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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땅 중동(中東/Middle East)<3>
5. 중동(中東)지역의 국가들
이 지역의 국가들을 살펴보면 이란(Iran:면적 164만㎢, 인구 8,700만), 이라크(Iraq:44만㎢, 4,300만),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215만㎢, 2,780만), 시리아(Syria:18만5천㎢, 1,860만), 요르단(Jordan:8만8천㎢, 1천만), 레바논(Lebanon: 1만㎢, 670만), 이스라엘(Israel:2만㎢, 805만), 아랍에미리트(Arab Emirates:8만㎢, 580만), 오만(Oman:31만㎢, 460만), 예멘(Yemen:53만㎢, 3,150만), 바레인(Bahrain:760㎢, 13만 5천), 카타르(Qatar:1만 1,600㎢, 300만), 튀르키예(Türkiye:78만㎢, 8천만)이다.
우리나라 남한(대한민국)의 면적이 10만㎢, 인구가 5천만 정도이니 비교하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6. 불안한 중동(中東:M. East) 지역
튀르키예(Türkiye) 국기 / 시리아(Syria) 국기 / 중동(中東)지방 지도
올해(2023년) 2월 초, 튀르키예(Türkiye)와 시리아(Syria) 국경지대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강진(强震)이 발생했다. 지진이 발생한 후 벌써 20여 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연일 TV에서 지진피해 상황과 세계 각국의 구호활동을 보도하고 있다. 모두 관심을 가지고 TV를 보고 있으니 잘 알리라 생각하지만 조금 설명을 덧붙여 보고자 한다.
<1> 튀르키예(Türkiye)의 국명(國名)
튀르키예는 일반적으로 터키(Turkey)로 알고 있었는데 작년 6월에 국명을 튀르키예(Türkiye)로 바꾸었고 유엔(UN)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이면(裏面)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예전의 국명 터키(Turkey)는 일반적인 명사로 ‘칠면조(七面鳥)’를 뜻하는 단어이고, 가축 칠면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양에서는 ‘패배자’, ‘겁쟁이’를 의미한다고 하니 터키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국명(國名)이었을 것이다. 튀르키예 국민들은 자존심을 세우고자 국명을 바꾸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게 되는데 마침내 ‘터키인들의 땅’이라는 의미의 튀르키예(Türkiye)로 바꾸고 공식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예전의 국명은 영어로 표기하면서 터키(Turkey)가 되었지만, 옛날에도 국민들은 튀르키예 공화국이라 불렀다고 한다.
<2> 튀르키예(Türkiye)의 국가형성
튀르키예 역사를 약술해 보면 기원전(BC) 7000년경 정착민 튀르크인들이 중부 아나톨리아(Anatolia)에 처음으로 국가형태를 갖추었는데 BC 1900년경 들어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히타이트(Hittite)인들에 의해 점령되어 히타이트제국이 들어서게 되는 등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튀르키예는 지리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접경지역이다 보니 동서양의 강대국들이 이 지역을 두고 수없이 많은 쟁탈전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인데, 나중 오스만(Osman) 제국이 차지하였다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한 후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가 정권을 잡으며 튀르키예 공화국이 들어서게 되었다.
아타튀르크(Atatürk)는 ‘튀르키예 인들의 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재 튀르키예 공화국의 인구는 8,660만 명, 면적은 78만 5천㎢, 인종은 튀르크인(80%), 쿠르드인(20%)이며 종교는 이슬람(Islam)이다. 수도는 예전 이스탄불(Istanbul/Constantinople)이었는데 튀르키예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현재의 앙카라(Ankara)로 옮겼다.
튀르키예의 인구는 우리나라(남한) 인구의 1.5배 정도지만 국토면적은 9배 정도로 큰 나라인데 중부지방이 엄청나게 넓고 가는 곳마다 고대의 유물유적들이 널려있는 나라이다.
<3> 튀르키예 지진(地震) 발생의 비극(悲劇)
튀르키예(Türkiye)의 대지진
이 지역(中東地方)은 위에서 튀르키예의 지형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현재의 지형을 보더라도 과거에 많은 지각변동이 발생했던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위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이 지역은 지각(地殼)이 크게 아나톨리아 판(板), 아라비아 판(板), 아프리카 판(板)으로 구분되지만 세분하면 또다시 작은 지각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이번에 진도 7.9의 강진이 발생한 진앙지(震央地)는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국경 부근인 튀르키예의 ‘가지안테프 (Gaziantep)’다.
