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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
1961년
2월 구파 신민당창당.
국토개발사업 투입 실업구제.
반공법반대시위
4월 12일 -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우주 비행을 한 사람이 되다.
4.19혁명 1주기
4월 27일 - 시에라리온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다.
5월 16일 - 5·16 쿠데타로 군정이 실시되다.
육사생도 지지시위후 대중앞에 박정희 나타남.
5월18일 장면내각 총사퇴 선언.깡패검거
5.20 혁명내각수립.5.24댄스광검거
부랑아집단수용.무허가주택 철거
신생활복 강요.실업자등록
6월 3일 -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소련과 핵금지 조약체결을 함
7월3일 장도영체포.박정희 전면나섬.반공법실시로 언론탄압
혁명재판으로 민족일보사장 사형
박정희 11월 대장진급.청계천 복개완료
12월31일 KBS개국
60년전 제주도에서 천주교도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에 의해 신축민란이 일어났다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뒤이어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26대 대통령이 되었다.
경부선 기공식
60년후 2021년
1601년 사망 덴마크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
선조 대왕 북로(北虜, 여진)에 대처함은 명석하고 뛰어났으나, 남왜(南倭, 일본)를 대처함은 명석하지 못했다.
60년전 오렐리아나가 아마존 강 삼각주와 하류, 중하류 일대를 탐사하였다.프란체스코 1세 데 메디치 : 토스카나 대공탄생.
50년전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측으로부터 트리폴리를 탈환하였다.
40년전 에리크 14세가 스웨덴의 왕이 되었다.
- 일본에서 제 4차 카와나카지마 전투가 벌어졌다.
30년전 신성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레판토 해전이 발발하여 오스만 해군이 패배한다.
필리핀에 마닐라가 건설된다.
20년전 일본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가 이가 국을 공격하였다.
10년전 스페인 산페르민 축제 시작.
잉글랜드 해군주도
1591년에는 건저 문제로 정철이 파면되면서 동인이 집권하게 되었으나, 정철의 처벌을 둘러싸고 온건파는 남인(南人)으로, 강경파는 북인(北人)으로 다시 나뉘었다.
10년후 1611년 부산항에 대마도 무역선이 입항한 건 1611년 9월. 1611년 양전을 실시하였으며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한성부의 질서를 회복하고 궁궐 조성공사에 힘을 다하여 창덕궁을 중건
20년후 펠리페 3세 : 스페인의 국왕 겸 포르투갈의 국왕사망.펠리페 4세 즉위
21년후 유형원 탄생
30년후 김장생사망.박세채 탄생
타지마할 건축시작
40년후 송산 전투에서 명나라 군이 청군에게 대패하였다.
네덜란드가 포르투갈로부터 말루쿠 향료 제도를 빼앗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50년후엔 수구파 김자점이 화를 당함
독일의 해변에 대홍수가 몰아닥쳐 수천명이 익사하였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 항해법을 공포하였다
60년후 정성공이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타이완 남부를 점령하였다.
숙종탄생
1241년 몽골 군,유럽에 침입
폴란드 발슈타트에서의 레그니차 전투에서 바투가 지휘하는 몽골 제국군이 폴란드와 보헤미아의 연합군을 전멸시켰다.
몽고에서 1241년 몽고의 장종(오코타이) 죽자 다시 강화가 성립되고 불안한 휴전이 성립되고 몽골군은 고려, 유럽에서 철수했다.
- 사조 강 전투에서 몽골군이 벨라 4세가 이끈 헝가리 군대를 패배시켰다.
티레니아 해에서의 기글리오 해전에서 프리드리히 2세의 시칠리아 왕국과 그의 동맹인 피사해군이 제노바 해군을 격파하였다.
60년전 테무친 자무카와 결별
자야바르만 7세가 톤레삽 해전에서 참파를 격파하고 크메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아흐마드 알 시킬리가 이끄는 무와히드 왕조의 해군이 포르투갈 함대를 격파하고 제해권을 회복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가 유대인에게 기독교도가 진 빚을 모두 무효화하였다.
50년전 베른이 건설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로 진격하였다.
40년전 보니파스가 4차 십자군의 지도자로 선정되었다.
