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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시계 엘렌 랭어Ellen Jane Langer (born March 25, 1947)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 이 책에 실린 호텔 객실 담당 메이드를 대상으로 한 심리실험은 <뉴욕 타임즈>가 2007 올해의 아이디어“ 에 꼽히기도 했다. 그녀의 가장 최근작인 동시에 그녀를 세계적인 심리학자 반열에 오르게 한 이 책 ”마음의 시계“는 출간 직후 BBC 방송국에서 ”젊은 이들 The young ones “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제작, 방송되었으며 현재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진행중. 우선 우리는 연구결과를 수치화할 수 있도록 노화의 뚜렷한 생물학적 지표를 찾고자 노인병 전문의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들은 답은 그런 지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누군가의 실제 나이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과학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나이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뉴햄프셔 주의 피터버러에 있는 옛 수도원을 찾아냈다. 우리의 계획은 그곳을 다시 단장하여 1959년의 복제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참가자중 실험군은 일주일간 그곳에서 지금이 1959년인 양 지낼 예정이었다. 모든 대화와 토론은 현재시제로 이루어질 계획이었다. 우리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전반적인 설명과 일주일간의 대략적인 일정, 운둔처의 평면도, 각자의 방위치 표시가 담긴 안내문 꾸러미를 우편으로 발송했다. 그리고 잡지나 신문, 책, 가족사진은 1959년 이후의 것이라면 절대로 가져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한 참가자들에게는 1959년 당시인 듯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써달라고 하고 젊은 시절의 사진을 요청하여 다른 참가자들에게 그 사진을 보냈다. 두 번째 집단인 대조군은 일주일 뒤에 별도의 은둔 실험을 진행했다. 그들 역시 실험군의 참가자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지내며 1959년 에 일어났던 일에 관한 활동과 토론을 즐길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기 소개서는 과거 시제로 작성되었고 사진도 현재의 모습이었으며 일단 은둔처에 입소하면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지금은 1959년이 아니라는 사실에 집중할 예정이었다. 그 결과로부터 육체를 지배하는 마음의 힘이 실로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두 집단 모두 공손한 대우를 받았고, 토론에 활발히 참여했으며, 그 전까지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일주일을 경험했다. 그 같은 경험을 한 두 집단 모두 청력과 기억력이 향상되었고, 체중이 평균 1.5kg 늘어났으며 악력도 현저히 향상되었다. 수많은 측정결과에서 참가자들은 더 젊어졌다. 실험군은 관절 유연성과 손가락 길이, 손놀림이 월등히 나아졌다. 지능건사에서는 대조군의 44퍼센트만이 결과가 향상된데 반해 실험군은 63퍼센트가 점수의 향상을 보였다. 키, 몸무게, 걸음걸이, 자세도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연구의 목적을 전혀 모르는 제 삼자들에게 연구를 시작할 때 찍은 참가자들의 사진과 일주일의 연구 끝 무렵에 찍은 사진을 비교해 달라고 요청했다, 객관적인 입장의 관찰자들은 실험군 연구 말미에 훨씬 더 젊어 보인다고 답했다. 우리를 위축시키는 사고방식이나 건강과 행복에 대해 우리가 설정해 둔 한계로부터 스스로 해방시키고,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수호자가 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자는 것이다. 변화하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우리가 어떻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독자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본디 자신의 몫이었던 건강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고자 한다. -개 한 마리가 요들송을 부를 수 있다면. 내 연구의 목적은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이지 정답을 찾아내려는 게 아니다. 개 한 마리가 요들송을 부르도록 가르칠 수 있다면 , 우리는 개가 요들송을 부르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연구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동일한 결과를 보이게 될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노력한다면 그러한 종류의 개선을 이루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사고방식이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경향이 있어서 무언가를 배울 때 한 번 더 곰씹어 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배우는 대상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배움을 얻는 맥락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이쪽에서는 옳은 것이 저쪽에서는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지닌 견해를 다시 고려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정보를 추가로 습득하거나 견해를 향상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우리가 근거로 삼은 사실은 무엇인지. 그와 같은 사실을 도출해 낸 과학을 믿어도 되는지 등의 의문을 제기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정보를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 탓에,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였던 일이 실제로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삶을 헤처가야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있다. 과학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설을 확인하는 작업에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를 찾으려 든다.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하지만 옳다고 믿는 사실에 반대되는 증거를 찾는다면 가설을 확인할 확률도 더 높고 많은 경우 우리에게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능성의 심리학 나는 시도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시도해서 실패하는 경우에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그 시도에서 사용했던 방법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뿐이다. 여전히 우리는 그 무언가가 불가능한 것인지는, 즉 우리가 해낼 수 없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질병이나 질환에 맞닥뜨렸을 때 현 상태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가능성의 심리학에서는 단순히 적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 사애를 개선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40~50대에 시력이 감퇴하기 시작한다고 믿고 있다. 실제 연구결과, 시력 손실은 모든 이들에게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나 대부분의 경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같은 개연성을 아무 생각 없이 절대적인 사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만약 우리 눈이 만성적으로 나빠질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말로 눈이 나빠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 그러니 덜 명확한 대상을 좀 더 명확하게 보려고 노력하라고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부러진 손목이 나을 때까지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슬퍼하면서 다른 손으로 그림을 그려 볼 생각은 전혀 해 보지 않는다. 단순히 의문을 품어 볼 생각이 들기만 한다면, 변화를 주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은 수도 없이 많다. 만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도 우리는 마음속에 가만히 붙들어 두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을 열기만하면 눈앞에는 새로운 세계, 가능성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2장 통제력 되찾기 “의학 서적을 찾아 읽고 여러 의사의 조언을 구하면서 그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병세의 악화는 워낙 미미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는 하루하루의 차도에서 별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의사에게 조언을 구해보면 모든 것이 매우 빠른 속도로 악화되는 듯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그달 들어서 그는 또 다른 저명한 의사를 찾아갔는데, 그 명의는 그가 처음 만난 의사와 거의 똑같은 소견을 내놓았지만 약간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번 상담은 이반 일리치의 의구심과 공포를 더 악화시켰다....... 