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25:5-10, 형사취수 제도의 의미, 20.12.9, 박홍섭 목사
오늘 본문은 형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없는 채로 죽었을 때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동생이 형을 대신해서 형수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첫 번째 아이는 형의 자손이 되게 하는 형사취수 규례입니다. 하나님은 이 제도를 통해 이스라엘 중에 대가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했는데 여기 대를 잇는 개념은 통상적으로 한 가문의 족보를 이어간다는 의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자기 백성에게 끊어지지 않고 누리게 하는 것”에 핵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실 때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하시면서 두 가지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창 12:1-3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하나님의 백성 삼아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릴 은혜를 땅과 자손에 담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첫째는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 많은 자손의 약속입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복이 언약 자손을 통해 이어지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무대로 주어진 땅의 약속입니다.
땅과 자손, 이 두 가지 약속은 아브라함이 잊을 때마다 계속 주어져서 다시 확인되고 확인되는 언약의 핵심입니다. 아브라함만 아닙니다. 그의 후손들에게도 내내 이 약속이 갱신되어 주어지는데 오늘은 창 15:5-7만 확인하고 지나가겠습니다.
형사취수 제도는 자식이 없이 죽은 형의 가문과 이름을 동생이 이어주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의 핵심인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이 끊어지지 않도록 주신 규례로 하나님의 구원의 복과 은혜를 담은 기업을 무르는 제도입니다. 기업 무를 제도는 형사취수제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레25:25-28을 보면 형제 중 땅을 팔고 다시 찾을 힘이 없을 때 가까운 친족 중 여력이 있는 자가 땅값을 갚아 찾아주고 그렇지 못하면 희년이 되면 조건 없이 돌려주게 하는 제도에도 담겨 있습니다. 땅과 자손만이 아닙니다. 형제 중 누가 종으로 팔려 갈 때도 일가친척 중에서 팔려 간 값을 치르고 속량하도록 했습니다. 아무도 속량할 자가 없으면 역시 희년에 조건 없이 풀려나게 하셨죠(레25:47-50).
뿐만 아닙니다. 민35:18-21을 보면 이스라엘의 일가친척에는 어떤 의무까지 주어졌는가 하면 누군가 고의적인 살인으로 죽게 되었을 때 그 친척 중에서 피의 보복을 하여 살인으로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빼앗겨버린 자를 대신하여 복수하게 해서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도록 했습니다. 형사취수 제도를 비롯한 기업 무를 제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복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하는 세밀한 보살핌이며 큰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이 규례에 담긴 의무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왜 기업 무를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 할까요? 민27:8-11입니다. 아들이 없으면 딸이 기업을 물려받고 딸도 없으면 형제가 기업을 물려받습니다. 그러니까 형사취수 제도에 순종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형의 기업이 자신의 기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재산의 욕심 때문에 형사취수 제도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이어지게 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죠.
정반대로 형이 기업이 없고 빚만 있을 경우 형사취수 제도에 순종하면 그 빚을 자신이 다 떠안아야 합니다. 이렇듯 수혼제는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재산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재산을 손해 보면서 형의 빚을 감당하여 형의 기업을 이어지게 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에 순종하려면 동생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그 가족이 지고 있었던 빚까지도 다 갚아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문화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형사취수 제도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 제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신 기업을 이어지게 하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이어가게 하는 이 방편이 형제의 희생을 통해 나타나고 적용되게 하셨습니다. 수혼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형제들에게 보여주는 손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유익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기희생이 있어야 순종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도 그 이름이 끊어지기를 원치 않아서 이 제도를 주셨지만,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의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적’을 통해서 지탱된 것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는 또 다른 형제”를 통해서 유지되게 하셨습니다.그렇다면 수혼제의 의무를 지게 되는 형제나 친척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형제 사랑으로 그의 기업을 무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유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후자를 택하면 어떻게 됩니까? 오늘 본문 7-10을 보십시오.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손이 되기를 거절한 사람에게는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수혼제를 거부한 형제에게는 ‘얼굴에 침을 뱉는 일’과 ‘신을 벗기는 일’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모욕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수혼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욕당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모욕하십니까? 단지 얼굴에 침을 뱉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그 발에서 신을 벗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으로 부르게 했습니다.
