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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이제 복음이 대부분 들어가고 믿는 사람들이 없는 나라가 드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건설될 수가 있게 믿는 이들이 서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 로마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에 대해서도 올바로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해서도 모든 신자가 올바로 이해하고 이 땅에서의 삶을 정의롭게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샬롬! 가을이 깊어갑니다. 공부하게 좋은 계절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유혹하는 다양한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이 있고 또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으니 읽고 쓰고 묵상하고 강의를 듣고 동영상도 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쉬지 않고 배워야 합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는 이런 부분에 있어 참고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로마서 7장을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앞에서 로마서 7장의 주제인 율법에 대해서 먼저 본문을 보기 전에 성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반드시 먼저 율법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갖추어진 다음에 7장을 보아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김연아 선수가 피겨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김연아도 모르고 피겨도 모르는 사람이 김연아 선수의 강의를 들어보았자 무슨 말을 하지 하고 이해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김연아 선수의 피겨 경기를 다 보고 다른 선수의 경기도 보고 어떻게 피겨를 하고 채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쉬지 않고 본 사람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고 직접 피겨를 배우면서 피겨 날과 얼음과 그리고 얼음판 위에서 움직이며 춤을 추어본 사람은 더욱더 이해가 쉬울 것이 분명합니다. 로마서 7장은 율법의 당대 최고의 실력자 즉 율법을 구절 구절 다 알고 그 구절대로 적어도 30년은 살던 사람, 그리고 율법의 연구에 있어서도 날고 기는 사람이 이제 예수님을 믿고 그리고 성령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삶을 사는데 과거 자신이 그렇게 애지 중지 하던 율법이 사사건건 자신을 걸고넘어지는 데 대한 탄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모세 오경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대 무시를 한다든지 없어졌다고 믿을 수도 없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이기에 자신보다 강한 그리고 더 권위와 권세가 있는 성경 말씀 율법과의 바울과의 요샛말로 케미를 다루는 것이기에 이런 율법과 친밀성과 율법에 대한 이해와 율법으로 삶을 살아보지 못한 이방인이 이 글을 읽으면 당연히 이상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7장은 총 25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6절은 율법에 대한 태도를 사람이 혼인을 해서 일어나는 일로 비유를 해서 우리를 율법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해를 시킵니다. 그리고 7-25장까지는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일들과 이에 대한 율법의 참견과 나의 반응에 대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곤고하다고 합니다. 이는 율법을 인정하고 율법을 무시하지 않고 율법을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때 바울 사도의 마음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을 때 우리나라 왕자는 볼모로 청국에 붙잡혀 가고 그곳에서 중국 말을 배우며 청나라 공주와 결혼을 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청나라 공주는 조선의 왕자보다 신분이 높습니다. 자신의 마누라지만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싫다고 떼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이런 존재와 같이 살면서 내 행복도 추구를 해야 되는데 언제나 이 공주를 무시할 수도 없는 존재로 볼 수가 없고 잘 지내며 자신에게 유리한 존재가 되게 해야 되는데 이럴 때 내가 죽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만나는 상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사가 좋으면 다행인데 나에게 너무나 낯설게 하고 나를 괴롭히며 내가 직장을 떠나기 전에는 같이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럴 때 상사를 무시하고 혼내고 상사를 바꿀 수는 없고 나는 어떤 경우에는 죽어야 합니다. 암에 걸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암 덩어리를 떼어내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이 어쩔 수없이 암이 나를 때까지 내가 내 몸을 절제하고 음식도 먹는 것을 나의 욕망을 죽이며 살아야 내가 살 수가 있습니다. 율법은 이와 같이 내가 없는 것으로 절대로 어떻게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는 그렇지만 반드시 같이 살아야 하는 영적인 권세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없다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율법을 3.500년의 세월을 글자 한자 바뀌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로 시퍼렇게 살아있고 앞으로도 누구도 범치 못할 것입니다. 도리어 율법이 통치하는 세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내가 율법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서 최후 심판의 내 행동과 마음의 상태를 판단하는 법으로 여전히 나를 얽맬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에서 벗어날 방법은 1%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다. 