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어디로 갈까요」중에서
Posted by 김서령 on 2012-09-06 00:00:00 in 2012 전성태, 문장배달, 문학집배원 | 3 댓글
김서령,「어디로 갈까요」중에서
“오랫동안 못 돌아갔겠네요.”
“육 년쯤? 그쯤 됐지요. 다들 눈이 빠지게 나를 기다릴 텐데, 면목 없습니다.”
모자란 사람. 아무도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 거야. 남은 사람들을 온통 빚더미에 올라앉게 한 주제에, 그들이 당신을 그리워할 거라고?
(……)
“왜 안 돌아가요?”
술기운으로 발그레해진 그가 키득거렸다.
“안 돌아가긴요! 못 가는 거지…….”
“불법체류 벌금만 내면 되지 뭘 그래요. 여기서 번 것도 있을 테고, 또 가서 일한 다음에 빚 갚으면 되지.”
그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취기가 오르는 모양이었다.
“에이, 바보 아니야? 그것 때문에 못 가는 건가, 어디?”
“그럼 왜 못 가요?”
“아무도 안 기다리니까 못 가죠, 누가 나를 기다린다고 거기를 가요…….”
(……)
“저기, 갈 데가 없으면 그냥 여기 있어도 되는데.”
나는 웃을 수도 없어 가만히 그의 얼굴을 쳐다만 보았다.
“아이고 참, 내가 뭐 같이 살자 그랬나? 그런 게 아니고요…… 형편이 좀 거시기하면, 그러니까 마음도 좀 그렇잖고 하면 여기서 한동안 지내도 된다고요. 작은 방 내드리면 거기선 혼자 주무시면 되니까…….”
“가야 해요. 내일 갈 생각이에요.”
술이 확 깨는가 보았다.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허겁지겁 말을 잇는다.
“저기, 제가 수작 부리는 걸로 오해를 하셨나 본데요, 그게 아니고요.”
“알아요.”
정말 알겠다. 수작이 아니라는 것쯤 나도 알 것 같다.
(……)
“어디로 가요?”
“잘 모르겠어요.”
그가 주먹을 쥐고 가슴을 통통 쳤다.
“그런 말이 아니고! 지금 어디로 가느냐고요. 베네치아로 가는 건지, 파리로 가는 건지, 런던으로 가는 건지! 아니면 한국으로 가는 건지 말이에요!”
나도 가슴을 칠 노릇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그걸 잘 모르겠어요.”
일부러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닌데,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마음대로 하세요. 나도 몰라.”
“들어가세요. 저도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요.”
그제야 내려다보니 그는 슬리퍼 바람이다. 저걸 신고 뛰어왔구나.
나는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냈다. 자판기에서 콜라 한 캔을 뽑아 그에게 내밀었다. 겉절이와 부추김치와 삼겹살과 또 홍어에 대한 보답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차가운 캔을 만지작거리던 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미니 콜라를 덥석 바지 주머니 안에 집어넣는다.
“잘 가고요, 기차 거꾸로 타지 마세요.”
나는 끄덕인다. 추리닝 바지가 콜라캔 때문에 축 처졌다. 그가 돌아서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외로워질 것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그의 손을 조금 더 오래 잡고 있었다.
◆ 작가_ 김서령 –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어디로 갈까요』, 장편소설『티타티타』가 있음.
◆ 낭독_ 성경선 – 배우. <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에 출연.
박웅선 – 배우. 연극 <오셀로>, 영화 <한반도> 등에 출연.
◆ 출전_ 『어디로 갈까요』(현대문학)
◆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 김태형
사는 건, 참 맵다. 소설 어느 틈에 한숨처럼 박힌 문장입니다. 무대는 로마이고,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 지금 나는 한국인 민박집 주인 사내와 작별하고 있습니다. 서른일곱 살 나는 9주 전 남편을 잃고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왔지요. 피부과 개원의였던 남편은 엄청난 빚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놓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친척들과 지인들과 관계가 망가집니다. 파탄이 나기 전 이들 부부관계는 어땠을까요? 늦는다는 남편의 전화에 여자는 텔레비전에서 전하는 지하철 방화사건 뉴스를 전합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남편이 말합니다. “너는 아직도, 그런 일들에 관심이 가나보네. 나는 나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여자가 임신을 했을 때 우리, 아이를 가질까, 하고 조심히 남편을 떠봅니다. 신용카드 고지서에 얼굴을 박고 있던 남편의 반응은 “다 같이 죽자는 말이구나.”입니다. 사는 게 참 맵죠. 「삼포 가는 길」의 결말에 이르러 영달과 백화와 정씨는 돌아갈 고향이 없어진 데 절망합니다. 그리고 사십 년을 물러나 김서령은 서로가 서로에게 짐스러워져 갈 곳 잃은 시대의 초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실상 우리가 원하는 건 저 악수하는 손길의 온기 정도인데, 삶이 이토록 뿌리까지 매워진 건 다시 따져봐야 합니다.
문학집배원 전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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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원형으로 보면 좀 과할까?
이리저리 빌린 소설집에 실려있는 이 단편소설을 두번이나 읽었는데…. 성우의 목소리가 서술자인 여주인공의 심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네요…. 낭독하는 성우들이 단편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단편이니… 그리 길지 않으니…
그래, 맵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악수할 우아함 조차, 가방을 쌀 시간조차 없이 허덕이며 사는. 그래서 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