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IBtvds_30?si=cpeZrCEM-9E4kApS
생에 오직 한번뿐인 삶
어떻게 살아야 정답일까.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워진 삶.
후회없이 살았다는 사람들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 들 마다 결론은 틀리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삶은 아픔.과 후회.뿐이다.
오늘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것은
추억과.지키고자 하는것이 있어야
순간 순간 찾아오는 위기와 고통을 이겨내고자 몸부림 치며 살기도 하지만.
나에게 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기에
삶에 의미와 살아야 할 이유를 갖지 못하고
의미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속에서
살아나고자 몸부림쳤던 순간에는
내안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 했기에 살아나기 위해 몸부림 친 시간들이었다.
대지진속에 서
3일이라는 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며 격거야 했던
악몽에 순간들이
나 자신에 영혼을 빼앗아 가
내 자신을 잃어 버리고
타국 일본땅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거리에 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내 정신이 돌아올때 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돌아오고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동전을얻어
대한민국 대사관과 영사관에 경찰에 전화를 하여도움을 요청 했지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고 또다시 나자신을 잃어 버리곤했다.
내 정신 내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전화번호 조차 기억이 없었기에
대사관과. 영사관. 경찰.에 눈물로 통곡하며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던 순간들.
그 순간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너무도 그리워한 가족들이 보고 싶었기에
어떠한 고통 보다도 나에게 아픔을 준 순간이었다.
결국
그리움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나 자신은 주검을 선택하였다
일본
아사쿠사 주변에 있는
나카가와 다리위에 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리위를 지나던 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하여
해양 경찰이 나를 구조해서 병원에 온것이었다.
이때 한 사람에 은인을 만나게 되었다.
일본 경찰이
나에 이야기를 듣고 잃어버린 나 자신을 먼져 찾아야 한다고
불법자로 재판을 받으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면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하여
6개월을 일본 교도소에 있으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일본 경찰이
한국 대사관에 가서 임시 여권을 만들어 주었고
개인적으로 비행기 티켓과 별도로 일본돈 10만엔을 주며
한국에 돌아가 꼭 가족을 찾기를 바란다며 도움을 주어 돌아 올 수 있었다.
그토록 그리워 하던 고국에 돌아 왔지만
제일먼져
공항에서 한국 경찰을 만나
남양주 경찰서에서 회사 운영하며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사건화가 되어조사를 받고
남양주 경찰서 신축 공사로 수감시설이 없어서
구리 경찰서에서 대기하며 검찰청 구속여부 결정을 기다려야 했다.
그 토록 그리워 하던 가족이 있는 고국에 돌아 왔지만
첫 날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내고
구속 필요성이 없다고 검찰이 판단하여 풀려나게 되었다
경찰서를 나서니 그날따라 비는 내리고
갈 곳도 없었다 연락할 곳도 없었다.
경찰에 사정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 하여
비를 맞으며 걷다보니
장자호수 공원에 도착하였고
너무도 서럽고 힘들어서 통곡을 하다 지쳐서 잠이들었다.
새벽이 되어
운동나온 사람들에 소리에 깨어나서
어디로 가야하나 망설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배신감
많은 서러움과 분노심에 또다시 울음이 터지고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져 죽고싶은 마음뿐이었다.
거리를 걷다가 교회를 발견하고 교회로 들어가 기도를 시작했다.
주여.
나에게 어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주검에 길목에서 몆번이고 나를 살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주님이 원망 스럽습니다
통곡하며 기도하였고.
교회를 나서 무작정 걸었다
걷던중 공사장을 발견하고 막노동이라도 하겠다
현장 소장에게 부탁을하여 막노동을 시작 하였고
공사장에서 잠을자고 식사는 컵라면으로 세끼를 해결하며 생활 하였다.
그리고
한국에 는 신분증이 아무것도 없어서
주민등록을 살리고 면허 시험을 보아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고
주간에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야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일을 시작 하였다.