차라리 내가 바울과 같이 율법을 잘 배워서 율법에 순응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모르면 대부분의 한국의 크리스천과 같이 율법이 나를 옭아메는 경우도 절대로 없게 되니 로마서 7장은 나와는 너무나 먼 거리가 먼 소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로마서 7장을 내가 율법도 바울과 같이 모르면서 이해를 하고자 하고 그리고 강의나 설교를 하고자 하면 피겨를 경험도 없고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김연아 앞에서 피겨 강의를 하는 것과 똑같은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율법 앞에서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즉 이 말은 율법에 저촉이 되게 살지 말아야 하는데 예를 들면 어떤 율법이 금하는 것은 하지 말고 하라는 것은 해야 하는데 무려 적어도 613개 조항의 율법이 나를 이래라저래라 하니 나는 이제 아예 내가 죽어야만 이 명려에서 벗어날 수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율법을 그대로 두고 내가 죽은 자로 지내는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를 혼인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남녀가 혼인을 하면 남편의 그늘로 아내는 들어가는데 남편의 다스림대로 아내는 가정에서 사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부부 생활을 하는 중에 여자가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고 다른 남자가 마음에 들어서 간음을 하게 되면 돌에 맞아죽는데 남편이 죽고 없게 되고 이제 홀로된 과부는 남자와 또 만나고 재혼을 해도 아무런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와 같이 율법과 우리도 이제는 반대로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나를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율법은 바울 사도가 이렇게 로마서에 말씀하신 후 200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모세 오경으로 구약 성경의 처음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죽고 모든 크리스천이 다 죽어 천국에 갔지만 여전히 율법은 시퍼렇게 살아서 온 국가의 언어로 번역도 되고 여전히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 율법을 절대로 무시도 없는 것으로 여기지 말고 내가 율법에 대해서 온전히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었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을 설명하는 6장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한 세례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죽은 십자가로 내가 나의 옛사람이 이제는 완전히 죽었기에 율법에 대해서 이제는 자유롭게 되었음을 설명했습니다.
이는 내가 유대인이지만 다른 예수를 믿는 유대인이 되었기에 유대인들이 그렇게 죽기 살기로 믿고 공부하고 행동하는 율법의 기준으로 이제는 살지 않고 다른 기준의 삶 즉 새로운 남편의 기준으로 살겠다는 선포이고 또 나의 신분이 새로운 남편의 요구대로 살아야만 되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확신과 이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주인이 율법이요, 이스라엘의 전통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주가 예수님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바울 사도는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와 함께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 바로 바울 사도가 성령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분의 변화와 상승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신분의 상승을 또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저는 그림으로 이와 같이 표현을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과거에 자신의 바운더리는 자신의 삶의 환경은 유대인이며 로마인으로서 성경 구약의 지배를 받고 살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율법 즉 모세 오경에 깊은 이해와 연구로 명성이 높았고 그 율법대로 한 조항 한 조항 빈틈없이 잘 지켜서 흠이 없게 살며 사람의 인정도 받고 자신도 틀림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정의롭다고 굳게 굳게 믿고 이를 세상의 가장 위대한 삶이라 믿었습니다. 로마인들이 비록 자신을 속박했지만 여전히 이방인이요, 야만인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믿고 눈에 보이는 예수님도 이해를 못 하고 도리어 자신이 믿는 유대교를 무너뜨리려는 존재로 보고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아서 옥에 가두고 고문하던 열심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읽는 로마서를 쓸 때는 과거 자신과 같이 율법에 빠졌던 사람들에게 그렇게 절대로 살지 말고 이제는 예수를 믿어라고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000년이 지난 바울의 위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의 로마 황제들은 겨우 이름만 남아있고 모든 고관과 로마인들이 이름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습니다. 유대인도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의 이름만 성경에 남아서 그 악명을 정말로 시간이 가도 가도 너무나 잘 증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룹 BTS를 능가하는 조회수를 매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억이 넘는 크리스천이 그의 매일 바울의 이름을 올리고 성경에서 매일 바울 사도의 글을 읽고 그리고 컴퓨터로 핸드폰으로 바울의 이름과 그의 서신서를 검색하는데 못해도 하루에 100억이 넘을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 중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검증이 가능한 상상을 초월하는 신분의 상승이요, 천주교에서 가장 높은 교황도 감히 바울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당시에는 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이미 세월이 갈수록 더욱 위대해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놀라운 신분의 상승은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부터 이미 모든 유대인들이 감히 범접도 못하실 분이셨는데 우리가 믿는 주님이십니다. 