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영찬 씨의 꿈
장애를 딛고 일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시각장애를 딛고 음악으로 감동을 주며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싱어송라이터 스티비 원더나 해표지증 장애 때문에 사지를 온전히 사용할 수없는 동기부여 강연가 닉 부이치치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내가 직접 가르쳤던 청년 중에 이런 사람들 이상으로 역경에 처해있던 한 청년을 소개해볼까 한다.
나는 10여 년 전에 한 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비록 겸임교수였지만 직장생활을 접고 강의를 시작하는 만큼 온 열정과 정성을 다 쏟으려 노력했다. 열정이 많았던 만큼 내가 맡은 수업에도 애정이 남달랐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학생들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수업에만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수업 밖에서도 고민하고, 사색하고, 행동하며, 장기적으로 진로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과제물을 많이 내줬다. 주제만 30여 가지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면 학생들이 진로고민도 많이 하게 되어서 고마워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건 순진한 내 착각이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1학점짜리 수업에 과제까지 많으니 짜증이 난 학생들도 제법 있었으리라. 그러나 난 개의치 않고 밀고 나갔다.
내 기대 이상으로 과제를 잘 수행해온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무성의하게 해온 학생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3명에 1명꼴로 F학점을 줬다. 너무 많은 학생들에게 F학점을 줬다고 교무처에서 경고를 받을 정도였다.
그래도 학교 특성상 장애인이 많은 만큼 이 학생들에게는 어느 정도 사정을 고려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특히 ‘조영찬’ 학생은 더더욱 그랬다. 심각한 장애를 여럿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38살이라는 늦은 나이로 대학에 입학했는데 시각, 청각, 언어 중복장애인이었다. 그러니까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중복 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내가 강단에 서서 강의하면 옆에 있는 도우미 한 분이 내가 하는 말을 허벅지에 찍어서 전달하곤 했다. 그녀가 조영찬 학생의 아내인 김순호 씨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나중에는 학교 측 도우미가 도와줘서 컴퓨터로 워드를 치면 점자변환기로 변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덕분에 영찬 학생은 내 말을 조금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내 말이 빨라지면 영찬 학생의 손놀림도 빨라져서 빨리 말을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놀라서 천천히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악한 조건의 영찬 학생이 과제물을 가장 성실하게 이행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지가 멀쩡한 학생이 한 장도 안되는 내용에 무성의하게 리포트를 제출하는 반면에 영찬 학생은 20장 가량을 정성 들여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뿐 아니라 과제에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었다. 내가 낸 과제 중에 비전과 목표란이 있었는데 이 두 가지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기록하기도 했다. 다음은 영찬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 중 일부분이다.
“비전: 내가 가진 장애와 환경을 딛고 내가 살아낼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참된 삶을 가꾸고 싶다!
목표: 작가, 시나리오 작가, 동기부여가”
영찬씨의 목표 중에 ‘작가’가 있었다. 생각해보라.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이 있다. 일반 신입생도 아니고 장애인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말도 잘 못 한다. 게다가 나이도 38살이다. 정상적으로 졸업해도 43살이다.
독자가 생각할 때 이런 장애인이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는 이루기 쉬운 것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어려워 보이는가.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앞에 ‘대단히’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할 정도일 것이다. 어쩌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선생인지라 과제도 잘하고, 글쓰기도 잘했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써나가면 작가도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하지만 솔직히 내 마음속으로는 의구심이 들었다. 너무나 열악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좌절하지 않고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이나 잘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인간적 바람이 더 컸다.
‘부디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할 터인데’라는 인간적인 동정심이 더 크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꿈을 향해 도전해나가는 영찬 씨를 보고 느낀 바가 있어서 영찬씨 이야기를 내 블로그에 올렸다. 방문자가 많은 인기 블로그인지라 많은 이들이 영찬 씨의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며 댓글을 남겼다. 내 글을 읽고 영찬 씨 이야기를 방송에서 다루고 싶다는 연락도 많이 왔다. 그중 한 메이저 방송국에서는 다큐멘터리 특집으로 다루고 싶다며 영찬 씨 연락처를 가르쳐달라고까지 했다.
