었다.
[금기]
육지와 마찬가지로 제주 지역에서도 입춘에는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지켜야 할 금기가 많았다.
지역에 따라서는 아직도 여자들의 바깥출입을 금기시하고 있는데, 여자가 남의 집에 가면 밭에 잡초가 무성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날 돈거래를 하면 일 년 내내 재물이 밖으로 나간다고 돈거래를 하지 않았으며,
집 안을 비로 쓸 경우에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쓸어 내치면 복이 나간다고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쓸었다.
또 털짐승이 집 안으로 날아와도 잡초가 많이 난다고 하여 날아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날 상자(喪子)를 보면 그 해 운이 대통하여 잘 산다는 속설도 있으며, 또한 이날 영장 나면 잘 산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