옆구리의 통증은 계속되었는데, 갈수록 심해져 도무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도 점점 더 기묘하게 변해가며 입에서 뭔가 역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기력과 함께 입맛도 사라졌다.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i). "이반 일리치의 죽음(The Death of Ivan iiyich) 환자는 알지도 못하고 치유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추락하는 소용돌이에 빨려 드는 것이다. 무관한 듯 보이던 것이 나중에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는 걸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으면서도, 우리는 지금 상관없어 보이는 대상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맞닥뜨리는 것마다 편의상의 이름을 붙여, 이치에도 더 맞고 훨씬 더 유용할 수 있는 대안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스스로의 눈을 가린다. 보다 세밀하고 미묘한 이해보다는 확실성을 추구하여, 전문가들조차 확신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는 좌절감을 느낀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 이후, 학생들과 나는 줄곧 우리의 행복이 사고방식과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를 연구해 왔다. 최근 우리는 “만일 우리의 삶이 다른 나잇대 집단의 삶과 유사하다면, 우리는 그 나잇대 사람들처럼 나이를 먹을까, 아니면 원래 나잇대 사람들에 가깝게 나이를 먹을까?”라는 주제를 살펴보는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우리는 훨씬 어린 남자와 결혼한 여자들은 평균수명보다 오래 사는 반면, 나이가 많은 남자와 결혼한 여자들은 더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자와 평균 수명 기대치가 다른 남자들의 경우에도 결과는 같았다. ~~ 우리는 자신의 사회적 생물학적 시계를 배우자의 나이에 맞추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배우자는 더 늙게 되어 예상보다 일찍 죽는 반면에, 나이든 쪽은 더 젊어지고 예상보다 오래 사는 것이라 추론했다. 또 다른 연구를 보면 여자들이 자신의 생일 전주에 죽는 경우보다 생일 다음주에 죽는 경우가 더 많다. 반면 납자들은 생일 전주에 죽는 경우가 더 많고, 생일 다음주에 사망하는 확률은 평균보다 높지 않다. 연구 결과는 데이비드 젠킨스(David Jenkins)가 논평한 대로, 남녀는 “현실을 다르게 포장”함을 시사한다. 우리가 고안해 내는 포장이나 자신을 위해 정보를 구성하는 방식은 실질적인 효력을 지닌다. 예컨대 여자들은 자신의 생일을 준비하며 기대를 갖고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고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남자들은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1975년 오하이오 주의 옥스퍼드에서 노화에 관한 긍정적, 부정적인 진술에 응답한 650명 이상의 수명을 조사하였다. 실험 참가자들은 “점점 나이들어 갈수록 만사가 계속 나빠진다.”, “나이가 들면 쓸모없어진다”, “나는 젊었을 때 만큼 지금도 행복하다.” 등의 진술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응답을 집계한 결과에 따라 이들을 건강과 노화에 관해 긍정적인 경해를 지닌 부류와 부정적인 견해를 지닌 부류로 분류하였다. 설문조사를 실시환 지 20여년이 흐른 뒤에 실험 참가자들의 기록을 확인한 레비와 동료들은 노화를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던 이들이 부정적이었던 이들보다 평균 7년 반을 더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보며 ‘흥미롭기는 하지만, 나와는 별 상관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의 믿음이 수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내용에 크게 반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무언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것이 일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어나게 하는 방법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만일 어떤 질병이 치유 불가능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고 믿었다면, 우리는 무의미한 노력이라며 결코 그 병을 치료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의학이 정복해낸 대부분의 질병이 어느 시점에는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규정할 수 없었을 뿐이다. 이와 같은 태도야 말로 변화가 가능하도록 한다. 믿음이 우리의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믿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건강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로 말이다. 언제나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우리가 옳다면 ‘통제 불가능한 일’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손해는 매우 커져, 시도해 보았다는 최소한의 보상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통제하고자 하는 노력의 기회 또한 잃고 말 것이다. -건강 통제하기 확신은 가능성을 외면하도록 우리 정신을 고정시키고,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과 단절시킨다. 모든 것이 확실할 때는 우리가 선택할 것이 없다. 그리고 의구심이 없다면 선택할 일도 없다. 우리가 확신에 차 있을 때는 인식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세상의 불확실성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껴안아야 할 것은 불확실성으로, 건강에 대해서라면 특히 그렇다. 불확실성을 염두에 둠으로써, 우리는 선택을 내리고 자신의 삶을 통제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건강한 경험을 의학적인 행위로 바꾸어 왔다. 거의 모든 행동이 병적인 상태나 증후군이 되고, 도전이나 어려움은 질병이 되며, 감각은 증상이 된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험을 병적인 상태 때문이라고 귀결 지으면서, 경험에 대한 이해를 제한한다. (사실 우리는 의사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믿어 처음부터 이해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 병적인 상태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다. -생각 없이 하는 허락 우리는 세상이나 다른 사람과의 상호 작용이 얼마나 생각 없이 일어날 수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터무니없이 말도 안 되는 정보가 주어질 때도 그것이 기존에 갖고 있던 믿음이나 깊이 뿌리박힌 행동 양식에 들어맞기만 하면 흔히 우리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도 일개 정보를 아무런 생각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거나 조언을 처방으로 받아들일 때, 또는 의사들이 우리 건강에 대해 우리보다 더 많이 안다고 인정할 때 똑같은 짓을 저지른다. 무의식적으로 형식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내용에는 주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사소하게 벌어지는 사회적인 상황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 건강과 관련해서는 엄청난 문제가 된다. 내용보다 형식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너무도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우리가 의사의 명령에 의문을 품는 일은 거의 없다. -진단: 출발점 즉 진단은 수많은 개인의 평균적인 경험을 설명하지만 특정 개인이 특정 시점에 겪는 경험에는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 3장 변화에 주목하기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침대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불룩한 갈색 배가 마디마디 단단한 활 모양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배 꼭대기엔 담요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과 비교하면 애처로울 정도로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서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카프카의 변신-”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는 대개 그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찾아야 한다고 학습한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 매 학기마다 나는 세미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시간이 있다면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다고 정한다. 