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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50)~(51)
* 고향에서(1부 ,마지막)
이튼날 이른 아침 삿갓 , 아니 ..병연은 아우 병호의 안내로 뒷산에 올라
형의 무덤에 성묘를 하고 모처럼 고향의 마을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병호야, 네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 형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니 ? "
아우 병호도 장가를 가고 분가를 한 뒤지만 집에와 들으니 농삿일은 그 아우가 모두 보살펴 주었다는 것이다.
"제 생각으로는 형님이 집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형님은 형님대로 생각이 있으시니 제가 어찌 형님 뜻을 좌우하겠습니까 ? "
"글쎄 말이다. 뜻이라는 것이 별것도 아니지만 , 그렇게 방랑 생활을 하니까 세상의 번뇌는 잊을 수 있더구나."
"형님 , 그래도 아주머니나 어머니가 불쌍해 지니 집에 계셔야죠."
"허긴 .. 그래서 우선 온것 아니냐 ? "
형제는 산을내려오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나누었다.
아침을 먹고난 병연은 우선 글방에 들려 자기를 가르쳐 준 스승을 찾았다.
백발이 눈에 띄게 더 성성해진 스승은 크게 반가워했다.
"아니 이게 병연이 아닌가 ? "
"네 ... 그간 무고 하셨습니까 ? "
"허 ..언제 돌아왔나 ? "
"어제밤에 돌아왔습니다."
"그래 돌아다니며 마음 좀 추스렸는가 ?"
"이곳 저곳을 정처없이 다니며 세상구경을 했습니다."
"어디를 돌아 보았나 ?"
"네 , 금강산으로 해서 함경도 길주 명천까지 다녀 왔습니다."
"암..사람은 그렇게 객지 바람을 쐬야 듣고 배우는 것도 많으니 ! .."
"뭐 .. 별로 배운거야 있겠습니까 ? "
"그동안 자네 집도 형이 타계하고 변화가 많았었지 ? "
"네 , 오늘아침 산소에 다녀 왔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내 글방에 와서 아이들이나 가르치게. 난 도무지 나이가 들어서 이것도 이젠 못하겠네 ..."
"원 .. 선생님두 이제 환갑이 조금 지나셨는데...."
"아니야 자네같은 제자가 좀 해주었으면 해 ..."
"같이 수학하던 동학들 소식은 있습니까 ? "
"이제는 모두 농사나 지으며 잘들 살고 있지."
"제법 어른티가 나겠군요."
"암 ..모두 가장들 아닌가 ? "
병연은 옛 스승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찾아 뵙겠다는 인사를 한뒤 마을로 들어가서 옛 글방 친구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각별하게 지낸 친구와 모처럼의 회포를 나누면서 그 친구의 주선으로 그의 집 사랑에 옛날 글방 동학들이 모여 술 한상이 벌어졌다.
"허, 병연이 죽은 줄 알았다."
"그놈의 백일장이 생사람 잡았지."
"그래 금강산 절경이 그렇게나 기막히다며 ? "
친구들은 반가워 하면서 묻는 말도 많았다.
이렇게 마을에 동학들은 함께 술에 취하고 흥에 겨웠다.
병연이 여기저기 다니며 걸식하던 애기 , 서당 훈장하고 싸운 이야기등 구경하며 다닌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자 그 중 한 친구가
"그 훈장 혼내준 글하나 소개해 보아라" 하며 조른다.
병연은 몇번 사양을 하다가 함경도 어느 서당에서 훈장을 혼내준
다음과 같은 글을 소개하여 좌중을 웃겼다.
<두메구석에 완고한 백성이 고약한 버릇이 남아서>
<문장대가를 함부로 욕하며 허풍만 떠벌리는구나>
<조그만 조개비 잔으로 바닷물을 어찌 측량할 수가 있으며>
<쇠 귀에 경을 읽는 격이니 어찌 글의 뜻을 알겠냐>
<서속이나 훔쳐먹는 산골에 간악한 쥐같은 네놈이요>
<구름을 타고 넘는 붓끝에 용을 날리는 내로다>
<마땅히 볼기를 쳐서 죽일 죄이로되 잠시 용서 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는 행동을 하지 말지어다.>
좌중은 모두 허리를 잡고 웃으며 다시 한번 병연의 재주를 아깝게 생각했다.
이렇게 고향에 온 병연은 삼년 동안이나 자기가 배운 서당에서 훈장 노릇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고향에서의 안일한 생활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병연은 다시 , 방랑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생리며 숙명인지 모른다.
방랑할 때 쓰던 삿갓과 죽장을 볼 때 마다 바람과 구름과 유유한 산수가 그리워졌다.
(이번에는 한양이나 가볼까 ? 아니면 경상도나 전라도를 가볼까 ?)
김병연 , 김삿갓 .
그는 ,오늘도 ..
강원도 영월땅에서 전국 팔도 모두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계속 2부-1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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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시인 김삿갓 2-1(51 )
* 다시 방랑길에 오른 김삿갓
(2부 시작)
집을 나선 김삿갓은 길을 피하여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마누라의 눈에 띌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집에서 제법 멀찍히 떨어지자 비로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자고로 남자에게 무서운 것이 세가지 있으니 ,그 첫번째는 외진 산길에서 호랑이와 마주치는 것이요,
두번째는 빚장이와 맞따뜨렸을 때가 아니겠는가 ? 또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나는 생각도 없는데 늦은 밤 마누라가 밑물을 하고 평소와 다르게 정겹게 웃으며 , 가까이 올 때가 아니겠나 ? )
마누라로 부터 멀리 벗어 났다는 해방감에 ,김삿갓은 빙그레 웃기까지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 지금쯤이면 아내가 자신이 집을 떠나오며 남겨둔 서찰을 보았을 것이고 크게 낙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자 , 미안한 마음 또한 ,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집을 타고 앉아 지내는 것은 도무지 적성에도 맞지 않고 불편하기 이를데 없는 것을...
산꼭대기 바위에 걸터앉은 김삿갓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럿다. 그곳에는 새털 구름이 송판대기 처럼 깔려 있었고, 적당히 휘갈겨 쓴 글씨 처럼 흩트러진 구름도 있었다.
이렇게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의 대조적인 자연미를 한동안 감상하던 김삿갓, 가족을 버리고 또 다시 방랑길에 오르는 것도 이같은 자연을 맘껏 즐기고 싶은 이유가 아니겠나 스스로 위안했다.
하늘가에 떠도는 구름을 오랫동안 즐기던 김삿갓 , 문득 깨닫고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서쪽 하늘에 노을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이제 부터는 어디로 가야 할까 ? )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이 많은 김삿갓 , 방향을 남쪽으로 잡아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나 전라도 방향으로 갈 것 인가 , 아니면 경기도를 거쳐 한양과 황해도, 평안도를 가볼 것인가 ?
어느 곳이든지 다 가보고 싶었으나
우선 어느쪽이든 방향을 잡아야 할것 이다.
(에라 모르겠다. 지팡이를 공중에 던져 떨어지는 지팡이 꼬리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가자 ! )
이렇게 결정한 김삿갓은 짚고있던 죽장 지팡이를 허공에 던져보니 둥실 떠올랐던 지팡이가 풀밭에 털썩 떨어지며 가리킨 방향은 서북쪽 이었다.
(서북쪽으로 먼저 가라는 점쾌가 나왔으니 ,그렇다면 경기도와 한양을 거쳐 황해도와 평안도를 가보리라..)
이렇게 결심한 김삿갓은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쯤 내려가니 길이 두갈래로 갈라졌다.
마침 나무꾼이 있어 길을 물었다.
"한양으로 가려면 어느길로 가야하오 ? "
"왼편 길은 단양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제천으로 가는 길이니 한양을 가려면 제천,원주를 거쳐야 할것 이오."
"고맙소이다. 헌데,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질 곳을 찾아야 하겠는데 혹시 이부근에 그럴만한 집이 없을까요 ?"
"저 고개를 넘으면 초가 몇 채가 있는데 그곳에서 구해 보시구려."
"고맙소이다."
그렇게 김삿갓은 고개를 넘어 네 댓개 보이는 초가에 찾아들어 밥 한술 구걸하니 고맙게도 한 집에서 밥 한 상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저녁상을 들여오는 그 집 주인의 얼굴에는 수심이 잔뜩 껴 있었다.
김삿갓은 밥을 다 먹고 상을 물리며 주인에게 물었다.
"고맙게도 저녁을 주셔서 아주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 주인장 께서 무슨 걱정이 있으신것 같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약간 당황한 빛을 보이며 말한다.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원님을 모시고 살아가자니 하루도 걱정이 끊일 날이 없어 그렇습니다."
"원님이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니요 ? 세상에 그런일도 있습니까 ?
자고로 고을 원님은 백성을 보살피고 보호하여야 할 목민관(牧民官) 인데 , 원님이 호랑이 보다 무섭대서야 말이 됩니까 ? "
"누가 아니라오. 그러나 우리 고을의 원님은 전혀 그렇지가 못해요."
주인은 이같이 말을하며 한숨까지 내 쉬었다.
"원님이 어째서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는 말씀인지 그 이유를 좀 들려주시죠."
김삿갓은 필시 어떤 곡절이 있으리란 생각으로 주인에게 캐물었다.
주인은 한숨을 길게 쉬고 말을 했다.
"우리 고을 원님은 토색질이 얼마나 심한지, 이년 전에 부임해 오자 , 이방을 통해 신임사또를 환영하는 뜻에서 가가호호 무명 두 필씩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명절때 마다 세찬비, 생일때는 수연비, 아들 딸 여읠때는 혼수비등 ..
서너달을 멀다하고 뇌물을 공공연히 요구해 왔다오 .
그래서 백성들은 지칠대로 지쳐 버렸는데 이번에는 다른 고을로 영전을 가면서 전별금 명목으로 각 집마다 현금 스무 냥씩을 내놓으라고 닥달을 하니 , 우리 같은 가난뱅이가 무슨 재주로 스무 냥을 내놓을 수가 있겠냐는 말이오."
"그야말로 무서운 탐관 오리로군요. 백성들 사이에서 원성이 끊이지 않을텐데 그런 자가 영전해 간다니요 ? 도데체 고을 원님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 "
"성씨가 이가라는 것만 알뿐 , 이름은 잘 모르지요. 그런데 그깟 놈의 이름은 알아서 뭐하겠소 ? "
"내일 날이 밝는대로 동헌에 찾아가 따져 보려고 하지요."
"아서요. 한양에서도 으뜸 세도가로 손꼽는 제동(齊洞) 대감의 뒷 줄을 잡고 있는 모양인데 섣불리 따졌다가는 오히려 봉변을 당할성 싶소이다."