자다란의 자무카가 구르 칸으로 즉위하였다.
쿠이텐 전투에서 칭기즈 칸이 자다란 부족의 자무카를 격파하였다.
칭기즈 칸이 타우치우트 족을 정복하고 제베를 부하로 삼았다.
30년전 몽골 제국의 금나라 침공이 시작되었다. (~ 1234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 옹구트 부족이 금나라를 배신하고 몽골 제국과 동맹하였다.
쿠출룩이 구르 칸을 기습하여 체포하고 서요는 신나이만으로 개편되었다. 곧이어 그는 카슈가르를 함락시켜 동 카라한 왕조를 멸망시켰다.
프랑스의 랭스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20년전 주치가 이끄는 몽골군이 호라즘의 우르겐치를 함락시키고 거주민들을 모두 죽였다.
- 메르브가 툴루이의 몽골군에게 함락당하였다. 무슬림 역사가는 백만이 학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십자군이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 카밀에게 항복하였다. 8년간의 휴전 협정이 맺어졌고 십자군은 이집트에서 철수하여 5차 십자군이 종결되었다
10년후 루이 9세를 돕기 위해 프랑스 북부에서 셰퍼드 십자군이 결성되었으나 각지로 흩어졌다- 팔만대장경이 완성되었다.
몽케 칸이 몽골 제국의 4대 칸으로 선출되었다.
차가타이, 우구데이 가문에 대한 숙청이 이루어졌다.
독일의 왕 콘라트 3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였으나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동맹군에게 패배하였다.
20년후 1261년 동로마제국의 미카엘 8세(팔라에올로구스) 콘스탄티노플을 회복하고 라틴제국을 멸함. 팔라에올로구스왕조의 시작(~1453)
30년후 원 건국.
여몽 연합군이 삼별초의 진도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배중손과 승화후 온을 죽임.
40년후 태풍으로 히라도에 정박 중이던 여몽연합군의 상당수가 사망하며 제 2차 일본 원정이 실패하였다.
- 2차 홈스 전투에서 일 칸국 - 소 아르메니아 - 조지아 왕국 - 성당기사단의 연합군이 칼라운이 지휘한 맘루크 왕조 군대에 패하였다.
오스만 1세가 룸 셀주크의 쇠위트의 베이가 되었다.
50년후 십자군 국가의 소멸과 스위스의 성립
봄 - 제노바의 반디노와 우글리노 형제가 인도 제국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였다. (대항해시대의 시초) 그들은 다시 기록되지 못하였다.
치악성 전투에서 원충갑이 이끈 고려 군민이 카다안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맘루크 왕조 군대가 아크레 함락 이후 십자군의 중심지가 된 시리아의 토르토사를 함락하였다.
맘루크 왕조 군에게 샤토 펠라린이 함락되며 레반트의 십자군 거점이 소멸되었다.
60년후 일 칸국 군대가 시리아로 진입, 알레포 일대를 약탈하였으나 곧 회군하였고 아르메니아 - 키프로스 군대도 곧 철군하였다.
AD 1301년, 카이두는 성종이 파견한 하이샨에게 패하고 사망했다
이로서 오고타이칸국은 쇠락.
프랑스 피렌체점령, 단테추방
881년 당희종 재상 노휴는 자결하고, 전령자는 신책군5백을 거느린 채 희종을 데리고 장안 서쪽으로 금광문을 빠져나와 사천(四川)으로 달아난 채, 돌궐 사타출신의 번장 이극용(李克用)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황소의 군은 전파(田陂)에서 이극용에게 패하고 관중(關中)으로 물러났다.
루이 3세가 군을 이끌고 바이킹군을 격퇴하였다
60년전 타히르 토후국이 건국되었다
50년전 모라비아 왕국(현 체코)의 군주 모이미르 1세가 바이에른의 파사우로부터 그리스도교를 수용하였다
40년전 - 퐁트누아 전투에서 샤를 2세와 루트비히 2세가 이끄는 군이 로타르 1세가 이끄는 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전 굴산사가 창건되었다.
팜플로나 공국, 나바라 왕국으로 독립.
