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가을은 부끄럽다. ‘정치 1번지’라는 국회의사당에서 정기국회 100일 내내 정쟁(政爭)과 고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에는 의원 299명 외에도 수천명의 의원 보좌진과 국회 직원, 관련 종사자들이 묵묵히 근무하고 있다. 너무 바빠 ‘여의도에는 가을이 없다’고 말하는 11월 국회의사당의 다양한 사람들을 조선닷컴이 만나본다.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장. 치열하던 세종시와 4대강 사업 논쟁에 갑자기 의원 3명이 한꺼번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굳은 표정으로 발언 내용을 볼펜으로 휘갈기던 김미라(43)씨의 손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맞은 편에 자리잡은 홍미지(27)씨의 자판을 두드리는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이들은 국회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를 기록하는 의정기록관이다. 김씨는 내년이면 경력 20년의 베테랑인 반면 홍씨는 이제 갓 1년 차 새내기다. 회의에는 이렇게 ‘주무(主務)’라고 부르는 베테랑 1명과 ‘부무(副務)’라고 부르는 신참 1명이 함께 들어 간다.
◆ “난 아직도 옛날 사람”
홍씨가 5㎏짜리 기계를 두드리는 반면 김씨는 볼펜으로 발언 내용을 쓴다. 현재 국회에서 일하는 의정기록관 82명 중 김씨처럼 손으로 쓰는 수필(手筆) 속기사는 27명뿐이다. 국회는 1995년부터 기계 속기사만 채용하고 있다. 속기 학원에서도 더 이상 수필 속기를 가르치지 않는다.
편리함은 기계 속기가 앞선다. 워드 치듯 친 뒤 메모리카드를 빼 작업실 컴퓨터에서 손을 보면 끝이다. 보통 5분 동안 속기를 하면 정리된 의정기록이 나오기까지 30~40분이 걸린다. 반면에 수필 속기는 손으로 쓴 것을 워드로 다시 쳐야 한다.
그러나 기계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가 고장 나면 아예 회의 전체를 ‘날릴’ 수도 있다. 국회 밖에서 회의가 열릴 경우 5㎏짜리 기계를 이고 나가야 한다. 단, 전원이 있어야 한다.
지난 2005년 9월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의 한국전력 국정감사장. 김용갑 위원장이 갑자기 “전기의 소중함을 느껴보자”며 회의장 전원을 내려버렸다. 오전 10시였는데도 회의장은 어두컴컴했다. 김 위원장은 “들리면 되는 거 아이가”라고 말했다. 기계 속기는 전기가 끊겨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마이크도 꺼진 상황에서 김씨는 20여분 동안 사상초유의 ‘촛불 속기’를 해야 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재래시장에서 국감을 열기도 했다. 그는 대전 중앙시장 골목에 자리를 깔고 상인들과 시장 활성화 대책을 의논했다. 거기서도 수첩 든 김씨만이 그들의 대화를 기록할 수 있었다.
김씨는 “돌이켜보면 수필 속기가 활약할 기회였지만 당시엔 등에서 진땀이 줄줄 흘러내렸죠”라고 말했다.
◆ 수필 속기, 1분에 320자 감당해야
의정기록과에서 15번째 근속자인 김씨는 “국회 짬밥으로 따지면 5선 의원 급이죠”라고 했다. 18대 국회의원 298명 중 6선 이상은 조순형, 박희태, 이상득, 정몽준, 홍사덕 의원 등 5명뿐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속기사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교수 추천으로 한 제약회사 연구실에 들어 갈 뻔 했다. 하지만 “재미없으면 그만 두자”는 생각으로 1988년 국회 속기사 양성소에 입학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김씨는 수업 첫날 “이건 완전히 다른 언어야!”라고 감탄했다고 했다. 1년 동안 갱지에 쓴 신문사설이 높이 2에 달했다. 수료하자마자 속기사 1급 자격증을 땄다. 20여명 수료생 중에서 혼자였다. 1급을 따려면 1분 동안 320자 이상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뉴스 앵커가 말하는 속도가 대략 1분당 300자 정도다.