"그렇다면 주인장께서는 전별금 스무 냥을 마련해 놓으셨소이까 ? "
"천만에요. 그날그날 입에 풀칠 하기도 바쁜 형편인데 현금 스무 냥을 무슨수로 마련 하겠소 ?
아직 추수도 못했으니 수중에 돈이 있을 수도 없지요."
"그렇다면 그 문제는 아무 걱정 마시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 주십시오."
김삿갓은 생각이 되는 바가 있어 이렇게 말을 하자,
주인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사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
노형은 무슨 재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말씀이오 ? "
~~계속 2-2회로~~~
■ 방랑시인 김삿갓 2-2 (52)
* 五大天地 主人居士
"나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 입니다.
전별금 스무 냥을 내는 대신에 영전을 축하하는 현판(懸板)을 한폭 써다 주면 돈 보다도 더 좋아할 것이니 , 그점은 안심 하십시오."
주인은 김삿갓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노형이 글씨를 아무리 잘 쓰기로 , 돈밖에 모르는 사또가 현판 따위나 받고 만족 할것 같지 않소이다. 그건 어림도 없는 말씀이오."
그러나 김삿갓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탐관오리들은 돈도 좋아하지만 , 명예 또한 돈 만큼이나 좋아 합니다.
자기를 치켜 올려 주는데 누가 싫다 할것 입니까 ?
이 문제는 내게 맡기시고 주인장 께서는 현판이 될 만한 적당한 널판지 한 장을 내일 아침 일찍 구해 주십시오."
다음날 아침 , 김삿갓이 조반을 얻어먹고 나니 , 주인장이 구해놓은 널판지를 가리키며 "이만 하면 되겠소이까 ?" 하며 물었다.
"좋습니다. 아주 훌륭한 현판감 입니다."
그리고 김삿갓은 즉석에서 붓을 들어 "五大天地 主人居士" 라는 글자를 휘갈겨 썼다.
"이게 무슨 뜻이오 ? "
"주인장은 모르셔도 됩니다. 내가 주인장을 대신하여 스무 냥대신 사또에게 이 현판을 직접 헌납할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
김삿갓은 십 리가 넘는 읍내까지 현판을 몸소 메고 동헌으로 찾아가 원님 면회를 신청하였다.
"그대가 누군데 사또 어른을 뵙자고 하는가 ?"
이방이 묻자 김삿갓이 대답했다.
"사또 어른께서 이번에 영전을 가신다기에 ,시생이 영전을 축하하는 뜻에서 현판 한 폭을 써왔습니다.
바라건데 사또 어른께 직접 상납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또는 이방으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듣고 기쁜 얼굴로 동헌 마루로 달려나왔다.
김삿갓은 허리를 정중히 숙이며 현판을 두 손으로 받들어 올렸다.
"이 현판은 시생이 사또 어른의 영전을 축하하는 뜻에서 직접 써온것 입니다.
글씨가 치졸하오나, 시생의 성의를 생각하시어 받아 주시옵소서."
사또가 글씨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더니 크게 기뻐하였다.
"자네는 왕희지 보다 더 명필일쎄 ,"오대천지 주인거사"란 물론 나를 가르키는 말이렷다 ? "
"물론 입니다. 사또 어른의 지금까지의 치적으로 보아 , 오대천지 주인거사 라고 찬양 하는 것이 합당하다 여겨서 그렇게 써 온것 이옵니다. 다른 고을로 가시더라도 동헌 대청 마루에
이 현판을 꼭 걸어 놓도록 하옵소서."
"음 ... 참 좋은 생각이야. 오대천지 주인거사라는 말만 들으면 내가 기상이 웅대한 인물임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게야 !"
사또는 자못 만족스러운 듯 흥청 거리다가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갸웃 하며 물었다.
"가만 .. 五大天地 란 무슨 뜻이지 ? "
김삿갓이 사또에게 "五大天地 主人居士" 라는 현판을 써 가지고 온 뜻은 탐관오리를 골려주기 위한 계획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또는 그런 눈치를 전혀 채지 못한채 , 오대천지 주인거사란 말이 마치 자신을 영웅호걸에 견주어 지칭하는 것 같이 여겼다.
김삿갓은 속으로 웃음을 삭이며 사또에게 물었다.
"사또 어른께서는 오대천지 주인거사란 무엇을 뜻하시는지 아시옵니까 ?"
사또는 모른다고 대답하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지,
"그야 모를 것은 없지 않은가. 고금 경서를 두루 통달한 내가 오대천지 주인거사란 말을 모른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 오대천자 주인거사란 나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칭찬하는 말이렷다." 하고 큰소리조차 쳐보이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웃음을 참아가며 물어본다.
"사또께서 오대천지를 어떻게 알고 계시는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끼 이 사람아 ! 글씨는 자네가 써 가지고 와설랑 ,설명은 나더러 하란 말인가 ? "
"사또 어른께서 워낙 박학다식 하시기에 가르침을 받고자 하옵니다."
"음 ... 자네가 나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 ...그렇다면 내가 설명을 해줌세."
사또는 한참 동안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얼굴을 들며 자신에 찬 어조로 말을하였다.
"오대천지란 커다란 天地가 다섯개 있다는 말이렸다. 대천지란 영원불멸의 天長地久를 뜻하는 것으로 옛날부터 석학들은 천장지구란 말을 즐겨 써왔다네.
노자의 도덕경에도 나오지만 백낙천의 유명한 장한가에도 천장지구란 글이 등장하고 송지문의 시에도 또한 천장지구가 나오니 그런것 들이 바로 大天地 라는 것이야. 내 말 알아 듣겠나 ? "
김삿갓은 놀랬다.
사또를 무지막지한 탐관 오리로만 알았는데 , 대천지를 해석하는 경륜이 고금경서에 능통한 대학자의 면모였다.
(이렇게도 유식한 사람이 어째서 탐관 오리로 타락해 버렸을까 ? )
생각이 이렇게 미치자 김삿갓은 사또가 한층 가증스럽게 여겨졌다.
"그러나 제가 현판에 써다 드린 "五大天地"란 말은 사또께서 지금 말씀하신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써다 드린것 입니다." 하고 눈 딱 감고 말해버렸다.
"이사람아 ! 그렇다면 무슨뜻으로 오대천지라 썼단 말인가 ? "
"이 고을 백성들이 말하는 五大天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사또 어른이 뇌물을 잘 받아 자신다고 金天銀地요,
둘째는 사또 어른이 색과 술을 좋아 하신다 하여 花天酒地요,
셋째는 백성들이 느끼는 고을원의 인심이 암흑천지와 다름 없으니 昏天黑地요,
넷째는 백성의 원한이 사무친다 해서 怨天恨地요,
다섯째는 탐관 오리가 천만 다행으로 이 고을을 떠나게 되어 백성들이 그야말로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을 하니 謝天謝地 라는 뜻이옵니다.
백성들이 이상과 같은 다섯가지를 "오대천지"라 하기에 시생이 그런뜻으로 "五大天地 主人居士"라는
현판을 써다 바치게 된것 입니다."
사또는 삿갓의 설명을 듣자 이를 "뿌드득" 갈며 , 부들부들 치를 떨다가 뜰을 굽어보며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여봐라 ! 거기 누구 없느냐 ! 이놈을 당장 끌어 내어 능지처참을 시켜라 ! "
이렇듯 사또는 길길이 뛰며 , 김삿갓을 끌어내어 죽여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마침 , 동헌 뜰에는 사또의 분부를 거행할 군관은 한사람도 없었다.
사또는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이방 ! 어디 갔느냐. 이놈을 당장 끌어내지 못할까 ? "
그러나 김삿갓은 사또에게 태연히 말을했다.
"사또 어른, 고정하시지요.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아시면 ,아무리 사또라도 큰소리는 못 치실 것이오."
사또는 이 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며 황급히 되묻는다.
"아니... 그대가 뉘길래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치는가 ? "
"사또는 한양에 계신 재동 대감을 잘 아시겠지요 ? .. 나는 재동 대감의 생질로써, 지금 민정 시찰을 다니는 중입니다."
김삿갓은 이 사또의 뒷배경이 재동 대감이라는 말을 들은바 있어 ,자신을 재동 대감의 생질이라고 대포를 놓았던 것이다.
그러자 금방 잡아 죽일 듯이 길길이 뛰던 사또가 재동 대감의 생질이라는 말을 듣고, 몸을 벌벌 떨기까지 하면서 , 김삿갓을 향해 연방 머리를 조아려 보였다.
"옛 ... ? 선생께서 재동 대감댁 생질님이시라고요 ? 그러시다면 존귀하신 몸이 어떻게 이런 벽지까지 ...미처 볼라뵈어 죄송스런 말씀 다할 길이 없사옵니다." 하고 쩔쩔매며 말했다.
"나는 외숙부의 특별 명령을 받고 , 민정 시찰을 나온 길이라오. 따라서 나의 신분을 함부로 밝혀서는 안 되도록 되어 있는데, 그러나 사또에 대한 이 고을 백성들의 원성이 하도 크기에 어쩔수 없이 한마디 충고를 하기 위해 들렸소이다. 그런줄 아시고 행여 백성들 원성을 듣지 않토록 하시오.아시겠소
? ..
그럼 , 나는 이만 가겠소이다."
김삿갓이 동헌을 나오려 하자 사또는 황급히 김삿갓의 소매를 잡는다.
"귀하신 몸이 모처럼 오셨다가 이처럼 섭섭하게 가셔야 되겠습니까 ? ...
하룻밤 편히 쉬시면서 박주라도 한잔 하셔야지요."
"말씀은 고맙소만, 나는 누구에게서도 향연을 받을 입장이 아니라오. 외숙께서도 그런 것을 걱정하실 터 ..."
김삿갓은 이런 말을 내 던지고 동헌 대문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왔다.
이 사또는 쩔쩔매며 김삿갓이 행여 무슨 말을 할까 ? 노심초사 하며 졸졸 뒤를 따라 나왔다.
"그만 들어 가시고 , 떠나면서까지 고을 백성의 원성을 듣지 않토록 재차 당부하는 바이오..."
이 한마디를 끝으로 김삿갓은 동헌을 벗어났다.
생각하면 통쾌하기 짝없는 연극이었다.
고을 백성들에게 호랑이 같이 군림하고 포악한 악정을 일삼던 사또가 재동 대감의 생질이라고 큰소리 친 김삿갓을 만나자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꼼짝 못하고 쩔쩔 매다니 ..
이 얼마나 잘못 된 일인가 ?
김삿갓은 비록 악의없는 거짓말을 했지만, 나라의 근본인 백성의 입장에서 탐관 오리를 혼내 주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 제천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53회로 ~~
■ 방랑시인 김삿갓 (53)~(54)
* 來不往 , 來不往의 감춰진 속 뜻.