20년전 경문왕이 신라 제 48대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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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귀도 3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아르눌프 폰 케른텐이 이끄는 프랑크족 군대가 바이킹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루트비히 3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프랑스의 왕 샤를 3세이 바이킹의 우두머리인 롤로와 생클레르쉬레프트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샤를 3세는 바이킹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바이킹들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정착하는 것을 허가하는 대신 바이킹의 약탈행위를 금지하였다. 이후 롤로는 노르망디 백작에 임명되어졌다.
- 콘라트 1세가 동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40년후 함보가 고려 혹은 신라를 떠나 두만강 지역의 완안부로 들어간 921년 전후 시기는 신라가 멸망을 길을 걷고 후삼국이 할거하던 상황으로 짐작된다.?
50년후 라미로 2세가 레온 왕국의 왕이 되었다.
에릭 블러드액스가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후우마이야 왕조, 탕헤르와 세우타 일대 점령, 지브롤터 해협 통제권을 얻게 되었다.
60년후 콘스탄티노플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키예프 대공국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521년 금관가야의 구형왕이 보위에 오르다.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는 521년 집정관겸 군사령관으로 재직해 공식 직책상으로도 2인자가 된다.6년후 정식황제가됨
521년에는 나제동맹 동맹국인 백제와 함께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는데 중국과의 외교는 전진의 부견과 교류한 이후 약 140년만이었다
521년 백제 무령왕 양 무제(梁武帝)로부터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영동대장군(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의 작호를 받았다.
60년전 리키메르 장군이 서로마 제국의 황제 마요리아누스를 강제 폐위시켰다 리비우스 세베루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서고트족 군대가 셉티마니아를 재정복하고 히스파니아 지방을 공격하였다
50년전 효문제가 북위 7대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프랑크 왕국이 건국되고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족의 왕이 되었다.
30년전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문자명왕이 고구려 21대 왕이 되었다.
20년전 소보융이 남제 제 7대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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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531년 4월에 이찬 철부(哲夫)를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했는데 이 또한 신라 역사상 처음 등장하는 관직명이다. 귀족의 대표를 상대등에 임명했다는 것이 되는데 이는 귀족을 관료제 체계에 포함시켰다는 의미가 된다
국가 경제의 기초인 농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18년(531년) 제방을 수리하라는 명을 내렸다
북부 시리아에서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벨리사리우스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호스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20년후 토틸라가 동고트 왕국 제 6대 국왕이 되었고 비잔틴 제국의 이탈리아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동고트 군이 이탈리아를 유린하였다
30년후 소동을 황제 자리에서 몰아내고 양나라의 황제를 자칭하였다. 이에 국호도 한(漢)으로 고쳤으며 죽은 소강의 딸 율양공주 소씨를 황후로 삼았다.
돌궐 제국이 성립되었다.
40년후 프랑크 왕국을 통일하였던 클로타르 1세가 사망하자 그의 네 아들들에 의해 프랑크 왕국이 다시 분할되었다.
고담(북제)이 북제 4대 황제가 되었다.
신라가 561년에 안라국을 정벌하였다
50년후 베네벤토가 랑고바르드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60년후 양견이 그에게 대항하는 반대 세력을 제거한 뒤 9세인 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면서 북주가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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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년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또한, 중국의 역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로마 황제이기도 하다.161년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죽은 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케이오니쿠스 콤모두스의 아들 루키우스 베루스와 함께 공동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재위 첫해부터 본국 이탈리아와 그 주변에 걸쳐 기근과 홍수가 일어났다.
60년전 로마 제국의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 원정을 떠나 트란실바니아에서 이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파사이사금 현재 경주성터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10년전 151년단석괴, 선비의 대인으로 추대
40년후 조조군이 창정의 원소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후 카라칼라가 게타를 살해하고 단독 황제가 되었다.
한수가 마초 등 서량의 군벌들과 함께 거병하여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공격했다.
60년후 - 유비가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다.
bc200 흉노묵특선우, 백등산에서 한 고조의 군대를 포위하고 공물을 약속받음. (백등산 포위전)
흉노를 형, 한을 제로 하는 형제 맹약하고 매년 조공하는 조약을 맺었으며, 이후 한이 흉노를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60년후 루시타니아 전쟁이 마무리되었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몇 명의 로마 대사와 함께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여 그 곳에서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8세를 접견하였다
bc560년 히피아스 탄생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죽은 후 동생 히파르쿠스와 함께 아테네를 다스렸다. 그 후 아우가 죽자 포악한 정치를 하여 쫓겨났다.
