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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714/시편 15
여호와의 거룩한 집에 거주하는 자
2015-5-24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의로운 삶을 사는 자들은 여호와의 거룩한 집에서 하나님과 친교하며 보호를 받습니다. 시편 15편은 원래 성도들이 성전에 예배하러 들어가면서 자신을 점검하고 새롭게 되던 지혜의 노래였습니다. 성전에서 제사 드리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의 특징은,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며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의 찬송은 성전에서 예배할 때 뿐 아니라, 어디서나 부를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이 시로서 찬송하면서, 이웃의 명예를 지키고 의롭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보호를 얻는 길이라는 위로를 받습니다.
이 시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 져 있었습니다. 첫째, 1절에서, “ 누가 여호와의 장막에 거주할 수 있는가? 여호와께 질문합니다. 둘째로, 2-5절에서, 시인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대답합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의로운 삶을 사는 자들이 여호와와 함께 산다고 답합니다. 셋째, 5절 끝에서, 이러한 삶을 사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이 복을 약속하신 것을 시인 자신이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이 시인 처럼, 이렇게 묻고 답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의로운 삶을 사는 자들은 여호와의 거룩한 집에서 하나님과 친교하며 보호를 받는다는 굳은 확신을 가지기 바랍니다
1. 누가 여호와와 함께 거하는가? (1절)
1 여호와여 당신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며,
당신의 거룩한 산에 거주할 자가 누구입니까?
“여호와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묻고 있습니다. 장막은 법궤가 있는 천막, 성막을 말합니다. “당신의 거룩한 산”은 예루살렘 성이 있던, 시온 산위의 성전을 말합니다.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이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사람의 눈에 보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자기 집 처럼 사는 자입니까?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자기 집에서 삽니다. 섬길 당번이 되면 성전에 와서 잠깐 살다가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장막에 유하고 거룩한 산에 거주한다, 하나님의 집에 산다는 것은 비유적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만나서 친교하고, 보호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성전에 갈 때 뿐 아니라 어디서나 하나님과 친교하고 보호 받으면서 하나님의 집에서 삽니다.
시편 14:7은 직역하면, “누가 시온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을 줄 것인가?” 라는 뜻입니다. 시 14:6은 “오직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가 되시오니”라 고백했습니다. 시편15편은, 여호와를 잠깐 동안의 피난처가 아니라, 여호와와 함께 살며 친교나누는 것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힘들 때만 피하는 여호와가 아니라, 계속 여호와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지는지를 묻습니다.
이 성도는 “이스라엘의 왕이여, 당신의 왕궁에 거주할 나가 누구입니가?”하고 왕의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사장님, 좋은 직장 들어가는 자가 누구입니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도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여호와여, 당신과 항상 함께 살며 친교나누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가장 큰 소원도, “여호와 하나님 누가, 예배에 나와서 삼위 일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매일 하나님을 만나서 친교나누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이것이 우리의 깊은 소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다. (2-5절 전반)
“여호와여” 하고 여호와께 질문한 그 시인이 대답도 합니다. 대답은 질문한 그 사람이 합니다. 2-5절의 대답은 11개 입니다. 4절에 “버림받은 자를 멸시하고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존중하고”는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니까 10개로 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모두는 우상 숭배하지 말라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건은 생활 가운데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과 행동 (2절)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거하는 사람은, 주신 언약의 말씀대로 서로 해를 주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 사람들입니다. 다.
2 온전하게 걸으며
의로움을 시행하며
그의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자.
“정직하게 행하는 자” 즉 “ 온전하게 걷는다는 것입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하는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물이 없이 순결하고 거룩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거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의롭게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말을 할 때,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착하게 사면 아무나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친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순수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기 때문에 순수하고 순전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7”1에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창 17:2) . 아브라함의 완전함은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순수하게 헌신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의를 시행하는 것”도 하나님이 먼저 의롭다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창 15:6절은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 께서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바로 의로움입니다.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냅니다.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것도,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은 없다.” (시 14:1)고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은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신신할 믿음의 고백이 먼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을 할 때, 거짓말 하지 않고 진실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들어온 성도는 온전함과 의로움과 신실함이 그의 인격 속에 삶 속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들을 당신께 가까이 나아오게 하십니다.
