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종은 교판(敎判)할 때에 삼시(三時) 즉 세 시기로 나누어 했는데, 이 삼시교판은 「해심밀경(解深蜜經)」의 무자성상품(無自性相品)의 설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제1시(第一詩)에서는 자아[我]는 없으나 법(法)은 존재한다는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설했고, 제2시(第二詩)에서는 제1시와 달리 자아뿐만 아니라 법까지도 모두 공(空)하다고 설했으며, 제3시에서는 앞에서처럼 유나 공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中道)를 말했다고 합니다.
이 삼시설에 기준하여 법상종은 바로 제3시의 중도교(中道敎)에 속하므로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유식법상종이 계승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삼시교판에 이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삼시설을 통하여 법상종이 주장하는 중도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제 규기스님의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내용을 중심하여 고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제1시 유교
부처님이 가르치심을 시설할 때에 근기에 따라서 베푸셨으니 근기에 세 종류가 있어서 같지 않으므로 가르침도 세 시기를 따라 또한 다르니라. 모든 중생의 무리가 무명에 눈이 멀 어 혹(惑)과 업(業)을 지어서 일으키고 미혹하여 자아가 있다고 집착하여 생사의 바다에 빠져 의지할 곳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대비하신 부처님이 처음에 정각을 이루어 선인녹원(仙人鹿苑)에서 사제(四諦)의 법륜을 굴려 아급마(아함경)을 설하고 아집을 제거해서 하근기들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성인 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사제(법문)를 듣고 비록 아집의 어리석음은 끊었으나, 모든 법에 미혹하여 (법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였느니라.
如來說敎에 隨機所宣이러니 機有三品不同할새 敎遂三時亦異니라. 諸異生類가 無明所盲하여 起造惑業하고 迷執有我하여 於生死海에 淪沒無依니라. 故로 大悲尊이 初成佛己하여 仙人鹿苑에 轉四諦論하여 說阿(급)摩하고 除我有執하여 令小根等으로 漸登聖位하니라 彼聞四諦하고 雖斷我愚나 而於諸法에 迷執實有니라. [成唯識論述記 ; 大正藏 43, p. 229 하]
부처님이 가르침을 시설할 때에,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설하셨는데 그 근기를 크게 세 등급으로 나누고 가르침도 여기에 맞추어 세 시기로 나누어 일대시교(一代詩敎)를 설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중생들은 무명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미혹한 업을 짓고, 하근기의 중생들은 나[我]의 실체가 있다는 아집(我執)을 지어 생사에 윤회하여 해탈의 길을 밟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 정각을 이루어 선인녹원에서 사제의 법륜을 굴려 「아함경(阿含經)」을 설해서 최하근기의 중생들로 하여금 아집을 버리고 점차적으로 성위(聖位)에 들도록 하여 마침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제의 법문을 듣고 아집을 버렸지만 모든 법에 대해서는 법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는 법집(法執)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즉 아공(我空)은 됐지만 법공(法空)은 되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공법유(我空法有)로서 이들은 유견(有見)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참고로 알아둘 것은 선인녹원에서 사제의 법륜을 굴렸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다섯 비구를 위해서 설법한 것을 말하는데, 그러면 부처님은 녹원에서 사제를 설하실 때 아공만 설하고 법공은 설하시지 않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교판입니다.
