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7편 1~2절,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시편 147:1~2,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시편 147편은 개인적 찬송시이기도 하고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찬송시이기도 합니다. 이 시를 누가 만들었는가에 대하여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시대, 곧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지어진 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 시대에 지어졌다고 해도 손색은 없습니다. 이 시 속에 꼭 집어서 어떤 역사적 정황을 배경으로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1절과 2절의 짧은 두 구절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통하여 찬양의 은총과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며 마음껏 부지런히 찬양을 올려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절은 찬양으로 성도들을 부르는 초대의 말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자’는 뜻입니다. 이렇게 할렐루야를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성도들을 향하여 권면하는데, 왜 찬양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세 가지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찬양은 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라고 하였는데, 선하다는 것은 좋고 복되고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에 복이 되고 우리 삶에 복이 되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기에 복이 됩니다. 진실한 찬양은 많은 물질의 제사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니다.
시편 69:30,31 말씀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편 22:3 말씀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원망 불평 시기 질투의 말을 하고 육신적이고 육감적이고 세속적인 세상 노래를 우리 입술에 올려 부를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기쁨으로 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입술로 진심을 담은 찬양을 담아 하나님을 높여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함께해주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처럼 찬양은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좋은 것입니다.
둘째, 찬양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답다’라는 히브리어 ‘나임’은 ‘달콤한, 사랑스러운, 기쁨을 주는, 매력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찬양하는 일은 하나님 앞에, 우리 구주 예수님과 우리 심령에 거하시는 성령께 달콤함을 드립니다. 기쁨을 드립니다. 그러기에 찬양하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찬양을 즐겨 드리는 성도가 됩시다.
셋째, 찬양은 성도에게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마땅하도다’라는 히브리어 ‘나베’라는 단어는 ‘어울리다, 아름답다, 마땅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성도로서 가장 어울리는 것은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 노래 부르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안개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서 왔나’ 하면서 구슬프게 부르는 것도 예수님 믿는 성도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욕설과 풍자가 가득 담긴 ‘랩 음악’을 부르는 것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시편 33편 1절 말씀에 이르기를,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라고 한 대로,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찬송은 어울리는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요 또한 마땅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3:15 말씀에,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찬송은 죄로 죽어 영원한 심판의 자리에 떨어질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신약적 제사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는 것이 곧이 신약적인 제사인데, 이는 구약 시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떡상에 진설떡을 올려드리는 것과 같이 지극히 거룩한 예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한 것이므로, 우리 평생에 날마다 더욱 기쁨으로 찬양함으로써 하나님께 늘 영광 돌리시기 바립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이 시인이 1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권면하였는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들, 찬양의 내용들이 2절 이하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라고 하였으니, 이는 무너지고 황폐화된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 이후에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 등과 같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다시 예루살렘 성읍을 복원한 일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무너졌던 예루살렘을 세우는 이 과정은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긍휼과 이적적인 자비로써 가능했습니다. 주변의 이방민족들의 방해가 집요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돌아온 귀환자들을 도와서 성벽을 다시 쌓게 도와주셨습니다. 방해가 있어서 종종 중단되기도 했지만 끝내는 극적으로 느헤미야 시대에 성벽까지 완성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읍이 중건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임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스룹바벨 총독 시대에 돌와온 귀환자들이 성전을 재건하고자 했을때에, 방해꾼들이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방해하여 페르샤 정권이 이를 금지하였으나, 선지자들이 다시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을 다시 세우라고 예언하자 유다 장로들과 백성들이 목숨을 내걸고 다시 성전과 성곽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시 방해꾼들이 고발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유다의 장로들을 보호하시고, 도와주시므로 다리오 왕이 고레스 원년에 내린 유대인 해방과 성전 건축 명령의 조서를 발견하게 하사 도리어 유다의 장로들과 백성들이 성전 건축과 성곽 건축을 완공할 수 있도록 물자 도움까지 받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의 성전과 성벽이 금이 가고 일부가 무너졌더라도 다시 굳건히 세우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신앙적 열심을 내십시오. 