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67칙 부대사의 금강경강의
“진리를 말로 설명할 수 없어 몸으로 드러내”
{벽암록} 제67칙은 부대사가 양무제에게 {금강경}을 강의하는 선문답을 싣고 있다.
양무제가 부대사(傅大士)를 초청하여 {금강경}을 강의하도록 하였다.
부대사는 법상에 올라서 경상을 한번 후려치고는 곧바로 법상에서 내려 왔다.
양무제는 깜짝 놀랐다.
지공화상이 양무제에게 질문했다.
“폐하께서는 아시겠습니까?”
무제는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공화상이 말했다.
“부대사의 강의는 끝났습니다.”
강의 대신 경상 후려친 행위는
걸림없는 반야의 지혜 그 자체
본공안은 {분양선소어록} 중권에 보이는데, 내용은 약간 차이가 있다.
양무제는 {벽암록} 제1칙에 달마와 함께 등장했었다.
원오는 '평창'에,
"양나라의 고조인 무제는 소(蕭)씨이며, 이름은 연(衍), 자는 숙달(叔達)이다.
대업을 일으켜 제(齊)나라에 이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한 뒤에 오경(五經)을 주석하여 강의하였고, 황노(黃老)의 도교를 두텁게 신봉하였고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하루는 출세간의 불법을 얻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도교를 버리고 부처님을 받들며 누약법사에게 귀의하여 보살계를 받고, 몸소 가사를 입고 {방광반야경}을 강의하며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본칙에 처음 등장하는 세속의 성자인 부대사 흡(翕:497~569)은 중국의 유마거사로 백장과 임제, 약산유엄선사 등이 한결같이 칭송하고 있는 인물인데,
그의 전기는 {속고승전} 25권과 {전등록} 27권에 선혜(善慧)대사로 전기를 싣고 있으며, {선혜대사어록}도 전한다.
특히 그의 작품인 {심왕명}은 선승들이 많이 인용하고 있다.
원오는 '평창'에 부대사가 양무제의 초청으로 {금강경}을 강의하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무주(州: 浙江省)에 어떤 대사가 운황산에 거처하면서 손수 나무 두 그루를 심고서 쌍림(雙林)이라고 하고, 자칭 미래의 선혜대사라고 하였다.
그가 하루 글을 지어 제자를 시켜 양무제에게 건의하여 황제께 여쭈었다.
그 때 조정에서는 군신의 예의가 없다고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대사는 금릉성에 들어가 물고기를 팔고 살았는데,
당시 가끔 양무제가 지공화상을 초청하여 {금강경}을 강의하도록 하자,
지공화상이 말했다.
“빈도는 강의를 못합니다.
시중에 부대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이 경을 강의할 수 있습니다.”
양무제는 조서를 내려 부대사를 대궐로 초청하였다.
그래서 {전등록}에서는 그를 '쌍림수하 당래해탈 선혜대사(雙林樹下 當來解脫 善慧大士)'라고 하며, 미륵의 응신(應身)이라고 한다.
양무제가 지공화상의 권유로 부대사를 궁궐로 초청하여 {금강경}을 강의하도록 하였다.
{금강경}은 {대반야경} 577권의 별칭인데, 반야불가득(般若不可得)과 성공(性空)의 묘리를 설한 경전으로 구마라집이 번역한 경전이 선종에서 애용되고 있으며,
특히 수지독송의 공덕을 찬탄하고 있기 때문에 {법화경}과 함께 공덕경으로 널리 주목하고 있다.
{금강경}을 32장으로 자세히 나눈 것은 양무제의 아들 소명태자인 점으로 볼 때 특히 이 경정에 주목했다고 할 수 있다.
부대사도 {금강경}의 사상에 부합한 게송을 읊고 있다.
양무제는 많은 강사들처럼 부대사도 {금강경}의 말씀을 자세히 강의할 것으로 기대하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대사는 법상에 올라서 경상을 한번 후려치고는 곧바로 법상에서 내려왔다.
{금강경} 32품의 강의는 끝났다.
마치 {벽암록} 92칙에,
세존의 설법에 법상에 오르자,
문수보살이 종을 치며 "법왕의 법을 자세히 관찰하니 법왕의 법은 이와 같다."라고 알렸다.
그러자 세존은 한마디의 설법도 없이 법상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와 같다.
