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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7일 덕유산 6-2구간 산행을 시작하다.
작년의 무더웠던 7월에 비해서
올 7월은 바람이 불고 구름이 있는 날씨로 산행하기가 예상보다 수월했다.
덕유산 대간코스를 종주를 2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하다보니
이번 구간은 16 km정도로 짧다.
그래서 대간선두팀은 백암봉에서 향적봉까지 왕복산행을 추가하였다.
나는 향적봉은 가본 적이 있으니,
여분의 시간을 이용해 대봉의 북쪽 미답지인 흥덕산, 지봉 코스를 다녀오기로 하고
산행대장님에게 미리 고지를 하였다.
안성탐방센터의 입구이다.
산악회에서 출발하다보니 국립공원에서 출발전에 약간의 안전교육이 있었다.
칠연의총은 지난 산행에서 언급한 바가 있어 중복 글은 생략하고
탐방입구에서 약 500m 정도 진행하면
문덕소(해발 635m)가 나온다.
사진 한 컷 찍으면서 선두에서 중간으로 빠진다.
근데 그물은 무었때문에 설치했는지 궁금하다.
지나가다 본 산수국
동엽령에서 서쪽을 바라본 풍경이다.
칠연계곡 방향이다.
구름에 가려서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한 능선이 아마도 운장산, 구봉산인 듯 싶다.
(덕유산에서 30km 정도의 거리)
백두대간 블랙야크 인증은 하고 있지 않지만
인증장소라는 응급구급함에서 셀카 인증을 해본다.
동엽령에서 백암봉까지 가는 길은 아래 사진처럼 수월하다.
북쪽 백암봉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좌측편에 멋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가세봉(1,370m)이라고 한다.
가위를 갱상도 사투리로 가세라고 하는데, 가세봉이라고 불리는 연유는 잘 모르겠다..
멀리 앞쪽에 보이는 정상이 백암봉이다. (붉은 화살표)
백암봉 좌측편으로 흰바위 암릉이 살짝 비친다.
백암봉에서 약 800m 진행하면 작은 봉우리 및 이정표가 나온다.
그리고 대포 같이 생긴 멋진 바위도 보이고...
그리고 맞은 편에서 데크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타 산악회 사람들도 하나의 멋진 장면을 만들어주고 있다.
원추리꽃
조팝나무
데크 계단을 올라가면서 뒤돌아본 풍경이다.
멀리보이는 좌측봉우리는 덕유산 시루봉, 가까이 보이는 우측 봉우리는 덕유산 망봉이다.
아래 사진은 가세봉, 가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백암봉 정상가까이 가다보면 우측에 봉우리가 보인다.
상여덤이다. 생각보다는 멀리 보인다.
백암봉 정상에서는 상여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오르막에서 미리 찍은 사진이 도움이 된다.
(사실 오르막에서 귀봉인 줄 알았다는....)
뒤(남쪽)를 바라본 풍경
과거 지나온 덕유산 능선길이다.
좌측부터 백암봉, 삿갓봉, 남덕유산, 서봉이다.
많이도 걸었다.
백암봉에 도착하다.
백암봉(白巖峰, 1,503m).
백암봉은 무주 안성방면으로 하얀 암봉을 내리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조금 전 윗글에서 동엽령에서 올라가면서 백암봉 좌측편에 흰 암봉이 보인다고 했었다.
(사실 그리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
‘흰바위봉’으로 백암봉은 덕유산의 한가운데 있다고 한다.
백암봉(흰바위봉)이 덕유산 한 가운데 있다고 할 경우에는
남덕유산은 덕유산의 줄기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고
아래 지도사진처럼 덕유산은
무주 심곡리에서 무룡산을 지나 삿갓재까지로 한정하여야 할 것이다.
(아래 푸른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백암봉 위치이다.)
선두팀은 덕유산 향적봉을 향해 이미 진행한 상태이다.
덕유산 향적봉은 이미 수회 가보았기 때문에,
미답지인 대봉에서 북쪽에 위치한 흥덕산 및 지봉을 가기로 하고 대간길로 우회전 한다.
덕유산(德裕山)의 최고봉 향적봉(香積峰 1,614m)
: 덕유산은 남한에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네 번째로 높으며, 최고봉은 향적봉(香積峰)이다.
