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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갑자
1923년은 1월 12일 -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일본 경찰과 접전벌이며 저항끝에 자결.
안창호사회로 125명의 국민대표회의.
김동삼의장 당선.창조파와 개조파대립
임정은 이승만 탄핵
4월 - 연희 전문학교 및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 재인가.
- 경성전기, 안국동 선 전차 운전 개시
9월 1일 - 간토 대지진: 지진이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를 강타하여 14만여 명이 사망.
쑨원과 요페간 요페선언으로 다시 군벌타도가 진행된다.
60년전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1월 10일 - 세계 최초의 지하철인 런던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시모노세키 전쟁 1차 전투. 조슈 번과 서양 세력 간 교전
50년전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전쟁 배상금 지불 완료, 독일군이 보불전쟁 후 3년만에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철수뉴욕증권거래소 주가 폭락
20년후 일제 조선총독부는 해군지원병제와 대학생 지원병 제도까지 마련하여 조선의 젊은이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갔다.
추축국 중 가장 먼저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하게 되면서 남은 주범국은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두 국가만 남게 되었으며, 이들의 만행과 발악은 2년 후 종전 때까지 계속되었다.
40년후 대한민국에서는 제3공화국이 수립되고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하여 본격적인 독재정치가 시작되었으며, 그 해 경상남도에 속했던 부산이 국내 최초로 직할시로 승격되어 경남에서 분리독립했다
50년후 미국과 베트남 민주 공화국 사이에 파리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베트남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미국이 포기한 베트남 공화국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했다.
60년후 1983년 - 휴대 전화가 개발됨.
1563년 명종, 이량등은 왕의 신임을 믿고 파벌을 형성하여 횡령을 일삼았으며 사림 출신의 관료들을 외직으로 추방했다. 이에 사림들이 반발하자 이량은 사화(士禍)를 꾀했으나 심의겸(沈義謙)에게 탄핵당하여 1563년 숙청되었다.
60년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파나마에 도달하였다.
김감불과 김검동이 연산군 앞에서 최초로 연은분리법을 시연하였다
50년전 후안 폰세 데 레온이 유럽인 중에서 최초로 플로리다까지 항해하였다.
누녜스 데 발보아가 파나마 지협을 건너 태평양에 도달하였다.
40년전 구스타브 1세 바사가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명나라에서 닝보의 난이 일어났다.
30년전 일본의 이와미긴잔(石見銀山,이와미 은광)에서 연은분리법에 성공, 일본의 은 산출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페루를 정복하고 황제를 살해하며 잉카 제국이 멸망한다.
10년후 사망 무라카미 요시키요 : 일본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
타케다 신겐 :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
아사쿠라 요시카게 : 일본 센고쿠 시대의 다이묘
20년후 혼노지변 다음해 일본격동
40년후 일본의 무장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에도 막부를 수립하였다.
퀘벡과 루이지애나에 걸쳐 누벨 프랑스가 성립되었다.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동군연함이 형성되었다.
50년후 이덕형 사망
김제남이 처형됨. 같은 날에 규모 M6.3, 최대진도 VIII의 1613년 수원 지진 발생.
60년후 1623년 - 인조반정, 인조 즉위
1203년에 마침내 테무진과 케레이트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고 양측은 완전히 갈라섰다. 패배후 발주나 맹약 당시 19명뿐이었던 징그스칸의
몽골군이 십진법으로 구성. 싸울때마다 흡수 증병하여 토그릴 옹칸을 추격, 살해하여 케레이트 부족을 멸망시켰다. 자무카는 나이만으로 피신하였다.
몽골 군이 1차 탕구트 원정을 하여 오르도스 지방을 약탈하였다
60년전 레온 왕국이 자모라 조약으로 포르투갈 왕국을 독립된 왕국으로 인정하였다.
보두앵 3세가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50년전 금나라가 북경 (중도)로 천도하였다.
