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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직무자들의 시노달리타스 여정 참여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모임 시작에 맞추어, ‘제1차 세계 전문 평신도 직무자 모임’이 지난 10월 1일부터 5일까지 로마에 있는 성 마리아의 집에서 열렸다. 주제는 ‘성직주의를 넘어, 하느님 백성을 위해: 서품받지 않은 직무자들에게 권한 부여’다. 이 모임은 독일의 ‘전문 사목 직무자 협회’에서 주최하였다. 나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에서 함께 일했던 필리핀 동료를 통해서 모임을 소개받고 참석하게 되었다.
모임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신학교육을 받은 전문 평신도 직무자들이 함께 모여 경험과 성찰을 나누고, 세계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 실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기 위해서다. 둘째, 이번 세계주교시노드 과정에, 특별히 대의원으로 참석하는 대표자들에게 이 모임의 성찰 내용을 전달하여 논의에 반영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번 모임에는 세계 4개 대륙의 10개 국가에서 석사, 박사 신학교육을 받은 전문 평신도 직무자 21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주교회의, 교구, 본당(성당)에서 전례, 교리교사 양성, 예비신자 교리, 청년 사목, 상담 등 역할을 담당하는 직무자들과 병원, 사회사목 분야 종사자들 그리고 사목연구소 연구자 및 신학교수 등이었다.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을 방문한 참가자들. ⓒ독일 전문 사목 직무자 협회
친교, 사명, 참여의 시노달리타스 체험 방식 프로그램
나흘 동안의 모임 프로그램은 보고(See), 판단하고(Judge), 행동하는(Act) 방법론의 흐름으로 구성됐고, 시노달리타스 영성에 따라 ‘경청, 대화, 식별, 침묵, 기도’ 과정 안에서 성령께 귀 기울이며 진행됐다. 또 참가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조정했고, 그림 카드와 색깔 카드 나눔, 갤러리 쇼, 체험 척도 나타내기, 자연과 춤 기도 등 다채로운 방법을 활용했다. 모임은 개인 성찰, 짝 대화, 다양한 소그룹 모임과 전체 모임의 역동 안에서 자각과 참여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모임 결과를 담아 ‘시노드 참가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고, 이번 세계주교시노드 대의원 및 관계자들과 만나 이 편지를 전달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자연과 춤의 아침기도, 갤러리 쇼와 전체 모임. ⓒ노주현
평신도 교회 직무자의 삶과 사명, 기쁨•도전•희망 체험 나눔
참가자들은 평신도 교회 직무자로서 교회 직무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과 바라는 점을 그림 카드(Dixit Card)를 활용하여 나눔을 하였다.
(왼쪽부터) 그림 카드 활용 나눔. ⓒ독일 전문 사목 직무자 협회; 그림 카드와 자기 소개. ⓒ노주현
∙ “가나 교회는 풍랑이 일고 있는 바다처럼 교회가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도 ‘잠자고 있는 교회’ 같아요. 교회가 깨어나 새로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풍랑을 헤치며 항해하는 작은 돛단배처럼 저의 교회 직무,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교회 개혁을 향해 나아가고 싶습니다.”(임마누엘, 가나, 신학교수, 본당 활동가)
∙ “교회 직무 참여는 하느님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신앙과 삶을 춤처럼 표현하는 것 같아요. 저의 평신도 양성 활동이 이런 춤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교회가 시대에 맞게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춤을 출 수 있기를 바래요.”(조이, 필리핀, 사목센터 사목일꾼)
이어서 색깔 카드를 이용해 평신도 교회 직무자로서 체험한 기쁨과 도전, 희망에 대해 소그룹과 전체 모임에서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 기쁨: “교회 구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생겨나서 성장한 기초교회공동체가 교회의 힘이 됩니다.”(페드로, 볼리비아, 지구와 본당에서 평신도 양성 및 전례 담당), “미국 교회는 다양하고 풍부한 신학적 자산이 있어요. 그리고 주교들과 전문 평신도 직무자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스테이시, 미국, 신학 교수)
∙ 도전: “성사가 신자들의 삶에 과연 어떤 의미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성찰하면서 성사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가브리엘라, 오스트리아, 사목연구소협의회 책임자), “요즘 젊은이들은 신학을 공부하고 본당에서 유급 평신도 직무자로 일하는 것에 관심과 매력을 느끼지 않습니다.”(프레디, 스위스, 본당 사목 직무자)
∙ 희망: “교회에서 평신도 역할과 참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커지고 있어요.”, “평신도의 적극적 참여가 큰 힘입니다.”(공통 의견)
평신도 교회 직무자 체험 나눔. ⓒ노주현
참가자들의 나눔 안에서 공통점도 많았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교회 상황과 사회, 문화, 종교적 현실의 차이가 나타났다. 참가자들은 평신도의 교회 직무 수행과 교회 현실은 역설(paradox) 상황, 즉 빛과 어둠, 머무름과 나아감, 긴장과 성장, 갈등과 조화, 도전과 희망이 공존하는 여정이라는 데 공감하였다. 평신도 직무자들이 ‘같으면서도 다른’ 각 지역 교회의 상황과 시노달리타스 실천을 위한 시도와 노력을 서로 나누고 배우면서 함께 나아가는 한 걸음이, 교회가 닫힌 시선과 갇힌 마음에서 벗어나 교회의 “천막 터를 넓혀”(이사 54,2 참조) 가는 길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성직주의와 시노달리타스
마당에 모여 일정한 길이를 0-10까지 척도로 나누고, 각자 체감하는 성직주의와 시노달리타스 실천 정도에 따라 줄을 서서 체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성직주의를 가장 심하게 느끼고 있는 참가자는 청년 요하네스(독일, 신학박사 과정)였다. “신학이 갖는 학문의 가치와 내용과는 별개로 교수와 학생의 관계에서 위계적인 상하 권력 구조가 작용하는 것을 많이 느끼는데, 성직주의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참가자들은 이처럼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보다 성직주의를 더 강하게 체감하며 문제의식을 느끼고, 교회를 외면하거나 떠나는 현실에 공감하였다.