향적봉(香積峰)은 ‘향기가 쌓여 있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가까운 곳의 적상산의 향로봉(香爐峰)에서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면 그 향기가 이곳에 와서 쌓이고, 그 향기를 찾아 온 산신들이 기도를 들어줬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참조로 적상산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가 있는 곳이다.
과거에는 여산(廬山) 또는 광산(匡山), 광려산(匡廬山)이라고도 불렸다. 원래 여산은 중국 강서성 구강시 남쪽 파양호 근처에 있는 천하 명산을 가리키며 일명 광산(匡山), 또는 광려산(匡廬山)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지명은 중국의 지명을 따서 붙였을 것이다. )
이성계가 고려 명장시절 이산에서 수도 전념할 때 수많은 맹수들이 우굴 거렸으나 한 번도 해(害)를 입지 않아 덕이 풍부한 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이중환의“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흙산인데 구천동이 있고 천석이 깊숙하다. 난리를 겪을 때 이산에 숨어들면 적군이 찾지 못한데서 “덕이 큰산” “넓고 크다” 라고 하였다.
임진왜란(1592년) 때 왜병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면 짙은 안개가 드리워 산속에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그 안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있어 덕이 있는 넉넉한 산이라 하여 ‘덕유산(德裕山)’이라 부르게 됐다는 말도 있다.
백암봉에서 동쪽으로 진행하면 지나가야 할 능선이 보인다.
좌측은 귀봉(鬼峯), 가까이 있는 우측봉우리는 상여덤이다.
여기의 산행길에는 이동통신 통화불능지역이라는 표시가 있다.
약 500m구간이 통신이 안된다는 뜻인데,
통신안되는 수 많은 다른 등산로와는 달리 이 표시가 설치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 추즉으로는 2015년 12월 18일경 부산의 모 산악회의 덕유산 폭설이 내린 날 산행에 빼재에서 백암봉으로 무리하게 산행을 하다가 2명이 동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런 연유로 재발을 막고자 이동통신이 되도록 조치하였으나 이 구간만은 약간의 저지대로 인해 해결을 못한 듯 하다.
상여덤(1,406m)에 도착하다.
별 다른 표식은 없고 단지 표지 이정표만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지역임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 그것도 "덤"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과거 선조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지역이라는 뜻일 것이다.
아래 지도를 참조하면
백련사에서 안성탐방센터 방향으로 접근하려면 오수자굴의 계곡에서 중봉을 거쳐 백암봉으로 가기보다는 여기 상여덤으로 올라가서 능선을 타고 백암봉으로 가기가 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수자굴에서 상여덤까지의 산길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형광색 표시의 길)
지금은 등산코스로만 존재하지만, 구천동의 유래를 알면 과거에는 백련사에서 남쪽의 송계사 방향으로, 또는 칠연계곡의 안성 방향으로 사람의 왕래가 잦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백암봉에서 지봉까지 능선의 북쪽이 구천동계곡이다. 북덕유산 눈꽃산행시에 출발지로 유명한 백련사가 위치하고 있다. 구천명의 불자가 있었다는 말에서 구천동이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있었으니 왕래가 많았을 것이다. )
구천동의 유래 :
덕유산 산자락을 끼고 흐르는 무주구천동계곡은 나제통문에서 덕유산 향적봉 아래까지 28km에 달하는 계곡으로, 이 계곡에는 33경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구천동계곡의 ‘구천동(九千洞)’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임훈의 ‘덕유산향적봉기’에는 덕유산에 9천 명에 이르는 성불공자(成佛功者)가 살았다 하여 ’구천동‘이란 설이 있다.
<박문수전(朴文秀傳)>에 의하면 이 골짜기에 ‘구씨(具氏)’와 천씨(千氏)가 살며 집안 싸움을 하는 것을 어사 박문수가 해결해 준 뒤로부터 ‘구천동(具千洞)’이라 불리다가 지금의 구천동(九千洞)으로 바뀌었다는 설 등이 있다.
설천(雪川)의 유래
: 구천동계곡은 무주군 설천면에 위치하고 있다.
