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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팥앙금이 혀에 녹아든다. 매콤한 양념장으로 휘감긴 떡볶이 하나를 우물무물 씹으면서, 따뜻한 어묵 국물 한입 들이키면 추위로 굳었던 몸에 온기가 돌면서 풀린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눈이 내려 빙판길이 돼도 겨울철 길거리에는 갖가지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겨울철 먹을거리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붕어빵, 호빵부터 한식 세계화의 첨병(尖兵)이 되고 있는 떡볶이까지 갖가지 맛의 먹을거리들이 옷깃을 꽁꽁 동여매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일본에서 들어온 붕어빵·어묵… ‘오랑캐(胡)가 먹는 떡’에서 유래한 호떡
겨울철 먹을거리는 크게 보면, 해외에서 전래한 것과 우리 전통음식이 변형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붕어빵은 1930년대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통설이다. 일본에서 유행하던 일명 ‘도미빵’과 국화빵을 만드는 틀을 들여와 밀가루 풀 반죽으로 굽던 것이 시초다.
도미빵은 일본어로 ‘다이야키’다. ‘다이’는 도미라는 뜻이고 ‘야키’는 구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최고의 생선으로 대접받는 도미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빵이 한국에서는 붕어빵으로 바뀌었다.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의 저자 윤덕노씨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내륙도시인 서울에서 가장 친숙한 생선이 민물고기인 붕어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오뎅’이라는 일본식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어묵 역시 일본에서 온 음식이다. 생선살을 으깨고 약간의 밀가루를 넣어 뭉친 어묵은 일본에서 무로마치시대(1336~1573년) 중기에 처음 만들어졌다.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에 끓여 익히는 지금의 요리법은 임진왜란 이후 발전했다.
윤씨는 “일본식 어묵이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보급된 것이 개화기 시기로 보인다”고 전한다. 개항장인 부산을 통해 들어와 주로 ‘부산어묵’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는데 특히 부산 기장군의 ‘기장어묵’이 별미다. 경상남도 해안가에서 많이 나는 우뭇가사리를 이용하여 집안의 큰 행사 때 손님 접대용으로 많이 사용한다.
또 다른 대표적 겨울철 음식인 호떡은 ‘호호 불어먹어 떡’이라는 뜻으로 ‘오랑캐 호(胡)’자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오랑캐가 먹었던 떡이라는 뜻이다.
‘오랑캐의 떡’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화교(華僑)가 들어오면서부터로 알려졌다. 임오군란(1882년) 당시 들어온 청나라 상인들이 눌러앉아 생계를 위해 호떡을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점차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게 조리를 변용해 호떡 안에 조청·꿀·흑설탕 등을 넣어 팔았다.
◆‘신토불이’…한국 전통음식에서 사랑받는 먹을거리로
한국의 전통음식이 서민의 입맛에 맞게 진화해 사랑받는 먹을거리로 변한 것도 있다. 떡볶이, 호빵이 대표적이다.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 떡볶이의 시초는 왕실이었다. ‘궁중비법’인 떡볶이 조리법은 궁중에서 명문 양반가로 전해졌다가 현재의 길거리 음식으로 발전했다.
궁중 떡볶이가 ‘길거리’로 나오게 된 과정은 확실하지 않다. 서울에서 떡볶이가 퍼진 것은 적어도 1960년대 후반, 혹은 1970년대 초반 이후라고 알려졌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떡볶이는 길거리 음식이라기보다 집에서 간장에 볶아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찐빵은 해방 후 미국에서 대량으로 들여온 밀가루에 팥을 넣어 만들기 시작하면서 겨울철 대표 서민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전통음식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만들어진 먹을거리로 볼 수 있다.
국내 제빵업체가 찐빵을 처음으로 제품화해 내놓은 것은 1971년.삼립식품이 단팥과 야채를 넣은 호빵을 출시한 것이 최초다. 비수기인 겨울철 판매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찐빵을 제품화한 것이다. 일반 빵과는 달리 뜨거워 호호 불어서 먹으라는 뜻에서 호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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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의 진화…한국 입맛에 맞게 변화한 것부터 각양각색 개성 있는 맛까지
음식은 시대가 흐르면서 변화를 거듭한다. 서민들의 간식도 마찬가지다. 호떡은 흰 밀가루 반죽을 기름으로 구워 계피맛 나는 흑설탕을 넣은 것이 기본이다. 요즘엔 흑설탕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밀가루를 첨가하거나 땅콩 등을 갈아 넣어 점성을 높인 게 유행이다.
고도성장기에는 한동안 사라졌다가 1990년대에 다시 등장한 붕어빵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팥앙금 대신 크림을 넣은 일명 ‘잉어빵’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초미니 붕어빵인 일명 ‘멸치빵’,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만든 ‘쌀 붕어빵’도 나왔다.
호빵은 다양한 종류가 나왔지만, 여전히 단팥호빵과 야채호빵이 주류다. 시장 전체에서 현재 단팥호빵과 야채호빵의 판매 비중은 80%에 달한다.
부드럽고 담백한 순대는 돼지 창자에 당면과 채소, 선지를 채워서 삶는 것이 기본이다. ‘길거리 분식집’에서는 여기에다 돼지 내장을 곁들여 판다.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만들어 먹는 아바이순대는 돼지 대창 속에 돼지 선지, 찹쌀, 배추 우거지, 숙주, 배춧잎 등을 버무려 속을 채운 후에 찜통에 쪄서 만든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명태 배속을 주머니로 삼아 속을 채워 넣어 만드는 명태순대도 있다.
강원도에서는 돼지 창자 대신 오징어를 사용하여 오징어 순대를 만든다. 6·25 전쟁 당시 함경도에서 강원도 속초로 내려온 실향민들이 돼지 창자를 구할 수가 없어 오징어로 순대를 만들어 먹던 것이 기원이다. 그 외 가늘고 부드러운 소창을 이용한 충청도 병천순대, 암퇘지의 대창(암뽕)으로 만든 전라도 암뽕순대 등 지역마다 특색 있는 순대가 많다.
윤씨는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길거리 음식에도 수많은 역사적 사실이 깃들어 있고, 음식이 만들어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반영돼 있다”며 “무심코 먹는 음식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알고 먹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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