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림은 그의 팔을 쳤다.
“왜 그래? 이것 놔.”
“야! 이 미친놈아. 그렇게는 안 되지. 최림. 인제 그만하지. 너 때문에 우리 반이 공포 반이 되어야겠냐?”
아이들이 이 재미난 싸움을 보려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수애는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종태야! 한 방에 날려버려.”
“다리를 걷어차!”
아이들의 응원에 기세가 등등한 종태가 최림을 앞으로 끌고 갔다.
아이들은 재빨리 앞에 있는 책상들을 뒤로 물렸다.
“선생님을 따라가려면 날 한 대 쳐봐. 네가 이기면 보내줄게.”
종태는 싸움닭의 모양을 취했다.
“와 ~.”
“난 종태에게 걸었다.”
마음이 급한 최림은 이번만 자기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최림은 수애가 걱정되었다.
힐끗 돌아보니 수애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최림은 손에 동전 두 개를 꼭 쥐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싸움에는 선방이 반을 먹고 들어간다.’
종태가 거들먹거리며 다가왔다.
“졌다, 하고 내 앞에 무릎 꿇으면 한번 봐주지.”
이때였다. 상대방이 방심할 때, 최림은 딱 한 방을 날렸다.
퍽!
억!
스르륵 ….
그러자 짱이던 종태는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순식간에 끝난 일이라 모두 얼어붙어 버렸다.
최림은 얼른 가방을 챙겨 운동장으로 뛰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주차장에서 까만 승용차가 이미 교문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최림은 있는 힘을 다해 차를 따라갔다.
다행히 차는 학교 앞 교차로에 서 있었다.
빨간 불이었다.
최림은 필사적으로 달려 마침내 차 근처까지 왔다.
예상한 대로였다.
차 안의 운전석 뒤에 시커먼 놈이 선생님을 조종하고 있었다.
“안 돼!”
최림은 선생님을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직 파란불이 켜지지도 않았는데 차가 출발했다.
이건 분명히 놈들이 조종한 거였다.
때마침 교차로 왼쪽 방면에서 덤프트럭이 전속력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순간 최림은 어제 무림 거사의 말을 떠올렸다.
‘아니야. 아저씬 지금 서울에 계시잖아. 에잇! 그래도 몰라.’
최림은 크게 세 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무림 거사님! 무림 거사님! 무림 거사님!”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의 차가 가까스로 덤프트럭을 피해 반대편 전신주를 받고 정지했다.
쾅!
최림이 눈을 떴을 땐, 그곳엔 연기가 자욱했다.
그리곤 비가 눈을 가렸지만 최림은 똑똑히 보았다.
그곳엔 번뜩이는 칼이 춤추고 있었다.
그 칼의 주인공은 무림 거사였다.
놈들은 무림 거사의 칼에 맥을 추지 못하였다.
‘스승님!’
최림은 자신의 부름에 응답해준 무림 거사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상황에서 최림은 그곳을 향해 달렸다.
“선생님!”
선생님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최림은 선생님이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침 사고 현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들 중 한 명에게 119 전화를 부탁했다.
잠시 후, 교차로 인근 도로 바닥에는 검은 타르 같은 끈적끈적한 물질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 * *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날, 선생님을 구한 사건으로 최림은 무림 거사의 제자가 되었다.
그제야 최림은 그동안 보았던 시커먼 물체가 악령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스승은 그런 악령을 잡는 선인인 줄도 알았다.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이던 최림은 일주일에 한 번 스승의 집에 갈 수 있었다.
그 기간에 최림이 배운 것은 정신 단련법이었다.
기를 전수 하여 활용하는 법 그리고 단전호흡 등이었다.
그런 와중에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외삼촌은 결혼했다.
그래서 최림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예 거처를 스승의 집으로 옮겼다.
이로써 수애와의 인연은 끝났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최림에게 수애는 이별의 증표로 하얀 손수건을 건넸다.
“왜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거냐?”
“미안해.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
손수건에는 수애의 이름과 최림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그중 최림이 감명받은 건 이름 사이에 있는 하트 모양의 문양이었다.
어쨌든 최림은 그곳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차근차근 무예를 익히고자 했다.