2)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말과 행동 (3절)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성도는 말이나 행동에서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3 그는 그의 혀로 정탐/비방하지 않고
그의 친구에게 해로운 것을 행하지 않고
모욕을 그의 이웃 위에 들어 올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사는 성도는 그의 혀를 하나님이 언약의 말씀에 명령하신 대로 사용합니다. 9계명에서 말한 대로, 이웃을 해하려고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거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보통 생활에서도 이웃을 “참소”하지 않습니다. 나쁘게 비방하지 않습니다. 비방한다는 것은 “그의 혀로서 정탐, 스파이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감추고 깊은 것을 몰래 알아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사람 몰래 다른 사람에게 나쁘게 말해서 피해를 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웃을 훼방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웃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어 올리지 않습니다.” 누가 자기 이웃에 대한 나쁜 말을 하면, 귀가 솔깃해서 “그래, 정말?”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나쁜 소문이 돌지 않게 합니다. 이웃의 명예를 나쁘게 하거나 모욕적으로 느낄 그런 마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세워 주는 데 유익이 되고 듣는 사람에게도 은혜를 끼치는 말” (엡 4:29을 합니다. 사람의 명예는 돈 보다 더 귀한 것이므로 그것을 귀하게 지켜 줍니다.
그의 친구에게 해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않습니다. 특히 말에서도 해로운 것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명예를 지켜야 하지만, 가족이나 성도들에게 대해 부정적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고상하고 순전합니다.
3) 하나님과 성도를 귀하게 여김 (4절)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하듯이, 양심적으로 바로 평가하고 대우합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를 존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귀하게 높입니다.
4 그의 눈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중하고
맹세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바꾸지 않습니다.
개역에 “망령된 자”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계속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버린 사람을 “멸시”하고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인들도 인권을 존중해야 합니다. 악한 삶의 방식을 멸시합니다. 악한 행동에 동의해 주고 인정하면, 악이 이 세상에 더 세력을 얻게 합니다. 악한 일을 하여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과 친해져서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는 그들은 화가 있으리라.” (사 5:20)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들어온 신약 교회의 성도에게도 성령님은 명령합니다.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 5:11). 칼빈목사님이 잘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각 사람의 행동을 자유롭게 (양심적으로: 해신) 판단해야 하며,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굽신거리며 추하게 아부하여 악한 자들이 악한 일을 계속 하도록 자극해서는 안 됩니다.” (칼빈주석, 209).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사는 성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존중하고” 영광스럽게 높입니다.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세상의 기준으로 초라해 보이고 그래서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은 성도들이 악한 일에 협력하지 않고, 추하게 살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 비방합니다.” (벧전 4:4).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 모든 성도들은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다 애매하게 고난받고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고난받고 무시당하는 믿음의 형제자매에 대해, 우리도 무시하고 멀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옛 성도들은 핍박을 받아 감옥에 갖인 성도들과 계속 친해 지고 그들을 돕다가 재산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생각한 것을 본받읍시다 (히 10:33,34).
역시 칼빈 목사님이 잘 말했습니다. 무시당하는 성도들을 멀리는 것은 “하나님이 슬퍼하시고, 해가 되는 손해를 끼칩니다. 우리는 사람을 그들의 신분, 돈, 혹은 이 세상의 명예에 의해 평가하지 맙시다. 경건 즉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높이 평가합시다. 확실히, 하나님의 종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경건에 마음을 쏟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그들에 대해 일으키는 사랑은 우리가 그들의 삶의 거룩함을 배우도록 합니다.” (칼빈주석, 210)
우리는 누구와 친해 지는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사는 성도는, 하나님이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해로울 지라도 바꾸지 않고 지킵니다.. 사람들은 약속을 해 놓고도 이익이 되면 지키고, 손해가 되면 지키기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모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킵니다. 우리는 결혼식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희생이 되더라도 부부 사랑에 헌신합니다. 유아세례식에서 맹세한 것을 어기지 않고, 가정에서 신실하게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한 교회의 교인이 되고 목사가 되는 것도 세례식과 이명에서 맹세한 것이므로, 해가 되더라고 신신하게 예배에 참여하며 성도들을 믿음으로 세웁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의 약속이나 모든 약속에 신실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에 신실하게 계속 은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약에 신실하고, 모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킬 때, 우리가 우선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그 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그가 나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해가 되어도 약속을 잘 기키는 성도는 이렇게 거짓과 부정 부패가 많은 우리 사회에 참된 빛을 비추고, 사람들이 우리 착한 행실을 보고 복음을 믿게 될 것입니다.