제천과 원주 사이의 산길을 진종일 걸은 김삿갓, 힘도 들고 허기도 지는데 , 석양 노을 조차, 붉게 물들고
정처없는 나그네의 심사가 가장 고된시간은 지금처럼 저녁노을이 짙게 깔리는 시간이다.
유람을 떠난 바가 아니라면 수중에 돈 이 넉넉히 있을리 없고, 그러다 보니 먹고 잘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삿갓이 이런 마음 급한 해걸음에 어떤 마을에 당도하니 , 마을 한복판 고래등 같은 기와집 마당에는 큰 잔치를 벌이는지,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한편에서는 떡을 치고 ,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을 부치는등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삿갓은 전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더욱 허기가 느껴져 ,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았다.
"이 댁에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죠 ? "
"아따 , 이 양반이.. 내일이 이 집 주인이신 오진사님 진갑날이라는 것을 모르시오 ? ..
게다가 이번 진갑 잔치에는 본관 사또님까지 오시기로 하여 ,돼지도 잡고 큰 암소도 잡았다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힐책하듯 한 마디 하는데 ,
"이 사람아 ! 사또께서 내일 오실지 안 오실지 몰라 ,진사 어른이 사랑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골머리를 앓고 계시는데 , 당신은 무슨 연유로 오신다는 장담이야 ?"
"허긴 ..허헛 ! "
두 사람의 주고 받는 말의 의미가 야릇햇던 김삿갓이 물었다.
"사또님을 초청 했으면 오신다 안 오신다 대답을 하셨을 것이오.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면 모르겠거니와 , 도데체 어떤 까닭에 오신다, 안 오신다를 모른다 하시오 ? "
그러자 나중에 말을 한 사람이 말을 하는데,
"진사 어른께서 며칠 전에 사또님께 사람을 보내, 저의 집 진갑 잔치에 꼭 왕림해 주십시오, 하고 서한을 보냈더니 , 사또께서 즉석에서 답장을 써 주셨는데 그 답장의 내용이 얼마나 어려운지 오시겠다는 것인지 , 안 오시겠다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또께서 어떤 답장을 보내셨기에 설왕 설래 하고있단 말이오 ?
혹시 暗號로 당신 의사를 보낸것 아니오 ? " 김삿갓이 이렇게 묻자 ,
"천만에요 ! 明明白白 알아 볼 글짜로 쓰셨다는데 , 도무지 그 뜻을 알수 없어, 진사님과 사랑에 든 선비님들이 전전긍긍 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허 , 그것참 우습구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또의 답장을 나한테 한번 보여 주면 어떻겠소 ? 내가 한번 풀어 보아 드릴 터이니 .. "
김삿갓이 이렇게 말을하자,
"여보시오 , 유명한 선비들 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는 편지를 당신 따위가 무슨 재주로 알아보겠소 ? "
하며, 김삿갓을 싹 무시하는 태도로 말을한다.
그러자 김삿갓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편지라면 나에게도 한번쯤 보여 주기로 손해가 날 것은 없지 않소 ?
개똥도 때로는 약이 된다 하였으니 , 속는셈 치고 사랑에 진사님께 내 말을 전해 주시오."
김삿갓은 저녁을 얻어먹을 속셈으로 일단 큰 소리를 치고 나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은 김삿갓의 허술한 차림새를 위 아래로 훝어보며 말하는데,
"당신은 낫 놓고 ㄱ 자도 알아볼 것 같지 못하구먼 .. 과연 무슨 배짱으로 흰소릴 하는가 ? "
김삿갓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길고 짧은 것은 맞대 보아야 알수 있다 안 합디까 ? .. 아뭇소리 말고 사랑에 내 뜻을 전하시오."
이렇듯 김삿갓이 당당하게 나오자 사내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저희끼리 말하는데,
"여보게 최서방, 이 양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예사롭지 않구먼 ..자네가 사랑에 올라가 진사 어른께 이 양반 애기를 전해 올리게."
"그랬다가 진사 어른께서 야단을 치시면 어쩌지.."
"야단은 무슨 ..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으로 , 이 양반을 보자 하실 것이 틀림없네 ! "
"그럴까 ? .. 그렇다면 내 다녀옴세."
그리하여 최 서방이란 자가 부랴부랴 사랑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잠시후 최 서방을 앞세운 오진사가 나타났는데 , 얼마나 똥이 탔던지 손님을 불러 올리지도 못한채 ,몸소 달려 나왔던 것이다,
"사또의 답장을 읽어 보아 주시겠다는 어른이 어느 분이시오 ? "
하며 김삿갓을 찾는 것이었다.
김삿갓이 오 진사 앞으로 썩 나서며 정중히 머리숙여 인사를 하는데 ,
"지나가던 과객이올시다. 댁에서 어떤 편지로 인해 심려중에 계시다기로 시생이 그 내용을 풀어 볼까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사람을 들여 보냈던 것 이옵니다."
오 진사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듯이 김삿갓을 사랑으로 정중히 모셔 올리며 말한다.
"어서 올라 가십시다. 어려운 것을 도와 주시겠다니 고마운 일입니다."
이렇게 오 진사의 안내로 사랑에 들어 가니 사랑방의 크기와 규모가 가히 , 고대광실이었다. 그리고 넓은 사랑방 안에는 사또의 편지를 읽어 보아 주려고 모여 든 10여명의 늙은 선비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편지의 해석이 뚜렷하지 못했던 탓인지 계면적은 표정이 면면히 보이고 있었다.
주인은 김삿갓에게 그들을 일일히 소개하고 난후 , 손수 술을 한잔 권하며 말을 하였다.
"우선 술을 한잔 드시고 , 나를 꼭 좀 도와 주소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이름난 학자님들임에도 불구하고 , 사또의 편지를 알아보는 분이 한 분도 없으니 , 나로서는 애가 탈 노릇 입니다."
김삿갓은 주인의 말을 면전에서 직접들으니 과연 어지간히 곤란한 지경이었던 모양이다.
김삿갓은 술을 한잔 마시고 나서 , 빈 술잔을 늙은 선비들에게 골고루 한 번씩 돌려 주었다.
이렇게 하므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서 술을 여러잔 얻어 먹을 심산이었다.
늙은 선비들은 술을 한 잔씩 받으면서도 김삿갓의 행색이 못마땅 했던지 또 , 자신들이 풀지 못한 사또의 편지를 풀겠다고 나타난 그를 몹시 아니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늙은 선비들이 어떻게 생각 하든지 간에 출출하던 차였기에 술과 안주를 닥치는 대로 주워 먹었다.
이윽고 주안상을 물리자 오진사는 문갑 속에서 사또의 편지를 꺼내 보이며 김삿갓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사또께서 나에게 보내 주신 친필 서찰 올시다. 우리 집 진갑 잔치에 꼭 참석해 주십사 하는 초청장을 보냈는데, 사또께서 보내 온 답장의 문장의 내용이 어찌나 괴상한지 , 사또께서 오시겠다는 말씀인지, 혹은 못 오시겠다는 말씀인지 ,도무지 알아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한번 펼쳐 보시고 사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삿갓은 방안에 선비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사또의 편지를 펼쳐 보기 시작했다.
사또의 편지는 한지로 두겹이나 싸여있어 겹겹히 벗겨야 했고 , 김삿갓은 편지의 내용이 한지의 두께로 보아, 매우 복잡하려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작 알맹이를 꺼내 보니 사또의 편지는 한지 반절 크기의 지면에 커다란 글씨로,
<來不往 來不往>
단, 여섯 글자만이 쓰여져 있을뿐이 아닌가 ?
김삿갓은 그 내용이 너무나 간단한데 놀랐다.
(太山鳴動 鼠一匹) 이라더니 .. 정작 편지의 내용은 장난기가 철철 넘쳐
흐르는구나..그렇다면 ? ...)
"음 ... 편지의 내용이 매우 기묘한 문장이군 ! "
김삿갓은 우선 생각할 여유를 갖기위해 중얼거려 보였다.
방안에는 잠시 숨막히는 긴장감과 함께 정적이 맴돌았다.
오 진사는 참고 기다리기가 초조했던지 ,
"선생 ! 어떻습니까 ? 사또께서 와주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못 오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 "
김삿갓은 대답 대신 다시 혼자 중얼 거렸다.
"음 ... 사또 어른하고 주인 어른하고는 친분이 매우 두터우신가 보구려 . 그렇지 않으면 이런 장난스런 편지는 보내지 않으셨을 터인데 ..."
김삿갓은 무척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남에 집 경사스런 자리에 이런 장난기 어린 편지를 보낼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오 진사는 만면에 웃음을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을했다.
"이 편지 속에 우리들 사이의 친분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 있소이까 ? 선생께서 그렇게 물어 보시니 하는 말 이오만 , 본관 사또하고 나 하고는 가깝다 뿐이겠소이까. 지금은 비록 官과 民으로 다르지만, 우리 두 사람은 어려서는 同門修學 하면서 별의별 글장난을 주고 받아 온 사이랍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또의 편지는 진갑 잔치에 틀림없이 참석하겠다는 의사가 확실 하다는 판단을 하였다. 왜냐하면 친구 지간에 초청을 받고 못 올 형편이라면 한마디 사과를 뜻하는 글이 있어야 할것 이거늘 , 사또의 답장에 쓰인 글은 단 여섯 글자로 , 그런 빚은 전혀 찾아 볼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간파한 김삿갓은 대뜸 편지의 내용을 선언해 버렸다.
"사또 어른께서 반드시 오시겠다고 하셨으니 , 영접할 준비를 서두르시죠."
오진사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되물었다.
"내불왕 내불왕의 풀이가 어떻게 되기에 그런 해답이 나오게 됩니까 ? "
그러자 자기들은 머리를 쥐어 짜도 얻지 못한 해답을 ,자신만만하게 답안을 내 놓는 김삿갓에게 열등감을 느낀 선비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하는데 , "귀공은 그 문장을 어떻게 해석했기에 , 그런 단안을 내리시오 ?"
"그 문장을 어떻게 사또가 오시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는지, 설명을 좀 들려주시오."
"제가 왜 그런 해석을 했는지는 여러분들도 이모저모로 분석을 해보시죠. 그러면 반드시 저와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될것 입니다." 하며 , 김삿갓은 자신을 고깝게 여기는 선비들을 향해, "당신들은 아직도 모르겠냐" ? 하는 어투로, 한마디했다.
선비들은 김삿갓의 이같은 말을 듣고 모두 얼굴이 머쓱해지며 제각기 심각한 생각에 잠긴다.
그러자 오진사도 답답한 심정을 견딜수 없었던지 ,
"여보시오 선생 ! 나는 편지의 내용을 알수 없어 속이 타다 못해 , 이제는 간이 타오를 지경이오.
그것은 이곳에 모신 선비들도 모두 궁금하기는 매일 반 일것 입니다. 편지의 내용을 알고 계시다면 애를 태우지 말고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시오..." 하며 간청을 하였다.