윌링포드 조약이 체결되어 마틸다와 스티븐 왕 간의 왕위 다툼에 의해 촉발된 잉글랜드의 무정부 시대가 끝났다. 이 조약에서 스티븐이 계속 재위할 수 있게 된 대신에 마틸다의 아들인 헨리 2세가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
40년전 아말릭 1세가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 되었다.
무와히드 왕조 군대가 시칠리아 왕국의 노르만인들을 북아프리카에서 몰아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3차 이탈리아원정이 시작되었다. (~1164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착공되었다.
20년후 칼카 강에서 제베의 몽골 제국군이 키예프 루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프랑스의 왕 루이 8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서하 신종(서하)의 양위로 그 아들인 이덕왕이 헌종이 즉위하였다.
30년후 강화산성의 외성이 건설되었다.
몽골 제국의 공격으로 만주의 동진국이 멸망하였다
몽골 제국군이 금나라의 수도인 남경 개봉부를 함락시켰다.
40년후 쾨세다흐 전투에서 몽골 제국이 룸 술탄국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킵차크 한국과 차가타이 칸국이 건국되었다.
세르비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국왕 블라디슬라브를 폐위시키고 그의 동생 스테판 네마네치를 우로쉬 1세를 옹립하였다.
5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트 4세의 공격을 격퇴한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의 아들 에드먼드를 시칠리아의 욍으로 임명하였다
몽골 제국이 대리국을 공격하였다.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몽골의 5차 고려 침공이 일어났다
60년후 일 칸국의 훌라구 칸이 카프카스를 침공하였으나 킵차크 칸국군에게 격퇴되었다.
제노바 공화국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인 크레타 섬을 침공, 칸디아를 함락하였다.
843년 프랑크 왕국이 베르됭 조약으로 삼분되었다.
프랑크 왕국의 왕 루트비히 1세 사후 루트비히의 3명의 아들들 간에 베르됭 조약이 맺어져 프랑크 왕국이 서 프랑크 왕국, 동 프랑크 왕국, 중 프랑크 왕국으로 분할되었다.(이 국가들은 각각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시초가 된다.) 이 조약에서 샤를 2세에게 서 프랑크 왕국, 루트비히 2세에게 동 프랑크 왕국, 로타르 1세에게 중 프랑크 왕국이 주어졌다
70년전 롬바르디아 강성해지자 교황이 요청하자 프랑크군은 파비아를 포위공격하면서 동시에 일부 군을 나누었고, 카롤루스는 이를 직접 지휘하였다. 그는 베로나에 있던 데시데리우스의 아들 아달기스를 혹한을 뚫고 기습공격을 가해 격파, 곧바로 밀어붙여 제노바까지 함락했다
60년전 마우레가투스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카롤루스 대제가 작센족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50년전 바이킹이 노섬브리아 왕국의 린디스판 수도원을 습격하였다. 바이킹의 첫 대외 침략 기록
이슬람 군주 히샴 1세가 지하드를 선언하고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공격함과 동시에 피레네 동쪽 셉티마니아 탈환을 시도하였다.
카롤루스 대제가 프리시아인들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40년전 - 이레네 : 비잔티움 제국의 여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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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비잔티움 제국군이 다미에타를 약탈하고 파괴하였다.
20년후 랄라카온 강에서 페트로나스 장군이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이 아랍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동로마에서 파견한 키릴, 메토데이 형제가 모라비아에 도착하여 양국 간의 우호 관계가 성립되었다. 이에 동프랑크는 1차 불가리아 제국과 동맹하였다
40년후 아바스 왕조 치하의 이라크에서 발생한 노예 잔지가 일으킨 잔즈 반란이 진압되었다
50년후 - 시메온 1세가 불가리아의 군주가 되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 이베리아 중북부 바야돌리드 일대 점령
6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 메노르카 섬 점령
483년 소지마립간시절,외적침입이 이후 끊이질 않는다.
오를레앙 근처에서 프랑크족 군대가 테오도리크 2세가 이끄는 서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77년전 반달족 프랑크에 패함.
60년전 태무제가 북위 제 3대 황제가 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죽자 이오네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50년전 백제의 비유왕과 신라의 눌지 마립간 사이에 제 2차 나제동맹이 체결되어 고구려의 남진에 대비하였다.