학생들은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럼요, 시간 있어요.” 이어 나는 그들에게 몇 시인지 묻는데, 학생들은 대부분 다시 시계를 본다. 방금 시계를 봤다면 몇 시인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놀랍게도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 시계를 봤을 때는 정말로 몇 시인지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수업이 끝나기 전에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는지를 보았을 뿐이므로 그들이 몇 시인지 모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를 보느라 다른 것들을 놓치기 쉽다. 우리의 예상은 보는 눈을 돕는 동시에 예상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는 눈을 가리기도 한다. 전통적인 아날로그 손목시계와 디지털 손목시계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디지털 손목시계는 우리에게 가장 명확하게 시간을 보여 주지만 그것이 보여 주는 것은 시간이 전부다. 반면, 아날로그 손목시계는 우리에게 ‘거의’, ‘방금 지난’, ‘곧 될’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 손목시계는 좀 더 조건부의 정보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부의 정보는 우리가 가변성을 인식하도록 이끈다는 장점을 갖는다. 가변성을 인식하는 일은 의식의 집중으로 통하는 열쇠이다. 즉, 정보가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언제?’, ‘그때는 아니고 왜 지금?’과 같이 변화에 대해 중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제논의 역설 뒤집기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를 향해 내디딜 수 있는 아주 작은 한걸음이 언제나 존재한다면, 우리가 흔히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한계는 우리 스스로 또는 우리 문화가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나아질 가능성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정말로 실천에 옮기지 않는 한 그 믿음을 확인할 수 없다. 즉, 알아낼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보다는 살펴봄으로써 알아낼 확률이 더 높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통제력이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생각이 옳은지 아닌지 지켜볼 수 있다. 옳다면 인생은 무의미할 뿐이고, 그르다면 인생을 낭비하는 셈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통제력이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혹시 한번쯤 틀리더라도 앞으로 절대 방법을 찾지 못하리라는 의미는 아니며 그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거기다 통제력이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옳은 것으로 드러난다면 우리는 소위 말하는 통제 불능을 정복하게 되는 셈이다. 통제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면 별 소용도 없을 텐데 왜 굳이 노력해야 할까? 사실 이제껏 약으로 정복된 모든 질병은 한때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으며, 그러한 질병을 정복할 방법을 찾아낸 것은 누구인가 그것이 꼭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이 먹어야 하는지 또는 먹지 말아야 하는지, 뼈는 얼마나 빨리 치유될 수 있는지, 효율적으로 활동하려면 잠을 얼마나 자야 하는지에 대해 밝혀진 현재 기준이 있다고 우리는 믿고 산다. -가변성에 주목하기 1961년 예일 대학교 심리학자 닐 밀러(Neal Miller)는 팔을 올리고 내리는 등의 고의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자의적인 체계처럼 혈압과 심박 수를 통제하는 자율 신경계도 훈련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의 견해는 곧 엄청난 회의에 직면했다. 자율 신경계는 말 그대로 자율적으로 조절되는 것으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모두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밀러는 생체 자기제어에 대한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모니터를 연결하여 심박 수와 같은 자율신경계 작용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였고, 그 결과 인간이 훈련을 통해 자율 신경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하였다. -안정감에 대한 환상 모든 유형의 질병과 심리 작용이 우리가 주목할 대상이다. 일례로 우울증을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우울할 때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욕망이 거의 또는 아예 없으며, 우울함을 떨쳐 줄 만한 활동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는 사람도 기분전환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기분을 더욱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는 상황을 악화시키게 될 것을 두려워하며 더욱더 숨어들고 주위환경의 변화를 회피한다. 익숙함은 위안이 되므로 우리는 스트레스의 가능성을 피해 익숙한 대상에 매달린다. 틀에 박힌 일상 때문에 사회로부터 유리되는 현상이 심해지는데도 우리는 우울할 때 일상의 틀 안에서 위안을 찾으려 든다. 우울증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우울한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가 항상 우울하다고 믿고 있으며 우울증이 자기 삶에서 항상 존재하는 요인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다른 접근법도 있다. 우울해지면 우리는 과거에 경험했던 다른 우울한 상황과 다를 바 없는, 익숙한데다 심지어 필연적이기까지 한 상황으로 다시 빠져든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지금 처한 상황은 과거의 경험과 분명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슨 일이든 우리가 첫 번째로 경험하는 것은 이후 열 번째로 경험과는 분명히 다르다. 처음으로 우울증을 겪을 때는 큰 자극이 필요했을지는 모르지만 , 다음번에는 감지하기 힘들만큼 작은 신호만으로도 우울증이 초래될 수 있다. 만약 우울증이 발병할 때마다 차이점을 알아차린다면 좀 더 성공적인 방법으로 대처할 기회도 생겨날 것이다. 사람들이 우울함을 지속적인 상태라고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삶이 흡족할 때 자신의 감정상태가 어떤지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단순히 기분 좋음을 느낄 뿐, 감정의 근거를 찾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울해질 때는 우리가 왜 불행한 지 물으며 우울함을 뒷받침 해 줄 근거를 찾으려 드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울할 때는 이유를 묻고 행복할 때는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우울증이 찾아오면 자신의 정신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완벽히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행복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줄 근거 또한 빈약하기 때문에 항상 우울하다고 상상하기에 이른다. 만약 우리에게 지금 당장 느끼는 우울함이 어제 느꼈던 것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차리도록 노력하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각자의 정신 상태에 좀 더 의식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우울’이라는 단일한 속성을 적용한다면, 우리는 그 용어의 익숙하고 무심한 의미 속으로 숨어드는 셈이다. 그런 상태라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활력을 덜 느낄 수밖에 없다. 이제 과학의 도움으로 우울증이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사하지만 뚜렷하게 구분되는 다섯 가지 이상으로 존재한다고 밝혀져, 우리가 겪는 우울증이 어떤 종류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임무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이를테면 한 가지 이상의 우울증을 경험할 수도 있으며, 아침과 저녁에 각기 다른 종류의 우울증을 느끼거나 심지어 온종일 여러 가지 우울증을 번갈아 가며 겪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들었다고 치자, 이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한 가지 관점으로만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대신(나는 그것이 우울증의 특징이라고 믿는다), 의식을 집중하여 스스로를 대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력의 결과는 실재로 우리의 우울증을 줄여 줄지도 모른다. -안정감과 맞서기 우리가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안정되고 한결같은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다. 내가 겪는 우울증은 다른 사람의 우울증과 다르며, 우울증은 나타날 때마다 우리가 그 차이를 알아차리든 알아차리지 못하든 간에 매번 다른 모습을 지닌다. 