김삿갓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 편지는 결코 어려운 내용이 이나옵니다. "來不往"이 두 개로 겹쳐져 있어서 혼동을 일으킬 뿐입니다. 그러니 읽을 때는 점을 찍는 위치에 따라서 , 같은 글자 임에도 풀이는 두가지로 될수 있습니다."
그러자 오 진사와 선비들은 누구도 삿갓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오히려 ..
"그런 설명만을 들어서는 알 수 없으니 , 쉽게 알아 듣도록 설명을 해주시오." 한다.
"하하하 , 이렇게 까지 설명을 하였는데도 모르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 그렇다면 제가 우리 말로 표현해 드리지요. 내불왕의 "來不, 往"과 뒷글자의 "來 , 不往"에 점을 찍고 제각기 토를 달아 해석하면 ..(오지 말라 하여도 가겠는데 , 하물며 오라고 하는데 가지 않겠느냐) 하는 뜻이 되옵니다."
김삿갓의 설명을 듣고난 좌중에는 별안간 , 감탄의 탄성이 터졌다.
"과연 듣고보니 선생의 해석이 귀신과 같소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머리가 아둔해 거기 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구려."
모두 감탄해 마지 않는데 , 오진사는 무릎까지 치면서 칭찬을 한다.
"선생 덕분에 만사가 시원하게 풀려서 내가 이제야 살아나게 되었소이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을 급히 불러 ,
"여봐라 ! 내일은 사또 어른께서 영광스럽게도 우리 집에 행차 하실 것이니 이제부터 음식도 특별히 만들도록 하고 , 내일 아침에는 사또를 마중 나갈 채비도 차리도록 하여라."
하며 추가로 분부를 내리는데,
"지금 우리 사랑에는 귀한 선비님이 와 계시니 , 술상을 새로 푸짐하게 차려 내오도록 하여라."
이리하여 김삿갓은 사또의 편지를 풀어 준 덕분에 술과 음식을 배불리 얻어먹었고 , 그날 밤에는 오진사 댁 사랑방에서 하룻 밤을 편히 지낼 수가 있었다.
이튼날 아침 날이 밝자, 잔치 준비로 다시 집안이 시끌벅적 하였다.
게다가 사또의 행차가 가까워 온다는 전갈이 있자 , 오진사는 직접 마중을 나간다고 야단법석이 일었다.
김삿갓은 이쯤에서 아침을 한 술 얻어 먹고 , 조용히 오진사 집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어제 저녁 오진사 집 사랑에서의 일을 회상하며 빙그레 웃으면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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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시인 김삿갓 (54)
* 人生無想
오진사 집을 떠나 온 김삿갓은 原州를 향해 걸어갔다.
때는 가을이 짙어져 산길 사이에 산들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졌고,
하늘가에는 어느새 기러기가 "끼룩"대며 떼지어 날아 다니고 있었다.
김삿갓은 아침부터 스산한 기분이 들던 차에 , 갑자기 당나라 시인 유우석의 시가 머리에 떠 올랐다.
<가을 바람은 어디서 부터 불어 오는가>
<솔솔 불어 기러기 떼를 보내네>
<아침부터 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
<외로운 나그네가 먼저 듣노니>
何處秋豊至 (하처추풍지)
蕭蕭送雁群 (소소송안군)
朝來入庭樹 (조래입정수)
孤客崔先聞 (고객최선문)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사십쯤 되어 보이는 사나이가 새로 만든 듯한 무덤 앞에 엎드려 통곡 하는것이 보였다. 인정 많은 김삿갓은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어 사나이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누가 돌아가셨기에 이리도 섦게 우시오."
그러자 눈물 콧물로 얼굴이 범벅된 사나이가 고개를 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호소하듯 대답한다.
"얼마 전에는 자식이 죽었는데 , 이번에는 마누라가 또 죽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오."
김삿갓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 왔다.
천지간에 가족을 잃은 슬픔이야 그 어떤 슬픔에 견주랴, 생각한 삿갓은 사나이를 이런 말로 위로했다.
"인생이란 누구나 죽는 것이니 ,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고정하시오. 佛家 에서는 사람의 삶을 輪廻로 보아 돌고 도는 것이라 하지 않소 ? 그렇게 생각하면 , 죽음이란 반드시 슬퍼만 할 일은 아닐지 모르오."
사나이는 잠자코 삿갓의 말을 듣기는 하였으나, 지금 그의 슬픔은 몇 마디 말로써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이에 김삿갓은 즉흥시 한 수를 그의 앞에서 읊어 주었다.
<아들이 죽은 뒤에 마누라가 또 죽으니>
<찬바람 해걸음이 처량키 그지없네>
<돌아온 집안은 절간처럼 쓸슬하여>
<찬이불 품에 안고 혼자서 밤새 울리 ..>
哭子靑山 叉葬妻 (곡자청산 차장처)
風酸日薄 轉凄凄 (풍산일박 전처처)
忍然歸家 如僧舍 (인연귀가 여승사)
獨擁寒衾 坐達鷄 (독옹한금 좌달계)
인간의 삶이란 것이 희노애락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교차되다 보니, 어느 순간에 슬픈 일이 닥치는 것일 진데 , 하필이면 아들이 죽은 뒤에 연달아 마누라가 죽은 일은, 누가 보아도 애닳픈 일이며 당사자가 겪는 슬픔은 어찌 말로 다 표현을 하랴 싶었다.
김삿갓은 어떡하든 그를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렇게 말을했다.
"그만 울고 돌아 갑시다. 혼자 집으로 돌아 가기가 쓸쓸할 테니 ,
오늘밤은 나하고 댁에서 같이 지내면 어떻겠소 ?"
김삿갓은 어차피 남의 집 신세를 져야 할 판이었기에 이왕이면 하룻밤을 그와 함께 지내면서 마음껏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자 사나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했다.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나는, 딸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을 장모님이 계셔서 처갓집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 사나이는 아내를 잃은 자신의 슬픔도 크지만, 사랑하는 딸을 잃은 장모님의 슬픔을 헤아리는 갸륵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사나이는 , 김삿갓의 배려가 고마웠던지 , 다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저 고개를 넘어가면 초시 댁이라는 집이 있소. 칠십 넘은 노파 혼자 살고 있는 집이오.
혹시 그곳에 가신다면 오늘 하루밤을 쉬어 가실수 있을것 입니다."
사나이는 비통한 가운데 이렇듯 길에서 만난 나그네의 잠자리 걱정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고맙다고 말을 하며 , 사나이에게 어서 아내를 잃은 슬픔을 추스릴 것을 당부하고 고개를 향해 ,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55회로~~~
■ 방랑시인 김삿갓 (55)~(56)
* 첫날밤 소박맞은 세 자매 "上"
김삿갓은 사나이가 가르킨 고개를 넘어 앞을 살펴보니 , 과연 집이 한 채 있었다.
산골에서는 보기드문 반기와집 이었는데 , 기왓골에는 드문드문 잡초가 돋아났고 활짝 열려 있는 대문은 판자가 썩을 대로 썩어 , 제각각 바람에 너덜 거렸다.
(초시 댁 이라더니 ..초시 양반이 죽고나서 집 안팎을 수리할 사람이 없는게로구나...)
김삿갓은 그 집이 초시 댁이 틀림없어 보였기에 대문 앞에서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칠십 노파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누구냐고 묻는다.
"저는 지나가는 나그네 올시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졌으면 싶은데,
재워 주실 수 있겠는지요 ? "
노파는 대청 마루로 나오더니 딱한 얼굴을 하며 말한다.
"우리 집은 나혼자 사는 집이라오. 사정이 딱해 보이니 들어 오시구려."
노파는 김삿갓을 건넛방으로 인도하며 혼잣말로 걱정을 한다.
"손님이 모처럼 오셨는데 , 대접할 음식이 변변치 않아 어쩌지 ..."
"할머니 !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행여 그런 걱정은 마시고 ,잠만 재워 주셔도 됩니다."
"시장하시지 ? 저녁을 곧 지어 올테니 , 그동안 방에서 편히 쉬구려."
주인 노파가 부엌으로 간뒤 , 방안을 둘러보니 머리맡에는 문갑이 있고 그 위에는 明心寶鑑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오래된 탓인지 책장 곳곳이 여기저기 헤져 있었다.
(칠십 노파가 혼자 살면서도 글을 읽을 정도가 된다면 잘 교양된 집에서 자란 모양이구나...)
김삿갓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편히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후 문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 주인 노파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온다.
들여온 상에는 반찬이라곤 몇가지밖에 없었으나 ,음식이 깔끔하고 먹음직스러웠다.
"저만 먹을게 아니라, 할머니도 함께 드시죠."
주인 노파가 웃으며 대답하는데,
"내가 아무리 늙었기로 남녀가 유별한데, 외방 남자와 음식을 어떻게 같이 먹누.
반찬이 입에 맞을진 모르겠으나 어서 많이 들어요."
자신을 가리켜 외방 남자라고 말을할 때 , 풍기는 노파의 수줍움이 느껴졌기에 삿갓은 더이상 권하지 않고 , 밥상을 물렸다.
밤이 이슥해서 노파가 자리끼를 들여주는데 김삿갓이 노파에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 ! 거기 좀 앉으시죠. 할머니는 이 집에 언제부터 혼자 사셨나요 ? "
주인 노파에겐 무슨 사연이 있어 보여 삿갓이 물어 보았다.
주인 노파는 등잔 뒤에 살며시 앉으며 말한다.
"늙은이가 혼자 사는 것이 무척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모양이구료.
나는 혼자 산지가 벌써 오십 년이 넘었다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아니 그럼, 초시 어른께서 그렇게나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씀 입니까 ? "
김삿갓은 노파의 집을 초시 댁이라고 부른다고 들었기에 주인 노파를 초시의 미망인 인것 으로 알고 그렇게 물었던 것이엇다.
그러자 주인 노파는 초시라는 말을 듣더니 약간 당황하는 빛을 보이더니 , "초시 어른은 내 남편이 아니고 돌아가신 우리 집 아버님이시라오.
우리 집이 초시 댁 이라는 것을 어찌 아셨소 ? "
"조금전에 마을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초시 어른이 부군이 아니고 선친이셨다면 ,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김삿갓은 자신의 짐작이 잘못된 것을 솔직히 사과하고 나서 , "아니 그러면 부군께서 그렇게도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씀 입니까 ?" 하고 다시 물었다.
주인 노파는 한참동안 망설이는 빛을 보이더니 문득 말을 꺼냈다.
"나의 남편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 나는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여자라오."
김삿갓은 너무나 뜻밖의 대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첫날밤에 소박을 맞으셨다니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을 한 노파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신방을 치루는 날 밤에 신랑이 도망을 가 버렸으니 그게 바로 첫날밤 소박이 아니고 뭐겠소."