BC 1280년경 대제국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
B.C.2040년부터 B.C.1640년까지 고대 이집트 중왕국(MiddleKingdom) 시대의 암굴분묘콘월 주석광이 개발되면서 청동기 사용 급증(BC 2000년경)메소포타미아에서 야금술이 발달하면서 청동기시대가 시작됨
기원전 2000년경 해수면 상승
히타이트 BC 2000년이 시작될 무렵 아나톨리아에 등장해 BC 1340년경 근동의 지배세력이 된 인도유럽어족. 흑해 너머에 있는 지역에서 기원
기원전 2500~2360년 우르 제1왕조 시대(수메르)
<삼국유사>에 인용한 <고기>의 연대 - 당요 50년 경인년(기원전 2311년)설에 따라 그 원년을 계산하면 신축년(기원전 2360년)이 원년이 된다. BC 2380년~2360년에 제작된 '우루카기나 법전'이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BC 2720년 진(陳)나라(염제신농국)의 제위에 염제유망(제유)이 즉위하나 국력이 기운다.
중원갑자
1781년
스페인 개척자들이 로스엔젤레스를 건설.
10월 19일 - 조지 타운에 고립된 영국군이 요크타운에서 조지 워싱턴에게 항복하다. 이 충격적인 항복 소식은 영국 내 반전 여론에 불을 붙인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가 농노제를 폐지하다.
청의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종합총서 사고전서가 발행됨. 사고전서는 모두 36,381편으로 이루어졌고, 대략 79000권(卷), 230만 페이지, 8억 자(한자)로 이루어져 있다.
칸트의 대표적 작품인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되다.
80년전 기준으로
전년도 스페인 필립5세 등극.
이듬해 앤여왕 등극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1세 초대왕 등극하였다. 스웨덴과 러시아 대북방전쟁 21년간 치룸.러시아승리
60년전 핀란드에서 뉘스타드 조약이 체결되었다.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제국을 세웠다.(~1917년.)
경종 신축사화
50년전 청나라 중기의 건축서인 흠정공정주법칙례이 편찬되었다.
조선 기우제끝에 큰비가 이어짐.
홍대용 탄생
40년전 영국에서 총선이 열렸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부르크극장을 세웠다.
30년전 택리지가 저술되다.
균역법시행
프랑스에서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주도 하에 백과전서 1권이 출판되다
20년전 영국에서 조지 3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다.
- 7년 전쟁: 4달에 걸친 포위전끝에 러시아군이 프로이센의 요충지 콜베르크 요새를 함락시키다
10년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유럽 최초로 헌법을 제정하고 귀족의 리베룸베토 특권을 폐지하다.
- 바렌느 배신사건. 해외로 망명을 시도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 왕실 일가가 붙잡히다
20년후 순조의 명령에 의거하여 공노비가 철폐되다.
정순왕후의 교지로 천주교 박해가 시작. 신유박해 발생
프로이센 왕국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정수론연구를 저술하였다.
- 황사영 백서 사건 발생.
30년후 - 파라과이가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아보가드로가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발표하다.
홍경래의 난 발생.
40년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사망.
- 베네수엘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 매입
조지 4세 즉위.
49년후마지막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프란츠 요제프 1세탄생
50년후 브라질 제국의 황제 페드로 1세가 폐위되고 5살 아들 페드로 2세 마그나니머스가 즉위하다.
-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의 레오폴드 공이 레오폴드 1세로 벨기에의 국왕에 선출되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와 함께 여정을 시작하다. -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유도의 법칙을 발견하다.
60년후 아편전쟁: 영국군이 홍콩을 점령한다. 이후 1997년 반환까지 156년 동안 홍콩은 영국의 영토가 된다.
1421년 류큐왕조가 건설됨.세종은 조선군은 대마도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군대를 철수시켜 1420년 대마도를 경상도에 편입시킨다고 대마도 도주에게 통고했다. 그 대신 조선과의 무역을 허락하여 삼포를 개항했다
60년전 홍건적이 고려의 수도 개경을 공격하였다.