- 훈족의 왕이 된 아틸라가 군사를 일으켜 유럽의 여러 민족들을 격파하고 라인 강변으로 영역을 넓혔다.
40년전 로마가 부르군트인들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평화 조약 이후 부르군트인들은 손 강 유역으로 이동하여 제네바를 수도로 부르군트 왕국을 재건하였다.
30년전 테오도리크 2세가 서고트족의 왕이 되었다
20년전 오를레앙 근처에서 프랑크족 군대가 테오도리크 2세가 이끄는 서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11년전 힐데리히 프린지아공주와 함께 귀국
10년전 글리케리우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3년후 힐데리히아들 클로비스 로마의 수아송공략
10년후 - 동고트 테오도리크 대왕이 약 3년 간의 공격 끝에 라벤나를 점령하고 오도아케르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20년후 신라의 지증왕이 명칭 '신라'를 공식 국호로 지정하고, 중국식 군주 호칭인 '왕(王)'호를 사용했다. 또한 순장제도를 폐지했고,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얼음을 저장하기위한 석빙고도 만들었다
40년후 성왕(백제)이 백제 26대 국왕이 되었다
50년후 사르데냐에서도 반달족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 벨리사리우스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이 반달족을 공격하기 위하여 출정하였다.멸망시킴.
60년후 인도에서 찰루키아 왕조가 창건되었다
70년후 동고트멸망.
123지마이사금 이찬 익종 등에게 시켜 민심수습하였다. 이듬해인 123년 왜와 강화하였다.123년 3월에 결국 일본과 화친해 이 때부터는 거의 80년 가까이 일본군이 신라에 쳐들어오는 기록이 없어진다
태조대왕이 죽은 해에 대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모두 165년에 사망하였다고 하였지만, 후한서(後漢書)에는 121년에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60년후 183년에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교현은 성품이 까다로우면서도 고집이 세고 또한 매우 급했다. 조조와 교우
기원전 238년에 시황제 영정은 성인식으로 잠시 함양을 비우자, 노애가 반란을 일으켰다. 소식을 들은 시황제은 곧바로 군사를 파견하여 노애를 능지처참에 처하고 어머니 조씨를 감금하였다. 노애와 조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2명도 살해하였다
10년전 파르티아 건국.
60년후 전한 문제2년 이시기 백성들은 모두가 부유해져서 땅바닥에 돈이 떨어져도 줍지 않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bc598년 바빌론 제국의 왕 네부카드레자르 2세가 또 다시 쳐들어와 성전의 값진 기물들을 약탈하고 유대왕를 폐위시켜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10년전 앗시리아 멸망.
B.C.958년 솔로몬에 의해서 성전이 건축되고 7년 후 완성이 됩니다.
기원전 1318년 무르실리 2세 즉위(~1290) 세티 1세( B.C. 1320년경~1318 년경)의 아들. 람세스 2세의 아버지. 제18왕조 말기에 잃었던 이집트 해외의 권위를 회복하고 팔레스타인 지방에 세력을 확보
BC2038년, 방사(方士) 윤파로(尹巴老)가 신선술(神仙術)을 말하니 임검이 믿지 않고 이르기를, “인간들 중에 어찌 신선이 있겠는가, 다 요사스럽고 세상을 속이는 일이다
상원갑자
1743년 오스트리아 계승전쟁
60년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에트나 화산 대폭발으로 6만여 명이 사망하였다.
- 2차 비엔나 전투가 발발하였다.
- 정씨 왕국이 청나라에 항복하여 정씨 왕국의 영토가 청나라 푸젠 성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40년전 버킹엄궁전이 세워졌다.
30년전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펠리페 5세가 스페인 왕국의 국왕으로 승인받다. 이로써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종결되다.
-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그와 동군연합을 이루고 있는 영토를 상속받을 남자 상속인이 없으면 딸이 상속하도록 하는 국사조칙이 제정되었다.