무림 거사의 집은 산 중턱에 있었다.
두 사람이 겨우 기거할 움막이 있었고 마당이 수련장이었다.
제자가 되었지만 최림은 물 긷는 것과 밥 짓고 빨래만 했다.
좀처럼 무림 거사는 최림에게 본격적인 무예를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기본적인 체력 훈련과 무도인이 걸어야 할 정신 이론 등을 강조했다.
최림은 몇 년 동안 매일 산 정상까지 뜀박질했다.
그래서 체력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 기간에 이미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했다.
나머지 집 안에 있는 무술 전집을 독학하며 무예도 익혔다.
무림 거사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밖으로 나갔다.
최림은 스승이 홀로 악령을 잡는 일을 하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돌아올 때마다 온몸에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났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아침에도 무림 거사가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다.
최림은 스승이 신을 신발을 찾아 앞에 대령했다.
그때 무림 거사가 최림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도 나가고 싶으냐?”
스승의 물음에 최림은 기회가 왔나 싶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무슨 무예를 닦았느냐?”
최림은 스승의 말에 깜짝 놀랐다.
스승은 아마 최림이 몰래 무예를 공부한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최림은 그래도 시치미를 뗐다.
“스승님 말씀대로 정신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만 ….”
“알았다. 오늘은 함께 나가서 실제 체험을 하자꾸나.”
스승의 말에 최림은 뛸 듯이 기뻤다.
그길로 무림 거사와 최림은 인근 도시에 나갔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목욕탕도 들리고 맛있는 식당에서 밥도 먹었다.
그리곤 해가 질 때까지 근처 공원에서 휴식을 취했다.
최림은 오늘 어디에서 작업하는지 궁금했다.
“도심 가운데 빈 건물이 있어. 그곳에서 네 또래 아이들이 나쁜 짓을 많이 한다 고 하네. 그 말은 그곳에 악령들이 많다는 거야.”
“주의할 게 있습니까?”
최림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청소년들에게 접근하는 악령들은 성급하고 힘이 몹시 세지. 이럴 경우, 사람과 악령의 혼연일체, 즉 완전체는 드물어. 아직 청소년이니까 그런가 봐. 그래도 매사에 조심해야 할 거야.”
“비완전체와 완전체가 다릅니까?”
“비완전체는 말 그대로 사람의 뒤에서 악령이 조종하는 거야. 그 말은 악령이 사람 몸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거지. 그런 악령의 등급은 한 수 아래야. 반면, 완전체는 사람과 악령이 혼연일체가 된 경우야. 이런 놈들은 솔직히 잡기가 버거워.”
최림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죽인 강도를 떠올렸다.
그때 그놈은 완전체였다.
붉은빛 머리와 여우 형상을 한 놈이었다.
최림은 놈을 잡으려면 자신의 무공실력을 어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도심의 해가 넘어갔고 빠르게 어둠이 찾아왔다.
“가자.”
도심의 야경은 황홀했다.
하지만 중심부로 들어가니 불빛 하나 없는 황량한 건물이 있었다.
대충 보아도 10층이 넘는 건물이었다.
무림 거사는 귀를 쫑긋 세웠다.
“9층이야.”
무림 거사가 앞장섰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최림은 3년 동안 매일 산 정상을 올라서, 이쯤이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무림 거사는 거의 날아가다시피 올라가고 있었다.
최림은 헉헉거리며 겨우 그의 뒤를 따랐다.
9층에 다다르자, 본드 냄새와 술 냄새가 진동했다.
빈 사무실에 아이들 여럿이 모여있었다.
“이러지 마!”
그때 날카로운 여자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깨진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어떤 여학생이 남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야! 여기까지 따라올 땐 생각이 있었잖아. 오늘 찐하게 밤을 보내보자고.”
“그래, 재미 좀 보자!”
남자아이들은 하나같이 본드에 취해 있었다.
그들은 흐느적거리며 그 여학생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명백한 집단 성폭행 현장이었다.
“이런 나쁜 새끼들!”
최림은 그 여학생을 보면서 수애를 떠올렸다.
만약 저 여학생이 수애라면, 하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치밀었다.
‘개빡치는 쌔이들, 오늘 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