4) 경제 생활에서 남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 이익을 줌 (5절)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사는 성도는 경제 생활에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 이익을 줍니다.
5 그의 돈을 이자위해 주지 않고
뇌물을 무죄한 자 대항해 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교회 성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의 생활비를 위해 돈을 빌려 줄 때 이자를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 23:19-20). 돈을 빌리는 사람이 그 이자 때문에 생활이 힘들어 지고 노예가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요즘도 빚을 잘못 내어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도도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투자하여 이윤을 얻는 것은 정당합니다. 저축하여 이자를 받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장애가 있거나 특별한 어려움 때문에 생계가 힘든 성도들을 위해서는, 교회가 함께 헌금을 하고 그들의 생활을 도와 주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에 합당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사는 성도는,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에게 부당한 증언을 하거나 손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신명기 10:17-18은 말합니다.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정의을 시행)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뇌물을 받는 분지 않으므로, 성도들은 뇌물을 받고서 정의를 굽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의 대명사인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는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에 사는 성도들은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 해를 끼치치 않을 뿐 아니라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특히, 가난하고 친척이나 아는 사람도 없는 사람들을 도울 뿐 아니라, 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자신들의 직분을 다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함께 가정이 세워 지고, 물질적으로 번영하도록 하셨습니다. 아담의 반역과 인류의 타락 때문에,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집, 교회는 성도는 모든 사람이 가정을 일구고 품위있게 무질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성도들끼리 물질적으로 돕고, 믿음으로 격려하여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함께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도록 우리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집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까지 이 땅에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가 건강하게 태어난 우리 모두는 땀흘려 일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고 저축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어린이들도 부지런히 식사하고 건강하고, 품위 있는 직업을 가지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할 사명이 있습니다.
3. 선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 (5절)
순결하게 살고, 말로서 행동으로서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사는 성도들도 말로서 이웃을 비난하려는 유혹도 생깁니다. 약속을 지키면서 손해를 보기 보다 차라리 약속을 어기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이 유혹과 수고를 이기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을 하나님은 복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을 성도는 고백합니다.
5절, 이것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성도들이 “흔들리고” (13:4)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탄식합니다. 의인에게는 고난이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손해를 봅니다. 세상의 영향력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되기 보다, 부족함이 있어도 성도들과 친구가 되기 때문에, 세상적 도움을 적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요동함 (흔들림)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시리로다.” (시 55:22)고 약속하십니다.
1절에서 말했듯이, 성도는 여호와의 장막에 ,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 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눈물 굴짜기 같은 세상에서 당하게 하시는 어떠한 악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계속 굳게 붙드셔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이웃에게 말로 피해를 주지 않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도록 힘주실 것입니다. 이웃에게 물질의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물질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악한 자와 친구가 되려 하기 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성도들을 격려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도록 힘 주실 것입니다.
계시록 14:5는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 (즉 온전한 자들)”은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서 기쁨의 찬양을 할 것을 보여 줍니다. 거짓 없이 온전하게 살며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를 들어가게 하십니다. 이 땅에서 이미 우리는 영저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 살고 있지만, 우리 존재는 하나님의 품 안에 흔들리지 않게 보존되어 있지만, 몸을 가지고 타락한 세상을 살아갈 동안, 우리는 선한 일에서 흔들리고 마음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그 새 하늘과 새땅을 소망하며 나갑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직하고 이웃을 향한 선한 삶을 계속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와 더 가까이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계속하여,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읍시다.” (엡 4:24) 고 격려합니다. “주 예수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엡 6:10)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며 영원한 하나님의 집으로 나가는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