김삿갓은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실례의 말씀이 될지 모르겠지만 , 할머니는 처녀 때에도 용모가 수려하고 몸가짐도 단정 하셨을 것 같은데 , 어째서 첫날 밤에 소박을 맞으셨다는 말씀입니까 ?"
" 얼굴이 못생겼거나 품행이 단정치 못해 소박을 맞았다면 억울하지나 않지요.
그저 , 모든 것이 팔자 소관이라고 생각할 밖에 없어요."
"아무 까닭없이 첫날밤 소박을 맞다니 , 세상에 그런 팔자가 어디 있습니까 ?"
"그러게나 말이오 그러나 나는 소박맞을 팔자를 타고난 여자인걸 어떡하우. 우리 집은 딸이 삼 형제인데 , 두 언니들도 한결같이 첫날밤 소박을 맞았으니 그게 팔자 소관이 아니고 뭐겠소."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기절초풍 하게 놀랐다.
"네..엣 ?... 삼 형제가 모두 첫날밤 소박을 맞으셨다고요 ? 그게 사실입니까 ?"
주인 노파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한다.
"모든 것은 아버님 산소를 잘못 쓴 탓이라고 생각해요."
조상의 산소를 잘못 쓰면 후손에게 화가 미친다는 말은 흔히 들어오는 소리다.
그러나 산소를 잘못 써 , 딸 삼 형제가 모두 ,첫날밤 소박을 맞았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아닌가.
"묏자리는 대개 地官들과 상의해 정하는 것이 일례이지 않습니까 ?
선친께서 돌아 가셨을 때는 지관과 상의하지 않으셨던 모양이죠 ?"
그러자 주인 노파는 손을 내저으며,
"아버님을 모시는데 풍수와 상의를 안했을리가 있나요. 어머니는 유명하다는 지관을 모셔다가,묏자리를 정했는데 , 그 놈의 지관이 천하의 돌팔이였지 않겠소 ! "
"유명한 지관이 갑자기 돌팔이로 변한 이유은 무슨 까닭인데요 ?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 아버님을 모신 형국은 蠶頭 형으로 누에의 머리에 해당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잠두형에 산소를 쓰는 경우에는 산소에서 바라 보이는 곳에 반드시 뽕나무를 심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놈에 돌팔이 지관은 잠두 형국이 명당이라는 것만 알았지, 그런 형국에는 뽕나무를 심어 놓아야 한다는 것까지는 몰랐거든요.
결국 , 우리 삼 형제는 모두 첫날밤 소박을 맞는 불행을 겪게된 것이지요."
김삿갓은 풍수설을 별로 믿지는 않는다. 다만 노파의 말을 듣고 대뜸 수긍이 되는 점도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이 학문에 정진하던 시절 , 들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로 말할것 같으면 한양의 南山도 잠두 형국이 되는데 , 이태조는 무학 대사의 고언을 듣고 한양으로 천도를 해오자 남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오늘날 蠶室 , 蠶院으로 불리는 곳은 옛날에 뽕나무가 많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산소가 잠두 형국인 것을 아시게 되었다면 , 나중에라도 뽕나무를 심어 놓으셨더라면 괜찮았을 걸 그랬군요."
그러자 주인 노파는 씹어 뱉듯이 말을한다.
""우리 삼 형제가 모두 소박을 맞고 난 뒤에야 그런 사실을 알았으니 ,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니겠소 ? "
"아 , 참 !.. 안타깝습니다."
주인 노파가 이야기 하는 사연이 너무도 구구절절한 까닭에 김삿갓은 자신이 당한 일 처럼, 안타까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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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시인 김삿갓 (56)
* 첫날밤 소박맞은 세 자매 "中"
"그러면 어쩌다가 세 자매분이 각각 ,첫날밤에 소박을 맞으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김삿갓은 주인 노파 자매들이 첫날밤에 어떤 이유로 소박을 맞게 된 것인지 궁금하였다.
노파는 옛일을 회상하는 듯이 잠시 망설이더니 ...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며,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지금으로 부터 70 여년 전, 주인 노파의 아버지는 강원도 원주에서 한양으로 상경하여 젊은시절 학문을 이룬 후 , 한양 남산골에 터를 잡고 지내는 대쪽 같은 청년 선비였다.
그는 십 칠세에 과거를 보아 초시에 대번에 급제를 하게 될 정도로 수재형의 샌님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초시 시험에 급제한 그해 가을, 불현듯 고향에서 비보가 당도 하였으니 , 그의 아버님께서 고향인 원주에서 돌아 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삼년 상을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탈상을 한 뒤 , 여러가지 사정으로 다시는 고향을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노파가 사는 곳에 집을 새로 짓고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며 생활을 해나갔다.
이때 어머니와 혼인을 하게 되었고 , 올망졸망한 딸 셋을 낳아 키우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허나 ,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정하는지 , 노파가 여덟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큰언니 금순이는 열두살 , 둘째 언니 은순이는 열살 , 막내 할머니, 동순이는 여덟살 이었다.
딸만 셋을 데리고 청상 과부가 된 초시 마누라는 딸들을 올바르게 길러 내는 것 만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낮에는 글과 예절을 가르치고 , 밤이면 길쌈과 바느질을 가르쳐 주어 ,세 딸들을 양가집 규수감으로 손색이 없도록 키워왔던 것이다.
그 당시 어머니의 교육이 얼마나 철저 하였던지 , 막내 딸이었던 동순 할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남자들에 대한 경계심을 얼마나 철저하게 주입시켜 주셨던지 , 우리 세 자매는 출가할 때까지 남자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답니다."
김삿갓은 딸 삼형제가 각각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구체적 이야기를 듣고 싶어, 동순 할머니가 이야기를 풀어내게 끔 ,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자당께서 딸들을 교육시키느라 고생이 어지간 하셨군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양가집 부인들은 모두가 그런 정신으로 딸들을 교육시키면서 살아왔던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을 멀리 했다는 것 만으로 첫날밤 소박맞을 이유가 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
"그야 물론이죠. 그러나 무슨 일이나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가져오게 되는거라우. 우리 삼형제가 어째서 한결같이 첫날밤에 소박을 맞게 되었는지 , 차례대로 말씀 드릴 테니
한번 들어 보세요."
그리고 주인 노파는 큰언니 금순이가 소박맞은 이유를 말해 주었다.
금순이는 열일곱 살에 혼례를 치뤘다. 신랑은 그 지방의 토호 세력인 부잣집 아들이었다.
신랑이 혼례를 치루고 신방에서 신부의 옷을 벗기려 하자 , 신부는 신랑의 손길이 몸에 와 닿기만 하면 기절초풍을 할듯이 놀라며 , 옷 벗기를 한사코 거부 하였다.
평소에 남자를 함부로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워낙 철저하게 받아왔기에 , 신부는 첫날밤에 신랑의 손에 의해 옷을 벗어야 한다는 관습을 전혀 몰랐던 까닭이었다.
신랑은 신부의 옷을 벗기려고 밤 새워 달래 보았다.
그러나 신부는 시종일관 신랑의 손길을 냉혹하게 뿌리쳤기에 신랑은 마침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 "너 같은 계집과는 죽어도 안 살겠다." 하며 자기 집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김삿갓은, "어머니의 교육이 지나치게 엄격했기 때문이었군요. 그런 일이 있고나서 도망간 신랑이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습니까 ? "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 노파가 말하는데,
"그때만 해도 어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여서 , 중신애비를 불러 신부를 데려 가라고 사돈 댁에 여러차례 부탁과 호소를 해 보았다오. 그러나 신랑이 죽어도 같이 못 살겠다는데 어떡해요."
"그래서 첫날밤에 소박을 맞게 된것 이군요. 큰 언니는 그렇다치고, 둘째 언니는 어떤 이유로 소박을 맞게 되었습니까 ? "
김삿갓은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였다.
"은순 언니가 첫날밤 소박을 맞은 것도, 결국은 아버님 산소를 잘못 쓴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주인 노파는 이같이 말을하며 , 둘째 언니가 소박을 맞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맏딸이 첫날밤에 소박을 맞게되자 어머니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따라서 둘째 딸이 신방을 치르게 되었을때 남녀간의 육체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면서, "첫날밤에는 신랑이 의례 신부의 옷을 벗겨 주는 법이다. 그런줄 알고, 신랑이 옷을 벗기려 하면 너는 신랑이 하자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들어라. 첫날밤에는 꼭 그래야 하는 법이니라."
하며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그런데 신랑은 워낙 숙맥 같은 위인이어서 , 첫날밤에 신부의 옷을 벗겨 주려고 하지 않았다.
신부는 밤도 깊어 , 혼례행사로 종일토록 지친 몸을 쉬고 싶어, 어서 신랑이 옷을 벗겨 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신랑은 꾸워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신부와 마주 앉은채, 아무리 기다려도 옷을 벗겨 줄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
신부는 성미가 워낙 말괄량이 같은지라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자기 손으로 옷을 훌훌 벗어 버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신랑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
"저는 먼저 옷을 벗었으니 , 신랑님도 어서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 오세요."
자기 딴에는 소박을 맞지 않으려고 선수를 친것 이다.
그러자 신랑이 기겁하며 말했다.
"아니, 신부가 자기 손으로 옷을 활활 벗어 던지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먼저 눕는 경우가 어디 있어 ? "
"신랑님이 옷을 벗겨 주지를 않으시니 , 제가 제손으로 벗을수 밖에요."
"뭐~라고 ! 전에도 남자들하고 한이불 속에서 같이 자 본 경험이 많은 모양이지 ? "
신랑은 이 한마디를 내던지고 부랴부랴 두루마기를 주워 입고 자기 집으로 바삐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둘째 언니는 그렇게 해서 첫날밤에 소박을 맞게된 것이오."
김삿갓은 참고 참았던 웃음을 웃으며 주인 노파에게 물었다.
"두 언니는 그렇게 해서 첫날밤 소박을 맞았다지만 막내인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 첫날밤 소박을 맞으셨습니까 ? "
김삿갓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 주인 노파의 첫날밤이 가장 궁금해졌다.
"두 언니가 모두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데다 , 어머니 마저 그 일로 크게 상심한 나머지 그날부터 울화병을 앓으시더니 , 일년을 못넘기고 급기야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마셨다오.
이렇게 되자 나는 숫제 혼인을 하지 않고 처녀로 늙어 죽을 결심이었지 , 그러나 언니들은 자꾸만 혼인을 하라고 조르는 것이에요."
"언니들로써는 당연한 애기겠죠. 그래 결국은 혼인을 하긴 하셨습니까 ?
"언니들이 하도 졸라대서 나는 마지 못해 혼인을 하긴 했다오. 그러나 나 역시 두 언니들 처럼 똑같이 첫날밤에 소박을 맞게 된 거예요."