설천(雪川)이라는 지명에 대한 유래는 구천동과 관련이 있는데, 옛날 불교 전성기 시절 구천동에 많은 사찰이 있어 구천 명이나 되는 승려들이 수도하던 곳이라 하여 구천동, 구천둔이라고 전하여 오는데, 구천동의 구천승려가 밥을 짓기 위하여 아침저녁으로 쌀을 씻던 하얀 쌀뜨물이 구천계곡을 따라 이곳까지 온통 눈과 같이 하얗게 흘러내렸다 하여 눈 설(雪)자와 내 천(川)자를 붙여 설천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진행중 오수자굴로 내려가는 길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다.
상여덤을 약간 지나 좌측편에 의심되는 흐릿한 들입구가 의심(아래 사진)되기는 하는데 확실한 들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귀봉(鬼峰, 鬼峯)
귀봉(鬼峰, 鬼峯)에 도착하다.
핸폰 GPS(트라이앵글)로는 12시 16분에, 카메라 사진으로는 12시 15분경이다.
귀봉은 삼거리이다. 이정표가 있으며, 우측으로 샛길이 있다.
이정표는 '남덕유분소(송계사) 4.2Km / 송계삼거리 2.3Km / 향적봉(대피소) 4.3Km‘라 적혀있다.
귀봉의 명명유래가 확실치 않다.
덕(德)이 넘치는 산에 왠 귀신의 귀(鬼)를 이용한 봉우리 명칭을 붙인다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
귀봉 능선을 걷다보면 큰 나무들로 그늘져 있기보다는 작은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걷기편한 능선이고 해서 귀신이 들 것같은 느낌이 덜하다.
또한 이 봉우리는 거봉(居峰)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다는 것은
뜻이 있는 한자에서 유래된 봉우리 이름이 아닌 우리말에서 나중에 발음에 맞게 한자(漢字)를 차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샛길로 가는 길, 잠시 들어가 사진을 찍고 회귀한다.
귀봉의 유래에 대한 생각
1) 지맥(地脈)상 귀봉(耳峰)
: 덕유산의 지맥의 중간부위(육구종주상의 덕유산)에 무룡산이 있다.
덕유산 지맥은 용이 춤추는 듯하다고 하여 무룡산이란 이름이 정해졌다고 하며, 그렇다면 귀봉은 용의 귀에 해당하기에 귀봉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귀(耳)를 발음상 귀신 귀(鬼)를 사용하여 귀봉(鬼峰)이라고 한 것이 모습이 기괴하다고 하여 귀신봉이라고 해석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래 그림 참조, 본인은 남덕유산을 용의 꼬리로 본 반면, 타 블로거에서는 삿갓재대피소에서 내려가는 길에 있는 황점마을이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남덕유산은 조선시대 봉황산으로 불렸고, 덕유산의 지맥은 삿갓재까지로 해석한다면 귀봉은 용의 귀보다는 앞발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덕유산 지맥을 삿갓재까지로 한정할 경우, 덕유산지맥이 용이 춤추는 듯하다고 하며 무룡산을 덕유산 지맥의 중간이라고 하면서 용의 발쪽에 위치한 봉우리를 무룡산(舞龍山)으로 정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고 본다.
즉 결론적으로 이 이론은 아니라고 본다.
(덕유산 지맥 공부 겸, 무룡산의 이름의 명칭에 대한 개인적 의혹으로 검토해보았을 뿐이다.)
2) 거북모양의 귀봉(龜峯/龜峰)에서의 유래
: 이 봉우리는 발음상 같은 소리로 부르다가 서로 다른 한자를 붙여서 귀봉(鬼峰) 또는 거봉(居峰)으로 불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자 龜는 나라이름 <구>, 거북 <귀>로, 지역명으로는 <구>라 발음하지만 거북을 뜻할 때는 <귀>라고 발음한다.
하지만 ‘구’와 ‘귀’의 뜻에 따른 발음에 그리 차이를 주지는 않는다. 부산 중구의 구봉산도 거북모양이라서 구봉산(龜峯山)이지만, 발음은 ‘귀봉산’이 아닌 ‘구봉산’으로 말하고 있다.
아래 지도를 보면 덕유산 귀봉은 지맥의 모양으로는 거북을 닮아 있다.
서쪽의 상여덤이 거북머리이고 귀봉의 능선으로 양측으로 4개의 작은 지맥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 대간의 횡경재가 꼬리를 형성하는 거북모양이다.