이때 우리가 느끼는 우울증이 어떤 유형인지 알아보려 한다면 그 행동은 곧 삶에 몰입함을 의미하고, 삶에의 몰입은 우울함을 느끼는 상태와 공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과 나의 관계에서 내가 보다 의식을 집중하여 당신을 대한다면 당신의 행동과 감정에서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 당신 또한 나에게 똑같이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행동에 대해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당신이 처한 특별한 상황을 감안하여 당신의 행동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의식을 집중하여 우리 관계에 임한다면 서로의 행동을 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거침없는 사람으로, 융통성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한결같고 안정된 사람으로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지난주에 88세인 아버지와 카드 게임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집은 카드를 모두 기억했고 그 정보를 잘 이용하여 게임에서 이겼다. 이후 함께 수영장에 갔을 때도 아버지는 몇 바퀴를 돌았는지, 앞으로 몇 바퀴를 더 오가야 하는지를 기억하며 수영을 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아버지는 자신의 기억력에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종류의 정보를 잊어버리는지 묻자, 아버지는 구체적으로 집어내지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몇 가지를 까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뿐이었지만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왜 자신이 겪는 문제점들을 구별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나는 가끔씩 볼 수 없는 게 당연한 사물을 볼 수 있는데도(굳이 보려고 애쓰는 경우) 내가 근시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해결책은 우리가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짚어 볼 때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나는 아버지에게 기억나지 않는 정보의 유형을 가능한 자세히 적어보라고 했다. 혹시 어떤 정형화된 특징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버지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 아마도 애당초 기억에 새겨 두지 않았기 때문에(이는 망각의 필수 전제 조건이다) ‘깜박’하는 경우가 더러는 있으리라 짐작했다.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아버지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편하게 마음을 먹거나 혹은 쉽게 깜박하는 일들에 좀 더 신경 씀으로써 기억을 보다 잘할 수 있을 터였다. 심지어는 잘 잊어버리는 부분에 대한 기억력을 높이려고 노력할 수도 있는데, 이는 기억력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일만큼 부담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는 사실보다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를 기억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나이가 듦에 따라 장기 기억력은 변함없이 유지되지만 단기 기억력은 나빠진다. 노인들은 과거에 겪은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방금 만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는 애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와 관계없이 의미 있는 것이 기억된다는 견해는 신경과학 분야의 최근 연구와도 일치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네 가지가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에 언제나 똑같이 반응할 수도 있고, 같은 것에 달리 반응할 수도 있으며, 같은 것에 같은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고, 다른 것에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하지 않는 점은 비슷하고 다름을 결정하는 장본인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바람과 욕구, 재능, 기량 안에서 가변성에 주목하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상을 고정시켜두면 우리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비유적으로든 문자 그대로든 볼 수 없게 된다. 작은 종양, 호흡의 변화, 소변 색깔의 변화 등도 그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는 한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너무도 많고, 변화를 알아차리고서도 속수무책이라 느끼며 정면으로 맞서기를 꺼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그 신호(첫 번째 변화)는 우리가 인식하기 훨씬 이전에 나타난다. 이와 같은 맹목성은 우리처럼 평범한 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아, 의사들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는 사소한 변화를 놓친다. 건강관리는 가능할 때마다 대인 관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내가 나의 증상에서 체계적으로 함께 변하는 듯 보이는 외적 요인들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당신이 돕고, 나 또한 당신을 돕는 식이다. 궁극적으로 책임은 여전히 나 자신에게 있지만, 주치의나 반려자, 가까운 친구들, 친지들이 나에게 문제점을 지적해 주는 치료사로서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연로한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벌어 질 지 생각해 보자. 어른이 된 자식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무력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모님을 아기처럼 다루거나 과잉보호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가령, 보청기를 낄지 말지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부모님의 선택임을 잊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옆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노인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 내 친구의 고모할머니는 진보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로,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인 남편과 함께 차로 보스턴을 떠나 투표할 도시까지 이동하는 동안 보청기를 꺼둔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신체적 능력이 그렇듯 청력이 한꺼번에 사라질 가능성은 없으며, 소리를 듣는 능력이 모든 종류의 소리에 대해 모든 종류의 환경에서 똑같이 발휘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 관심의 결핍이 청력 상실이라는 가면을 쓸 수도 있다. 우리가 부모님의 듣기 능력이 어떨 때 달라지는 지를 알아차리면, 즉 청력 상실이 특히 두드러지는 때와 그렇지 않은 때를 분간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첫째, 우리 자신이 쓸모 있다고 느낀다. 둘째, 우리가 알아낸 정보가 부모님에게 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 같은 구분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부모님이 전반적으로 노쇠를 경험하고 있다고 여기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들의 상태에 대해 별 도움이 안 되는 말을 하거나 불필요하게 고함을 지른다. 차이를 알아차리는 일은 의식 집중의 정수이다. 매사에 신경을 쓰면 인생이 피곤해질 것이고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부족해질 거라고 상상하지는 말자. 의식의 집중은 활력을 불어넣지 활기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4장 고정관념 버리기 현재 많은 사람들이 65세가 공직에 출마하거나 아이를 입양하기에, 또는 테니스 경기를 하기에 너무 늙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80세가 되면 너무 쇠약하여 홀로 지낼 수 없고, 가스레인지 끄는 걸 깜박할까 두려워 요리를 할 수 없으며, 균형 감각이 떨어져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앓고 있는 병이 악화되는 대신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망상이 지나치다고 말한다. 은둔처에 들어온 실험 참가자들이 처음에 자기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나같이 그 같은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모두들 자신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우리가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과체중은 심리학적인 실패, 의지력 결핍의 결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연구원들은 체중의 유전적 특징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무언가 다른 요인이 관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의 양과 활동량, 우리 몸이 열량을 얼마나 잘 소모하는가를 조절하는 50가지 이상의 유전자이다. 