조선의 해안지대를 약탈하던 왜구는 1361년에 이르자 년 초부터 조기행동을 개시해 2월 22일부터 남해안에 출현했다. 홍건적으로 인해 왜구토벌차질 -
킵차크 칸국의 나우루즈 칸이 급사한 후 우루스 칸이 백장칸국을, 카디르 칸이 청장 칸국을 계승하였다
파비아대학 설립
50년전 동로마 제국의 황제 요안니스 5세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1세에게 충성을 서약하였다.
명 홍무제가 장강 유역 일대에 이갑제를 실시하였다
40년전 흑사병으로 인한 민중의 동요와 백년 전쟁으로 인한 과도한 세금 징수 등에 의하여 영국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인 와트 타일러의 난이 일어났다
- 리투아니아 내전의 시작 : 케스티우스가 조카 요가일라를 패배시키고 대공 직위를 차지하였다. 요가일라는 동부에서 세력을 유지하였다.
티무르가 사르바다르 왕조를 멸망시키고 호라산을 평정하였다.
30년전 마누엘 2세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과전법시행
-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가 튜튼 기사단을 공격하였으나 격퇴되었다.
- 카스티야 왕국의 세비야에서 유대인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자 이를 빌미로 부주교 에르난 마르티네즈의 선동과 함께 4천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20년전 티무르가 바그다드를 점령하였다.
- 마흐무드 2세가 델리술탄왕조의 군주로 복위하였다.
마자파히트 제국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베트남에서 호꾸이리가 양위한 후 태상황이 되고 아들 호한뜨엉이 대우의 황제가 되었다.
일본 무로마치 막부가 명에 조공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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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잔 다르크가 화형을 당하였다.
포르투갈 왕국이 아조레스 제도를 점령하였다
20년후 - 장영실과 이천이 서운관에 측우기를 설치하였다.
질 에아네스 함대가 블랑코 곶 (흰 곶) 을 발견하였다
30년후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사창(社倉)이 실시되었다.
40년후 명나라 전역과 주변 조공국들의 지리를 서술한 대명일통지가 편찬되었다.
50년후 세조실록이 완성되었다
60년후 오스만 제국과 나폴리 왕국 사이에서 일어난 오트란토 전투가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끝났다
비잔틴 멸망시킨 메흐메트 2세 사망.
화재가 빈번해지자 1481년(성종 12) 수성금화사로 설립됐다
1061년 고려문종 전성기.북송 인종
60년전 데인 (노르만/바이킹) 군대가 잉글랜드 군대를 패배시켰다. (1차 알톤 전투, 데본 전투)
아이슬란드 바이킹의 빈랜드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백두산이 분화하였다.
50년전 이베리아 동남 해안의 무르시아, 알메이라와 남쪽의 카디스마저 독립하며 1차 타이파 분열은 가속화된다
40년전 발렌시아 토후국마저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하며, 1차 타이파 분열이 확실해지고, 칼리파 국의 운명이 결정된다.
마흐무드가 가즈니 제국의 수도를 라호르로 정하였다
30년전 후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하였다. 코르도바 토후국이 세워지고, 지브롤터 해협 일대는 세비아의 월경지가 돤다.
- 앙리 1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원호가 탕구트 족의 수장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대기근이 발생하였다.
20년전 남부 이탈리아의 올리벤토 전투에서 노르만족과 랑고바르드족의 연합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오판토 강에서 노르만족과 랑고바르드족의 연합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몬테 마기오레 전투)
호수천 전투에서 서하 군대가 송나라를 대파하였다
10년전 노르망디 공 기욤 (윌리엄 1세)이 앙주 공 지오프리와 싸워 이겼다.
- 프랑스의 카페 왕조의 앙리 1세가 키예프의 안네와 랭스 성당에서 결혼하였다.
이스파한이 셀주크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0년후 비잔티움 제국과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 간에 벌어진 바리의 공성전에서 노르만족이 바리를 함락시킴으로써 노르만족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로마는 원래의 발상지였던 이탈리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전임 황제 니케포루스 3세가 폐위되고 알렉시오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 디라키움에서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로써 알바니아는 1100년까지 노르만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때가 지명 알바니아의 첫 언급임)
30년후 잉글랜드의 윌리엄 2세가 노르망디를 공격하였다.
