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고 도시, 왕국, 국가 등 보다 큰 사회적 틀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폭력은 통제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크고 효율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다.
최초의 농부들은 마을에 사는 생활양식 덕분에 야생동물이나 비, 추위로부터 보호받는 등
어느 정도 직접적인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평범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익보다 손해가 더 컸을 것이다.
오늘날 번영사회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움 이야기이다.
요즘 우리는 풍요와 안전을 누리고 있고 그 풍요와 안전은 농업혁명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원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농업혁명이 놀라운 개선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수천 년의 역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보다 훨씬 더 대표성이 있는 관점은
1세기 무렵 중국에서 아버지가 농사에 실패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세 살짜리 딸의 관점이다.
아이는 과연 "나는 영양실조로 죽어가지만 , 앞으로 2천 년 내에 사람들은 먹을 거리가 풍부한 세상에서
에어컨이 달린 큰 집에서 살게될 테니 나의 고통은 가치 있는 희생이다"라고 말할까?
그렇다면 밀은 영양실조에 걸린 중국 소녀를 비롯한 농업종사자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사람들 개개인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는 무언가를 주었다.
밀 경작은 단위 토지당 식량생산을 크게 늘렸고,
그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기원전 1300년경, 사람들이 야생식물을 채위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면서 먹고 살던 시기에
팔레스타인의 여리고(Jericho) 오아시스 주변 지역이 지탱할 수 있는 인구는
기껏해야 1백 명 정도의 건강하고 영양 상태가 비교적 좋은 방랑자들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8500년 야생식물이 밀에게 자리를 내어준 뒤,
이 오아시스에는 1천 명이 사는 마을이 생겼다.
마을은 크지만 집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과거보다 많은 사람이 질병과 영양시조로 허뎍였다.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갯수로 결정된다.
한 회사의 경제적 성공은 직원들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은행잔고의 액수로만 측정된다.
마찬가지로 한 종의 진화적 성공은 그 DNA 의 복사본 개수로 측정된다
만일 더 이상의 DNA 복사본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종은 멸종한 것이다.
돈이 없는 회사가 파산한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한 종이 많은 DNA복사본을 뽐낸다면 그것은 성공이며 그 종은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천 벌의 복사본은 언제나 1백 벌보다 좋다.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든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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