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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세금 폭탄
“존. 나야, 켈리. 여기 그린레인. 지나가다가 잠깐 맥도날드에 들렀어. 혹시 이 근처에 있으면 좀 잠깐 만나고.”
“오. 켈리. 이스트 앤 웨스트 기자님이. 아. 마침 잘 됐네. 여기. 엡섬인데. 손님 내려놓고 가면. 십분 쯤 걸리는데. 오케이. 그래. 기다려.”
민재가 손님을 내려놓고 그린레인 맥도날드로 향하면서 중얼거렸다.
‘콧대 높은 이스트 앤 웨스트 기자. 켈리가 나한테 다 전화를 다 하고. 웬 일이래. 또 뭐 취재라도 할 게 있나? 하여튼 이 친구. 콧대는 센데.
내가 지난 번. 오클랜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켈리가 취재 차 면회 와 보여준 오만한 태도에. 한방 강하게 먹였더니. 바로 깨갱 했잖아. 지금은 어떨까?‘
민재가 맥도날드 카페에 들어서자 켈리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존. 여기. 이리 와.”
“오케이. 그래.”
켈리가 반갑게 손을 내밀어 서로 악수했다. 켈리가 말했다.
“뭐 들 거야? 난 카푸치노.”
“나는 라떼. 미디엄.”
켈리가 카운터로 가서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돌아왔다.
“그래. 존. 요사이도 좋은 뉴스 만들고 다녀서 내가 듣기에도 흐뭇하던데. 자. 이건 존에 대해 실은 특집기사야.”
켈리가 이스트 앤 웨스트 잡지를 민재 앞에 내놓았다. 민재가 잡지를 받아들고 특집 기사를 죽 훑어봤다.
“어. 여기. 커피 나왔네. 마시면서 보셔. 특집 기사는 올해의 인물. 살신성인 의인. 존. 민재 강. 웰링턴에 총리 상 받으러 가는 중.
비행기에서 또 일을 저지르다. 제목 좋지?”
“또 일을 저지르다? 제목이 독자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썼구먼. 기자 본능인가?”
“존. 맞아. 글은 제목이 반은 먹고 들어가거든. 아무리 좋은 기사래도 첫 줄 제목에서 호기심이 생기지 않으면 바로 다른 기사로 넘어가버리고 말아.”
민재가 켈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존. 내가 그걸 놓치겠어? 잘 편집해서 대서특필한 거지. 아. 그날 시상식 끝나고 아주 깜짝 놀랐어. 아니, 총리가 상을 주는데.
한쪽에는 국회의원 챵시밍 국회의원이. 다른 한 쪽에는 경찰청장 마크가. 꽃다발과 화환을 들고 존에게 안기던데.
그 사진을 이렇게 실었어. 확 눈에 띄지? 사람들이 놀라더라고. 옆에 두 사람은 존과 어떤 사이냐고?“
민재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을 돌렸다.
“아이. 쑥스럽게 왜 그래? 캘리. 다 지나간 일인데. 뭘.”
“존. 쑥스럽기는. 내가 봐도 궁금증이 불쑥 솟던데. 존의 땀과 할아버지의 회생. 감동 소지가 차고도 넘쳤지. 비행기 속에서 졸도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살려냈는데.
알고 보니, 경찰청장 아버지였다니. 자기 아버지가 아들 보러 웰링턴에 오다 비행기 속에서 돌아가실 뻔했는데.
경찰청장이라 해도 자기 아버지를 살려냈으니, 존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 거지. 내가 그걸 듣고, 거기서 지나치겠어? 저널리스트 켈리가 말이야.“
민재가 의아하게 생각하자, 켈리가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별도로 경찰청장과 인터뷰를 했지. 반갑게 잘 응해 주더라고. 그분도 내 이름은 알더라고. 이스트 앤 웨스트 저널리스트 인 나를.
들어보니. 존을 경찰청장 자문위원으로 위촉까지 했다던데. 핫라인까지 연결하고. 사회 문제되는 것에 대해 현장의 생생한 정보 접하면 바로 알려주고 대응하기로.
부모 형제 없이 고생하고 수고한 존을 아들처럼 여긴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울컥하더라고. 존에게 늦복이 터졌구나. 싶어서.“
민재가 켈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때 일이 생각났다. 사람이 그리웠다.
“켈리. 사람은 자기 일을 하면서도 또 다른 사람을 찾는가 봐. 공적인 자기일, 직업을 떠나 개인적인 관계를 말이야. 일이야 언제든 끝날 수 있잖아.
공직이든, 자기 사업이든 끝나면 그렇게 끝나. 인간적인 관계는 그렇지 않아. 언제든 만날 수도 있고.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가족이라는 관계는 더욱 그렇고.“
킬리가 민재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민재 말에 공감을 표했다.