그리고 주인 노파는 자기 자신이 첫날밤에 소박을 맞게된 경위를 설명하였다.
삼 형제의 막내 딸인 동순은 열 여덞 살 때 혼인을 하게 되었다.
상대는 고개너머 양지뜸에 사는 유 초시네 집 장남이었다.
신부 동순은 혼인 날짜가 다가오자 , 언니들 처럼 첫날밤에 소박을 맞을까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앞서 혼인했던 언니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 첫날밤에는 반드시 다른 수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날밤을 맞은 신랑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 보았다.
~~계속 57회로~~~
■ 방랑시인 김삿갓 (57)~(58)
* 첫날밤 소박맞은 세 자매 "下"
"첫날밤에는 신부가 반드시 옷을 벗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 옷을 제가 직접 벗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신랑님이 벗겨 주시겠습니까 ? "
큰언니는 옷을 벗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워 소박을 맞았고 , 둘째 언니는 자기 손으로 옷을 벗은 탓에 소박을 맞은 고로, 신부 동순은 신랑의 의사를 존중해 줌으로써 소박을 면할 생각 이었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로 부터 그런 질문을 받자 , 눈 알이 튀어 나롤 정도로 놀라는 것이었다.
"뭣 ? 이게 무슨 소리야 ! 신부가 제 손으로 직접 옷을 벗겠다고 ? "
"신랑께서 옷을 벗겨 주시거나 , 저더러 벗으라고 하시던가 신랑님 좋으실 대로 하세요."
신부는 어떡하던지 소박을 맞지 않기 위해서 자기 정신이 아닌 듯 말했던 것이다.
신랑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입을 딱 벌린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용수철 퉁기듯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지르는데 ,
"계집년이 얼마나 많이 놀아 먹었으면 이 모양이야 ! "
하며, 쏜살같이 밖으로 달아나 버리더라는 것이다.
"하하하 , 소박맞을 운명은 어쩔수 없었던 모양이군요."
"모두가 아버님 산소를 잘못 쓴 탓이예요."
주인 노파는 자기네 삼 형제가 한결같이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것을 산소를 잘못 쓴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산소를 잘못 써 집안이 망하거나 알수 없는 우환과 질병에 고생 한다는 말은 들은적 있으나 , 딸 삼형제가 첫날밤에 모조리 소박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은 없었다.
"그후로 세 분은 아무도 재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 "
김삿갓이 이렇게 묻자 주인 노파는 펄쩍 뛸 듯이 놀라며 말한다.
"여자가 한번 혼인을 했으면 그만이지, 재혼은 무슨 재혼이예요."
"그렇다면 세 분은 명색만 혼인을 했다 뿐이지 , 실질적으로는 일생을 처녀로 늙어 오신 것 아닙니까 ?
"이를테면 그런 셈이지요. 우리 세 자매는 아버님이 물려주신 이 집에서 함께 살아 오다가, 큰언니는 십년전에 돌아 가셨고 작은 언니는 삼년 전에 돌아가셔서 , 지금은 나 혼자 남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주인 노파는 한평생을 처녀로 늙어온 터라 , 칠십을 넘겼음에도 말씨가 처녀처럼
상냥하고 정갈스럽기가 이를데 없었다.
"이 깊은 산중에서 혼자 살아 가시기가 외롭지 않으십니까 ?"
김삿갓이 이렇게 물어 보니 노파는 고개를 살랑살랑 내저으며 대답한다.
"낮이면 온갖 새소리를 들으며 농사를 짖고, 밤이면 별과 달을 바라보며 살아 온 탓이지 별로 외로운 줄 모른다오. 언니들이 돌아가신 뒤에는 일시 외로운 적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그런 외로움 조차 남아있지 않다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란 시조가 불현듯 떠 올라
주인 노파 앞에서 시조를 읊었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水石과 松竹 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다섯밖에
또 두어서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 없노매라
좋고도 그칠 적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김삿갓의 시조를 듣고난 주인 노파는 말을한다.
"청풍과 명월은 돈 한 푼 주지 않고도 이곳에서 마음껏 즐길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김삿갓은 첫날밤에 불행하게도 소박을 맞고도 이를 운명으로 받아 들여 평생을 보낸 여인의 삶이 불현듯 애처럽고 불쌍하여 시인 백낙천의 여자들의 신세 한탄을 읊은 구절이 생각났다.
<인생은 모름지기 여자로 태어나지 말지어라
한평생의 고락이 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人生某作女人身
百年苦樂由他人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방랑시인 김삿갓 (58)
*각 道 의 이름이 지금처럼 불리는 이유.
김삿갓은 원주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때는 가을도 깊어져 초겨울 이었지만 산속 오솔길을 비추는 햇볕은 봄날 처럼 따듯했다.
호젓한 산길을 얼마간 걷다가 어떤 촌로 한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 원주에 사는 친구의 환갑 잔치에 간다는 것이다.
노인은 길을 가면서 김삿갓에게 물었다.
"노형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 "
"저는 한양으로 가는 길입니다."
"허, 한양을 가신다니 부럽소이다. 나는 육십 평생에 원주 나들이 조차 처음이라오.
원주가 경기도 땅이지요 ? " 하고 묻는다.
김삿갓은 촌로의 무식함에 적잖이 놀라면서 ,
"아닙니다. 원주는 강원도 땅입니다. 본디 강원도라는 이름은 원주라는 고을 이름에서 따온 것 입니다."
촌로는 김삿갓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며 되물었다.
"강원도라는 이름이 원주에서 따왔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 "
김삿갓은 걸어 가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옛날에 각 도의 이름을 지을 때 , 영동 지방을 뭐라고 부를까 생각하다가 , 강릉의 머리 글자 "강" 과 원주의 머리글자 "원" 자를 한 자씩 따가지고 "강원도"라고 부르게 되었으니 , 원주는 강원도 땅이 틀림 없는 것입니다."
그 소리에 촌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러면 함경도나 평안도 등도 그런 식으로 생겨난 이름인가요 ? "
"물론이죠.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 일대만은 "경기도"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고 , 나머지는
모두 ,지역에 사람들의 왕래와 활동이 빈번한 고을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지은것 입니다."
"그거 참 재미있구려. 이왕이면 다른 도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노인장의 소원이라면 그렇게 합시다. 함경도는 "함흥"과 "경성"에서 한 자씩 따가지고
"함경도"로 부르게 되었고 ,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에서 한 자씩 따가지고 "평안도"로 부르지요.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에서 한자씩 따가지고 "황해도" ,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에서 한 자씩을 따서 충청도,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에서 한 자씩을 따왔고,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에서 한 자씩 따가지고 "전라도"로 부르게 된 것 입니다."
촌로는 김삿갓의 설명을 모두 듣고나서,
"오늘은 노형 덕분에 늙은이가 좋은 지식을 얻었습니다."
라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김삿갓은 원주 부근에서 촌로와 작별하고 ,발길을 여주로 돌렸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있는 고을을 되도록 피해 가면서 , 명승지가 많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여주의 대표적 명승지는 신륵사(新勒寺) 이다.
신륵사는 봉미산(鳳尾山) 동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 바로 눈 앞에는 한강의 상류가 흐르고 있어 산수의 조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곳이다.
게다가 강가의 바위 위에는 江月軒이라는 멋들어진 정자까지 있는 곳이었다.
강월헌 근처까지 다다른 김삿갓은 주변 경치에 취해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그만 , 하룻밤 묵을 곳을 찾지 못 하였다. 때는 이미 많이 지나 , 서산 넘어 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창공의 달은 마치 대낮 같이 주변의 사물을 고요히 비추고 있었다.
(강월헌 이라더니 제대로 날을 잡았군, 내친 김에 오늘은 강월헌 정자에서 달 구경을 하며 하룻밤을 보내야 하겠구먼 ...)
이렇게 생각한 김삿갓은 천천히 발걸음을 강월헌이 있는 驪江으로 향해 갔다.
그런데 한참 앞서 옷을 하얗게 차려 입은 아낙네 하나가 부지런히 강월헌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로 강월헌에 가는 것인가 ? 아녀자 혼자, 초겨울 달 경치를 구경하기는 너무 늦은 시각인데 ..)
이렇게 혼자 중얼거린 김삿갓은 불현듯 일종의 호기심이 일어 여인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월헌에 올라선 여인은 그곳에서 누가 기다리던 모양인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해요 ... 아이 숨차 !"
하고 소근거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누구인지는 알길 없으나 어둠속에서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늙수구레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도 길게만 느껴지는군, 바삐 오느라고 숨이 무척 가쁜 모양이구먼 , 어서 이리 와 앉아요."
두 남녀는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이 확실해 보였다.
김삿갓은 적당한 위치에서 몸을 숨기고, 정자위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바라 보다가 다음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달빛이 가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으나 젊은 아낙네와 정답게 마주 앉은 남자는 , 속인이 아닌 袈裟적삼을 걸친 노승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치렀던 저의 집 양반 사십구 齊 때에는 스님께서 여러가지로 보살펴 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르겠어요." 여인이 그렇게 말을 하자
중은, "무슨 소리요. 그대의 일을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 주겠는가 ? 그대의 일이 즉 나의 일이니, 앞으로도 어렵게 생각지 말고 나를 자주 찾아 오라구." 하고 말한다.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 그런데 오늘밤은 무슨 일로 저를 여기까 오라고 하셨습니까."
"그대가 무척 외로워 보이기에 , 내가 위로를 해주려고 만나자고 한 것 아닌가 ! "
중은 그렇게 말하며 대뜸 여인을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추는지 한동안 말이 없더니
한참이 지난후 여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스님들은 여자를 모른다고 했는데, 스님만은 여자를 잘 알고 계시는가 보네요."
그러자 노승이,
"무슨 소리 ! 많은 신도들에게 慈悲를 베풀어야 하는 내가 여자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
옛날에 석가여래의 고제자였던 아난은 마등이라는 淫女와 수없이 정을 통해 왔는데, 아난은 중이 아니며 마등은 계집이 아니더란 말인가 ? 오늘날 내가 그대와 이렇게 함께 하는 것도 , 모두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해 보이는 것이라네 ! "
중은 해괴하고 괴상망측한 자신의 짓을 이런 궤변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여인은 짐짓 놀라는 소리로,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 그렇기도 하네요. 그러면 스님은 남녀간의 재미를 속인들 처럼 샅샅이 알고 계신다는 말씀인가요 ? "
하고, 교묘한 말로써 사내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아무렴 ! 내가 여자를 얼마나 잘 아는지 실증해 보이면 될 것이 아닌가 ?"
그리고 중은 여인의 손에 자신의 神物을 직접 쥐어 주기라도 했는지 ,
여인이 별안간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마 ! 스님은 누구를 죽이려고 이런 참나무 방망이를 다리 사이에 숨겨 가지고 다니세요 ?"