당시 국회에서는 매년 40여명씩 속기사 양성 인력을 뽑았지만 수료생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김씨는 “속기의 매력을 느끼기까지 지루한 훈련과정을 버티기가 힘들다”고 했다. 선배들이 읽어 주는 회의록과 신문사설을 받아 적은 뒤 원본과 비교하는 일을 꼬박 1년을 해야 한다. 김씨는 그렇게 1990년 국회에 들어왔다.
정기국회가 열리는 요즘 11월이 가장 바쁘다. 김씨는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12번이나 회의장을 들락거리며 일한 적도 있다”고 했다.
김씨는 “처음 들어왔을 때는 각종 소위원회, 공청회 같은 게 없었다”고 했다. 다음날 바로 회의록이 나와야 하는 본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운영위원회 회의는 40명이 5분씩 나눠 맡는다.
◆ 회의 때마다 긴장, 20년 지나도 ‘소머즈’는 안돼
김씨는 “20년째 긴장하면서 회의장에 들어간다”고 했다. 속기는 ‘받아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집에서는 아이 둘을 둔 평범한 주부지만 회의장에 들어가면 진지하다 못해 날카로워질 때가 많다고 했다.
회의 때 목소리가 작은 정모 의원을 한참 노려 봤더니 한 직원이 “잘 안 들려요?”라고 물었다. 김씨는 그를 쏘아 붙이며 말했다. “제가 무슨 소머즌가요?” 20년을 들었지만 그도 소머즈는 아니다.
발음이 안 좋거나 사투리를 진하게 써서 속기가 곤란한 의원들도 많다. 17대 신모 의원과 18대 백모 의원은 의정기록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신 전 의원은 고령인데다 사투리가 센 편이다. 김씨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회의 때 세계 여성 정치인들의 이름을 쭉 말씀하시는데, 아프리카 정치인 이름이 나올 땐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어요”라고 했다. 이럴 때는 보좌관에게 주로 묻지만 보좌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동그라미를 쳐 놓고 나중에 인터넷을 뒤지기도 한다.
가끔은 환호성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 의원들이 식사를 하자며 갑자기 정회를 선언할 때다. 은어로 “먹었다”고 한다.
◆ 아는 만큼 들려, 끊임없이 공부해야
김씨는 주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를 담당하고 있지만 생소한 위원회 회의에 들어갈 때 난감한 경우가 많다. 특히 기획재정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국방위원회가 전문적인 용어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고 했다.
1993년 율곡 사업 관련 국방위원회 국정조사에서 한 잠수함 전문가가 잠수함에 대해 설명했는데 김씨는 그날 해군에 문의 전화만 수십 통을 했다고 했다. 이럴 때는 다른 의정기록관들이 함께 ‘번역’에 참여하기도 한다. 한 법관 출신 의원은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해 김씨를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김씨는 매일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듣는다. 요즘 이슈에 대한 감각을 유지해야 속기할 때 편하기 때문이다. 홍씨도 “아는 만큼 들린다”고 했다. 그런데 같은 라디오를 들어도 꼭 직업병이 도진다. 김씨는 라디오를 “아차” “아차” 소리 내며 듣는다. “내가 속기하면 놓치겠다 싶은 부분들이 많아요. 전화 통화가 더 어렵죠.”
의정기록관들은 동시에 여러 의원들이 발언해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회의록에 ‘장내소란’이라고 쓴다.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표결 과정에서 13분 동안 ‘장내소란’이 16번이나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씨는 “장내소란은 정말 불가피할 때만 쓰는 것”이라며 “선배들한테 혼난다”고 했다.
그럼 미국처럼 회의록에 ‘웃음’이라고 기록하는 경우는 없을까? 김씨는 “우리는 국정감사 때 곤란한 질문에 장관이 멋쩍게 웃을 때 ‘웃음’이라고 쓴다”고 했다. 언젠가는 우리 국회도 미국 백악관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담아 ‘웃음’이라고 기록하는 게 김씨의 작은 소망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