“존. 그거야. 바로. 남의 일에 내가 왜 울컥했겠어? 나도 존처럼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 안 계시거든. 겉으로는 씩씩하게 저널리스트의 일은 잘해 왔지만.
누구한테 지지 않고, 나만의 독보적인 성을 구축하면서. 그래야 사는 줄 알았어. 왜? 나밖에 나를 보호하고 지켜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민재가 켈리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켈리도 사람이었구나. 불독처럼 으르렁거렸던 외면과 달리, 내면엔 인간적인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어.’
켈리가 민재를 바라보며, 물었다.
“존.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남은 한창 이야기 하는데. 내 말에 집중을 안 해주고.”
민재가 켈리에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켈리 손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켈리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켈리. 동지 만난 것 같아서. 그렇게 용감한 원더우먼이 일찍부터 부모형제 없이 혼자 산다는 말에.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내 마음도 울컥하네.”
켈리가 민재 손을 살짝 쥐었다. 평생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켈리가. 민재가 켈리 손을 꼭 쥐어주었다. 켈리가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눈시울을 붉히며 켈리가 민재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켈리 손이 뜨거워졌다.
“켈리. 켈리도 약한 면이 있었네. 나처럼. 남들과 일하면서는 열정적이어서. 큰 성과도 얻어 보람도 느끼지만. 혼자 있을 땐. 외로운 섬이었어.
여기 내 앞에 외로운 섬 하나 있네. 동지가 생긴 거야. 켈리. 멀리서도 바라보는 외로운 섬 하나. 그대로 있기만 해도. 서로에게 역할을 하는 섬.“
“존. 존은 어쩜 그렇게 남의 마음을 콕 집어 이야기를 하지. 그래 맞아. 난 강하면서도 외로웠지. 존 말대로 외로운 섬. 우린 그래서 뭔가 통하나 봐.”
민재가 켈리 손을 흔들며 웃었다. 서로를 확인했으면, 하던 일도 잘해야지.
“켈리. 사람은 다 똑같아. 챵시밍 의원이나. 경찰 청장이나. 에드먼드 힐러리 경도. 외로운 섬인 건 마찬가지지. 나도 켈리도. 세상은 말하지.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외로운 섬이 또 다른 외로운 섬을 제대로 발견하면, 외로움 너머까지를 내다보고 큰 힘을 얻는 것 같아. 나이에 상관없이. 동지 의식을 느끼니까.“
“존. 그러면 나와 존도 이제 부턴 동지네. 나. 더는 외롭지 않겠네. 나도 존에게 언제라도 핫라인 깔았네. 날개를 얻었으니. 오늘 훨훨 날아봐야겠어.”
민재가 켈리 손등을 톡톡 쳤다. 켈리가 즐겁다는 듯.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존.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챵시밍 의원이나. 경찰 청장. 그리고 에드먼드 힐러리 경 까지도 이스트 앤 웨스트 정기 구독자더라고.
존도 앞으로 우리 잡지 정기 구독자 될 거지. 그걸 봐야 내 이야기를 볼 테니까. 그러면 나도 더 힘 받아 좋은 글 쓸 거고.“
“당연하지. 이제는 켈리를 알았으니까. 외로운 섬 끼리 연합해야지. 나나 켈리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잖아.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정기 구독 계좌 알려줘. 켈리.”
“정말? 능력자를 정기 구독자로 모시게 됐네. 마음만으로도 이미 존은 정기구독자가 되었어. 사실. 오늘 이야기 끝에 존에게 부탁 하나 하려고 했어.”
“켈리. 그 게 뭔데. 오늘. 우리 외로운 섬. 동지로 마음을 턴 사이에 뭘 못 들어 주겠어? 말씀해 보셔.”
켈리가 환하게 웃으며, 취재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민재 앞에 내밀었다.
“켈리. 뭐야. 이건. 이스트 앤 웨스트 칼럼리스트 위촉서?”
“응. 존. 앞으로 존 시각으로 바라 본 뉴질랜드 사회상을 써서 기고해줘. 이를테면 택시 창에서 바라본 뉴질랜드 풍경을.”
민재가 켈리를 다시 봤다. 언제 부턴가 해보고 싶었던 일. 그걸 켈리가 콕 찍어 민재 입에 갖다 대주는 것 아닌가. 외로운 섬끼리 챙겨주기까지 하네.
“켈리. 동지. 고마워. 동지가 부탁하니. 흔쾌히 받아들이고. 지면으로 나가는 거라 신경이 좀 쓰이겠어.
내 성격이 대충은 안 하잖아. 뭐든지 일단 시작하면 몰입하니까. 켈리가 나를 뉴질랜드 사회에 알려주는 역할을 해 주네.
고마워. 켈리. 칼럼 올리는 주기는 어떻게 돼?“
“응. 한 달에 한번. 특별한 경우에는 별도로 더 쓸 수도 있어. 이 칼럼리스트 위촉서. 사실 나. 신경 많이 써서 얻어 낸 거야. 우리 국장님이 보통 깐깐하지 않거든.