신앙 건축의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집요한 사탄과 세상의 방해를 이기고 마침내 점점 굳건한 신앙의 성벽과 튼튼한 영적 성전이 세워져갈 것입니다. 아무리 주변 환경이 어렵고 우리 심령 안에 여러 가지 근심 걱정의 방해가 있고 영적인 방해꾼들이 일어난다 해도, 기도하고 의지할 때 하나님이 세워가신다는 것을 믿고 여러분의 예루살렘이 온전히 세워져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바벨론 정권에 의하여 산시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제국 이곳 저곳에 흩어져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으로서 수모와 모욕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70년 동안 연단받는 중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망하게 하시고 페르시야 왕 고레스에 의하여 해방되어 고토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 땅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비록 황폐하여진 땅이지만 고향 땅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성전을 재건하고 기업의 땅을 일구며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다고 각오한 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 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백성들이 4만 명이 넘었습니다. 스룹바벨 총독이 이끄는 1차 귀환, 에스라 제사장이 이끄는 2차 귀환, 느헤미야 총독이 이끄는 3차 귀환을 통하여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와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약속의 땅을 다시 차지하여 사는 복된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고향 땅으로 해방되어 돌아가는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옛날의 예언 약속을 기적적으로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모아 그 땅으로 다시 모이게 하신 것입니다.
일찍이 신명기 30:3 이하에 이르시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네 쫓겨난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이 세상 가운데서 자기의 백성 모임인 교회 가운데로 모으시고 계신 줄 믿습니다. 그가 비록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일진대 어떻게 해서든지 이끌어 모으실 것입니다. ‘하늘 가’는 지리적으로만 멀리 있는 자라기보다는 도저히 신앙 생활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그런 자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구원받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불신자 집안이요 아무리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갖고 있는 자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늘 가, 땅 끝에서라도 불러서 모으시면 막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모으시는 그 주도적 사역에 기쁨으로 협력하는 자가 됩시다. 죄악의 땅 끝에서 헤매는 자일지라도, 무지와 불신의 땅 끝에 헤맬지라도, 우상 숭배와 무당 점치는 일에 깊이 빠져 있는 땅끝의 백성이라도, 주님께서 그 흩어진 자를 얼마든지 모으실 수 있습니다. 이 일에 우리가 쓰임받읍시다. 사람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십시다.
이번에 영국의 런던에 있는 24층 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500여명이 살던 그곳에 새벽 1시에 불이 시작되어 불과 30분만에 건물 전부로 불이 번졌고 2시간, 3시간 만에 그 건물이 전소하였습니다. 지금 사망자가 100명이 넘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금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거리를 지나가다가 어떤 건물에 불이 붙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가정합시다. 마침내 그 때가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한적한 한밤중이었다고 합시다. 그러할 때 그 화재를 발견한 우리들이 놀라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불 붙은 건물을 향하여 밖에서 “불이야!” 하고 큰 소리를 계속하여 질러댄다면, 그 건물 안에 잠자던 자들 중에 소리를 듣고 깨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 일부는 화재 사실을 확인하고 서둘러 건물 밖으로 달려나와 생명을 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불이 붙었음을 알고도 ‘나는 저 건물 안에 없으니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입을 다물고 모른체 지나가버린다면, 그 건물 안에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불에 타 죽게 만드는 부작위의 죄를 범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내세에 지옥이 확실히 있고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또 예수님을 믿어야 지옥을 면하고 천국 간다는 진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믿지 않는 이웃과 친척과 친구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고받지 않고 죽어 지옥불에 떨어진 사람의 피 값을 주님은 우리 손에서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땅 끝에 거할지라도 자기 백성을 모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기억합시다. 우리들도 최선을 다하여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일에 힘을 다해 동참합시다. 날마다 전도할 기회를 하나님께 구합시다. 전도할 사람을 마음에 품고 이름을 놓고 기도합시다. 때가 되어 입을 열어 복음을 담대히 전합시다.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는 것을 증거합시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영광 중에 부활하셨고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장차 심판장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담대히 증거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를 통해서 주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모으시는 그 일에 많은 열매가 있을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