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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다. 화면이 커지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인터넷 트래픽이 PC 트래픽을 위협하는 수준이고 점점 더 많은 콘텐츠들이 스마트폰 위에서 소비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더 큰 화면에 대한 수요가 생긴다. 처음에는 4인치만 돼도 크다고 했던 게 스마트폰 화면인데, 불과 2~3년 사이에 5인치도 작아보인다는 이야기를 다 듣는다.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온 게 ‘패블릿’(Phablet)이다. 패블릿은 ‘폰’(Phone)과 ‘태블릿’(Tablet)의 합성어다. 태블릿처럼 큰 휴대폰이라는 의미다. 이 개념을 처음 만든 것은 한국, 그리고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010년 아이폰이 스마트폰 열풍을 불러일으킨 뒤 안드로이드로 시장을 따라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크게’, ‘더 얇게’ 같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 문화와 생산·제조를 모두 갖고 있는 역량이 합쳐져 갖가지 크기의 제품을 쏟아냈다. 특히 애플이 아이패드로 태블릿 시장을 열자 안드로이드를 더 큰 화면에서 돌리기 위한 시도를 한다. 그 결과물이 7인치 화면에 안드로이드를 설치하고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한 ‘갤럭시탭’이다. 아이패드와 경쟁하기 위해 아이패드보다 작고 가볍게 만들었고, 인터넷 뿐 아니라 전화도 할 수 있다는 마케팅 포인트는 결국 7인치짜리 전화기를 낳았다. 당시 안드로이드가 태블릿용 UI를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큰 스마트폰인 셈이었지만 삼성은 갤럭시탭으로 패블릿의 가능성을 엿봤다. 하지만 구글은 2011년까지 태블릿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환경을 제대로 밀어주지 않았고, 시장 반응도 신통치 않았다. 삼성은 스마트폰에 더 큰 화면을 넣고 별도 브랜드를 만든다. 그게 2011년 말 발표된 ‘갤럭시노트’다. 갤럭시노트는 화면 크기가 5.3인치나 됐다. 태블릿 대신 큰 스마트폰을 쓰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하지만 너무 컸다. 초기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큰 화면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큰 게 좋다는 국내 시장의 호응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5인치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처음 만든 건 델이다. 델의 ‘스트릭’은 5인치 화면을 가진 안드로이드폰이었다. 이 제품이 국내에도 팔렸던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커서’ 안 팔렸던 것에 비해 갤럭시노트는 ‘커서’ 잘 팔렸다. 삼성의 패블릿이 자리를 잡은 데에는 ‘펜’이라는 큰 화면에 대한 명분이 있었던 것이 컸다. 큰 화면을 재미있게 쓸 수 있는 펜 메모는 패블릿의 킬러 서비스가 됐다. 그럼 패블릿의 정의는 뭘까? 일단은 폰과 태블릿의 중간 기기라는 것밖에는 없다. 당시의 기준으로 조금 큰 편이라고 생각되면 패블릿이다. 예전에는 5.3인치 갤럭시노트가 패블릿으로 꼽혔지만 지금은 5.1인치 ‘갤럭시S5’는 그냥 스마트폰이다. 대신 5.5인치 정도는 돼야 패블릿 범주에 들어가고, 갤럭시노트는 3세대를 거치며 5.7인치까지 커졌다. 6인치짜리 제품도 나오고, 최근에는 7인치짜리 패블릿도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체로 전화 형태를 가진 기기는 7인치를 넘기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고 있다. 7인치가 넘으면 한 손에 쥘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7인치는 태블릿이 시작하는 디스플레이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받아들이는 패블릿은 아니고 실질적으로 6인치가 한계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팬택이 ‘베가 넘버6’로 5.9인치 패블릿을 내놓았던 바 있다. 독특한 제품들도 많이 나왔다. 에이수스는 스마트폰에 태블릿만한 디스플레이를 맞붙이는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쓰다가 태블릿처럼 생긴 기기 뒤에 스마트폰을 밀어넣으면 그대로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된다. 안드로이드는 디스플레이에 따라 스마트폰과 태블릿 UI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블릿이 전 세계 시장에서 주류가 되고 있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큰 화면에 대한 수요는 어느 나라나 있지만 이를 소비하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 액센츄어가 2013년 11월에 23개 국가에서 조사한 스마트폰 수요 조사에서 스마트폰 구매 계획이 있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더 큰 스마트폰을 쓰겠다고 응답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인도나 중국처럼 작은 스마트폰 보급이 높은 나라와 비슷할 정도로 큰 스마트폰을 원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은 미국이나 독일, 영국 등은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 자체가 작고, 그나마도 너무 크지 않은 디스플레이를 선호한다고 조사됐다. 대신 태블릿에 대한 수요가 컸다. 스마트폰은 작게, 큰 화면은 태블릿으로 쓴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큰 화면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대체로 기기 하나로 다 할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에 큰 화면이 필요한 태블릿보다 패블릿에 대한 수요가 큰 편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로 다 해결하려는 소비행태가 낳은 성공적인 돌연변이인 셈이다. 큰 폰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심지어 이 큰 스마트폰을 더 크게 만드는 케이스가 인기를 끄는 현상도 있다. 패블릿 시장이 커지면서 액세서리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크다 보니 통화를 위한 별도의 블루투스 헤드셋이나 통화 전용의 액세서리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갤럭시노트로 되돌아온 펜 역시 큰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주요 액세서리로 주목받고 있다. 발행2014.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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