모든 유대인이 그렇게 간구하던 성경 구약을 통해서 간구하던 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고 구약 성경에서 설명하던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당시에 오신 것입니다. 이분을 만났는데 인간의 예수님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을 만났기에 바울은 그렇게 변화가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제는 죽도록 믿게 하신 후에 이제 다시 아나니야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하시는데 이를 통해서 바울의 죄가 용서를 받게 됩니다. 바울은 율법을 잘 지키면 정의롭게 된다고 믿고 살았는데 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결단코 의롭게 될 수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즉 율법을 아무리 알고 잘 지켜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 앞에 나타나시면 자신은 너무나 미천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오직 죄인임이 분명하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의인 욥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악을 해하는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은 얼마나 심히 죄되고 죄 되겠습니까? 율법이 이렇게 있는데 모르면 숨을 쉬는 순간순간 우리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죄인지 모르는 사람은 양심이 작동하지 않으면 모든 행위와 생각이 죄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율법의 행위로 절대로 의롭게 될 수가 없음을 실감했고 그리고 자신이 아무리 율법을 알고 지켜도 어느 한 조항 혹은 어느 한순간 마음으로 범죄 하면 죄인이 되는 원리도 알게 되었고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니 진리인 주를 믿지 않고 핍박하고 주를 믿는 이를 잡아서 가두고 핍박한 자신의 죄에 대해서 죽어야만 되는 인간임을 실감했을 것이 분명한데 아나니야를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되고 자신의 죄가 용서가 됨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자신의 죄가 씻기고 용서가 되었으니 과거에 자신이 지은 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의인이 될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이와 함께 또 놀랍고 놀라운 일이 바울 사도에게 발생했으니 삼위의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자신에게 오신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의 능력으로 구약의 비밀이 다 풀리게 되어 구약을 보니 자신이 만난 분이 바로 구약에서 말씀하신 그분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병이 고쳐지고 방언이 되고 분별이 되고 그리고 미래의 일들이 보이고 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이 생겼으니 자신이 예수님과 같이 옛 보물과 새 보물을 하나님의 보물 창고에서 꺼내서 나누어 줄 수가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2절의 말씀이 이제는 이루어졌습니다. 최초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예수님을 올바로 알려면 반드시 율법에 정통해야 하고 구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구약에서 전체적으로 쉬지 않고 증거합니다. 그분이 오셨는데 아는 율법학자가 없습니다. 핍박만 하는 가운데 이제 예수님께서 직접 바울 사도를 찾아가시고 그리고 그를 구원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인과 같이 성령의 인도로 옛 보물과 새 보물을 보물 창고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구 나누어 줍니다. 이때 이미 바울 사도는 이런 모든 사실을 다 알았습니다. 자신이 놀랍게 변화가 된 사실을 알았습니다. 놀라운 신분의 상승 즉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몸은 그대로이고 환경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지만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죽으면 갈 천국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그리고 귀로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구약의 인물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풀렸고 분명해졌습니다. 이를 알려야만 했으니 이제 복음에 불이 붙어서 온 유럽에 다니다 약 20여 년이 흐른 뒤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의 이해가 반드시 7장을 잘 이해하는데 필요합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 변한 속사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구약만 알고 철저히 지키던 유대인이 자신의 경전이 구약의 주인을 직접 만났고 대화를 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인물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직접 가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자신보다 잘난 유대인은 없었습니다. 율법으로 자신보다 의로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니 자신이 너무나 흉악한 죄인임이 보였습니다. 죄인의 두목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이런 자신이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으로 죄를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잘났다고 믿는 모든 유대인이 자신과 같이 흉악한 죄인임이 보였습니다. 이들은 구원의 대상일 뿐이고 자신과 비교도 못 되는 불쌍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구약만 아는 유대인에서 이제는 신약과 구약을 알고 이를 나누는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이 보장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능력을 행하십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가 바울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복음의 전파로 천국에 가서 받을 상들이 줄줄이 준비가 되었으니 열심만 내면 됩니다.