녹원에서 부처님이 사제를 설하든 팔정도(八正道)를 설하든 혹은 무엇을 설하든지 간에 그것은 분명히 중도를 근본으로 삼아 설법하셨지, 어느 것 하나 중도를 벗어난 것은 없습니다. 즉 중도 이것이 팔정도라고 선언해 놓고 사제법문도 설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이라는 것을 말할 때도 아(我)나 아소(我所)의 공인 아공(我空)만이 아니라 법공(法空)도 또한 설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부파불교(部派佛敎)이후로 소승불교라는 것이 흥기하여 아(我)가 공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법에 집착하여 유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승의 부파가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사제법문을 순전히 유견에 의지해서 해석하면서 이 견해가 널리 퍼져서 마침내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부파불교 이후 소승불교에서 주장하는 아집(我執)과 유견(有見)의 사제, 즉 생멸사제(生滅四諦)를 전제로 하여 주장하는 것이지 실제로 부처님이 설하신 중도정견(中道正見)에 입각하여 설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즉 부처님이 녹원에서 설하신 것은 중도이지 소승불교에서 주장하는 생멸사제는 아닙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녹원설법을 순전히 생멸사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부처님의 녹원설법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녹원에서 사제의 법륜을 굴린 것은 순전히 아공법유이지 실제 중도는 아니다'라는 것은 잘못된 견해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위의 견해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부파불교 이후에 생겨난 소승불교의 유견(有見)을 상대로 한 말일 뿐으로 엄밀히 말하면 녹야원에서 초전법륜한 것을 대상으로 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녹야원의 초전법륜에서는 중도를 가지고 설한 것이지 아집과 유견을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2) 제2시 공교
세존이 법이 있다는 집착을 제거하기 위하여 다음에 영축산에서 모든 법이 다 공하다는 것을 설하시니 이른바 마하반야경 등이다. 중근기의 중생으로 하여금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들어가게 하니, 그들은 세존이 비밀한 뜻으로 무(無)를 설하여 유(有)를 파하는 것을 듣고 문 득 이제(二諦)의 성(性)과 상(相)이 모두 공한 것이라고 떨쳐버려서 위 없는 도리로 삼았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두 성인이 서로 유와 공을 집착하여 그릇됨이 다투어 일어나 중도에 계합되지 않았느니라.
世尊이 爲諸彼法有執하여 次於鷲嶺에 說諸法空하시니 所謂摩訶般若經等이라 令中根品으로 捨小趣大하니 彼聞世尊이 密義意趣로 說無破有하고 便撥二諦性相皆空하여 爲無上理하니 由斯하여 二聖이 互執有空하여 迷謬競興하여 未契中道니라.
세존이 소승의 법집(法執)에 대한 유견(有見)을 타파하기 위하여 영축산에서 모든 법이 다 공하다는 것을 설하니 그것이 소위 마하반야경(摩訶般若經)등입니다. 여기서 중근기의 중생들로 하여금 소승의 유견을 버리고 대승의 공견(空見)으로 들어가게 했는데, 그들은 세존이 비밀한 뜻으로 무를 설하여 유를 파하는 것을 듣고서는 일체만법이 다 공한 줄을 알아 유무이제(有無二諦), 진속이제(眞俗二諦), 이사이제(理事二諦)등의 상대적인 이제는 모두 다 떨쳐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두 성인, 다시 말하면 대승보살이라 해도 아직 공견(空見)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과 소승의 아라한과를 증득한 사람들을 포함한 이 성인들이 소승쪽에서는 유를 집하고 대승보살 쪽에서는 공을 집하여 그릇됨이 계속해서 자꾸 일어나니 중도에 계합하지 못하여 중도를 모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교판은 초전법륜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성립된 교판이므로 정당한 교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직 공과 유가 원융무애한 것만이 정견이 되며 공과 유 어느 한 쪽이라도 집착하게 되면 불교의 정견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충분히 소개되었고 또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제3시 중도교
여래가 이 공과 유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세 번째 시기에 요의교(了義敎)를 말씀하시니 「해심밀경」등의 모임에서 모든 것이 오직 식뿐이라는 등 마음밖에 법이 없다고 설하여 처음의 유집을 부수고, 안으로 식이 없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다 공하다는 집착을 버려 유견과 무견을 떠나 바르게 중도에 머무르게 하였다. 진제의 도리에 깨쳐 증득함이 분명히 있고 속제 중에 묘하게 능히 머물면서 버리느니라.
如來爲除此空有執하여 於第三時에 演了義敎하시니 解深密經等會에 說一切法唯有識等하여 心外法無로 破初有執하고 非無內識으로 遺執皆空하여 離有無邊하고 正處中道하니 於眞諦理에 悟證有方하고 於俗諦中에 妙能留捨니라.