경전에 "수보리야. 설법이란 법을 가히 설할 것이 없음을 설법이라 한다."라고 전한다.
이 말에 대하여 {돈오요문}에는,
"반야의 본체는 필경 청정한 것이며 한 물건(一物)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니, 이것을 가히 설할 법이 없는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부대사는 {금강경}의 정체인 불법의 근본을 몸으로 직접 전부 들어낸 것이다.
원오는 "언어 문자를 번거롭게 사용하지 않고 금강경을 강의했다"고 칭찬하고 있다.
{반야심경}에도 반야의 지혜는 얻을 수 있는 물건이나 대상이 아니며(不可得), 고정된 특성이 없음(無自性)을 근본으로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부대사가 주장자로 경상을 칠 때 나는 그 소리는 자성이 없으며, 그 소리를 듣는 반야의 지혜 또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성의 자각적인 지혜작용일 뿐이다.
부대사가 경상을 후리친 걸림 없고 무애자재한 행위는 반야지혜의 묘용 그 자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부대사의 {심왕명}에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마음의 공왕(空王)을 관찰하건데, 현묘하여 헤아리기 어렵다.
얼굴도 형체도 없지만 큰 신통력이 있네.
천 가지 재앙을 소멸시키고, 만 가지 공덕을 이루네.
본체와 성품이 공하지만, 온갖 법칙을 베푼다.
보면 형상은 없지만, 부르면 대답한다.
큰 법의 장수가 되어서 마음의 계법으로 경을 전한다.”
{조당집} 15권에 방거사가,
"사람은 한 권의 경전을 가졌는데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다.
사람이 이 경을 읽지 못하니, 나에게 집착하면 들을 수가 없다."라고 하고,
경봉스님의 글씨로 전하는,
'나는 한 권의 경전이 있다. 종이와 먹으로 쓴 것이 아니다.
경전을 펼치면 한 글자도 없지만 항상 대 광명의 지혜를 펼친다.'라는 법문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양무제는 부대사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양무제는 문자반야를 듣기 위해 초청했는데, 부대사가 경상을 한 번 후려치고는 내려왔으니,
'나를 바보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중생심이기 때문에 불심의 법문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반야경의 정신이 자아의식인 아상(我相)을 비우고 무아(無我)가 되어야 무아의 경지에서 설하는 법신(法身)의 설법을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법신의 지혜법문을 중생의 차별심으로는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양무제뿐만 아니라 불법을 수행한다는 많은 사람이 이렇다.
지공화상이 양무제에게 "폐하께서는 부대사의 강의 내용을 아시겠습니까?"라고 질문하자
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不會)."라고 했다.
회(會)는 언어 문자를 대상으로 설정하여 이해하는 것인데, 문자반야를 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했다는 답변이다.
지공화상은 이 법회의 사회자로서 오늘 "부대사의 강의는 끝났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설두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고 있다.
“쌍림(雙林)에 이 몸을 의탁하지 않고”
쌍림은 부대사가 살고 있는 암자인데, 양무제의 초청을 받고 황제가 있는 왕실로 나온 것을 읊고 있는 말이다.
원오는 "부대사가 본분의 청정한 쌍림에 안주하지 않고 왕궁으로 나온 것은 중생구제를 위한 이타의 보살행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주머니 속의 바늘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과 같이 대사의 자비심"이라고 평한다.
“양나라 땅에서 티끌 먼지 일으켰네.”
쌍림의 나무 밑에 안주했더라면 그의 몸은 속진(俗塵)에 물들지 않았을 텐데,
양무제의 초청에 응하여 왕궁에 나오게 되어 세속의 티끌에 더럽혀지게 되었다.
“당시 지공 노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황급히 나라를 떠나는 사람이 되었으리.”
{벽암록} 제1칙에서 양무제와 달마의 대화에 뜻이 계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달마대사가 양나라에서 쫓겨나 위나라로 가게 되었다는 고사를 토대로 하여 읊고 있다.
즉 부대사도 양무제와 기연이 맞지 않아 곧장 양나라에서 쫓겨나게 될 판인데,
다행이 지공화상이 있어서 부대사의 {금강경} 강의는 다 마쳤다고 말하며,
참된 강경의 본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무사히 초청법회가 회향된 것이다.
원오는 부대사와 지공화상은 같은 죄인(불법을 체득한 경지)이라고 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