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터의 고뇌
이화여대에서 강연되는 독일의 문학과 교육 제 1차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책은 사실 그 전에도 정말 많이 들어본 책이지만, 막상 시간을 할애하여 읽어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대한 강연을 듣게 되었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
현재 우리는 괴테의 이 작품의 이름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현재 번역본으로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라고 나왔다고 한다. 한글로 ‘슬픔’이라고 번역한 독일어가, ‘고뇌’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강연의 초점이 ‘슬픔’이 아닌 고뇌, 즉 ‘고통’에 맞춰졌다. 단지 번역 하나만으로도 강연의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베르터의 사랑
베르터가 사랑한 여자 로테. 그녀는 약혼한 사이와 다름없는 알베르트를 둔, 결국 이뤄질 수 없는 여인이다. 그가 로테를 사랑한 방식에는 현재 우리의 모습과 어떤 점이 다른 걸까? 강연을 해주신 전동열 교수님께서는 바로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하셨다. 베르터는 인간의 그 본질적인 모습 자체를 보고 로테를 사랑했다. 반면에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잠깐의 인연도, 현대 사람들은 이익을 따지고, 계산을 하며 이뤄나간다. 현대의 사회는 산업화 된, 자본주위화 된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을 때 사랑 때문에 인생을 죽음으로 이끄는 베르터에 공감하지 못하고, 낯설어 하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순수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며 사랑을 한다면, 우리도 베르터가 된다.
이 점은 베르터의 이런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점점 더 로테에게 집작하는 베르터를 보고, 로테는 베르터에게 당신은 날 사랑하는게 아니라, 날 가질 수 없다는 그 욕망과 나에 대한 환상 때문에 날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때 베르터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 참 실용적이군요.”
결국 베르터는 사랑을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행복으로, 자신을 이루는 존재의 이유로 보았던 것이다. 아무 조건도 목적도 없는 순수한 사랑. 베르터의 순수한 사랑을 보면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진정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랑한 적이 있었는가? 언제부터 이렇게 척박한 인간관계를 가지게 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니 참 씁쓸했다.
행복이 곧 불행의 씨앗이다
베르터는 로테를 만나기 전 까지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로테를 만나고 난 후부터 그 전의 행복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오히려 그의 삶을 불행으로 이끌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베르터와 로테는 이미 너무도 깊게 생각과 마음을 나누었다. 결국 베르터는, 결혼 후에 자신을 피하는 로테를 보며 자살을 택한다. 베르터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는 베르터의 사랑 말고, 농부의 사랑 이야기 또한 나온다. 농부는 과부의 집에서 일하는데, 그 과부를 굉장히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를 억지로 취하려다 그녀의 집에서 쫒겨난다. 얼마 후 그를 대신해 들어온 다른 농부와 그녀가 사이가 좋은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의 자리를 다른사람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 들어온 농부를 죽인다.
이처럼 사랑은,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행복은 한 사람을 불행으로 이끄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베르터나 위 이야기의 농부가 한 순수한 사랑, 본질적인 사랑은 인생을 파멸으로 이끈다는 것일까?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 해 봐야할 인생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베르터의 말을 통해 보는 사회
베르터의 말은 괴테의 생각을 대변한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아니다. 그 속에선 계급, 인간의 이성의 회의, 사회 윤리 등 수많은 사회문제가 담겨있다.
그는 제도 자체에 주목하는 인간은 멍청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제도가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고,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급주의 사회에서 베르터, 즉 괴테는 더 나아가 세상을 볼 줄 아는 시선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괴테에게 ‘젊은 베르터의 고뇌’란?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책을 쓰면서 베르터는 죽었고, 나는 살았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르터는 사랑으로 인해서 고뇌,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이 고통이 과연 삶에서 부정적인 영향만 지닐까?