20년전 명사고가 편찬되었다
10년전 폴란드 왕위 계승전쟁이 시작되었다.
영국령 아메리카 (미국) 의 13개 식민지가 완성되었다
10년후 대영박물관이 세워졌다
20년후 파리 조약을 통하여 프랑스-인디언 전쟁이 종전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는 캐나다를 영국에게 할양하고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에 할양해야 했다.
7년 전쟁이 종전되었다
30년후 보스턴 차 사건이 발발하다
제임스 쿡 선장이 남극해에서 항해를 하다
40년후 - 대영제국과 미국 사이에 파리 조약이 체결되었다. 드디어 미국이 독립국이 되었다.
- 조지 워싱턴의 고별연설을 끝으로 대륙군이 해체되다
50년후 전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쟁의 여파로 영국,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등을 중심으로 1차 대프랑스 동맹이 체결되다.
- 국민공회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시민 루이 카페(Louis Capet)가 단두대에서 사형당하다.
- 2차 폴란드 분할: 프로이센 왕국과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토를 나누어 갖다
60년후 스위스에 헬베티카 공화국이 세워지다. 이로써 천년가까이 지속된 스위스 연방은 해체되다.
- 루이지애나 매각과 관련된 협상이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서 마무리되다.
프랑스 지배 하의 네덜란드가 영국으로부터 남아프리카 식민지를 회복하였다.
1383년 고려우왕 해도원수(海道元帥) 정지(鄭地, 1347~1391)가 여수반도 동쪽, 관음포에서 왜구를 무찌르다.
60년전 토마스 아퀴나스가 로마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영종신정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원영종을 상도 인근 남파점에서 암살하였다. (남파의 변)
- 남파의 변 이후 반란군에 의해 추대된 이순 테무르가 원진종으로 즉위하였다.
50년전 일본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과 겐무 신정의 시작
할리돈 언덕 전투에서 에드워드 3세가 지휘한 잉글랜드 군대가 더글러스 경을 전사시키며 스코틀랜드 군을 격파하고 베르윅을 회복하였다.
원혜종(원순제)가 즉위하였다
중국 원나라에 기근이 발생하여 1337년까지 약 6백만 여 명이 사망하였다.
남부 유럽에서도 기근이 발생하였다.
40년전 지진 해일이 이탈리아의 아말피를 덮쳐 해양도시 공화국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었다.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이 에피로스 지방을 정복하였다. 다만 동로마령 도시 세르 공격은 실패하였다
30년전
아라곤-베네치아 연합군이 사르데냐의 포르토 콘테 전투에서 제노바 공화국 함대를 격파하였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조반니 보카치오가 집필한 데카메론이 완성되었다.
10년후 조선 왕조가 이 때부터 조선을 국호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20년후 조선 제 3대 국왕 태종이 인쇄를 담당하는 주자소를 설치하였고, 이 주자소에서 금속활자 계미자가 제작되었다
30년후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드 1세가 발칸 반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제 3대 국왕 태종이 호패법을 시행하였다.
태종이 한반도를 8도로 분할하였다
세종은 1413년에 충녕대군에 봉해졌다
40년후 친정을 시작한 세종.1423년 황희는 예조판서를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나가 구휼을 잘 하고 민심을 얻었다
50년후 1433년에는 압록강을 넘어 파저강 전투에서 여진족을 무찔렀으며, 북방 이민족인 여진족에 대한 강경책과 영토 확장에 대한 일환으로 최윤덕 장군이 여진족을 토벌하여 평안도의 4군(四郡, 1433)개척
60년후 - 조선의 4번째 국왕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
1023년 송인종1022년 13세의 나이에 황제로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어려 황태후 유씨가 섭정이 되어 실권을 쥐었다
60년전 레오 8세가 대립교황으로 즉위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오토 1세가 폴란드의 군주 미에슈코 1세의 부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전 오토 2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파티마 왕조가 수도를 카이로로 옮겼다
40년전 오토 3세가 독일의 왕이 되었다
튀니지 출신 수장이 이끄는 베르베르 부족이 마그레브에서의 반란이 실패한 후 알 안달루스로의 귀순을 요청하였으나, 그들을 견제한 알 만수르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만수르가 사망한 1002년 이후에야 지브롤터 해협을 건널 수 있었다
30년전 요나라의 장수 소손녕이 군대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으나 고려의 외교관 서희의 담판으로 강화한 뒤 철군하였다. 이 외교 담판으로 고려는 강동 6주를 획득하게 된다.
