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고...
아침부터 낮까지 계속 걸은 날이었다.
새벽엔 달리기훈련을 대신해서 등산으로 일정을 잡았다.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예전에 재진형님을 따라 종주했던 운암 어부집 부근에서 모악산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능선 중 일부를 맛보기로 한다.
밤티재에서 화율봉을 넘어 배재쪽으로 이어지는 코스.
밤티는 원평천의 최상류인 수류마을의 윗쪽동네로 원평에서 대충 삼십리는 되는 아주 오지마을이다.
어린시절 유일한 친척인 이모네집이 그 중간쯤 되는 황골인데 거기서 봤을때 세상의 끝으로 느껴지던 그런 동네였으니...
장벽과 같이 느껴지는 두터운 산맥이 김제 금산면과 완주군 구이면을 구분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곳에 도로와 터널이 뚫리고 있다.
산행의 기점은 금성저수지,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오는 동안 두 분은 적쟎이 놀라는 눈치.
수류마을의 분위기가 제주도를 연상케 할만큼 독특하기 때문인데 물길이 마을 가운데를 지나고 있고 온통 돌로 쌓아 만든 돌담이며 외양간, 창고 등이 즐비하니...
금성저수지에서 밤티재까지는 그리 멀지않은데 지금은 거의 흔적만 남은 밤티마을 지나며 또다시 돌담의 추억이 재현된다.
2006년에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이곳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오지마을 그대로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는데 지금은 구이로 넘어가는 길이 뚫리고 있어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저수지를 출발한지 15분 남짓 지나 밤티재에 이르니 동쪽 저편에서 서광이 비치고 있다.
우와~멋지다!
기념사진을 찍고 감탄을 늘어놓다가 모악산쪽 방향으로 능선산행을 시작한다.
산길은 지금 이 계절이 지나고 나면 도저히 길을 찾기 힘들 정도로 어리버리 그냥 나 있는 자연길이다.
풀이 자라고 숲이 우거지면 길이 없어질테니까 11월 후반부터 4월 정도까지만 산행이 가능할 듯.
화율봉을 넘는 길은 상당히 길고 거친 오르막인데 그도 그럴것이 이 봉우리의 높이가 모악산 주능선과 맞먹는 609미터라니...
6시50분 무렵에 밤티재를 출발해 7시25분 화율봉 정상에 이른다.
여기서는 모악산의 정상이며 주능선이 환하게 조망된다.
좋아요 좋아!
시간이 제한 되어 있기 때문에 8시 이전에 반환을 해야 되는데 고수재에 이르니 7시52분, 오늘은 여기까지.
되돌아 오는길은 갈때보단 훨씬 수월하다.
대체적으로 내리막이 많기 때문인데 대신 낙엽이 두텁게 쌓인 곳에선 미끌어지기 십상이라 조심조심.
차가 있는 금성저수지에 이르니 정확히 9시.
오는길엔 수류성당엘 들렀다가 독배고개를 넘어 중인리에서 청국장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산행의 마무리를 짓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옷 갈아입고, 고속터미널까지 천변길로 걸어서 씽~
광주 결혼식에 가는 길인데 혼자서 차를 몰고 가기도 그렇고 해서 모처럼 고속버스를 타게 된다.
광주터미널에서 상무지구 리츠컨벤션까지는 4.3Km정도 되는데 여기서도 걸어서~
맞바람이 끝내줘요!
중간에 신호등에 두차례 멈춰섰는데도 소요시간은 불과 38분, 그야말로 눈썹이 휘날리게 걸었다.
뛰어가는 편이 훨씬 수월하겠지만 양복입고 구두 신은 판에 그럴 수는 없고...
식장에서 만난 직원들 놀라는건 기본.
세상에 터미널서 여기까지? 이런 날씨에? 걸어서???
전주에 돌아오는 길엔 버스가 매진되서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저녁엔 후배네 아들 돌잔치를 가기로 했는데 아중리의 음식점까지 시간 맞춰 가는 게 어려울 것 같다.
집엘 들러서 차를 가져갈 수가 없으니 해찬맨에게 전화를 걸어 6시까지 고속터미널로 나오라고~
당연히 그 아빠에 그 아들, 아빠와 같이 천변길을 뛰듯이 걸어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