이미 당시에 이런 사람이 되어있었기에 2000년이 지나니 하늘의 별이 되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고 이 빛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점점 밝게 빛이 날 것이니 세상의 어떤 대통령도 그리고 순간 인생 70-80년을 누리는 재벌과도 절대로 비교가 불가한 위대한 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을 모든 크리스천이 누릴 수가 있는데 율법을 모르면 어찌 예수님과 같이 때에 따라서 옛 보물과 새 보물을 나눌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이는 전적으로 성경을 구약까지 얼마나 잘 이해하냐에 달렸는데 보시기를 바랍니다. 교단이 나를 얽맵니다. 교리가 나를 얽어맵니다. 그리고 나도 그 속에 안주해서 작은 목사 자리 하나 유지하려고 성경을 올바로 읽지도 않습니다. 내가 나를 옭아메는 것이지 절대로 율법도 아니고 성경도 아니고 내가 나를 그렇게 작은 좁은 성경의 이해로 몰고 가니 나를 탓하기 바랍니다.
이제 이렇게 신분이 변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이 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존재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율법의 존재에 대한 나의 억누름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7장에서 언급한 율법의 모습입니다. 절대로 무시하거나 없는 것으로 믿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아니 됨은 모든 인간과 만물은 말씀 아래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가고 천지가 없어져도 율법의 일점 일회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율법을 우리는 인정하고 잘 배우고 그리고 잘 죽는 도리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롬7: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2. 그러나 율법은 어디까지나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정당하고 좋은 것입니다.
롬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4. 우리가 아는 대로 율법 자체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육정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서 죄의 종으로 팔린 몸입니다.
바울 사도는 언제나 율법의 권위와 권세를 인정합니다. 절대로 율법을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산 사람이 아닙니다. 도리어 율법 앞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죽은 사람으로 반응한 사람이며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로마서 7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내가 율법 앞에서 이미 죽은 존재임을 믿고 율법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지 내가 퍼렇게 살아서 율법을 없는 것으로 무시하고 함부로 살아도 된다고 하는 말씀이 1%도 바울의 서신서에 갈라디아서를 비롯해서 없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7장의 이해는 이런 바탕에서 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7장 7-25절의 내용을 보시면 이해가 이제는 쉽게 됩니다. 저도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제가 기도를 부탁했는데 기도의 응답이 오는 것을 느끼고 믿습니다. 제가 할 수가 없는 일들이 생기고 제가 마음이 고분 고분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은 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앞의 글에서 제가 기도를 부탁을 드렸는데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많은 분과 제 아내의 아들의 기도로 이렇게 글을 즐거운 마음으로 씁니다.
롬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율법에서 벗어나는 길을 율법을 없는 것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해서 죽었기에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즉 우대인이 그리고 이방인이 예수를 믿지 않을 때는 율법이 규정하는 죄로 인해서 우리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즉 자신의 과거 의롭다 믿던 모습이 죽음으로 가는 자의 모습이며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은 모두가 죽음을 위해서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이렇게 나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들에 대해서 죽었으니 즉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내가 선물로 받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 일이 중하고 모든 초대교회 성도는 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문제도 쉬운 일이 아니나 베드로의 고백대로 사도행전 2장 37-38절의 말씀대로 성령을 받으면 되고 모든 성도는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바울 사도의 내면의 흐름과 변화를 설명합니다. 언제나 율법은 거룩하고 계병도 거룩하고 선하고 의롭다는 자세 즉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 옛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 굳게 믿은 마음 그대로 율법을 믿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죄형 법정주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니 그대로 이해를 하시면 될 것입니다. 