그 사내 놈에 그 계집년이라고나 할까. 계집년의 수작도 보통이 아니었다.
서방이 죽은지 두 달도 못되어 한밤중에 호젓한 정자로 중을 만나러 올 정도이니 , 여인의 행실은 고대 소설 ,가루지기 타령의 변강쇠의 마누라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김삿갓은 젊은 계집의 앙큼한 수작을 듣는 순간 , 옛날에 읽어 본 가루지기 타령이라는 고대 소설의 한 장면이 불현듯 머리에 떠올랐다.
천하의 잡년이었던 변강쇠 마누라는 서방의 신물을 어루만져 보며 ,
다음과 같은 익살스러운 사설을 늘어 놓았다.
<"이상히도 생겼네 , 맹랑케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을 서려는지 , 쌍걸랑을 늦게 차고 , 오군문군노(五軍門軍奴) 이런가 복떠기를 붉게 쓰고 , 냇물가에 방아인가 떨구덩 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철고비를 둘러치고 감기가 들었는가 맑은 코는 뭔 일 일꼬, 어린에 젖 게우듯 어찌 게웠으며 ,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장이 궁기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고 소년 인사 배웠는지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댄지 검붉기는 무슨 일꼬, 칠팔 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네...>
천하의 잡년 이었던 변강쇠 마누라는 서방의 신물을 어루만지며 위와 같이 해괴한 일장 사설을 익살맞게 늘어 놓았으나 ,이 젊은 여인은 그만한 말재주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신물을 어루만질수록 믿음직스러운 실감이 났던지, "도데체 이 방망이의 이름을 무어라 하옵니까 ? "
하며, 앙큼스럽게 묻는다.
이에 늙은 중이 자신감에 찬 소리로 콧노래를 섞어 이렇게 뇌까리는 것이 아닌가 ?
"이 방망이로 말하면 만천하의 여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生殺 如意捧이라고 하느니라..선가에는 극락 세계가 있으니 , 모든 여자들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는 이 물건을
일컬어 "생살 여의봉"이라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야 ! "
그러자 여인의 새침한 소리가 들렸다.
"스님은 이 물건으로 모든 여성들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셨습니까 ? 이 물건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여성들을 위한 물건이라면 ,저는 죽어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아니하옵니다."
여인이 갑자기 질투심 어린 소리를 하자, 노승이 크게 당황하는 듯 하더니
젊은 여인을 와락 끌어 안으며 이렇게 뇌까려 대었다.
"중생이 천만이 되어도 인연은 제각기 따로 있는 법. 나룻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넜다고 모두가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은 아니오. 나는 鳳이요, 그대는 凰이 아닌가 ? 자고로 봉과 황은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인연임을 그대는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 내 이제 , 우리 두 사람은 三生의 인연임을 그대에게 실증으로 보여 주리라."
그러면서 늙은 중은 여인을 마루 바닥에 깔아 눕히고 위로 덮쳐 올라 여인의 옷을 벗기는지, 부스럭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잠시후 여인은 별안간,
"으흐흑 !"
하고 외마디 감탄사를 지르더니 잠시 후에는 콧소리로 말을 한다.
"스님은 사람을 죽이시네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스님인줄 알았는데 , 이렇듯 죽게 만드시니 이 무슨 일이오니까 ? "
노승은 만족스런 대답을 하는데,
"생살 여의봉이란, 신통방통 영험하여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 살릴수도 있으니 그대가 조금전 까지는 죽을 것 같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다시 살아났으니 ,앞으로도 살아갈 재미가 있을 것이야...
그래서 이것을 ,생살 여의봉이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 "
하면서 도도하게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외간 남녀의 야합을 더이상 지켜 볼 흥미를 잃었다.
그러면서도 불도에 정진하며 수양을 하여야 할 중의 파계도 문제이지만 , 남편의 사십구 제를 계기로 만난 늙은 중과 눈이 맞아 돌아가는 젊은 여인의 행실에는 개탄을 금치 못했다.
"삼강 오륜은 이미 땅에 떨어졌구나 !
하고 중얼거린 김삿갓은 중놈과 계집이 모르게 강월헌을 빠져 나왔다.
~~계속 59회로~~~
■ 방랑시인 김삿갓 (59)~(60)
*단명하신 대왕과 장수하는 노인.
신륵사에서 서쪽으로 십 여리 떨어진 北城山 양지바른 곳에는 世宗大王의 英陵이 있다. 세종 대왕의 능은 처음에 廣州 大母山에 있었는데 ,
대왕이 승하하신 후 19년이 지난후인 睿宗 원년, 1469년에 이곳으로 移葬 해 온 것이다.
세종 대왕은 모든 문물에 조예가 깊으셨지만 , 불교에 대해서도 남다른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것을 알고있는 후예들은 불심이 깊으셨던 대왕의 영령을 받들어 모심과 함께 , 대왕의 극락 왕생을 기리기 위해 영릉 부근에 守護寺를 새로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땅히 절을 지을 만한 곳을 찾지 못하자 , 영릉에서 동쪽으로 십여리 떨어진 신륵사를 세종 대왕의 영령을 수호하는 절로 삼는 동시에, 신륵사란 이름을 報恩寺로 바꾸었으나, 고려때 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륵사라는 유명한 절 이름을 사람들은 그대로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본다면, 아무리 나랏님의 지엄한 명령이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백성들의 衆意는 존엄의 뜻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이런것 과는 별개로 세종 대왕은 53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 하실때 까지 , 재위 32년간 이룩해 놓은 수 많은 문화업적 중에 단연코 민족의 무궁한 역사에 길이 남을 최대의 업적은 訓民正音의 창제라 할것 이다.
어떤 민족을 막론하고 자기 글이 있고 자기 말이 있는 민족은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글을 통하여 민족의 역사적 자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文者貫道 之器也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문장은 道를 천년을 꿰뚫어 내려가게 하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김삿갓은 이 같은 일을 생각하며 세종 대왕의 능 앞에서 수그러진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세종 대왕께서 좀 더 장수를 하셨다면 , 나라의 문화가 더욱 융성하였을 것을 ) 여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양평으로 가는 길과 , 산악 지대인 이천과 광주를 거치는 길이 있다.
김삿갓은 산과 물을 모두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쪽으로 갈 것 인지를 정하는데는 역시 지팡이 밖엔 없었다.
그렇게 허공으로 던져진 김삿갓의 지팡이가 떨어지며 가리킨 방향은 이천쪽을 가리켰다.
"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더니, 나의 지팡이는 물길 보다 산길이 더욱 좋은가 보군 !" 김삿갓은 이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때는 겨울이었지만, 날씨는 오전에는 따듯하였는데 한낮이 지나면서 부터 갑자기 구름이 크게 일더니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하여 길을 걷기가 몹시 힘들었다.
김삿갓은 마침,지나가는 젊은이를 붙잡고 ,
"혹시 이 근방에 하룻밤 자고 갈 만한 집이 없을까요 ? " 하고 물었다.
그러자 젊은이는,
"우리 집 사랑방에 家親께서 혼자 거처하고 계시니 , 저희 집으로 가시죠."
하고 친절하게 말을한다.
김삿갓은 젊은이를 따라가며 물었다.
"부친께서는 춘추가 어찌 되시오 ? "
"올해 여든여섯 살이시옵니다. 지금은 연세가 많으셔서 이따금 정신이 혼미하실 때가 있으시나 , 젊으셨을 때는 훈장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 두 父子 분의 나이 차가 퍽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김삿갓은 젊은이의 나이를 어림하여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젊은이는 ,
"부친께서는 환갑이 넘은 연후에 저를 보셨습니다." 하며 말을하였다.
김삿갓은 놀랐다.
환갑이면 61세 이건만 , 남자가 그 나이가 넘어서도 자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인가 ?
그러나 김삿갓은 부자간의 나이차가 당장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눈보라를 피해 , 하룻밤을 보낼 곳으로 속히 가는 것이 보다 절실 하였다.
"춘부장 어른이 아흔이 다 되도록 장수하시는 것을 보면, 형공의 효성이 극진하신가 보구려." 김삿갓은 아흔이 가까운 노인이 계시다는 것에 크게 놀라며 말을했다.
"저의 효성이 극진하여 장수하신다기 보다도 , 이곳의 산과 물이 좋은 탓과 평소에 가친께서 섭생에 유의하시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원인이야 어디 있든 간에 아흔이 가까운 노인을 만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 김삿갓은 곧 만나게 될 노인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
이윽고 젊은이를 따라서 "김 훈장 댁"에 당도해 보니 , 집은 비록 초가집 이었으나 본채와 사랑채가 의젖이 갖춰진 품이 어디로 보아도 中農정도는 될성 싶었다.
김삿갓이 사랑방으로 들어와 김 훈장과 초면 인사를 나누었는데 , 주인 노인은 나이를 너무도 많이 자신 탓인지 , 귀가 어두워져 인사를 드려도 대꾸가 없었다.
그러나 , 노인은 나이에 비해 기골이 장대하고 뼈대가 굵고, 구렛나루 흰 수염은 배꼽에 닿을 정도로 길게 자랐지만 ,머리는 거의 다 빠져 , 둥근 머리 주변으로 간간히 흰 머리만 보일 뿐 이었다.
("풍채가 道師같은 어른이군 " ... 김삿갓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잠시후 사랑방으로 저녁상이 들어 오는데 소반에 반찬은 너댓 개였고, 국과 밥주발은 한개 만이 들어왔다. 사랑에 두 사람이 있건만 저녁밥을 한 그릇만 들여 온 것이 의아한 김삿갓 ,
"소찬 이나마 맛있게 드십시요." 하며 자신을 지칭하는 인삿말을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어르신 저녁은 따로 하십니까 ? "
그러자 젊은이가 말하는데,
"저의 아버님은 매일 아침 한차례 '벽곡'을 하시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은 자시지 않습니다.
하오니 손님께선 쾌념치 마시고 저녁을 잡수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김삿갓은 놀랐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의 노인이 산사에서 도를 닦는 고승과 같은 방법으로 식사를 하는 것도 놀라운 일 이지만 젊은이의 입에서 여든여섯의 노인을 "뻔한"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을 자신의 귀로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음, 대단한 일이로군 !)
김삿갓은 저녁을 먹으며 노인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노인은 호롱불 밑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더니 까딱까딱 졸기까지 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김삿갓은 노인을 자리에 눕혀 드렸다.
그러자 노인은 코를 골기까지 하면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여든 여섯의 노인이 환갑을 넘겨 자손을 생산했고 ,다른 사람들은 세끼 식사를 하는데 반해, 하루 한차례 벽곡 만의 식사로 끼니를 이으며 , 말 수가 없고 주변의 변화에 무심한 것은
長壽와 어떤 상관 관계일까 ? ...)