10년후 나바라 왕국의 산초 대왕이 레온 왕국의 왕위도 차지하며, 갈리시아와 포르투를 제외한 레콘키스타 세력이 나바라 왕국 하에 단일화되었다. (포르투 - 갈리시아 / 레온 - 카스티야 - 나바라)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이었던 프로방스의 아를 왕국이 해체되었다. 이후 오랑주 공국 등으로 분열되었다
20년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3세가 푸아투 백작의 딸 아그너스와 결혼하였다.
게오르그 마니아케스의 반란군이 테살로니키에서 비잔틴 정부군에게 패하면서 그의 반란도 종결되었다.
송의 범중엄이 개혁을 시작하였다. (경력변법)
30년후 시비타테 전투에서 아풀리아 & 칼라브리아 백작인 하우테빌레 가문의 험프리가 이끄는 노르만 기병대가 교황 레오 9세와 로렌 공작이 지휘하는 이탈리아 - 독일 - 롬바르드 연합군을 격파하였고 교황이 노르만 인의 포로가 되었다.
- 뵤도인이 건설되었다
40년후 알프 아르슬란이 셀주크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피사 함대의 지원을 받은 로제르 1세의 노르만 군대가 시칠리아 토후국의 수도 팔레르모를 점령하였다.
잉글랜드의 템즈 강이 14주간 얼어붙었다.
50년후 스비아토슬라브 2세가 키예프 루스의 대공으로 즉위하였다.
셀주크 제국이 앙카라를 점령하였다
60년후 하인리히 4세의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그레고리오 7세를 로마의 산타젤로 성에서 포위하였다.
무라비트 왕조가 세우타를 함락, 이베리아 진출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663년 9월 - 멸망한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덴지 천황이 400여 척의 배와 2만7천여 명의 구원군을 파견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백강 전투).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스 2세 로마시를 방문하다.
50년전 메카의 기득권 층인 쿠라이쉬 부족이 무함마드와 무슬림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였다.
샤흐르바라즈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였다.
40년전 메디나의 무함마드가 메카의 물자 봉쇄에 대항하여 그의 대상을 공격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메카 인들이 메디나를 습격, 가축을 약탈하였다
30년전 이슬람군이 사산조 페르시아와 아랍계 기독교인 연합군를 상대로 여러 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도시 히라를 공격하여 히라의 시민들을 항복시키고, 안바르를 공격하여 총독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20년전 신라의 승려 원효가 인각사를 창건하였다.
신라의 승려 자장이 봉정암을 창건하였다.
10년전 의자왕이 왜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콘스탄스 2세가 교황 마르티노 1세를 체포하였다.
10년후 김유신사망
20년후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야지드 1세가 이븐 주바이르의 토벌을 위하여 이븐 욱바를 헤자즈로 파견하였다.
메디나 인근의 하라라 전투에서 이븐 욱바가 이끈 우마이야 왕조군이 이븐 주바이르의 군대를 격파했다
30년후 톨레도의 대주교 시세베르트가 서고트 왕국의 왕 에지카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40년후 미륵사가 창건되었다
50년후 트라키아의 옵시키온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필리피쿠스를 폐위시켰다.
고왕이 진국의 국호를 발해로 고쳤다.
60년후 네팔 릿차비 왕조의 통치자, 구나타마데바가 Koligram과 Dakshin 왕국을 합병하고 카트만두를 세웠다.