주야로 일을 하며
사건화가 되어 있는 사고들을 정리 하기위해
남양주 경찰서와 구리 경찰서를 1주에 3번씩 불려 다녀야 했고
경찰 조사를 마치고 검찰로 넘겨진 사건들
의정부 검찰청에 주에 3회씩 조사를 받으면서 주야로 일을하며.
고소인들에게
매일같이 입금을 해주며 해결을 해 나갔다
다행이 무혐이 처리된 건도 있고
주야로 일을하여 변제 해나가며 합의서를 검찰에 제출하며 살아나고자 몸부림도쳤다.
그러다 보니
내 건강은 악조건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야로 일을하며 배달을 하기위해 하루에 80층 90층을 계단을 오르고 내리다
쓰러져 119에 실려 병원에 가기도 하였고
일본 대지진에 휴유증이 심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독한 약을 먹고 살다보니
오토바이를 타다 거리에 쓰러진 적도 많다.
잠시나마 잠을자려고 하면
무너진 건물속에서
3일동안 30여명이 죽어가며 지르는 비명 소리와
쓰나미로 밀려든 바닷물에 죽어가며 흘린 핏 물들이 내몸속으로 파고들어 올때의 악몽
그 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던 순간들이 눈만 감으면 떠올라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그러다
눈을뜨면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또 한편으로는 배신감에 분노심이 내안에서 화병을 만들곤 한다.
당장이고 달려가 이유도 묻고 싶지만
내안에 분노가 또 하나에 상처를 만들것 같아
그때마다 무릅을 끌고 기도를 한다 그들에 행복을 위해서 .
내 자신을 아프게 하는것은
왜
나를 외면하고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속에서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살아온 사람에 모습을 찾으려 하는 나 자신이 너무도 불쌍 하다는 것이다.
대지진으로 나 자신을 잃고 거리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춥기도 했고. 배도 고프고. 아프기도 했겠지.
하지만 그런 것은 생각 나지도 않는다.
내 정신이 돌아올때 마다 생각난 것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수 많은 고통을 격었다
춥기도 했고.배도 고팠고.너무도 힘들어 죽고도 싶었다.
대지진에 트라우마 고통. 물질적인 압박, 무리한 일로 쓰러져 다가오는 영적.육적.아픔들,
제일 힘들게 한것은 외로움과 서러움.그리고 그리움이었다.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오늘도
나는 그들에 행복을위해 기도하며 살아간다.
언젠가
무심코 카렌다를 보다
내 생일이라는 것을알고 미친것인가
쵸코파이에 초 하나를 꼽아놓고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았고 통곡도 해본적이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가다보면
의사 선생생님은 내 생활을 이야기 해보라 한다.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아무것에도 재미가 없고 먹는것도 싫고
그져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러 나갔다가 집에 들어와 멍하게 앉자 있는다 했더니
의사 선생님 말씀.우울증이 제일 무섭다
여행이라도 다녀 보는것은 어떠냐고 묻는다.
나에 답은
혼자 어디를 간다는것이 두렵다
어딘가 여행을 가려해도 식당에 앉자 혼자 밥 먹는것도 싫고
삶에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며
홀로 살다가 고독사 할까 두렵기도 하고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다 말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
그리워하는 가족들은 어떤가요.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그들에 행복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
나 자신을
몆번씩이나 주검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에 뜻이 있으니
간증을 하며 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에나 자신이
이 고통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것 은 기도에 능력이라
분명 하나님에 뜻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독한 약을 계속적으로 먹는것 보다 신앙에 힘으로 이겨내 보라 한다.
참아내기 힘든수 많은 고통속에서 도
오늘 내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일까
그리움과 함께 내안에 존재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이유일까.
어느덧
시간은 새벽 6시가 되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내자신 너무도 너무도 힘들다.
2024년 9월9일
,,,윤 용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