신 벗김 받은 자가 어떤 의미입니까? 출애굽기 3장 1-5입니다. 하나님은 호렙산 가시떨기 불꽃 앞의 모세에게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고 말씀합니다. 호렙산 가시떨기 불꽃 앞에서 모세가 신발을 벗어야 했던 이유는 “그 땅이 거룩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의 음식 법에서 땅과의 접촉은 그 동물을 부정하게 하는 의미가 있음을 확인했었죠. 신발은 소의 발굽처럼 부정한 세계인 땅과 접촉하여 부정하게 됨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어라” 하나님이 계시니 이 땅은 거룩한 땅이 되었고 거룩한 땅이 되었으니 신을 신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특별하게 임재하여 계시지 않는 땅의 일상에서 신을 벗고 땅과 직접 접촉하면 부정하게 됩니다. 성경에 벗은 발로 땅을 디디는 것을 그 나라가 망하였음을 보여주는 표징으로 사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사무엘하 15장 30절에 보면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쫓겨나고 있을 때 감람 산길로 올라가면서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갔다고 했죠. 이사야 20장에도 애굽이 망할 것을 보여줄 때 이사야는 벗은 몸과 벗은 발로 이것을 예언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벗은 발로 땅을 디디게 함은 그가 부정해졌음, 거룩하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의미입니다. 손해 보는 것이 싫어서 형사취수 제도의 규례를 거절한 사람은 신 벗김을 당한 자, 하나님에 의해 부정한 자라고 정죄 된다는 뜻입니다. 그는 부정한 자, 거룩하지 않은 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정결한 자이고 누가 거룩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 자신의 유익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 정결한 자이고 거룩한 자입니다. 자신의 재산이 축날 것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손을 나타내기를, 형제에게 사랑과 자비의 손을 뻗치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신 벗김을 받은 자” “거룩하지 않은 자”, “부정한 자”로 불리게 하여 평생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했습니다. 돈을 택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 지녀야 할 사랑과 거룩함을 스스로 저버린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규례는 거룩함이 어디서 오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거룩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우리의 유익을 지키지 않고 기꺼이 손해 보면서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려 할 때 우리는 정결한 자, 거룩한 자로 하나님의 기업을 함께 이어가는 복과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결국 기업 무를 자의 규례는 자기를 희생하고 형제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복이 담긴 기업을 물러주라는 제도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당신을 희생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셔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잇게 하실 것을 내다보는 복된 그림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허물과 죄로 죽어 하나님이 주신 그 복된 기업을 다 잃어버리고 사망의 종이 되었던 약속의 외인이었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아무도 이런 우리를 위해 기업을 물러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인생 중에 누가 하나님의 기업을 물러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께 돌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소망이 없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기업 무를 형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서 하나님의 자녀 된 기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편이 되어주사 우리를 흑암에서 건져 빛과 진리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편 되신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고 그의 은혜와 언약 안에 거하면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손해를 감수하는 자기희생으로 형제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와 그 지체들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아울러 형사취수 제도에 담긴 기업 무를 제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계승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서 결혼하여 경건한 자손을 출산하고 그 자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잇게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책임이요 특권과 영광입니다. 이 복된 의무와 책임이 결혼을 기피하고 자녀 출산과 양육을 회피하는 이 시대의 흐름 때문에 많이 희석되고 있습니다.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일에는 부모의 자기희생이 필요하고 많은 수고를 필요하기에 그 일을 피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납니다. 그러나 자녀 출산과 양육에는 수고와 희생만 있지 않습니다. 훨씬 큰 기쁨과 보람과 하늘의 칭찬과 상급이 준비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이 수고를 기쁨으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는 저녁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