영찬 씨 아내인 순호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순호 씨는 남편과 대화를 한 후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영찬 씨가 바빠서 방송 나갈 시간이 없다며 전화가 왔다. 무엇 때문에 좋은 방송을 거절하려고 하느냐고 여쭤봤다. 영찬 학생이 6mm 필름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6mm 필름이라고 해봐야 요즘 최신형 스마트폰 정도의 동영상 수준이다. 작품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큐멘터리 촬영보다 방송출연부터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하려 했으나 의도대로 안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그런 다큐멘터리로는 안 될 텐데’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선생이니까 이번에도 ‘잘 될 거예요. 다큐 다 만들어지면 연락해주세요’라고 응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1년 정도 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평소에 블로그나 SNS를 보거나 댓글을 다는 등의 소일거리 시간에는 좋은 방송이나 영상을 틀어놓고 작업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틀어 놓은 강연에서 영찬 씨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것이 아닌가.
그 방송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었는데, 이승준이라는 젊은 감독이 강연하고 있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조영찬 학생의 삶을 다룬 <달팽이의 별>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2011년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장편 경쟁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해 3,000여 편의 작품이 출품됐는데 그 많은 작품 속에서도 전 세계적인 호평을 얻었다는 거다.
정말 놀라운 소식이었다. 이제 어떤 포털 사이트에서도 ‘조영찬’이라는 이름 세 글자만 검색해도 영찬 씨가 첫 번째로 검색될 정도로 유명인이 되었다. 이제는 ‘작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영화감독’으로까지 검색된다.
놀랍지 않은가. 꿈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일화다. 영찬 씨는 자신을 가로막았던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이뤄낸 것이다. 그런데 평범한 우리는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꿈꾸길 포기하고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이는 대개 외부의 제약이 아니라 마음의 제약이다. 즉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지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제약은 결국은 모두 다 마음의 사슬이다. 이제 이 마음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가슴 뛰는 꿈을 품어보자. 원대한 포부가 당신의 역경을 모두 무너뜨릴 것이다.
영찬씨에게 온 편지답장과 과제물의 일부는 내 블로그에도 올려놓았으니 동기 받고 싶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https://careernote.co.kr/775
기록해보기:
왜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기록해보자.
나는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기록해보자.
나를 가로막고 있는 제약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 제약을 뛰어넘을 방법은 무엇
인지 기록해보자.
80%의 사소한 일이 아니라 핵심적으로 집중해야 할 20%의 일은 무엇인지 기록
해보자.
내 마음속에 강력히 아로새겨야 할 신념은 무엇인지 기록해보자.
출처: 정철상교수의 진로수업, 도서 <대한민국 진로백서> 중에서
* 글쓴이 정철상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한 커리어 코치로, 대학교수로, 외부 특강 강사로, 작가로, 칼럼니스트로, 상담가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KBS, SBS, MBC, YTN, 한국직업방송 등 여러 방송에 고정출연하기도 했다. 연간 200여 회 강연활동과 매월 100여명을 상담하고, 인터넷상으로는 1천만 명이 방문한 블로그 ‘커리어노트(www.careernote.co.kr)’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로도 활동하며 ‘따뜻한 카리스마’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다.
나사렛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대구대학교에서 취업전담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인재개발연구소 대표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진로백서>, <따뜻한 독설>,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가슴 뛰는 비전> 등의 다수 저서를 집필했다. 사단법인 한국직업진로지도협회를 설립해 부회장으로서 대한민국의 진로성숙도를 높이고자 힘쓰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진로성숙도를 높이기 위해 ‘취업진로지도전문가’ 교육을 통해 올바른 진로지도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가슴 뛰는 꿈과 희망찬 진로방향을 제시하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언론으로부터 닉네임까지 얻으며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첫댓글 너~무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더불어 뚝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셨던 모습도 인상적입니당.
영찬 학생은 지금 돌이켜봐도 너무 대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