즉 거북모양이라고 해서 거봉, 귀봉으로 불렸다가 한자(漢字)화 되면서 사람이 살지도 않는 거봉(居峯), 귀신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귀봉(鬼峯)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귀봉>이라는 단어는 거북바위라는 뜻을 지닌 귀봉(龜峯)라는 '호'로 사용되는 용어이며 새로운 단어는 아니다는 점도 감안할 수 있다.
위 지도를 보면 9천명에 가까운 스님이 살았던 구천동계곡에서 남쪽 건너편 송계사로 가려면
① 구월담에서는 바로 달음재(월음재)를 넘어 갔으리라.
구천동계곡의 상류인 백련사에서는
② 산능선을 바로 올라가면 귀봉이 나오고 그곳에서 횡경재를 통해서
③ 백련사에서 구천동계곡 상류로 올라가다 오수자굴이 나오는 지점에서 남쪽계곡을 치고 올라가면 상여덤이 나온다.
그곳에서 귀봉을 거쳐 횡경재로 가는 산길(현재는 비탐방 등산로)를 이용했을 것이다.
지맥이 거북같이 생겨서 거봉이라고 하고 한자(漢字)로 귀봉(龜峯)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그 의미를 잊어버리고 봉우리 명칭을 귀신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 귀봉(鬼峰) 또는 집을 짓고 살 것 같지도 않은 거봉(居峰)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귀봉(鬼峯)으로 해석하면서 귀봉을 상여(喪與)로 해석하고, 거북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위를 상여덤이라 불렀을 것이라 본다.
'상여(喪與)'라는 단어는 조선시대 19세기 중엽에서 나오는 단어이기에, 상여덤의 명칭은 19세기중엽이후에 명명되었으리라 본다.
귀봉(鬼峯)도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변천된 것이 아닌가 싶은 추론을 해본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이런 해석이 너무 비약이 심한 듯도 하지만, 이와 같이 한자(漢字)를 이용한 산 이름이 나중에 발음이 같은 다른 한자(漢字)로 변경된 사례의 대표적인 경우로 청계산을 들 수 있겠다.
한국의 산하 300대 명산에 청계산은 3곳이 있다. ① 경기도 과천의 청계산(淸溪山, 582m)은 과거 청룡산(靑龍山), 청계산(靑鷄山) 등으로 불리다가 청계산(淸溪山)으로 바뀌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산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변경되었다. ② 경기도 포천의 청계산(淸溪山, 849m) 역시 2004년도 이전에는 청계산(靑鷄山)이라는 정상석이 있었다고 한다. ③ 경기도 양평의 청계산(靑鷄山, 656m)은 청계산(淸溪山)으로 혼용되고 있다. 닭 계(鷄)자를 사용한 산 명칭이 어느 듯 맑은 계곡이 있는 산(淸溪山)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있다.
또한 이번 대간구간의 도착지인 빼재도 사실 '뼈(骨)재'로 불리다가 갱상도 발음인 '빼재' 로 불리다가 '빼'를 빼어나다고 해석하여 '수령(秀嶺)'으로 부르고, 빼재(신풍령)에 수령(秀嶺)이라는 커다란 정상석까지 설치하는 약간은 황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심지어 모 단체에서는 수령(秀嶺)이라는 정상석을 백두대간의 인증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니 위 추론이 너무 비약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주장해 본다.
참조로 청계(靑鷄)는 푸른 알을 낳는 닭(청란계,靑卵鷄)을 뜻하기도 하고, 육십갑자(六十甲子)에서는 정유(丁酉)년, 을유(乙酉)년을 뜻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한의학에서는 개구리를 청계(靑鷄)로 표현한다. 닭(鷄)은 과거 삼국시대에 신라를 상징한다. 경상북도 경주를 삼국시대에는 계림(鷄林)이라고 불렀다. ※ 향토사학자 김민수씨에 의하면 계(溪,시내 계)와 계(鷄, 닭 계)는 글자(漢字)는 다르지만 발음소리는 같고 이는 곰족(濊族,예족)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예맥족은 고대 우리민족을 지칭하는 말로 신라는 예족(濊族)에 속한다.)
아래 사진은 귀봉 능선
산행하는 날은 구름이 있어 그렇지 맑은 날씨에는 하늘의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지역이다.