진도 7.9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강진(强震)으로, 강도(强度)로 보면 히로시마 원자폭탄 32개와 맞먹는 위력이라고 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이따금 미진(微震)이 있기는 한데 진도 1~2 정도여도 사람들이 놀라곤 하는 것을 생각하면, 또 현장 모습을 TV 화면으로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6.25) 때 우리나라를 도운 16개국 중에서 3번째로 많은 군대를 파견했던 우리나라 형제의 나라이다. 이번 지진피해자가 1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으니 가슴 아프고, 어저께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에서 2차 구조대 110명 파견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구조대파견이라고 한다.
내가 튀르키예를 여행했을 때 이곳 사람들이 내가 한국인이라니 너무나 친절하게 대하던 기억이 난다.
<4> 시리아(Syria)의 국가 현황
이번 투르키예의 남쪽에 잇닿아있는 접경국가인 시리아(Syria)에서도 강진이 발생했는데 인구는 약 1,860만 명, 면적은 18만 5천 ㎢, 인종은 아랍인(90%) 및 소수의 쿠르드족과 아르메니아인이다.
시리아(Syria)의 수도는 다마스쿠스(Damascus)이고 종교는 이슬람교(수니파 74%, 시아파 16%) 및 소수의 그리스도교인데 이곳 또한 중동지역 역사의 현장으로 재미있고 신기한 동화(童話) 천일야화(千一夜話/아라비안나이트(Arabian Nights: One Thousand and One Nights)가 처음 시작된 지역이기도 하다.
<5>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의 약사(略史)
아프가니스탄은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의 문화,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가 만나는 서남아시아의 요충으로 BC 6세기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BC 4세기에는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3세, 일명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를 받게 된다.
BC 2세기에 들어서는 중국민족의 후예인 쿠샨왕조(Kushan dynasty)에 정복되었다가 이어 이란(Iran)의 사산왕조(Sasanian dynasty)를 거치면서 힌두교(Hinduism), AD 9세기 사파르(Saffar)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슬람(Islam) 문화가 뿌리내리게 되는 등, 혼란의 땅이었다.
AD 13세기에는 칭기즈칸에 정복되었다가 이후 작은 제후국(諸侯國)들로 분리되면서 인도 무굴(Mughul)제국과 페르시아(Persia)의 영향을 받는다. AD 18세기 들어 아흐마드 샤 두라니(Ahmad Shah Durrani)에 의하여 독립국가형태를 갖추게 되나 각 지역 제후(諸侯)들과 주변 강대국(영국, 러시아 등)들의 극심한 간섭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지켜냈다. 이후 정당정치가 붕괴(崩壞)된 후 좌익(左翼)이 들어서는데 1973년 소련의 지원을 받은 좌익정당 파르캄(Parcham:깃발이라는 뜻)이 정권을 거머쥐며 공화국으로 바뀐다.
그러나 정파(政派) 간 분쟁이 일어나고 농촌을 중심으로 큰 반란이 일어나자 기존정권 수호라는 명분 아래 1979년에 소련의 침공을 받는다.
이후 10년간 내란(內亂)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인명 피해는 물론, 해외로 도피한 사람도 엄청 많았는데 1988년, 소련군이 퇴각하고 혼란을 겪은 후 1992년 마침내 소련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14년간의 전쟁 끝에 독립을 되찾게 된다. 이 전쟁으로 20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해외(주로 이란, 파키스탄)로 탈출한 난민들은 50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가슴 아픈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다.
<6> 정국 혼란과 탈레반(Taleban)의 출현
소련이 물러간 후 라바니(Burhanuddin Rabbani)가 정권을 잡게 되지만 라바니는 오직 이슬람교도에게만 정부 일을 맡겼고 비(非) 이슬람 기구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모든 방송도 오로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행하도록 하자 반발을 사게 되어 또다시 엄청난 정쟁(政爭)에 휘말리게 된다.
1994년 1월에는 반군이 카불(Kabul)을 공격하여 인구 200만 중 150만이 카불을 떠나 다른 곳으로 탈출했다고 하며, 라바니는 1994년 6월에 임기가 끝났는데 다시 6개월 연장하는 횡포를 저지르고....
이때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파키스탄 서부에서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던 학생들이 들고 일어서 독재 타도를 부르짖으며 단체를 결성한 것이 바로 탈레반(Taleban)이다.
탈레반은 무장투쟁 2년 만인 1996년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라바니 대통령을 축출해 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극단적인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여성 인권의 극단적인 제한, 비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격과 문화유물과 유적의 파괴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다. 특히 2001년 3월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미얀(Bamiyaan) 동굴 석불(石佛)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여 세계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7> 미국 9.11테러의 비극
화염에 휩싸인 뉴욕 쌍둥이 빌딩 /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 미국 국방부(Pentagon/펜타곤)의 피해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시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쌍둥이 빌딩)건물과 워싱턴에 있는 미국국방부(Pentagon) 건물은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미국 민간항공기를 납치, 충돌시켜 미국이 엄청난 피해를 입는데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본다.