비잔틴 제국 라오디케아의 세란타피코가 성상 파괴론을 설교하여 아나톨리아에서 지지를 받았다
303년 서진 팔왕의 난 12년차
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동방정제의 치소였던 니코메디아 황궁의 화재를 빌미로 기독교를 박해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이 칙령으로 교회 건물이 파괴되고 서적이 불태워졌으며, 기독교도인 관료와 군인 등이 면직되었다. 교세가 강했던 동방에서 강한 저항이 일어났고, 그것을 진압하였다
60년전 장군 티메시테우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사산조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샤푸르 1세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아이밀리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고, 로마군은 이 공적을 인정하여 그를 새 황제로 추대하였다
가야마품왕즉위
40년전 촉멸망
30년전 바흐람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20년전 로마 황제 카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공격하여 페르시아의 수도인 크테시폰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카루스는 이어진 전쟁 도중 사망하였다. 이후 카리누스, 누메리아누스가 그의 황제 자리를 이어받는다.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였다..
10년후 밀라노 칙령 : 로마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가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고, 종교 박해 시기에 몰수한 교회의 재산 등을 다시 돌려주도록 하는 것에 대해 밀라노에서 합의했고, 이 해 6월 13일 니코메디아에서 공포했다.
20년후 다뉴브 강 북부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군을 이끌고 고트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사마소가 동진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석홍이 후조 제2대 황제가 되었다.
백제 하늘에 별이 떨어져 왕궁, 민가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40년후 이세가 성한 제 5대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의 부대가 마그넨티우스의 부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후 마그넨티우스는 자살하였다.
장요령이 전량 6대 국왕이 되었다.
60년후 로마 제국의 율리아누스 황제가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을 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다.
- 율리아누스 황제가 동방 원정에서 퇴각하는 도중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bc58년 갈리아 전쟁 시작: 율리우스 카이사르, 헬베티족과 게르만족 격파,고구려 동명왕 탄생
50년전 고조선멸망.
40년전로마원로원에서 인신공양을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가 호민관 퀸투스 칼리디우스의 도움으로 로마에 귀국하였다.
30년전 동맹시 전쟁이 로마의 승리로 끝나면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동맹시 및 부족들에게 로마와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게 되었고, 완전한 반도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이 전쟁에서 상당한 활약을 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로마의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20년전 퀸투스 세르토리우스가 메텔루스 피우스를 격퇴하였다.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다.
10년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2세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10년후 디라키움 공방전 : 디라키움에서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군대가 카이사르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카이사르군은 보병 약 1000명, 기병 200명 정도의 손실을 입고 테살리아까지 후퇴했다.
- 파르살루스 전투 : 파르살루스에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대승을 거두었고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퇴각하였다.
- 폼페이우스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20년후 시리아 지방에서 로마군이 파르티아의 왕자인 파코루스 1세가 이끄는 파르티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파코루스 1세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옥타비아누스가 리비아 드루실라와 결혼하였다.
30년후 낙랑군이 신라를 공격하였다가 밤에 문이 닫혀있지 않고 노적이 들에 가득한 것을 본 뒤 신라는 도(道)가 있는 나라라고 감탄하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니코폴리스가 건설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영묘가 건설되었다.
40년후 온조가 하남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십제를 건국하였고, 온조의 형 비류는 온조와 생각이 달라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다. 그러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불편한 점이 많았기에 미추홀의 백성들은 위례성으로 건너왔고 온조왕은 이들을 받아들인 뒤 국호를 백제로 개칭하였다.
60년후 고구려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그곳에 위나암성을 축조하였다
bc418년 만티네아의 싸움 – 스파르타, 아테네를 격파
60년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 필리포스 2세가 고산족인 파이오니아인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bc778년 아테네 왕 교체설,왕이 되지 못하였다는 설이 있고 그 뒤로는 계속해서 집정관이 되었다. 기원전 753년 세습 집정관은 비세습 체계로 대체되었다.
투트모세 3세는 BC1498년 4월 19일 3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나일 강 삼각주에서 진군해갔다. 투트모세 3세가 직접 지휘하는 전차부대의 기동성은 카데시왕의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아카드의 나람신(Naram Sin / BC 2254-2218)이 제국 유지를 위해 힘든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