바로 앞에서 해설한대로 한 쪽은 유를 집착하고 또 한 쪽은 공을 집착해서 서로 옳다고 다투기에 여래께서 공과 유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하여 세 번째 시기에 비밀히 말하지 않고 요의교, 즉 중도사상을 제대로 다 표현한 「해심밀경」을 설하여 일체 모든 것이 오직 식만 있지 객관적인 경계는 없다고 하여 유식(唯識)을 주장합니다.
이와같이 유식종에서는 모든 경계는 오직 식뿐이며 경계라는 것은 모두 식의 소산이라 하여 마음밖에 법이 없음[心外法無]을 주장하여 객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모든 법이 실유한다는 유집(有執)을 부수어 버립니다.
즉 유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경계를 대하여 법에 집착하지만 그것은 오직 식만이 있고 경계는 없다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며, 이 심외법무의 도리로 유집을 타파합니다. 또 유집을 부수어서 일체가 공하게 되므로 전체가 다 공하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즉 안으로 식이 분명히 있다[非無內識]고 주장하여 일체가 다 공하다는 집착을 또한 타파합니다. 따라서 먼저 오직 식만 있고 경계는 없다고 하여 경계를 부수어 버리고 그 다음에 공한 가운데 활동하는 식이 있으므로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니 전체가 다 공이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유집도 부수어 버리고 무집도 부수어 버려 유견과 무견을 다 떠나게 됩니다. 소승에서 주장하는 유견도 떠나고 대승에서 주장하는 무견·공견도 다 떠나 바로 중도에 들어가 진제의 도리에 대한 깨침이 분명히 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공하다고 하여 아주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면 이것은 단공(斷空)에 떨어져 공견외도(空見外道)가 되고 불교가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진제의 도리에 분명히 깨침이 있어 일체가 공한 가운데 유가 있고, 또한 속제(俗諦) 중에 묘하게 능히 머물러 있으면서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속제라는 것은 유(有)를 말하고 버림[捨]은 공으로 보아 결국 유가 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맨 마지막 구절인 '진제의 도리에서 깨쳐 증득함이 있다'함은 공이 즉 유이고, '속제 중에 묘하게 능히 머물면서 버린다'함은 유가 즉 공으로서 공즉시색 색즉시공과 아주 비슷한 뜻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중도가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첫 번째 시기(第一時)와 두 번째 시기(第二時)에서는 유와 공을 각각 집착하여 공과 유가 완전히 상통하지 못했지만, 공견과 유견을 다 버려놓고 보니 진제 중에 속제가 있고 속제 중에 진제가 있으며, 공 중에 유가 있고 유 중에 공이 있어 서로 상즉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쌍차쌍조와 비슷한 설명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상(相)에 집착한 것으로 천태나 화엄과 같이 사사무애하고 원융무애한 완전한 이론전개는 되지 못한 것이라고 나중에 현수스님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또 지금 이 논은, 이치는 유식의 삼성·십지·인과와 행위의 상(相)을 밝힌 대승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 시기 중도의 가르침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又今此論은......理明唯識三性十地因果行位了相大乘이라 故知第三時中道之敎也니라.
[唯識述記 ; 大正藏 43 p.230상]
유식을 근본으로 하는 이 성유식론은 유식에서 설하는 삼성(三性)과 십지(十地)와 인과(因果)와 행위(行位)의 상(相)을 밝힌 대승[了相大乘]입니다. 모든 상을 밝힌 유식법상종이라 하는 것은 불교의 근본인 중도종(中道宗)이지 유견이나 무견에 속한 변견(邊見)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법상종에서 주장하는 것은 상세히 검토해 보면 화엄이나 천태에서 말하는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원융무애한 교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리하여 실질적인 중도가 아니고 일종의 중간입장이 되어버려 실제로 중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상종에서 주장하는 제3시 즉 소승의 유와 반야의 공이 상즉한 것을 설할 때, 자기네는 공(空) 중에 유(有)가 있고, 유중에 공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화엄이나 천태에서 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