상상할 수도 없는, 어이없는 테러를 당하자 미국은 우사마 이븐 라딘(Usāmah ibn Lādin:일명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파악, 그가 은신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그를 인도할 것을 요구했으나 탈레반이 거부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습(攻襲), 전쟁에 돌입한다.
미 뉴욕의 9.11 테러의 피해를 살펴보면, 경제적인 손실은 접어두고, 인명 피해를 보면 사망자만 쌍둥이 빌딩 2,600명, 미국방부 125명, 항공기 탑승객 256명, 뉴욕 소방관 343명, 뉴욕 경찰 84명, 뉴욕 항만국(港灣局) 직원 23명으로 총 3,130명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 본토가 최초로 공격당한 것으로,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日本)에 의한 하와이 진주만(珍珠灣) 공습 때 사망한 2,330명보다 800명이나 더 많았다고 하니 미국의 입장으로 보면 씻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미국 주도(主導)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대한 공격은 일부 서방국가와 아프가니스탄의 반(反) 탈레반 세력인 북부 동맹까지 이 전쟁에 합세한 끝에 탈레반 주권은 결국 붕괴되어 수도 카불(Kabul)에서 도주하고, 2001년 11월에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를 수반으로 하는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 내각을 구성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주변국에 난민들이 흩어져 주변국들의 정치개입문제, 이곳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마약(痲藥) 거래로 인한 각국의 미묘한 이해(利害)문제, 비록 전쟁에서 밀려났지만, 그 잔당(殘黨)들인 탈레반 세력의 호시탐탐 복귀를 엿보고 있는 문제 등 복잡하게 얽혀있다.
미국은 9.11 테러 주범인 우사마 이븐 라딘(Usāmah ibn Lādin)을 수개월에 걸친 은밀한 작전을 펼쳐서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외곽 아보타바드(Abbottabad)에 은신해 있던 라딘을 만 10년 만에 드디어 찾아내어 2011년 5월 1일, 미군 특수부대와 총격전 끝에 마침내 사살(射殺)한다.
그 이후, 2014년 아슈라프 가니(Ashraf Ghani) 대통령이 집권하여 정권이 안정되자 미군은 철군한다.
<8> 휴전협정(休戰協定)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각 종파 간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무고한 국민들에게 무자비한 살육이 이어지자 미국이 끼어들어 분쟁의 종식을 위해 힘써 보지만, 너무나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자 2020년 2월, 미국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슬람과의 줄다리기를 끝마치기로 마음을 굳히고 탈레반과 휴전협정을 맺는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
2021년, 미군의 철수 계획 발표한 후,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대한 경비는 강화했으나 8월 15일 탈레반의 카불 입성이 임박하자 아프가니스탄 정부 아슈라프 가니(Ashraf Ghani) 대통령은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목숨의 위협을 느껴 카불을 탈출한다. 탈레반의 횡포에 질린 카불시민들은 탈출을 위해 공항으로 몰려드는데 미군과 군속(軍屬) 및 외교관들도 미처 대피하지 못해 대혼란에 빠지고....
결국, 8월 30일 미군이 철수를 완료하면서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바로 엊그제 우리가 TV 화면으로 생생하게 보았던 장면들이다.
이후, 가지가지 소문이 떠돌았는데 가니(Ashraf Ghani) 대통령이 현금 2천억 들고 아랍에미리트(UAE)로 도주했다는 설, 현금을 자동차 4대에 꽉 차게 싣고 도주했다는 설 등인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그의 딸 마리암 가니(Mariam Ghani)는 뉴욕 맨해튼(Manhattan)의 브루클린(Brooklyn)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데 현재 예술가이자 영화 제작자라고 한다.
<9>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안 석불
파괴 전 모습 / 로켓포로 파괴 / 파괴된 후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주 힌두쿠시산맥의 절벽에 세워져 있던 바미안 대불(大佛)은 AD 6세기경, 인도 쿠샨왕조(Kushan Dynasty) 때 그리스 조형 미술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Gandhara) 양식으로 조각되었고 신라의 혜초(慧超) 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에도 언급되었던 불상인데 2001년 3월, 탈레반 집권 후 탈레반이 로켓포를 쏘아 파괴하였다. 마호메트를 신봉하는 이슬람에서는 불교 유적인 부처님 불상(佛像)이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높이 53m로 세계 최대를 자랑하던 세계문화유산 바미안 대불은 현재 유네스코에서 복원 중이라고 한다. 주변에 있는 동굴도 모두 불상이 있거나 천장화(天障畵)와 벽화가 그려져 있는 귀중한 불교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