우리는 고통을 받으며 불행의 길을 걸어가지만, 때로는 고통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도 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인지하고 자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에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 없이 인생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사실 베르터의 사랑이야기는 괴테의 사랑이야기이다. 괴테는 자신의 친구의 약혼녀인 샤롯로테를 사랑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을 받으며, 그를 대변하는 인물 베르터를 내세워 문학을 그려냈다. 베르터의 고통을 글로 적고 깊이 이해하며 괴테는 스스로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소설 속의 베르테는 죽었지만, 괴테는 살 수 있었다. 고통에 관한 이해가 그의 삶을 살린 것이다.
베르터, 어떤 삶이 더 나았을까?
베르터는 로테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로테를 만나고, 더 엄청난 행복을 마주하고 나서는, 그 행복이 곧 불행을 불러와 결국 죽음이라는 최대의 고통에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베르터는 로테를 만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동열 교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베르터가 로테를 만나 사랑했다는 점은 사라지는 것이 좋을 기억이 아니다. 베르터는 “당신을 위해 죽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나는 얼마나 바랐던가요?” 라는 말을 한다. 사랑하는 로테를 위해 겪는 고통, 죽음까지도 베르터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온 것이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많은 관점에서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눈치채지 못한 괴테의 깊은 생각을 알 수 있었고, 베르터가 한 사랑이 얼마나 순수한 본질적인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는 조건없는 사랑인지 알게 되었다. 나아가 베르터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의미 뿐만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모순, 계급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들은 알베르트처럼 정해진 규율 속에서 이성을 고집하며 살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 규율을 어기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망정, 진정으로 이런 삶이 의미가 있는 걸까? 가슴을 울리는 사랑을 하고, 때로는 내 감정에 이끌려 삶의 장벽에 부딪히는 삶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강연을 통해 베르터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같은 작품 속에서 나 하나의 생각에서도 이렇게 다른 생각과 감상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문학을 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속에 변화가 올까? 이런 상상을 하니 벌써 어떤 책을 접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 기대 된다. 아직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다는 사실에 설렌다.
안녕하세요 이번 강연을 듣게된 한 고등학생입니다. 이렇게 막상 글 올리려니까 부끄럽네요 //☞☜ 헿
첫댓글 와~~~논술세대라서 그런건지 어쩜 이런 후기를. . .앞으로의 미래가 넘 기대됩니다^^
논술세대라 글잘쓰는거 절대 아님....논술은 학교에서 안가르쳐줘요...ㅋㅋ 개인의 역량 차이임
혹시 아는 여학생~~~
아뇨 우리 딸과는 달리 따뜻하게 글을 쓰는 학생이네요...제가 좋아하는 글쓰기 형태입니다.
감사합니다 ㅜㅜ 아직 미숙한 점이 많은데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까 쑥쓰럽네요 //
짝짝짝..어쩜이리도
현장에서도 어린 친구들 덕에 많은 자극을 받았는데..
역시나 훌륭하네요^^
감사합니다!! ㅜㅜ
여학생다운 감수성 돋는 글이네요^^
바로 여학생인지 아시네욯ㅎ 감사합니다!
훌룡합니다. 수요일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우 부럽네요^^꼭 수욜오세요! 이스페이스님!
논술시험이었다면 백점입니다. 논술 출제도 해보고 채점도 해보았죠. 완전한 서술입니다. 논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 나아가 공부 잘하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핵심(어) 발견하기'에 있습니다. 핵심을 발견해내고 핵심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게 요체입니다. 하지만 제가 논술 백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이 글에서 대해 하는 말은 아니고요. 일반적으로 우리 교육에서 아쉬운 점, 창의성이라는 것이죠. 그건 창조성이기도하고요. 그것의 근본은 기발함보다는 생명성에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창조 원리를 따르는 것이고요. 공간 땜에 제 방으로....
아직 부족한 점 많은 글에 이렇게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ㅜㅜ 앞으론 제 이야기도 쓰고 살도 붙여서 더 마음을 울리는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