죄로 규정이 되지 않은 것은 죄로 인정도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회 현상이 인간에게 해를 주면 새로 법을 만들어 죄로 규정하게 되고 비로소 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현대 형법의 원리가 그대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즉 율법에서 죄로 규정을 해 놓았기에 내가 어떤 생각이나 행위에 대해서 나의 죄를 자각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무엇무엇이 죄가 된다고 상세하게 규정해 놓은 결과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며 규정해 놓은 것이기에 어떤 인간도 절대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영적인 것인데 죄가 이 계명의 존재로 인해서 이제는 하나하나 나에게서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 율법이 없으면 죄도 이렇게 나에게 죄로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도 죄인이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이로 인해서 과거에 내가 율법이 없을 때 혹은 율법을 모를 때 어떤 행동도 나를 죄인이 되게 하지 못하는데 이제 율법이 존재하고 내가 율법의 조문 조문을 알고 보니 모든 행위가 죄로 나타나게 되어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살리는 좋은 선한 거룩한 율법이 도리어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죄가 이제는 율법으로 나타난 죄가 나를 계명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를 사망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율법의 조문을 달달달 외워서 알고 있기에 마음 순간순간 여자를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고 음식을 보면 먹고 싶고 그리고 몸이 피곤하면 눕고 쉬고 놀고 싶고 계절이 지금과 같이 바뀌면 그냥 복음보다 여가를 가고 놀고 싶은데 율법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니 율법이 없으면 죄에 대한 자각도 없이 마음대로 여자도 꼬시고 밥도 먹고 놀고 할 것인데 이런 율법이 있고 내가 이 구절을 암송하니 나는 바로 율법에 의해서 죄인으로 나타난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선합니다. 거룩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있기에 죄를 인지하고 죄에서 이제는 돌이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롬 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자신의 마음속의 싸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양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잘 배운 율법이 조항 조항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 계시면서 감화와 감동으로 때에 맞추어 깨닫게 하시고 명령을 내리시면서 함께 하십니다. 이와 함께 육신의 집을 가지고 그 속에서 생활을 하기에 즉 육체로 가지고 생활을 하기에 또 육체의 반응이 있습니다. 이를 성령의 능력으로 동시에 다 인지하고 분별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율법도 잘 배우고 기억하고 그리고 양심도 올바르고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계시고 그리고 작은 육체를 지닌 바울 사도께서 이 모든 것들의 반응을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이는 우리의 반응과 같아야 하는데 우리가 율법도 없고 성령도 없고 그리고 양심도 둔하게 되었다면 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데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이 로마서를 강의를 해도 피상적이 될 것입니다.
절대로 율법이 나를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죄에 대해서 율법으로 확실히 눈으로 볼 수가 있게 규정이 되어 있어 나의 죄에 대해서 확실하게 그것이 죄임을 밝힌다는 것입니다. 나의 죄가 율법으로 인해서 비로소 드러나게 되니 율법은 참으로 선하고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간에게 주신 율법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육체를 가지고 살다 보니 육체가 원하는 일로 인해서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행동에 대해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렇게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일은 우리가 모두가 압니다. 남자는 여자의 벗은 몸을 보면 반응이 오는데 본능입니다. 이 본능이 지나치면 상상을 하면서 죄로 갑니다. 잠을 같이 자는 상상으로 금방 갈 수가 있습니다. 물질을 보면 내가 예를 들면 굶게 되면 사흘을 굶으면 바로 음식 냄새에 정신이 나가고 주인이 없으면 훔치고 싶게 됩니다. 그런데 내 마음과 달리 간음은 죄야 하니 내가 잘못 가는 것을 깨닫고 훔치면 죄야 하니 내가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을 깨닫게 하니 율법이야말로 참으로 선한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나의 마음도 아니요, 육체도 아니요, 나를 그렇게 하는 존재를 죄로 규정합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죄의 존재를 믿는 이는 반드시 기억하고 이 죄가 어디서 비롯이 되는지 죄의 근거가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죄는 영적인 존재 마귀로부터 비롯이 됩니다. 우리를 죄인 되게 하고 죄를 짓게 하는 존재는 우리 마음속에 작용하는 마귀의 술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싸울 대상이 혈과 육이 아니라 에베소서에서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엡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이렇게 보면 율법은 이 마귀가 우리에게 불어넣는 죄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계명을 통해서 분별하게 하고 경각심을 주는 선한 법입니다. 마치 화재경보기와 같이 화재의 위기가 감지될 때 미리 울리는 화재경보기와 같습니다. 이를 통해서 미리 화재를 막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그 후에 자신을 성찰하고 고백합니다. 자신은 선을 행하고 싶은데 마음은 있는데 이렇게 하지 않고 쉬지 않고 악한 이 솟아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선한 것이 존재하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몰아가는 것이 죄라고 규정합니다. 