성직주의 체험 척도 나눔 ⓒ독일 전문 사목 직무자 협회
같은 방식으로 시노달리타스 실천에 대한 체감 정도를 물었다. 시노달리타스가 비교적 잘 실천되고 있다고 응답한 참가자는 필리핀의 조이 박사였다. “필리핀에서는 시노달리타스를 신자들의 삶과 문화에 스며 있는 노래와 춤 등을 통해 표현하고 있어요. 신자들의 이해가 쉽고 기초교회공동체를 통해 참여가 활성화되는 것 같아요.” 시노달리타스가 어느 정도 실천되고 있다고 응답한 콘스탄틴 박사(독일, 본당 사목 직무자)는 독일 ‘시노드의 길’(Synodal Path)에 3년 동안 참여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교회의 현안을 토론, 식별하고 결정하는 여정을 함께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시노드 여정이지요. 그렇지만 여전히 논쟁거리가 많이 남아 있고 어떻게 적용해 갈지 과제가 많지요.”
권력과 권위
이 모임을 준비하고 참여한 크리스티안 교수(독일, 뮌스터 대학)는 성직주의적인 교회와 시노달리타스적인 교회 모습을 권력과 권위의 차이로 설명하였다. 성직주의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권력으로 규정된다. 권력(power)의 라틴어 어원 ‘posse’는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성직주의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성직자가 권력을 가진 주체로서 평신도를 객체로 여기고 주체가 시키는 일을 객체가 이행하게 하는 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시노달리타스적인 교회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권위에 의해 규정된다. 권위(authority)의 라틴어 어원 ‘augere’은 ‘다른 사람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능력’을 의미한다.(의안집, 57항 참조) 시노달리타적인 교회에서는 성직자와 평신도가 하느님 백성으로서 상호 동등한 관계 안에서 서로를 인격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여기고 권한과 책임을 나누며 함께 성장해 간다.
참여와 공동책임
크리스티안 교수는 시노달리타스적인 교회를 상징하는 프랑스 푸아티에(Poitiers) 대교구의 알베르 장 마리 루에 대주교의 일화를 소개했다. 루에 대주교는 주교의 모든 직무 권한을 상징하는 주교의 지팡이를 사제와 평신도와 함께 나누어 잡고 같이 걸어가면서, 하느님 백성 모두가 교회 사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고, 교회 직무에 대한 권한과 공동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자료 출처 = 크리스티안 교수 발표 자료)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했던 프랑수아 마르티 추기경도 “교회 직무를 넓은 의미로 정의하면.... 서품받지 않은 직무자들에게 지도력의 권한를 부여해야 하고.... 주교회의에서도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참가자들은 이번 시노드 의안집에서도 다루고 있는 것처럼 세례성사로 인한 평신도들의 교회 직무 참여에 대한 더 큰 인정과 시대의 징표에 비추어 어떤 직무가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개선(의안집, 제2부 2.2 참조)되어야 하는지 더 깊이 성찰, 식별하기로 하였다. 또한 더 논의가 필요한 중요 주제 4가지를 선정-1) 평신도 직무자 지원 구조(양성, 신학), 2) 평신도 직무자와 성사의 관계, 3) 탈성직주의, 4) 평신도 직무자의 공동책임-하고 이를 이번 시노드 의안집 내용과 연결하여 토론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시노달리타스, 낡은 경계와 질서를 넘어 하느님의 시간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길
참가자들은 평신도 교회 직무자로서 체험한 기쁨과 도전, 희망을 나누고 성직주의와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나눔과 토론, 강의와 성찰을 통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직주의의 위계적 권력 구조와 관계, 문화와 영성을 성직자와 평신도가 상호 협력하고 공동 책임을 가지고 참여하는 친교의 권위 구조와 관계, 문화와 영성으로 바꾸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였다.
이 과정에서 교회가 경청하는 교회로서 모든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이가 자유롭고 담대하게(parrhesia) 말할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성직주의를 넘어 시노드 정신을 실현해 가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성령 안에서 함께 걸어가며 이루어지는 담대한 발언, 상호 경청, 대화가 성직주의를 극복하고 시노달리타스를 실천하는 방법이고 과정이고 길일 것이다. 교종 프란치스코도 “대화만이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다. 사실, 경청하고 선입견을 버리는 것은 성직주의의 위험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교회는 주님의 빛과 성령의 인도에 따라 거짓된 안도감을 주는 낡은 경계와 질서를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자 자연의 비움과 내려놓음을 배우는 성찰과 식별의 시간이다. 붉고 푸른 이 가을날에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모임이 곧 마무리된다. 이 총회가 시노드 여정의 끝이 아니라 시노달리타스를 향한 새로운 ‘시작의 시작’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 ‘시작의 시작’은 이미 나 있는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함께 만들어 가며 걷는 희망의 순례길이다. 모든 평신도 직무자가 이 길을 기쁜 마음으로 함께 걸어갈 때, 하느님의 시간(Kairos) 안에서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 구원의 날”(2코린 6,2 참조)임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아침 기도 후 성령 구름 하늘. ⓒ노주현
노주현(비비안나)
의정부교구 사목연구소 초빙연구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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