횡경재 삼거리에 도착하다.
공터가 있고 다른 산악회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횡경재(橫徑峙, 1,273m)
: 백암봉에서 동쪽으로 진행하면 나오는 귀봉과 지봉 사이의 고개이다.
북쪽 백련사에서 대간을 넘어 송계사를 넘던 고갯마루로 가로 자르는 고개라는 뜻이다.
싸리덤재는 백련사에서 송계사로 남동쪽방향으로 직선거리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인 반면에,
백련사에서 구천동계곡을 지나 오수자굴 근처에서 250m정도 올라가면 귀봉 또는 상여덤이 나온다.
그곳에서 송계사로는 서쪽으로 평행하게 능선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다. 즉 접근방향이 싸리덤재와는 달리 동서로 평행하게 달리기에 횡경재라고 한 듯하다.
싸리덤재로 가는 등산로는 산죽으로 우거져 있다.
간헐적으로 싸리나무꽃이 보인다. 아래는 산죽사진
아래는 능선길에서 종종 관찰되는 싸리나무무 꽃
싸리덤재에 도착했다.
싸리나무가 많아서 싸리덤재라고 한 듯하다. 싸리동재라고도 한다.
아래 지도에서는 사거리로 되어 있지만, 실제 우측 송계사로 가는 길은 흔적이 있는 반면, 좌측 백련사로 가는 길은 흔적이 없다.
싸리덤재에서 송계사로 가는 방향
싸리덤재라고 해서 시그널이 많이 달려있다.
또 다른 사거리이다.(푸른색은 들입로 표시, 지도상 노란색 형광색 표시)
물론 양측 계곡으로 가는 길은 흔적이 거의 사라져있고, 백련사방향으로 등산로 아님의 표식이 있다.
이정표상 고지는 1,227m, 특별한 지명은 없다.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덤>은 아니니 <싸리재>라고나 할가???
등산로 아님의 이정표 뒤에 우측으로 난 백련사길 들입구(파란색 화살표 )
지봉(池峰) 약 300m 전에 있는 헬기장이다.
헬기장에서 지봉방향으로 셀카 한 컷~ ^.^
뒤돌아 본 경치, 아래 좌측표시는 귀봉, 우측은 백암봉이다.
지봉(池峰)에 도착하다.
설치한지 1년도 안된 지봉 정상 위치번호 말뚝(바로 아래 사진)에서는 고지 1,310m를 가리키고 있다.
반면 맞은편 지봉 정상석(2016년경 설치 추정)은 1,343m로 표시되어 있다.
10미터만 움직이면 30고지를 이동할 수 있는 축지법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이야기인데, 정상석 고지를 믿어야 할지, 덕유산 등산로에 따라 새로 설치한 수 십개의 국립공원의 위치번호 말뚝의 고지를 믿어야 할 지 혼동된다.
지봉(池峰, 1,342.7m)
: 과거(1-2년전) 지봉 정상에는 갈미봉 정상석처럼 생긴 못봉이라는 넓은 판대기 모양의 정상석이 있었다.
못봉인데 한자의 지(池)를 사용하여 지봉(池峰)이 된 듯 하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지봉’으로, 덕유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는 ‘못봉’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실제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지봉 정상에 연못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음카카오지도, 네이버지도를 보면 <지봉> 과 <못봉>이 구분되어 표시되어 있다.
즉 이 곳은 봉우리가 높은 곳이라 지봉이지만 연못이 있는 지역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지봉에서 약 300m 정도 진행하다보면 대간길에서 우측으로 샛길이 보인다.
그 샛길을 따라 올라가면 삼각점이 있고
이곳이 지도상 못봉이다.
주위 수풀이 우거진 것을 보아 여기에 연못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달음재에 도착하다. 이정표가 있다.
달음재(1,079m) : 순 우리말 이름으로 한자(漢字)로 표기하여 월음령(月陰嶺)이라고도 한다.
경남 거창군 북상면과 전북 무주군 설천면 무주 구천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월음재의 유래는 월음(月陰)은 달 그림자를 뜻하며 무주방면 북쪽의 얼음계곡에 있는 구천동 33경 중 하나인 구월담(九月潭)에 달밤이면 이 능선의 그림자가 비쳐진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즉 ‘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고개’라는 뜻이다.
