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그 자체로 소중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역사인식이라 불리워질 수 있는 여지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역사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fact의 나열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역사의 서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기억에 대한 반추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는, 그렇다고 관점 자체의 지나친 강조 내지 강요 역시 역사를 그것 아닌 다른 무엇이 되게 하여 버리는, 참 애매한 본질적 속성 내지 개념적 징표의 그것. 오, 역사... 따라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야 하겠지만, 그 사실의 선택과 구성에 대한 사가의 생각, 그러니까 역사를 보는 관점이 역사를 역사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지나온 공교육의 12년을 반추해 보고 싶어졌고, 그 결과, 우린 이러한 성찰의 결론을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쪽으로 강요당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불길하고 명백하게.
아마 이 땅에서의 특수한 근현대사 속에서 형성된 공식적이고도 처절한 생존의 본능이 만들어낸 집단의 허상이, 실체적 물리력을 발하게 되는 지점에까지 와서 삽질을 해대는 것이겠지, 오늘날의 기현상은. 지금의 정권이 해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경건하게 느껴지는 것으로서, 아, 인간은 소주가 없어도 오바이트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허상적인(?) 기현상을 보고 듣고 있노라면.
구체적으로.
원래 기득권이란 게 그렇지. 자신들의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선택해서 자신들의 영향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인간과 시스템)에게 강요하지. 공식적으로. 좌편향 어쩌고 해 가면서 특정한 쪽의 것만을 다시 강요하는 아이러니. 결국은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지. 자신들이 옳다하는 최초의 가정 자체가 틀린 거니까. 오, 아이러니. 뭐, 인간이라는 게 다 그렇지요. 그것들이 만들어낸 세상이라는 것도 그렇고. 모듬살이가 만들어낸 가장 큰 비극이 바로 그런 거라며. 모듬살이를 위한 소수의 정의롭지 못한 생각이 모듬살이 자체를 이끌어가게 되는. 오, wag the dog.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사춘기적 분노와 비틀린 공명심은 이해해 줄 수 있어. 나 아니면 안 돼 하는 전두환식 초자아 조차도 썩은 영혼의 포비아적 망상이라 이해해 줄 수도 있어.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4·19를 폭동으로, 5·16을 혁명으로 쓰고 가르치고 인식시키려 하는 것도 자신들의 썩은 운신과 처세에 대한 정당성 부여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가시화로 이해해 줄 수도 있어. 그럼. 난 관대하니까. 근데 내가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건, 이 새끼들은 창피한 줄을 몰라. 厚顔無恥 혹은 眼下無人.... ㅅㅂ....
예전에 공정하기로 이름이 높았던 미국의 연방법원판사가 퇴임 후 쓴 자서전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더라. ‘내가 가장 공정했다고 자부하는, 그러니까 현재, 모든 객관적인 사실과 진술을 토대로 극단의 객관성을 견지했다고 남들이 평가하는 재판조차, 지금 생각해보면 피고 측에 얼마간의 유리한 뭐(incentive)를 주고 판결을 내린 듯하다’고 했다더라. 원래 피고는 국가권력과의 관계에선 약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얼마간의 특혜를 주는 것이 실제적인 정의 구현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지. 형사재판에서. 뭐, 약간은 다른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동안 이 땅에서 왼쪽이 받아왔던 수많은 불편부당을 생각해보면, 이 책의 어투와 논조(논조는 무슨. 신문 사설이냐. 어쨌든)와 사실을 조명하고 구현하는 방식이 오히려 중도적인 객관성 구현에 더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구려. 거기에 3권에 다다르면 절정에 이르는, 숨가뿐 현장성에 대한 집요한 추구가, 결코 책의 분량 분할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라 믿소. 히히.
우리가 외면을 강요당해 왔던 것들에게 시선을 주는 것이 역사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이건 단순히 다양성의 추구 내지는 존중의 차원이 아니라, 억울하게 희생되어간 많은 넋들과 생각들의 제자리 찾아주기를 위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제라도 이 지하의 고전을(영어로 뭐게? dark classics? 흐흐) 읽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미영, 사랑해요!
p.s 왠지 내가 다음에 고른 책 역시 관점과 애정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려. 독재와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 쯤 되겠지요. 조지 오웰의 대표적 고전 소설 두 권인데요, 동물농장과 1984. 한 권으로 묶인 건 표지가 영 맘에 안 들어서. 미연에게 드릴 것입니다. 화이링!
첫댓글 우왕 굳!!
헐.. 정말 멋있네요... 이런 독후감 후기는 정말 우리끼리 보기는 아깝구려..ㅋㅋ 그런데.. 다음 책 릴레이...1984와 동물농장이라... 논쟁이 예상되는구만요...ㅋㅋ
제가 아는 책꽃이에 교과서포럼에서 만든 한국근현대사 책이 많습니다^^; 분노하고 싶은 분들은 말씈하시면 가져다 드리지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