그러자 지방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연구결과, 상당히 유사한 식단을 섭취한 쌍둥이도 체중이 매우 달라질 수 있음이 드러났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체중 증가가 먹는 양이나 물려받은 유전 인자와 관련이 없는 듯 했다. 체중이 늘어나는 이유가 의지력 결핍도 아니고 유전자도 아니라면, 무언가 다른 요인이 관여하는 것일까? 체중 증가에 미치는 바이러스의 영향을 연구한 리처드 앳킨슨(Richard Atkinson)과 니킬 두란다(Nikhil Dhurandhar)는 비만한 피험자의 30퍼센트가 흔한 유형의 아데노바이러스(우리가 알아차리기 어려운 사소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음)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는 데 반해, 날씬한 피험자는 11퍼센트만이 이 항체를 갖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전반적으로 항체 실험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감염된 적이 없는 사람들보다 두드러지게 체중이 많이 나갔다. 그런데 추후 연구에서는 뚱뚱한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는 것도 아니고, 유전적 인자가 관여하는 것도 아님이 드러났다. 혹시 비만 자체가 질병일까? 성급하게 판단하지는 말라는 것이 다른 연구원들의 충고일 뿐, 아직은 증거가 없다. -필수적인 사실 과학적인 조사는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라 확률을 산출하고, 그 같은 확률은 연구원과 그들이 만든 교과서, 대중 매체, 교사, 부모, 친구, 사업관리자의 손을 거치면서 설득력 있고 전달하기 쉬운 절대적 진술로 변환된다. 우리는 배우는 사람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는 진실일 수도 있는 것을 받아들인 후, 마치 그것이 모든 상황에서 진실인 양 적용한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사실을 배울 때 모든 경우가 아니라 특정한 맥락 안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배운다면, 사실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줄어들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 사실에 의문을 품고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이 쉬워질 것이다. 운동은 분명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인데, 종양학자인 피오나 치온(Fiona Chionh)의 최근 연구는 운동을 많이 하는 여성들이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운동은 좋은 것이지만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사실은 변한다. 정보는 제자리에 멈춰 있지 않으며, 이는 의학의 잘못이 아니라 전반적인 과학의 현실이다. -제한된 관계 : 상관관계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만약 우리에게 종양이 있고 종양이 조기사망과 상관관계가 있다 해도, 종양이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할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같은 결론을 도출하려면 인과관계를 입증할 과학적인 실험을 해야 하는데, 이때 관여하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인과 관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연구를 수행하기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이는 우리의 예측이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기도 하다. 종양 때문에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를 거라고 예상한다면 우리는 희망을 포기할 것이고, 종양이 아니라 희망을 포기한 행위가 죽음을 부를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변화: 회귀 회귀란 행동, 느낌, 사건이 각기 평균 근처에서 달라진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가령 테니스 경기에서 내가 멋진 서브를 넣었다면 나의 다음 서브는 아마도 평균치에 좀 더 가깝게, 덜 근사하게 들어갈 것이다. 평소와 달리 형편없는 서브를 넣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다음 서브는 아마도 전번 것보다 나아질 것이다. 통계학에서는 이 같은 효과를 “평균으로의 회귀”라고 표현한다. 며칠 전의 사소한 증상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탓에 좀 더 심각한 증상을 r마지하고 행동을 취하면 가까운 시일 내로 몸이 나아진 것처럼 느끼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는 증상이 평균으로 회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먹은 약 때문일까? 어떤 때는 약이 진짜 효력을 발휘하고, 또 어떤 때는 약 덕분이라고 오인하기도 한다. 두 경우 중 무엇이 옳은지 알기란 쉽지 않다. -증상은 질병의 단서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그러한 수치에(의학적 수치)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의학적인 수치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는 대신, 우리가 의학적 수치를 안내 지침으로 삼을 때 보다 우리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내가 의학적인 검진을 반대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해 두고 싶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검진 결과에 아무 생각 없이 의존한 결과 맞닥뜨리게 되는 무의식적인 상태이다. -숨겨진 결정 베카 레비와 나는 노년에 대한 문화적 태도와 고정관념이 노화와 관련된 신체 쇠퇴, 특히 기억력 감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연구를 실시한 바 있다. 우리는 대다수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일반적으로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를 비교하고자 했다. 그 같은 선입견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을 살펴보기 위하여, 우리는 무작위로 추출한 정상 청력의 젊은이와 성인 표본 집단에 더하여 특별히 두 사회 집단의 젊은이들과 노인들을 모집했다. 바로 본토 중국인과 청각 장애를 지닌 미국인 집단이었다. 우리는 각 집단에게 “나이든 사람을 생각할 때 처음 뇌리에 떠오르는 다섯 가지 낱말이나 표현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담긴 설문지를 돌렸다. 예상했던 대로 중국인과 청각장애인은 다른 집단보다 기억력 감퇴를 언급하는 경우가 적었다. 우리가 궁금했던 점은 이처럼 기억력 감퇴에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없는 집단의 노인들이 미국 주류 집단의 노인들보다 기억력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기억력에 역효과를 낳는다는 가설을 세웠다. ~~~~ 그 결과, 젊은이들은 어느 집단에 속하든 균일하게 검사결과가 좋은 반면 , 본토 중국인들과 청각장애 미국인 노인들은 정상청력의 미국인 노인들보다 기억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심코 붙이는 이름표와 의식을 집중하고 내리는 결정 증상에 이름표를 붙이는 일의 단점은 좀 더 복잡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표가 우리로 하여금 통제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박식이다. 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통제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우리는 이름표를 붙이기를 통해 전문가와 의학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몸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 이제 몸의 다른 부분에서 전달되는 건강 신호는 무시해도 종하고 여기게 된다. 이름표는 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언가를 안정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으로서 혹은 문화로서 우리는 일단 무언가를 안다고 믿게 되면 그것을 좀체 새로이 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제 5장 주변 환경 재설계하기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분별 있게 행동하는 유일한 사람은 나의 재단사이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매번 새로이 치수를 잰다. 다른 이들은 옛날 치수를 계속 사용하며 내가 그 치수에 맞기를 기대한다.” -조지 버나드 쇼- 부엌 꼭대기에 있는 선반에 있는 접시에 손을 뻗다가 사고로 접시를 떨어뜨리면 내가 부주의해서 접시를 깨뜨렸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모욕감은 잊고, 접시에 손을 뻗으면서 딴 생각을 한 탓이라고 여긴다면 기분이 좀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반이 나보다 키 큰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탓임을 인식한다면 기분은 더욱 나아질 것이다. 어쩌면 이 기회에 ‘나의’ 필요에 더 잘 맞도록 선반을 다시 설계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세상 병원의 하얀 가운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지 모른다. 