웨일즈에 카디프 성이 지어졌다.
노르만 왕조의 로버트와 루푸스가 화해하였다.
40년후 십자군이 아나톨리아를 넘어 예루살렘 왕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헤라클레아 전투에서 킬리지 아르슬란 1세가 이끄는 셀주크 제국군에게 크게 패배하였다.
- 천조제가 거란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 잉글랜드의 왕 헨리 1세의 형인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 로베르가 포츠머스에 상륙하여 자신이 잉글랜드의 정당한 왕위 계승자임을 주장하였다
50년후 알폰소 7세가 갈리시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보두앵 7세가 플랑드르의 백작이 되었다.
시리아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1세가 지휘하는 십자군이 부리 왕조와 모술의 아타베그의 군대가 주축이 된 셀주크 제국군과 싸웠다. (샤이자르 전투)
하인리히 5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금나라가 요서 지방을 점령하고 요나라의 중경 대정부를 함락시켰다. 천조제가 몽골로 피신하자 한인 신하 이처온과 황족 야율대석은 남경 석진부에서 천조제의 숙부 아율순을 옹립, 북요 정권을 수립한다.
노구교 전투에서 요나라 (북요) 군대가 송의 환관 동관이 이끄는 20만 송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701년 당나라의 시인, 이백이 출생하다.측천무후 그녀의 치세를 '무주의 치(武周之治)'라 불렀다.
요한 6세가 85대 로마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테르벨이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60년전 콘스탄티노스 3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가 아버지의 측근이었던 발렌티누스와 수도 시민들의 도움으로 이라클로나스를 몰아내고 콘스탄스 2세로 즉위했다
50년전 압둘라 이븐 아미르가 이끄는 무슬림 군대가 아프가니스탄 지방을 공격하였다.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살해당하면서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였다.
40년전 태종 무열왕이 죽고 문무왕이 신라 제30대 왕이 되었다.
- 예루살렘의 성전산에서 무아위야가 칼리파로 즉위하며 우마이야 왕조가 수립되었다.
- 당의 2차 침입으로 인해 평양성 전투(661년)가 발발했다.
30년전 신라의 승려인 의상이 낙산사, 동악사를 창건하였다.
신라가 나당전쟁중에 당나라로 부터 사비성을 탈환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하다
20년전 김흠돌의 난 : 잡찬 김흠돌이 파진찬 흥원, 대아찬 진공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신문왕이 신라의 왕이 되었다.
10년전 바위 사원이 완공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군이 메소포타미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아라비아 반도를 재정복하였다.
클로비스 4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10년후 다고베르트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과달레테 전투에서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군이 서고트 왕국의 왕 로데릭이 이끄는 약 3만 3천명의 서고트 왕국군을 섬멸하였다. 이 전투에서 로데릭은 전사하였다.
20년후 테우데리히 4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 툴루즈에서 아키텐의 공작 오도가 이끄는 가톨릭 세력 (아키텐 - 프랑크 연합군) 이 툴루즈를 공격하던 우마이야 왕조군의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툴루즈 전투)
30년후 세르다냐 (피레네 동부) 의 베르베르 인들이 아키텐의 오도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프랑크 왕국, 남 프랑스 해안 일시 수복 (vs 우마이야)
40년후 베르베르인 반란군이 우마이야 왕조군을 격퇴하였다.
콘스탄티누스 5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불국사 3층 석탑과 다보탑이 제작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해에 석굴암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탈라스 전투 : 아바스 왕조군이 탈라스에서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쟁 이후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으로 전파되고 실크로드 교역로를 포함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세력권에 넘어가게 된다.
라벤나가 랑고바르드족에게 함락되어서 동로마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가 폐지되었다
로마 교황 자카리아의 지원으로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 피핀 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힐데리히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면서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되었다.
60년후 아바스 왕조군이 카이르완을 재정복하였다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가 사사명을 살해하고 칭제하였다
341년 모용부의 모용황은 동진으로부터 연왕(燕王)으로 책봉받게 되어 이 나라를 전연(前燕)이라고 칭함.용성(龍城; 지금의 요녕성 조양시)에 수도를 정했습니다
60년전 로마 제국의 황제 프로부스의 승전을 축하하는 개선식이 로마에서 거행되었다.