김삿갓의 이같은 의문을 풀어 줄 사람은 노인의 젊은 아들 뿐이었다.
"잠시 아버님에 대해 물어도 될까요 ? " 김삿갓은 저녁상을 가지러 들어 온 젊은이에게 말을 했다.
"제가 여러 지방을 다녀 보았지만 , 춘부장 어른처럼 연로하셨어도 정정한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장수 하시는데에 어떤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 "
그러자 젊은이는 아래와 같이 말을 하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배를 곯지 않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 먹는 음식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쉽게 죽이기도 합니다. 저의 부친께서는 당신의 취향과 여건에 맞춰 , 이미 오래 전 부터 벽곡을 하시기 시작 하시면서 과도한 음식의 섭취로 인한 질병과 거리를 멀리 하시게 되었으며 , 평소에 말을 가급적 삼가하여 기(氣)를 발산하지 않으시며 ,매사를 당신의 현안이 아닌 듯 무심하게 보고 넘기시는 것이 장수의 비결인 듯 합니다." 라고 말을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무병 장수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무병 장수는 어지간한 노력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김삿갓은 노인이 일상을 지내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 노인처럼 평소에 절제있는 생활을하게 되면 수명이 남다르게 오랠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 조반을 얻어 먹고 길을 나선 김삿갓 , 밤새 내린 눈으로 천지가 하얀 소복을 뒤집어 쓴듯,
모두 하얗게 변해 있었다
屋後林鴉 凍不飛 <옥후임아 동불비
晩來瓊屑 壓松扉 <만래경설 압송비
應知昨夜 山靈死 <응지작야 산령사
多少靑峰 盡白衣 <다소청봉 진백의
숲속의 까마귀는 얼어서 날지 못하고
밤새 눈이 내려 사립문이 찌들어 붙었네
짐작컨데 간밤에 산신령이 죽어나 보다
모든 산이 저마다 소복을 입은것 보니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방랑시인 김삿갓 (60)
* 남한산성 치욕(병자호란)
그로부터 두어 달 ,김삿갓이 이천 땅을 떠돌아 다니다가 광주 땅으로 들어섰을 때는 ,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사람이 사는 세상사는 무던히 변덕스럽지만 , 계절의 변화는 매년 올곳이 돌아온다.
어제 까지만 하여도 추위를 느꼈건만 , 입춘이 지나고 보니 조금만 멀리 걸어도 등골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봄볓에 한결 넉넉해진 김삿갓은
문득 시 한수를 읊조려 본다.
<해마다 해는 가고 가고 끝없이 가고
<날은 날이 날마다 끝없이 오고 있네
<해는 가고 날은 와 오감은 끝이 없는데
<우주의 모든 일이 그 속에서 이루어지네.
年年年去 無窮去 <연연연거 무궁거
日日日來 不晝來 <일일일내 불주래
年去日來 來叉去 <연거일내 내차거
天時人事 此中催 <천시인사 차중최
사람의 일생이란 하루 하루가 쌓이고 쌓여 해가 바뀌고 , 그런 해가 쌓이고 쌓여 인생이 모두 지나간다.
어느덛 돌아 보면 아무것도 뜻대로 된 것 없는데 , 무정한 세월 탓 만을 하는 것은 아닌지 ?
세상사 모든 일이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 가건만 ..
사람이 제 혼자 바쁘게 돌아간다.
만사개유정 부생공자망
(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
김삿갓은 모처럼의 봄볓을 맘껏 받으며 무심히 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남한강이 가까워진것 같은데 , 삼전도에 이르러 문득 눈에 띄는 비석이 있었으니, 비문에 새겨진 글은 "大淸皇帝 功德碑"였다.
김삿갓은 그 비석을 보는 순간 , 병자호란의 치욕이 머리에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진땀이 솟아났다.
이 비석은 병자년 호란때 , 청태종 누루하치가 남한산성에 은거하던 인조 대왕에게 항복을 받은 후, 우리로 하여금 강제로 세우게 했던 치욕의 비석이었기 때문이다.
김삿갓은 남한 산성 위에 올라 , 병자호란의 치욕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1627년 滿州)ㅣ의 여진족 추장인 누루하치가 後金이라는 나라를 새로 세운후 우리 조선에 국교 수립을 강요해 왔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전통적으로 명나라와의 국교가 두터웠던 관계로 누루하치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명나라는 불과 35년전 (1592년) , 조선 땅에서 벌어진 왜적의 침입(임진왜란)을 함께 막아낸 朝明연합의 은혜를 베푼 나라가 아니었던가 ?
조선의 국교 수립 불가에 앙심을 품어오던 누루하치가 인조 14년 (1636년) ,저들의 국호를 청으로 고침과 동시에 십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해왔다.
그해가 마침 丙子年 이었고 , 우리는 이후로 이 전쟁을 "병자호란"이라 부르게 되었다.
청태종 누루하치가 십만 대군을 몸소 이끌고 심양(奉天)을 떠난 것은 그해 12월 12일 이었고 그로부터 여드레 후에는 압록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당시 義州 부윤 임경업 장군은 백마 산성을 굳게 잠그고 적의 공격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자 청군은 일부의 병력으로 백마 산성의 공격을 계속하며 주력 부대는 한양으로 한양으로 진격을 계속 하였다.
파죽지세로 진군해 오는 청군으로 위협을 느낀 조정에서는 척화론과 화친론이 분분한 가운데 전쟁에서의 대책과 지원을 세우지도 못하고 급기야 임금이 몸을 피하는 천도를 계획하게 되었다. 한양 인근에 강화도는 조수의 간만차가 크고 , 내륙과 물살이 매우 빠른 큰 고랑으로 이어져
있는데다 큰 농토와 풍부한 水量을 품은 곳이다. 따라서 위급한 국가적 재난을 맞았을때 제일 먼저 천도의 장소로 꼽는 곳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있는 청군은 한양을 공격하기에 앞서, 인조 대왕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강화도를 먼저 점령하여 버렸다.
결국 , 한양의 방어가 무너지자 임금은 장안의 백성을 고스란히 버려둔 채 , 그헤 섣달 하순에 엄동 설한을 무릅쓰고 대신과 군사 만여 명만을 거느리고 한강을 건너 남한 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적은 이 사실을 알아내고 남한산성을 이중삼중으로 에워싸고 외부와의 연락을 완전히 차단함과 동시에 사방으로 총공격을 퍼부었다.
이때 남한 산성에는 많지 않은 군량과 적은 食水 밖에 없었으니 , 불과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인조 대왕은 항복 할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전쟁을 시작한지 꼬박 1년 만인 정축년 1월 30일에 인조 대왕은 특사를 보내 화친을 제의하였다. 말이 화친 이었지 , 실질적으로는 항복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승전의 기분이 도도한 청태종이 아래와 같은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첫째 , 항복을 하는데 앞서 남한 산성 남문 밖 삼전도에 受降壇을 쌓고 , 청태종이 항복을 받을 때 올라 앉을 옥좌를 마련할 것.
둘째, 청태종이 수항단에 앉은후 ,인조는 왕세자와 함께 성안에서 수항단까지 홀몸으로 걸어나와 땅에 엎드려 세번 큰 절을 올릴 것.
세째 , 두 나라는 그 자리에서 강화 조약을 체결하되, 조선국은 청나라가 요구하는 모든 조항을 무조건 받아 들일 것.
네째, 청태종에게 항복을 올린 역사적 장소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수항단을 쌓았던 삼전도에 "대청황제 공덕비"를 새로 세울 것.
그러면서 저들의 요구가 단 한가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한 산성을 사흘 안에 잿더미로 만들겠다는 엄포도 아울러 밝혔다.
궁지에 몰린 인조 대왕은 마침내 청태종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고 왕세자와 함께 수항단으로 걸어나와 청태종에게 땅에 엎드려 항복의 절을 올렸으니 , 그것은 5 천년 역사 이래로 처음 , 이 민족과의 전쟁에서 처음 겪은 치욕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때 강화조약의 내용중에서 중요한 몇가지는 ,
1. 조선의 국왕은 청나라에 대하여 臣의 禮를 행할 것.
2. 조선은 명나라와 국교를 단절함은 물론이고 이제부터는 청나라 年號를 쓸 것.
3. 조선은 왕세자와 次子를 청나라에 인질로 보낼 것, 등 이었다.
이러한 강화 조약과는 별개로 더욱 막심한 피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백성들의 피해였다.
오랑캐 군사들이 전국을 휩쓸고 돌아 다닐 때 , 백성들의 재산을 닥치는 대로 약탈해 갔을 뿐 아니라,
무고한 백성 5만 여명을 포로로 납치해 갔다.
그렇게 납치해 간 사람중 남자는 從으로 부려 먹었고 ,젊은 여자는 노리개로 삼았다.
전쟁이 모두 끝난 후 ,납치해 간 우리 백성을 돌려 달라는 요구에 청나라 되놈들은 신분의 차별을 두어 일반 백성은 100냥에서 부녀자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1500냥 까지의 보상금을 요구했다. 5만 여명이나 되는 포로의 보상금은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가족을 데려오기 위하여 어떤 사람은 가진것 모두를 내다 팔았고,
조선의 경기는 전쟁의 피해와 함께 , 형편없이 피폐해졌다.
그러나 전쟁의 여파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병자호란으로 인해 , 이전에는 없었던 "환향녀"(還鄕女) 라는 새로운 말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중에 환속금을 지불하고 돌아온 여자들을 특별히 환향녀로 불렀다.
환향녀란 , 글자 그대로 청나라 군사에게 끌려갔다가 고향에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청나라 군사에게 끌려갔던 여자들이 깨끗한 몸으로 돌아 왔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환향녀라는 말 가운데는 정조를 되놈에게 잃은 여자라는 뜻이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었다.
이후로 세월이 지나면서 환향녀는 잊혀져 갔지만 , 말의 씨앗은 계속남아 , 오늘날에 외방 남자와 정을 통한 여자를 화냥년이라고 부르는 어원은 병자호란 이후, 환속금을 내고 풀려 돌아온 환향녀에서 비롯된 말인 것이다. 불가피 하다면 전쟁을 해야한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단시간내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결집하여 승리하여야 한다.
아니 , 그것 보다는 지나온 역사의 교훈을 잊지말고 만전의 사전 태세를 갖추어야한다.
"有備無患"
우리 조선이 ,1592년 임진왜란과 1598년에 벌어진 정유재란의 원인을 살펴 방비를 갖추었다면 불과 38년후 벌어진 (1636년) 병자년 호란때 ,밀려오는 되놈들을 격퇴 시킬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가슴을 안고 , 치욕의 현장인 남한 산성을 내려오는 김삿갓의 발걸음은 모래자루를 매단 듯, 한량없이 무거웠다.
~~계속 61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