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벨 바바라 영"(Mabel Barbara Young)선교사는
1883년 9월 미국 펜실베니아 스프링필드에서 세 자매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펜실베니아 베들레헴 소재 세인트 루크병원 간호학교를 1906년 23세에 졸업했다.
그녀는 이후 십여년 간 고향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1919년 여름 일본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던 언니 "헬렌"(Helen)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 왔을 때 간호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해 11월, 선교사를 자원하여 캐나다 연합 장로 교회 선교사로 내한했다.
이로써 "마벨 영"선교사 자매들은 언니 "플로렌스"(Florence)는 인도에서,
"헬렌"(Helen)은 일본에서, 세 자매가 모두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
먼저 원산에 정착하여 1년간 어학공부를 마치고
약 3년동안 원산 구세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1922년 초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로 임명을 받는다.
이후 "마벨 영"은 1935년까지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장, 산파 간호부 양성소 교수를 역임했다.
"마벨 영"선교사는 여러 가지 재능을 지녀 남대문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했고,
"마벨 영" 선교사의 꿈은 ‘헌신하면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자신의 소유를 조선인들에게 아낌없이 나누며 조선인들을 돌보았고,
가난한 직원의 아이의 병원비를 대신 지불하기도 했으며,
없는 아이들에게는 우유를 제공하고,
병에 걸려 귀향하는 조선인 일꾼들에게는 귀향비를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의 도움을 받은 조선인 환자들은 그녀의 이름은 몰랐지만 "키가 작고 자애로운 사람"
(Whose tall is small, and very gracious)라고 하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무척 사랑했던 그녀는 고아 아기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던 중 독감에 걸렸는데,
이 독감이 심각한 상태로 이어져서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그녀는 독감에 걸린지 5일 만인 1935년 11월 7일,
52세의 나이로 아침에 조용히 소천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묘비아래에는
SHE MATH DONE WHAT SHE COURD.라고 씌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