61년전 진의 삼국통일
서진의 농부가 위 양왕의 무덤을 도굴하여 죽서기년이 발견되다.
50년전 거질미왕이 가락국 4대 왕이 되었다.
사마염이 죽은 이후 팔왕의 난이 발발하였다
40년전 산마리노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상품 가격을 고정토록 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이 칙령에서는 모든 재화와 용역의 상한선을 정하였고 이것을 어길 경우엔 엄벌에 처했다.
아르메니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였다
30년전 고구려가 요동 서안평을 정복하였다.
유총이 군대를 이끌고 서진의 도읍 낙양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서진의 황제 사마치를 사로잡았다. 황태자인 사마전을 포함한 3만명이 살해되었고, 낙양은 약탈과 방화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20년전 사마보가 동진의 황제인 사마예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진왕이라 칭하였다.
모용준탄생
10년후 후조의 황제 석지가 황제 칭호를 폐지, 조왕(趙王)을 자칭하며 전연에 염위군을 상대로 한 구원군을 청하였으며, 2월에 염위의 포위군을 격파하였으나 염위의 왕 염민에게 매수된 부하 유현에게 살해당하였다. 석지가 살해당하면서 후조도 멸망하였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가 그의 조카인 콘스탄티우스 갈루스를 부제로 삼은 뒤 제국 동부의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20년후 사마비가 동진 제 6대 황제가 되었다.
- 율리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25년후 김씨내물왕 즉위.
30년후 백제군이 고구려의 군대를 패하(浿河)에서 군사를 매복시켜 물리쳤다. 그리고 그 해 겨울, 3만 명의 백제군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고 이 때 고구려 왕 고국원왕이 전투 도중 전사하였다. 이후 소수림왕이 고구려 제 17대 국왕이 되었다.
탁발규 탄생
40년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50년후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19대 왕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하였다
60년후 후연 4대 황제 모용성이 용성 내에서 단기가 일으킨 반란으로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후 모용희가 후연 제 5대 황제가 되었다.
bc20년 신라가 마한의 조공 요구를 거절하다.
60년전 퀸투스 세르토리우스가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의 로마 함대를 격퇴하고 바이티스 강에서 루키우스 푸피디우스를 격퇴하면서 이베리아를 장악하고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시아 속주 총독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테르무스 휘하에서 군복무를 시작한다.
50년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시노프를 함락시켰다.
프라아테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로마에서 제1차 삼두정치가 시작되다.흉노의 일축왕이 전한에 투항함
30년전 기원전50년율리우스 카이사르, 북이탈리아로 돌아오다
20년전 bc40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브린디시 협정으로 세력권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다
20년후 사파드비제스 : 쿠샨 왕조의 왕사망
30년후 아르타바누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40년후 동부여의 대소왕이 대무신왕이 이끄는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전사
50년후 31년 - 세야누스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국가반역죄로 처형당하였다
60년후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암살당했다. 이후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오자(吳子)는 기원전 380년경, 중국의 오기(吳起)가 쓴 병법서이다.BC380년경 헌공(獻公(헌공))이 진나라에서 순사제도를 폐지하고나서부터 다시강성해지기 시작함
기원전 380년 - 이집트 제29왕조 멸망하고, 이집트 제30왕조 건설됨. 기원전 380년부터 기원전 343년까지 존속한 뒤, 아케메네스 제국에 점령당하여 멸망했다.
bc740년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 앗시리아왕 시리아 정복
BC 1100년 무나라 주왕 - 주나라의 첫 군주. 그의 죽은 나이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다. 주 문왕의 차남으로, 왕위에 오른 뒤 상나라를 격파
미노아 문명은 BC 3000에 성장하여 BC 1100년경까지 이어진 지중해 크레타 섬의 청동기 문명을 말합니다.
트로이전쟁의 무대인 제 7층은 B.C 1275년부터 B.C 1100년까지의 유적이다
앗수르는 BC1100년 겨에 제국을 건설했고 이스라엘 왕정은 BC1043년에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