하얀 가운은 ‘의사’라는 개념을 사전 자극하여, 의사에 대한 고정 관념을 머리에 떠오르게 한다. 의사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대신 권위자 집단의 구성원으로 바라보면 우리 스스로가 의사는 당연히 권위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는 우리를 담당한 의사가 대단히 친근하고 격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의사와 간호사의 유니폼은 반대로 ‘환자’라는 개념을 사전 자극할 가능성이 높고, 우리 역시 스스로를 환자로 여길 때 정말 환자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제 6장 제대로 된 언어 사용하기 “다르게 배열된 낱말은 다른 의미를 지니며 다르게 배열된 의미는 다른 효과를 낳는다.” 명확하게 규정된 언어는(말로 하는 언어와 말을 사용하지 않는 언어 모두) 우리로 하여금 개인의 경험을 무시하고 사람들 사이의 공통점을 추구하도록 하는, 고도로 사회적인 행동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바깥 세상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나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내가 복통이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당신도 복통을 경험해 봐서 내가 상당히 아프다는 사실을 이해해 줄 거라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속기이고, 개개인의 경험은 원문이다. 언어가 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내는 사이, 우리 각자의 경험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차이점은 분실되고 만다. 실제로 나는 학생들과 여러 연구를 통해 ‘~하다.’ 대신에 ‘~일 수도 있다.’, ‘아마도.’ ‘한 가지 견해로는.’과 같은 조건부 언어를 사용할 때 사람들이 정말로 정보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방법을 고안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도시 개발에 관한 교과서 내용의 일부를 조건부로 읽을 수 있게 바꾸었고, 두 번째 연구에서는 심폐 소생술에 관한 책의 내용을 조건부로 읽도록 바꾸었으며, 세 번째 연구에서는 물건에 각각 조건부 진술과 절대적 진술이 기재된 이름표(이를테면 ‘이것은 애견용 치아 장난감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와 이것은 애견용 치아 장난감입니다. ‘라고 쓴 이름표)를 단 뒤, 실험 참가자들이 그 물건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이용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정보를 조건부로 접한 참가자들은 나중에 그 정보를 고민하고 창의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위험하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위험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스트레스 강도는 낮겠지만 아무 말도 듣지 않았을 때보다는 건강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조건부 언어를 사용하면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좀 더 의식을 집중하게 된다. 물론 말하는 이가 아무리 정대적인 입장을 취하더라도 , 듣는 우리가 조건부로 알아들을 수 있다. 아니, 아마도 그래야 할 것이다. 직장 상사가 당신에게 ‘자네, 아마 내년 여름에 유럽으로 출장을 가게 될지도 몰라.’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확률이 낮을지라도 실제로 출장을 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상사가 ‘자네의 임금 인상은 아마 보류 될 거야.’라고 말하면, 당신은 그것을 확실하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 즉, 당신의 임금은 인상되지 않을 것이며 , 상사가 아마라고 말한 것은 나중에 전할 나쁜 소식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점화효과와 플라시보 효과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 가운데 상당수는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것이다. 그 이유는 정보를 준 이가 권위자이거나 처음에는 그 정보가 우리에게 별 관련이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 베카 레비는 노인들이 노화에 긍정적인 고정관념으로 사전 자극 되는 경우 에는 기억력과 기억에 대한 자신감이 향상되는 반면, 부정적인 신호로 사전 자극되면 기억력과 기억에 대한 자신감이 악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들의 반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자아상에 대한 고정 관념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의 정도였다. 부정적인 고정 관념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내면의 두려움이 작용하여 기억력과 기억에 대한 자신감이 감소되었다. 레비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관련된 행동묘사(문제의 모든 면을 살핀다) 또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관련된 행동묘사(다른 사람들의 생일을 기억할 수 없다)가 빠르게 화면을 지나가도록 프로그램한 컴퓨터 앞에 실험 참가자들을 앉혔다. 나중에 참가자들은 기억력 테스트와 노화에 대한 태도 테스트를 받았다. 노화에 대한 태도 테스트에서는 참가자에게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였다. 이를테면 73세의 할머니가 딸과 함께 살게 된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사람은 노인이 딸에게 의존한다고 여기는 반면, 긍정적으로 해석한 사람은 모녀가 상호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긍정적인 표현으로 사전 자극된 실험 참가자들은 대조군에 비하여 향상된 기억력을 보였고, 부정적인 표현으로 사전 자극된 이들은 상대적으로 성적이 저조했다. 의식을 집중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영향을 통제할 수 없다. 바바 쉬브(Baba Shiv), 지브 카르몬(Ziv Carmon), 댄 에리얼리(Dan Ariely)rk 수행한 대단히 흥미로운 한 연구에서는 헬스클럽에서 아직 운동을 시작하기 전인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들의 에너지 강화 음료라고 믿는 음료를 나눠 주었다. 이때 한 집단에게는 음료의 값이 2.89달러라고 알려주었고. 다른 집단에게는 정가 2.89달러에 판매되는 음료이지만, 도매로 단돈 89센트라는 할인가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운동을 마친 후 살펴본 결과, ‘할인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정가 집단에 비해 운동의 강렬함이 낮았고 운동 후에도 피로감을 더 크게 느낀다고 보고했다. 높은 가격이 흔히 높은 품질을 의미할지는 모르겠지만 , 이 실험에서 높은 가격은 품질과 관련되지 않는 사전 자극에 불과하다. 나의 연구실 동료인 마자 지킥, 마이클 퍼슨, 에이린 마텐치는 최근 시먼스 대학교 간호학과의 레베카 도너휴와 함께 시력에 관한 이 연구를 이어갔다. 시력 검사표는 상단에 큰 글자가 있고 표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차츰 글자가 작아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시력 검사는 위에서 아래쪽으로 실시되므로, 시력표의 설계는 의도하지 않게 어느 시점에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낳는다. 만약에 이 표를 뒤집어 가장 작은 글자가 상단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예상하는 바가 달라져 곧 볼 수 있게 된다는 기대를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실험을 해본 결과, 참가자들은 위아래가 뒤집힌 시력포를 사용했을 때 시력이 향상되었고, 이전에는 읽을 수 없었던 줄의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가 일반 시력표에서는 글자크기가 10 또는 더 컸을 때나 읽을 수 있던 숫자들을 뒤집힌 시력표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피험자들은 자신이 일반 시력표를 더 잘 읽었다고 생각하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였다. 우리는 기대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한다. 플라시보 효과가 건강 증진에 놀라우리만치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는 했지만, 이 효과는 사전 자극과 마찬가지로 양날의 검을 내포한다. 즉, 부정적인 기대감이 환자에게 부정적인 결과로 확인되는 경우, 플라시보 반응은 역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효과를 ‘노시보’ 현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암 진단에 있어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사고방식은 암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확신이다. 암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암이 아직 신체 기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해도 본인을 건강한 사람으로 여기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직 암 진단을 받지 않아 스스로 건강하다고 여기며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악성 종양으로 진단 받은’ 환자들은 실제 병의 진행 과정과 상관없이 쇠약해질 수 있는데, 이는 죽음에 대한 단순한 예상만으로도 죽음이 일어나도록 촉진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의식을 집중한 운동의 효과 호텔 객실 청소원은 하루에 평균 15개의 객실을 청소하는데, 각 방의 청소를 완료하는 데는 20~30분이 소요되며 밀기, 팔다리 뻗기, 굽히기, 들어올리기와 같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따라서 호텔 객실 청소원은 건강한 생활을 위하여 의사가 권하는 운동량을 충족하거나 초과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활동 수준에도 불구하고, 기술 통계학 상으로 이들의 건강은 지극히 열악하다고 나타난다. 