이번에 존 특집기사 까지 실으면서 내가 엄청 공들였거든. 존이 살아있는 뉴질랜드의 희망과 꿈을 기고 할 거라고. 결국 승낙하셨어.“
민재가 켈리 손을 다시 꼭 잡았다. 켈리도 민재 얼굴을 보며 함빡 웃음을 지었다.
“켈리. 오늘 내게 능력치 발표할 칼럼까지 마련해 준 은혜. 이대로 가면 안 되지. 켈리 입을 즐겁게 해줄 차례야. 맛있는 한국 맛 집으로 모셔야겠어.”
“호호. 존이 나를 먹여 살리네. 나 지금. 배에서 아우성이야. 그걸 어떻게 알았지? 우리 존은 내 외로운 섬지기 맞네. 앞장서셔.”
“켈리. 벌써 우리 존이라고. 진도가 너무 빨라. 슬로우 슬로우.”
“존. 내친 김에 속도 내야지. 파란불인데. 퀵퀵 해야지. 호호.”
“하하. 켈리 앞에서 이렇게 마음이 편하다니. 세상모를 일이야. ”
“호호. 존. 내말이. 오늘 한국 맛 집에 들러 음식을 먹을 줄이야.”
민재가 앞장서 차를 몰았다. 북쪽 방향 하버브리지를 올라탔다. 다리아래 하얀 요트들이 편대를 이루어 경기 중이었다.
푸른 태평양 위에 하얀 요트. 그걸 하늘에서 바라보듯 하버를 건너며 구경하는 맛. 택시 운전하면서 열 손가락 안에 꼽는 비경 중 하나였다. 하버브리지.
이윽고 아리랑 한정식당에 도착했다. 뒤 따라 온 켈리가 차에서 내리며 외쳤다.
“우~와! 고풍스러운 레스토랑. 코리언 레스토랑. 기대되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 사장이 나와 반겼다.
“강 선생님. 어서 오세요. 키위 여자하고 왔네요. 혹시 애인이세요?‘
“안 사장님도. 농담도 잘 하십니다. 이스트 앤 웨스트 유명 저널리스트예요. 저를 취재차 와서. 제가 한국 유명 레스토랑 소개하려고 데려왔어요.”
“우~아! 강 선생님은 능력도 좋아요. 키도 크고 미인인 현지인 키위까지도 잘 알고.
뭘 해 올릴까요. 저번에 들었던 꽃 등심. 스카치 필렛. 마침 조금 전 들어왔는데요.“
“그래요. 안 사장님 솜씨를 제가 자랑해야겠어요. 이곳도 현지인 키위한테 입 소문 내게요. 저 기자. 인맥이 대단해요.‘
“알아 모시겠습니다. 한가지. 질문하나요. 지난번에 저 만나서 긴요하게 말씀해 주신다는 것. 오늘 식사 후. 들려주고 가셔요.
제가 궁금해 잠이 안 오더라고요. 알았지요? 네!”
민재가 안 사장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야지. 긴한 이야기. 여동생이 운영하는 건강식품과 여행 상품. 머잖아 IRD 국세청에서 세금 폭탄 투척할 조짐이 보이는데.
“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나는 못 알아듣는 한국말로. 칫.”
“그러게. 정말 재밌네. 켈리도 한국말 배워야지. 지난 번 내가 이야기 했잖아. 영어만 가지고 사는 시대는 지났다고. 켈리같이 유명세 타는 저널리스트에겐 더욱이나.”
음식이 나오기 전, 둘이서 이야기를 하다. IRD 국세청 말이 나왔다. 켈리가 목소리 높여 이야기 했다.
“존. IRD 국세청에서 이번에 집중 조사 들어갔대. 여행 관광업계와 아시안 식당들에 대해서. 관련 업계 경쟁업소에서 투서를 많이 했나봐.
품질 낮은 제품에 비싼 가격 라벨 붙여 몇 배나 되는 폭리를 취한가 봐. 요즘 뉴질랜드 관광. 세계적으로 밀려오는 손님에 특수를 만난거지.
그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폭리 취하고, 제대로 세금 신고도 않고. 뉴질랜드 나라 망신시키니. IRD 국세청이 가만 넘어가지 않을 거야.
세금 포탈에 대해 폭탄을 터뜨릴 거야.“
안 사장이 신선한 꽃 등심과 요리 기본 반찬을 쟁반에 받쳐 들고 왔다. 두 사람 대화를 듣고서 온 안 사장 얼굴이 무척 당황한 빛을 보였다.
‘아니? 뭐라고. IRD 국세청? 여행 관광업. 세금 폭탄이라고? 그럼. 동생네도?’ *
65화 끝(5,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