무주 방면인 북쪽 월음계곡으로 내려가면 으로 삼공리 야영장으로 가는 비탐방로 계곡길을 통해 구천동 구월담(九月潭)으로 나온다.
아래는 구천동 구월담으로 가는 들입구 사진 및 방향(푸른색 화살표)
드뎌 대봉에 도착했다.
대봉은 정상석도 없으며 이정표가 있으나 대봉 표식이 없다.
여기서 북쪽으로는 지봉이 있어 대봉을 지봉삼거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봉(臺峰, 1,263m) :
싸리나무 군락이 있다. 북쪽으로 흥덕산(興德山, 1,283m) 투구봉(지봉2, 1,276.5m)으로 가는 갈림길삼거리이다.
향적봉을 가지 않은 관계로 시간이 있어 예고한대로 흥덕산 및 지봉으로 진행한다.
혼자, 거의 사라진 산길이기에 약간의 흥분으로 대봉에서 정상석 인증샷을 찍는 것을 깜빡해버렸다. ㅠ.ㅠ
대봉 정상 이정표
아래 붉은색은 대간 진행길, 좌측 푸른색은 흥덕산, 지봉으로 가는 방향
대봉에서 흥덕산, 지봉으로 가는 들입구.
희미하게 보인다.
좀 더 가다보면 군데군데 길이 사라져있다.
나무를 보면 길은 없지만 바닥의 흙을 보면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헤치고 가야 한다는....
알바를 피하기 위해서 중간에 나무를 한 컷
나무 우측으로 돌아간다.
헬기장에 도착하다.
2005년 사진에는 헬기장이 뚜렷했는데, 이건 헬기장도 아니고 바닥에 돌맹이가 있는 것으로 헬기장임을 알 수 있다.
헬기장에서 진행방향의 들입구.
사람이 너무 안다녀서 그런지 길이 안보이고 나무가지가 서로 얽혀있어 스틱으로는 갈라지지 않아 몸으로 밀치고 2-3m 뚫고 나가면 길이 다시 나타난다.
흥덕산에 도착하다. 아무 것도 없다.
흥덕산(興德山? 1,283m)
: 네이버 지도상에서는 대봉(臺峰, 1,263m=지봉삼거리)에서 북쪽능선으로 방향으로 1.4 ㎞ 북쪽에 흥덕산(1,283m)이 있으며, 더 북쪽으로 700m 진행시 지봉(1,274m)이라는 표시가 있다.
다음카카오맵에서는 지봉(1,276.5m)을 투구봉으로 표시하고 있다.
여기의 지봉은 아마도 漢字로는 枝峰(지봉)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개인 생각일 뿐이다. 혼동방지를 위해서는 투구봉으로 부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바로 앞 우측편에 투구봉/지봉이 보인다.
흥덕산 내리막은 수풀은 심하지 않으나 길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홀로 산행이라 무리하고 싶지도 않고, 알바할 경우 시간이 부족할 것도 예상되어 아쉽게 포기하고 돌아간다.
산행한 경험상 정말 사람이 거의 안다니는 코스라
굳이 진행한다면 3-5월경 봄에 산록이 적을 시기에 가던가
아니면 겨울에 GPS를 사용하여 진행하는 것을 권한다. (안가는 것을 더 추천하지만...)
흥덕산 정상 나무에 있는 작은 시그널 사진으로 인증샷~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가 않다.
산죽으로 덮여 있는데 길은 우측인듯 한데(푸른색) 실은 좌측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간혹 능선 약간 벗어나서 나무아래로 가는 코스도 있고,
어쨌던 무사히 되돌아오다.
이제 남은 대간구간도 얼마 안남았다.
갈미봉에 도착한다. 황령산에도 갈미봉이 있었죠.
갈미봉(葛嵋峰, 1,210.5m) :
덕유산 지맥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나온 봉우리라서 갈미봉이라고 한다.
갈미에는 칡 갈(葛)의 한자(漢字)가 사용되고 있으나 칡과는 상관없는 음차문자로 순수 우리말용어인 갈미봉이다.
[갈미]의 어원 :
[갈미]의 유래에 대해서는 '칡'과 연관된 해석이 분분하여 여기에서 정리를 하고자 한다.
