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비밀 공간이 열렸다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 언론 공개
지난 6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계자가 제11수장고를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수장고는 박물관의 비밀 공간 중 하나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2016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차례 일부 수장고를 공개한 이후 철저히 봉인돼 있던 국립고궁박물관의 수장고가 6월 5일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언론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공개회로 박물관 개관 이래 최초로 진행된 자리다.
정조 책봉할 때 만든 유물 최초 공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은 지하에 16개 수장고와 본동에 3개 수장고 등 모두 19개 수장고를 운영하고 있다. 1962년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청사)의 안보회의용 지하벙커를 개조한 곳으로, 이후 1983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쓰이다가 국립고궁박물관 개관과 함께 수장고로 사용되고 있다.
수장고는 본관 지하로 내려가 300m가량의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8단계의 보안절차를 거쳐야 할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수장고는 어보류를 보관한 제10수장고, 현판류를 보관한 제11수장고, 열린 수장고 제19수장고다.
이번 공개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유물도 많았다. 1759년 영조가 당시 8세였던 정조를 왕세손으로 책봉하며 만든 죽책·옥인·교명 및 관련 부속 유물 등 제10수장고에 보관된 유물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외에도 제10수장고에는 조선 왕실 어보·어책·교명(보물) 628점 등이 수장돼 있는데, 이들 유물은 오동나무로 만든 4단짜리 수납장에 개별 보관돼 있다.
제11수장고에 보관 중인 인조의 잠저(임금으로 추대된 왕족이 왕이 되기 전 살던 집) 어의궁(於義宮) 현판과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 현판 등도 함께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경모궁 현판은 하단부 테두리 나무가 소실돼 안정성을 위해 거꾸로 보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창경궁 내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신위를 모신 사당 현판도 실물로 공개됐는데 현판 세 개는 모두 한 판에 걸려 있다.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포함한 조선왕조 궁중 현판 766점 등이 있다.
이밖에도 수장고에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과 창경궁 자격루 누기,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 등 국보와 조선왕조 의궤, 조선왕조 어보와 영조 어진, 앙부일구, 국새 황제지보,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등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5수장고에 보관 중인 조선시대 왕실의 도장인 어보.
수장고는 본관 지하로 내려가 300m 가량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8단계의 보안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진 뉴시스
왕실 유물에 대한 관심 제고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국가유산청 출범과 함께 유물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수장고를 공개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이어 “왕실 유물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 “국민들에게 왕실 유산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게 고궁박물관 분관 설립 등 공간을 확대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개관 이후 소장품 수량 증가로 수장고 과밀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데다 경기 여주시의 임시수장고는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에 한계가 있는 등 안정적인 유물관리가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실제로 국립고궁박물관은 초대형이 많은 왕실 유산 특성에 맞는 수장·보존처리 공간 마련을 위해 향후 전시형 수장고 형식의 분관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유물을 적극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교육, 체험, 지역민 대상 문화행사 등 복합문화공간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다.
한편 현재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는 총 8만 8530점(궁·능·종묘 등 이관 유물 등)이 유형별로 분산 수장 중이다. 이 중에는 지정·등록유산 총 45건(국보 4건, 보물 27건, 국가민속문화유산 1건, 국가등록문화유산 13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5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 목록 1건, 시도문화유산 3건이 있다.
임언영 기자
*국립고궁박물관
국가유산청 소속 기관으로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2005년 8월 15일 개관했다. 조선 왕실·대한제국 황실 유물의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전시·교육을 위해 운영되고 있다. 2024년 5월 말 기준 조선 왕실·대한제국 황실 유물 8만 8530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다양하고 시의성 있는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23년 관람객 수는 88만 명(내국인 약 73만 명, 외국인 약 15만 명)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