죄가 계속해서 자신을 주장하다 보니 비로소 마음속의 한 법칙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법칙은 자신의 마음에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동시에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같이 존재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둘이 싸우고 있음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행하고 싶은 나의 속사람을 결국은 죄가 솟아나서 자신을 사로잡는 죄의 법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이 싸움을 예전의 고승의 싸움으로 보면 황진이를 돌로 보던 고승 앞에 황진이가 비단에 젖은 몸으로 실물로 나타나 춤을 춥니다. 자신의 덕망과 수련으로 이는 헛것이다 즉 색즉 시공이다 라고 믿고 외치며 버팁니다. 자신의 마음의 변화에 대해선 인식이 없이 오직 자신이 배운 진리라 믿는 그 가르침으로 이기려 합니다. 황진이는 너는 남자이고 젊은데 얼마나 버티나 하면서 이 남자를 꼬시려 온갖 자세로 춤을 춥니다. 결국 이 고승은 육체의 피가 끊어 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황진이를 덮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눈으로 보고 그냥 그대로 죄로 돌진합니다. 죄에 사로잡히면 이런 대상을 보기도 전에 대상자를 찾아서 죄를 범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성적인 범죄입니다.
바울 사도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이 율법에 따라서 살면 의롭고 또 법을 잘 알고 잘 지키기에 모든 유대인의 공경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살다 보니 자신의 마음의 작용들이 세밀하게 보입니다. 성령의 감동입니다. 그리고 분별합니다. 자신이 죄로 감을 봅니다. 그리고 율법이 그것이 죄다 하고 소리칩니다. 이제 어찌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양심을 이렇게 만드셨는데 율법이 없이 이런 양심의 소리로 양심이 율법이 되어 올바로 사는 사람도 있으니 율법이 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은 이런 양심의 법으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고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율법을 알고 배우고 믿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구약을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예수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탄식은 바울이 유대인 율법학자로 지낼 때 고백이 아닙니다. 자신을 절대적으로 의롭다 믿던 시절 율법으로 흠이 없다고 믿던 시절에 절대로 생각도 못 할 고백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세상의 사람이 자신이 의롭고 죄가 없다고 믿고 삽니다. 그래서 죄의식이 없고 자신의 의에 대해서 충만합니다. 누가 자신이 잘못되었다 공격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아니다 하면서 거품을 물고 덤비는데 저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 그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정말로 의롭다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분명히 57년 고린도에서 쓰고 있으니 예수님을 믿고 20년이 지나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솔직한 사도의 고백입니다. 자신을 숨기고 산 고승과 달리 위대한 복음의 증인 이방인의 사도가 되시며 우리의 믿음의 선진이 되시는 분의 고백입니다. 모든 크리스천의 고백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반드시 율법이 이렇게 나 자신을 지키고 분별하게 잘 배워야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예수님을 통한 성령을 통한 승리를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8장 즉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는 생명의 성령의 법과 성도가 합력해서 선을 이룸과 하나님의 절대로 끊을 수가 없는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음 장에서 소개합니다. 믿지 않는 모든 사람과 같은 육체를 즉 뜨거운 피와 살을 가진 우리 크리스천이 속 사람이 새롭게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공로로 창조가 되어 이제는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싸움을 보면서 율법의 인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의 동행과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으로 모든 죄를 이기고 승리를 노래하는 8장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 한량없는 사랑과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공로에 그리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돌립니다. 할렐루야! 중국에서도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이라 했습니다. 적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캐치해서 적이다 외치는 존재가 바로 의롭고 거룩하고 선한 율법입니다. 잘 배워야 합니다. 적을 알게 하는 율법의 존재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주관하시는 성령님과 우리 주 예수님, 그리고 그분의 말씀과 우리가 속한 교회와 늘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목사님과 장로님 그리고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가족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가 겹겹히 나를 승리의 길로 가게 인도하시니 우리는 모든 악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힘을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