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1370년(공민왕 19) 유백유(柳伯儒)가 지은 「천축산불영사기」에 그 기록이 나온다.)
의상이 경주로부터 해안을 따라 단하동(丹霞洞)에 들어가서 해운봉(海運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서역의 천축산을 옮겨온 듯한 지세가 있었다. 또 맑은 냇물 위에서 다섯 부처님 영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내려가서 살펴보니 독룡(毒龍)이 살고 있는 큰 폭포가 있었다.
의상은 독룡에게 법(法)을 설하며 그곳에다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독룡이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신비로운 주문을 외워 독룡을 쫓은 뒤 용지(龍池)를 메워 절을 지었다. 동쪽에 청련전(靑蓮殿) 3칸과 무영탑(無影塔) 1좌를 세우고 천축산 불영사라 하였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이 다시 불영사를 향해서 가다가 선사촌(仙槎村)에 이르렀는데, 한 노인이 "우리 부처님이 돌아오셨구나." 하면서 기뻐하였다.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불영사를 부처님이 돌아오신 곳이라 하여 불귀사(佛歸寺)라고 불렀다.
의상은 이 절에서 9년을 살았으며, 뒤에 원효도 이곳에 와서 의상과 함께 수행하였다 한다. 청련전과 무영탑료는 환희료(歡喜寮)와 환생전(還生殿)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408년(태종 8) 이문명(李文命)이 지은 「환생전기」에 의하면 옛날에 백극재(白克齋)가
울진 현령으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급병을 얻어 횡사하니 그 부인이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불영사로 와서 남편의 관을 탑전(塔前)에 옮겨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3일 만에 남편이
되살아나 관을 뚫고 나오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탑료(塔寮)를 환희료, 불전(佛殿)을 환생전이라
하고, 『법화경』 7권을 금자(金字)로 사경하여 불은에 보답하였다고 한다.
(인터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백암산 아래 단하동(丹霞洞)과 해봉(海峰)
아홉마리의 용을 물리침. 처음 구룡사(九龍寺)하였다가 훗날 불영사로 개칭.
승려 소설(小雪)은 소진(小震), 승려 설운(雪雲)은 설운(雪耘)으로.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디지털울진문화대전-울진향토문화백과 다른 점)
소설小雪 양성養性 진성眞性 천옥天玉 혜능惠能 재헌在軒 유일有逸 설운雪雲 등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나오는 승려들의 이름이다.
여기서 양성과 혜능은 동일인이다.
"서역의 천축산"을 검색하면 그냥 불영사가 나온다.
서역은 현재 인도(India)를 뜻한다.
천축은 현재 인도(India)를 뜻한다.
서역이나 천축이나 같은 말이다. 西域國, 天竺國.....
'서역의 천축산'이란 표현은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산'이란 말과 같다.
서역의 천축산이란 표현은 문제가 있다.
천축산이란 천축국의 어느 산을 지칭할 터인데 구체적이지 못하다.
난 인도에 있는 어떠한 산인줄 알았다. 그런데 검색하니 안 나온다.
중국에 가서 공부한 의상은 서역(천축)의 어떠한 산도 본 적이 없다.
다만 영축산에 대한 이야기는 서역에 갔다온 승려로부터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인도의 영축산 가보지 못했으니.....
이 절의 동쪽에는 삼각봉(三角峰), 아래에는 좌망대(坐望臺)와 오룡대(五龍臺),
남쪽에는 향로봉(香爐峰)·청라봉(靑螺峰)·종암봉(鐘岩峰),
서쪽에는 부용성(芙蓉城)·학소대(鶴巢臺),
북쪽에는 금탑봉(金塔峰)·의상대(義湘臺)·원효굴(元曉窟)·용혈(龍穴)이 있는데
모두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
다음 기회에 불영사를 찾으면 위 봉우리들을 오르고 싶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고 하늘의 구름들이 조화를 부린다. 날씨도 춥다.
불영사는 익히 알고 있다. 1990년 경인가 지나가는 걸음에 설피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은 절의 규모가 아니었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문화재 관람료) 2,000원을 내고 대웅전이 있는 곳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비포장의 길은 불영계곡을 가로지른다. 불영계곡은 들어갈 수 없다.
청천의 날이었으면 불영계곡의 빼어난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찾고 싶은 사찰이다.
비구니승들이 계신 곳은 화려함보다 단아함을 준다.
전각의 배치, 화단 조성 등이 부드럽고 잘 정리정돈된 느낌이다. 참 좋다.
일주문
푸르른 날은 아니다. 바람도 제법 불고 날씨는 쌀쌀하다. 불영계곡, 멋지다.
불영사 부도 / 경북 문화재자료 제162호
조선시대 이곳 주지였던 양성당 혜능선사(養性堂 惠能禪師 1621~1695년)의 부도이다.
법명은 혜능, 법호는 양성, 속성은 남씨였다.
극락전
칠성각
울진 불영사 응진전 / 보물 제703호
석가모니부처와 그의 제자들, 조선 중기 건립되었다.
의상전
조사들의 영정이 봉안된 곳. 의상전 가운데 의상대사의 영정을 모시지 않았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대선교등계승 의병대장군겸 이조판서 ?금부사 통제군사령 증시종봉당대선사지진.
사명당(四溟堂) :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송운松雲, 속며 임응규任應奎.
별호는 종봉鐘峰(이 진영에서 증시贈諡란 의미가 별호인 모양이다), 법명은 유정惟政
보제존자청허당대선사지진
휴정(休靜) : 본관은 완산完山, 속명은 최여신崔汝信, 아명은 雲鶴, 자는 玄應.
법명은 휴정, 법호는 청허淸虛.
별호로 서산대사西山大師, 백화도인白華道人, 풍악산인楓嶽山人, 두류頭流산인, 묘향妙香산인 등.
어느 승려의 진영인지 모르겠다.
불영사의 자료를 읽으며 생각하기엔 범일梵日(사굴산문 굴산사 창건주)이지 않을까?
명부전
법영루法影樓
불영지에 부처가 반영되었다고 한다.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 / 보물 제1201호
1725년(영조 1) 중건하여 오늘까지 보존되고 있음.
불영사 삼층석탑 / 경북 유형문화재 제135호
3.21m, 고려 초기 건립 추정.
대웅보존 오르는 계단 좌우에 거북이가 있다.
불영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 보물 제1272호
제작 시기는 1735년(영조 11).
석가모니 진신사리, 돋보기 통해 확대된 것을 촬영.
산신각
늙은 승려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나이가 든 육신은 고단한 것일까?
비구니 노승을 보는 내 마음이 숙연하다.
사적비
불영지에 비치는 부처를 찾아봐야겠다.
바람에 물결이 일렁인다.
산 위의 저 바위, 저 형상이 부처라면 부처이다.
화장실에 불영사를 계절마다 촬영한 사진 액자가 있어서....
들어올 때는 회색 하늘, 나갈 때는 흰 구름에 푸른 하늘이다.
첫댓글 두어번 가본 곳이네;;; 경치와 계곡 물이 참 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