혈압, 체질량 지수(BMI),체지방 비율, 체내 총 수분 비율, 허리와 엉덩이 둘레의 비율 등 건강의 모든 주요 지표와 관련하여 이들은 위험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객실 청소원은 무의식적으로 운동과 일이 동떨어진 별개의 활동이라는 견해를 갖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운동에 대해 사전 자극함으로써 운동으로 인한 건강상의 혜택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알리 크럼과 내가 2007년에 이 집단을 연구하기로 했을 때, 우리는 이 여성들이 본인의 일을 운동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험 초기에 그들 중 3분의 2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보고 하였고, 3분의 1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필요한 양의 신체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운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객실 청소원들의 태도를 바꾼다면, 그들도 건강상 혜택을 누리게 될까? 먼저 우리는 여성 객실 청소원들이 전반적으로 얼마나 건강한지 물었다. 그들의 신체 활동과 실제 건강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어 우리는 “객실 청소원은 자신의 업무가 날마다 하는 운동의 훌륭한 원천임을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설문 조사를 위해 7곳의 호텔이 도움을 주었는데, 각각의 호텔은 다음의 두 조건중 하나에 무작위로 할당되었다. 객실 청소원들이 일을 하는 동안 건강상의 혜택을 누리기에 충분한 만큼의 운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시(告示)집단의 실험 참가자들에게는 운동의 이득을 설명하고 그들이 매일 하는 객실 관리 업무가 활동적인 생활양식을 위해 미국 질병 대책 센터에서 권장하는 운동량을 충족시킨다는 내용의 공지를 전달했다. 영어와 스페인어로 작성된 이 공지는 우리의 가설을 알지 못하는 실험자가 피험자들에게 읽어 준 뒤, 휴게실 게시판에 붙여놓았다. 피험자들에게는 우리가 그들의 건강에 관한 정보를 얻어서 건강을 향상시킬 방법을 연구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도움의 대가로 우리는 건강과 행복에 관한 연구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제공할 정보가 생리학적인 수치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조군에게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곧 운동이라는 내용을 알려주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 고시 집단과 똑같은 조건을 제공했다(두 번째로 일련의 평가 후에는 그 정보를 알려주기는 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각 호텔에서 모집되었다. 우리는 먼저 체중과 혈압을 포함한 몇 가지 건강 수치를 측정하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다른 실험군의 참가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같은 호텔의 객실 청소원들은 모두 같은 조건에 배당되었다. 참가자는 총 84명이었다. 한 시간 동안 검진을 하면서, 우리의 관심사는 호텔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킬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모든 참가자들에게 전했다. 그들은 각기 설문 문항을 받았다. 설문지를 작성하는 동안, 우리는 그들을 각자 다른 방으로 데려가 생리적인 수치를 측정했다. 그 다음, 실험군의 참가자들에게 그들의 업무가 어떻게 헬스클럽에서 하는 것처럼 훌륭한 운동이 되는지 짧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설명해 주었다. 4주 뒤, 우리는 후속 평가를 위해 그들을 다시 찾았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의 실제 행동에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을 던졌다. 또한 객실 청소원들에 비교할 때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는지 물었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가 확인 하였던 것은 무엇일까? 실험군은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이 인식한 운동량이 증가한 반면, 대조군은 그렇지 못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고시집단의 참가자 비율은 두 배가 넘게 증가했다. 실험 군에서는 한 사람을 제외한 전원이 최소한 얼마간의 운동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실제 운동량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우리의 설명을 잘 이해한 상황에서, 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 운동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운동으로 사고방식이 전환되자 생리적으로 건강이 현저하게 향상되었다. 본인들의 업무가 훌륭한 운동임을 알게 된 지 불과 4주 만에, 고시 집단의 참가자들은 평균 1킬로그램의 체중이 줄었다. 체중 이외에도 객실 청소원들은 두드러진 체지방 비율 감소를 보였다. 음식에 대한 우리 생각이 실제로 음식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좌우할까? 예를 들어, 당분 대체품을 섭취함에도 체중이 줄어들지 않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는 당분을 섭취하고 있다고 믿어서일까? 사탕을 먹는다고 상상하면 혈당이 올라갈까? 깨끗한 공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실제 우리 호흡 능력에 영향을 미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우리가 병에 걸리는데 영향을 미칠까? 유니폼은 일상적인 의복과 비교할 때 나이와 연관성이 더 적으므로, 우리는 직장에서 유니폼을 입는 사람들은 자신의 옷을 입는 사람들만큼 나이에 관련된 신호에 노출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이에 관련된 신호의 부재가 건강증진과 연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가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1986~1994년에 실시된 전국 보건면담 조사에서 206개 직업의 질병자료를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유니폼을 입는 사람들은 같은 수준의 수입을 벌어들이면서 유니폼을 입지 않는 이들과 비교해서 질병이나 부상, 병원진료, 입원, 자체 보고 건강 상태, 만성 질병으로 인한 결근 일수가 더 적어서, 더 건강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여성들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젊은 신호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더 오래 살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 결과. 일찍 나이를 낳은 여성들보다 늦게 아이를 낳은 여성들의 평균수명이 더 길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어떤 나이의 부모든 아이를 기르며 겪는 고생을 고려한다면, 여러분은 반대의 결과를 예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제 7장 이름표와 숫자 경계하기 “우리가 지식 속에서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언어 문제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에 대해 “회복했다”는 표현 대신 “회복 중”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에도 생겨난다. 예를 들어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10년간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아직도 회복 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인다. 회복중이라는 말은 우리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희생자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하여 스스로 회복했다는 생각 대신 회복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자신이 강인하다고 느낄 때 술을 절제하기가 더 쉬울 수도 있다. 회복중이라는 말은 결코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암시하지만, 회복했다는 말은 확신과 힘을 보여 준다. 자신이 강인하다고 느낄수록 해로운 습관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더 적지 않을까? 