[갈미]는 순수한 우리 한글로 '갈라져 나온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갈미’의 갈은 칡과는 관련없이 길이 '갈라지다'(分岐)라는 동사의 첫 음절 '갈∼'의 음차(音借)표기에 불과하다.
경기도 의왕시에서는 한글을 기념하여 [갈미 한글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갈미마을과 안양시 갈산동 갈산마을은 본래 안양시 평촌동 갈미와 함께 광주군 의곡면에 속했었다. 일제 때 경계를 측량하면서 큰 도로가 개설되자 동쪽지역은 의왕시 내손동 갈미로 되었고, 서쪽 지역은 안양시 평촌동 갈미가 되었다.
이후 1961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지명을 정비하면서 갈뫼(葛山)로 고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왕시에서는 갈미 한글공원이 있으며 내손동의 옛지명인 갈미와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의 묘역과 한글학자 이희승 박사의 출생지(포일동)인 의왕시를 알리고자 '한글'을 주제로 조성된 한글특화공원이다.
또한 갈미한글문화축제가 한글날 열리고 있다. 즉 ‘갈미’는 순수한 우리말임을 알 수 있다.
아래사진은 갈미한글공원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지리지종합정보(인터넷 캡쳐, 아래사진 형광색)에 따르면
[갈산(葛山)은 순우리말 이름인 갈미 또는 갈뫼에 대해 한자의 뜻과 소리를 조합하여 표기한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즉 칡을 뜻하는 [갈(葛)]은 갈미/갈뫼라는 순 우리말을 차음(借音)한 한자(漢字)인 것이다.
또한 네이버지도에서 ‘갈미봉’을 검색하여 나오는 봉우리는 큰 산줄기 옆으로 갈라져 나온, 자체적으로 산이라 하기에는 작은 봉우리의 양상을 띠고 있다. ① 경남 거창군 덕유산 갈미봉, ② 경북 김천시 난함산 갈미봉, ③ 전북 임실군 봉화산 갈미봉, ④ 경북 영천시 보현산 갈미봉, ⑤ 부산 남구 황령산 갈미봉, ⑥ 전남 광양시 쫓비산 갈미봉, ⑦ 경북 상주 청화산 갈미봉, ⑧ 충북 괴산군 조봉산·낙영산 갈미봉, ⑨ 전북 공주 무성산 갈미봉, ⑩ 경북 문경 황학산 갈미봉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갈미봉이란
주봉의 주류흐름을 벗어나 떨어져 있는 작은 봉우리라 생각하면 된다.
순수한 우리말인 갈미를 과거 굳이 한자(漢字)로 표기하려고 칡 갈(葛)자를 사용하다보니 칡이 많다는 봉우리/고개 등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는 실정이다.
갈미봉에서 인증샷~
갈미봉과 빼봉 사이 작은 봉우리의 좌측편으로 지나간다.
빼봉(1,039.3m)이다.
정상석은 없고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이 있다.
임도를 만난다.
직진이며, 우회전은 아마도 임도의 우회로인 듯 하다.
빼재에 도착하다.
빼재/신풍령의 유래는 이전 산행에서 언급했으니 생략합니다.
맘에 안드는 수령(秀嶺) 정상석
첫댓글 덕분에 공부 억쑤로 했네요 ㅡ젤 궁금했던 봉우리가 있었는데 가세봉이였네요 ㅡ넘넘 감사드리옵고 유익한 산행기 굿입니다
산행후 한 잔 술후 푸는 이야기와 썰일뿐입니다. 공부까지는.... ^.^
진중한 산행후기에서 " 갈미 " 순우리말 마음속에 저장 *.~
칠연계곡에 문덕소가 문득님 지나갔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는... ^.^
@다음 하하하 산행중 딱 한번 얼굴봤을 때 그 어디쯤 문덕소 히히 잼나네요 *.~
갈미조개도 그래서 갈미인가보네요...후기 잘봤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 같네요. ^.^
가진게 시간 밖에 없어 덕유산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물어 보니 계곡에 있는 그물의 용도는 단지 탐방객들의 접근을 통제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삼겹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
ㅎㅎ
저도 감사드립니다
꼼꼼한 포스팅 덕분에 갔던 곳이 확실하게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젊을 때 백두대간 하는 것, 존경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