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이동민
‘거기’
거실에서 모임을 알리는 우편물을 찾으려 탁자 위의 종이들을 들썩거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우편물 어디 있어?’ 라는 말에 대한 아내의 대답이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내는 뒤 돌아보지도 않았다.
외출을 서두르면서 자동차 키를 찾을 때도, 신문을 보다가 메모할 일이 있어서 볼펜을 찾을 때도, 심지어는 세면대 위에 놓여 있었던 치약을 찾을 때도 나는 ‘어디 있어?’ 라고 소리친다. 아내가 말하는 ‘거기’에는 자동차 키도, 불펜도, 치약도 들어 있는 마법의 상자이다. ‘거기’에는 우리 집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모두 들어있다. 상자라기보다는 창고에 가깝다.
‘거기’라는 말만 듣고 화장대 위에서, 또는 장롱의 설합을 열어서 물건을 찾아내는 내가 용하기도 하다. 아내가 ‘거기’라고 할 때는 장소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찾아 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전한다. ‘거기’는 언어가 아니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신비로운 끈이다. 가섭의 미소는 말로서는 풀어 낼 수 없는 소통의 길이다. 미소에는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하나도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사람이 서실에 가려고 여느 날처럼 현관문을 나서면서 ‘오늘은 우리 결혼한 날인데.’ 하였다. 별다른 감정도 없이 무심히 건네는 말이었다. ‘12월 16일 이잖아.’ 나도 지나가는 말처럼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결혼 4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떠난 이 집을 둘이서 지킨 지도 어언 10년이 가깝다. 어제도, 오늘도 아내는 현관문을 나섰고, 나는 버릇처럼 컴퓨터 앞에 앉는다. 자료도 찾아보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요즘의 일과이다.
해가 기울 녘이 되자 아침에 결혼일임을 말하던 아내가 생각났다. 전화를 했다. ‘오늘 저녁 식사는 바깥에서 할까?’ 라고 한 내 말도 무덤덤했지만, ‘그러지 뭐.’하는 아내의 대답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수성 못 가에 있는 식당에 갔다. 창문 밖의 수성 못은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면서 일렁이는 물결이 무척 아름다웠다. ‘우리, 결혼 전에 이곳의 호반 커피집에 더러 들렸지’ 했다. 옛날을 생각하니 마음이 젊어졌다. 둘러보니 예전의 그곳처럼 풋풋함이 넘치는 사람들만 자리를 매우고 있다. 아내는 그들 때문인지 주름이 늘어난 얼굴에 신경을 썼다. 그러고 보니 40년보다 더 오래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 온 이야기가 얼굴의 주름에 새겨져 있다.
무슨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티 없이 맑은 얼굴을 맞대고 연신 속살거리는 젊은이의 표정이 무척 달콤해 보인다. 우리는 겨우 몇 마디의 말만 건네고 조용히 식사를 했다. 얼핏 처다 본 아내의 얼굴에는 세월이 만든 흔적들이 가득하다. 흔적에는 오래 동안 새긴 ‘거기’라는 단어도 자리를 잡고 있다. 거기라는 말에는 수십 년 간을 같이 생활하면서 두 사람만이 만들어 왔고, 두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언어이다. ‘거기’는 말의 소리가 아닌 색깔로 상대의 속마음을 알아내는 마법이 담겨있다.
젊었던 날에도 출근 시간에 쫓기면서 ‘어디 있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거기’라는 대답을 들으면 ‘거기가 어딘데?’라며 짜증을 내곤 했다. 아내는 내게 잽싼 걸음으로 와서 ‘여기 있잖아’ 라며 부은 얼굴을 하고 내뱉었다. 여기와 거기는 말의 뜻만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의 길이가 다르다. 여기는 모호함이 없다. 말하는 이가 바로 곁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다 보니 듣는 사람도 헷갈리지 않는다. ‘여기’는 의사의 소통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일어난다. 그런데도 아내가 ‘여기 있잖아.’ 하는 말소리에는 온기가 없었다.
아내도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예전에 왜, 아이들과 거기 갔잖아’ 하였다. 젊은 날에 아이를 데리고 들렸던 못둑 밑의 어린이 놀이터를 말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거기가 어디인지를 알았다. ‘어린이 놀이터------’ ‘그래’ 다시 말을 끊고 우리는 세월을 가로질러 먼 옛날로 여행을 했다. ‘여기’에서 ‘거기’까지 살아 온 길이 기억 속에서 가물거린다. 둘이서 노인네가 되도록 만들어 온 길이었다.
2014. 12. 21
첫댓글 이 작품을 쓴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나 되었네요. 이제는 50유년을 함께 걸어왔으니 말이 우릮끼리만의 암호처럼 된 것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거기'에 의혹을 가지는 독자분이 계시어서, 조금의 설명을 붙이겠습니다. 우편물이 오면, 고지서의 서류이거나, 소식지이거나 등등에 따라 우리가 습관적으로 두는 곳이 있습니다. 탁자 위에 그대로 둔다지, 고지서라면, 따로 모아 두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라는 말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습관적으로 두는) 그 자리에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은 암호처럼 들리지만, 오래 함께 살다보니 우리 부부는 쉽게 알아듣습니다.
여기에서 거기라는 이야기가 친숙하면서도 멀게 느껴집니다. 저도 일상생활에서 늘 겪는 일이라서 공감이 많이 가서 한참 웃었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거기라고 하면 한 곳이 아니고 살림살이와 관련 된 것은 부엌 쪽에, 잡다한 공구는 바깥쪽 베란다에, 옷들은 옷장에 그런 곳이 다 거기입니다. 전라도에 가면 모든 것에 거시기라는 말을 많이 붙이는데 신기하게도 그 말을 대부분 알아 듣는다는 것입니다. 부엌 몇 번째 서랍에, 몇 번째 옷장 세 번째 칸. 이런 식으로 해주면 오죽 좋습니까 ㅎㅎ.
빨리 와서 "여기 있잖아" 하며 안 찾아 주는 걸로 봐서는 아내도 저와 같이 세월이 거슬러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겠죠
가까운 사람은 대화를 단어로 하는게 아닌가 봅니다.느낌으로 한다고 할까요. 해로하신 부부의 삶살이가 아름답게 전해옵니다.
남편은 눈 앞에 걸려있는 옷을 찾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찾아주면 "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 하며 머쓱하게 웃습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이 글을 여기서 읽으니 참 반갑습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는 다 똑같애 왜 적극적으로 물건을 찾지 않고 남의 손을 빌리려고 하는지.
그러나 지금의 '거기'에는 부부간의 오래된 소통의 언어임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