아스피린 두통이 작용하는 것과 똑같이 항 우울제가 우울증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라면, 항 우울제를 먹는 사람들은 더는 스스로를 우울증 환자라고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비록 항 우울제를 여전히 먹고 있기는 하지만 우울증 증상이 없다는 것은 곧 우울증이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이름표는 부정적인 효과만큼 긍정적인 효과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암, 알코올 의존증,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애를 고칠 수 없는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부추긴다. -의식을 집중하여 붙이는 이름표 공정하게 말해 이름표를 붙이면 우리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름표가 우리 생각을 결정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가 이름표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신중할 수도 있고 맹목적일 수도 있지만 후자인 경우가 너무도 흔하고, 종종 내가 ‘조기 인지적 구속(premature cognitive commitments)’이라고 정의한 결과를 낳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름표를 확고한 진실이라 받아들인다. 나는 30년 넘게 조기 인지적 구속 또는 사고방식의 부정적 효과를 연구하고 있다. 동료 교수인 벤지언 채노위츠와 함께 조기 인지적 구속을 연구할 당시, 우리는 의문을 품지 않고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면 은연중에 그 정보에 대한 이해를 한 가지로 구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그 정보를 진실로 간주하고는 의문을 품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의문을 품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흔히 자신과 별로 관계없다고 여기는 정보를 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왜 굳이 한 번 더 생각해 보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한때 관계없다고 여겼던 일이 나중에는 나에게 상당히 중요한 일이 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젊을 때는 암이나 치매 같은 질병에 관한 정보를 접해도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건강한 삶을 살 것이라 상상한다. 나중에 그런 질병에 맞닥뜨리게 되면 우리가 붙여놓은 이름표는 어느 새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가 가고 싶지 않았던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 숫자의 힘 의료계 종사자는 사람을 숫자로 묘사하는 습관이 있다. 우리는 혈압과 맥박 수치를 가질 뿐 아니라 심전도나 뇌파 검사를 받아서 상대적인 건강 정도를 표현해 줄 더 많은 숫자를 얻을 수 있다. 혈액 검사까지 거치면 더욱 많은 숫자가 생겨난다. 비만 여부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인기가 높은 체질량 지수(BMI)를 계산하려면, 체중(파운드)을 키(인치)의 제곱으로 나눈 다음 다시 703을 곱하면 된다.(미터법을 쓰는 경우, 즉 체중과 키의 단위가 각각 킬로그램과 미터일 경우에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누기만 하면 된다). 이는 매우 정밀한 계산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체질량 지수가 결코 개인의 비만 도를 측정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사실 체질량 지수는 개인의 신체활동 수준을 전반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근육과 지방에 차이를 두지 않기 때문에 근육 량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별로 유효하지 않다. -말하지 않는 것 80세인 당신이 성인 자녀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의사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의사는 당신의 자녀에게 대답한다. 이 상황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바로 당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어서 또 다른 의사 둘이 들어와 당신을 검진하고는 당신의 병력에 관해 서로 의논한다. 당신은 그 대화에서 소외되어 있다. 당신은 대상화되고, 당신과의 소통 부재는 당신이 곧 당신의 질병이라는 생각을 더욱 강화한다. 8장 전문가의 한계 인식하기 9장 지혜롭게 나이 들기 -무의미한 기억과 유의미한 기억 정식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노인들은 어린 시절에 겪은 사건은 또렷하게 기억하는 반면 최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억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종종 관찰된다. 이는 어쩌면 오래된 기억이 노인들에게 더 의미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누구든 자신의 발달 수준을 넘어서는 시각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린아이에게 30세가 되면 어떨지 물어보면, 그 아이는 현저히 부족한 통찰력을 보일 것이다. 30세의 어른에게 80세가 되면 어떨 것 같은지 물어보아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종종 그들을 판단하는 사람과 동일한 가치관 및 기준을 지녔으리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판단되어진다. -노화인가 퇴화인가? 노화는 변화를 의미하지만 변화가 퇴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발달이라는 용어는 우리 인생의 전반에 걸친 변화에 적용될 수 있음에도, 흔히 초반 20년 동안의 변화에만 사용된다. 이러한 태도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젊은이들은 ‘발달’한다고 묘사되는 반면에 이보다 더 나이가 들어 겪는 변화는 대대 ‘노화’라고 묘사된다. 이는 밤과 날이라는 표현과 유사하다. 즉, 날이 공식적으로는 24시간 전체를 지칭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하루 중 밝은 시간만을 가리키듯이, 노화라는 말 역시 발달의 어두운 면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이름뿐인 구분이 엄청난 결과를 야기한다. 인생의 후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려면, 이전에는 성장으로 ‘인식’ 되었지만 이제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고정된 온갖 종류의 선입견과 맞서 싸워야하는 것이다. 10장 건강 학습하기 “노년에는 양식 대신 지혜를 먹고 산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긴다면, 늙어서 궁핍하지 않도록 젊을 때 열심히 지혜를 쌓아 둘 것이다.”-레오나르도 다빈치- 살을 20킬로그램 빼는 일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면 대신 30그램만 뺀다고 상상해보자. 이러한 전략을 채택하면 아마도 진행과정이 일직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은 쉽게 전진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때는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그리고 또 가끔은 어제의 전진이 오늘의 실패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작은 걸음에 주목하며 변화의 양상을 깨닫고 전진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아는 것은 아마도 제논의 역설뒤집기 전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리하여 얻어지는 결과는 가변성에 대한 주목이다. 최근의 한 연구는 개가 종양에 걸린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강화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한 번에 아주 작은 한 걸음씩 말이다. 현재 우리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가 방법을 찾지 못했음을 뜻할 뿐이다. 만약 최소하늬 가능성이라도 열어 둔다면 우리가 그 방법을 찾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 내가 최근 30년 이상 연구한 의식의 집중은 적극적으로 대상을 구별 짓는 단순한 과정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대상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가 무엇을 알아차리든, 그것이 영리한 발견인지 어리석은 발견인지는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저 알아차린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현재에 발을 딛고 맥락과 관점을 더 잘 파악하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났을지 모를 기회를 이용할 준비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회 심리학을 연구하는 나의 동료들은 행위가 맥락 의존적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의식을 집중하면 우리가 맥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의식의 집중이 갖는 힘 이 책에서 내가 다루고 있는 연구는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알아차리는 행동이 상징적으로는 물론 실질적으로도 생기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의식을 집중하는 일은 피곤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기분을 들뜨게 한다. 이는 우리가 무언가를 완전히 몰입했을 때 느끼는 방식이다. 우리가 건강을 더 잘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한 노력이도 이제 의식을 집중하여 접근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