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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께 To the pastors, priests and nuns of Korea
샬롬! 한국이라는 작은 한반도에 5천만의 국민이 약 3000년 동안 같이 살아왔습니다. 유럽이나 중국이나 중앙아시아와 달리 한민족이 별로 다른 민족과 섞이지 않고 단일 민족으로 약 3000년이란 긴 세월을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평화롭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는 반도 국가로 일본이나 중국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임란과 병란 후에 유교가 이런 큰 환란에 대해서 잘 대처하지 못하고 한계를 드러낼 때 중인들을 중심으로 실학이 융성하고 서양학도 소개가 되는 가운데 실학자들에 의해서 청나라로부터 천주교가 소개가 되고 자생적으로 연구하고 믿는 집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수광의 천주실의는 천주교를 가장 먼저 소개를 한 책으로 보이는데 이는 종교개혁에 대한 반 개혁으로 로율라를 중심으로 예수회의 선교가 중국과 일본 등에서 불타올랐는데 우리가 아는 마테오 리치의 저술로 그는 중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병자호란 후에 중국에 왕자를 볼모로 보내어서 청나라 공주와 결혼을 하는 조선의 왕자와 사신들이 청나라에서 천주교를 접하고 서적도 가지고 들어와서 소개를 했습니다. 이보다 먼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역시 일본에 왔던 천주교 신부들이 전교를 잘 했고 그래서 장수 중에서도 천주교를 믿고 병사도 다수가 믿었기에 이들에게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서 스페인 선교사 싸스 데베스가 조선에 와서 전쟁 중에 함께 했으며 조선의 모습을 교황청에 편지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조선에서 일어난 일들은 하나님의 역사요, 성령의 역사요 말씀의 역사입니다. 이를 저는 생생하게 저의 경험으로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40년 전에는 교회도 성경도 예수님도 전혀 모르는 27세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성수 장로께서 성경책을 한 권 주셨습니다.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주셨습니다. 교회에 나오느라 예수를 믿어라 하는 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 후에 완전히 회개하고 처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저를 도구로 써 주세요 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제가 그렇게 변했습니다. 이는 성경책과 하나님의 역사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불교에 아주 깊이 심취하고 그리고 행정고시를 통해서 고급 관료가 되어서 통일의 사상적인 배경을 제공하고자 열심히 산에서 도를 닦고 방에서는 고시 공부를 하던 대학생이었습니다. 절대로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고 교회에 나간다는 생각은 1%도 없었고 믿어야 하는 대상이 제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길지도 않은 성경 한 장이 저를 완벽하게 수분 만에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제가 제 방에서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골이 까 뒤집어지는 충격과 함게 두려움도 함께 임했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 방을 기웃거리는데 얼마 전에 김성수 장로님께서 주신 성경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들고 폈는데 한 번에 고린도 전서 13장이 펴지고 말씀이 눈으로 읽히는데 그냥 말씀이 아니고 제 마음을 거울과 같이 비추면서 들어왔습니다. 당시에 저는 대학도 장학생이고 은행원으로 다니다 카투사로 군대로 가서 제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이 굉장했고 스스로 의롭고 도덕적이라 생각을 하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거울에 비춘 제 마음은 너무나 제 생각과 다르게 완전히 악했고 타락했고 무엇 하나 올바른 곳이 없는 완벽하게 성경의 사랑의 가르침과 다른, 성질이 아주 급하고 무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냉랭한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악한 모습을 너무나 짧은 몇십 초의 시간에 강력하게 보았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살아서는 아니 됨을 너무나 강력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나고 무릎이 저절로 꿇렸습니다. 그리고 저를 도구로 써 주세요 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도구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렇게 제가 생각지도 못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이전과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도 조금씩 출석했습니다. 절대로 과거의 마음으로 살 수도 없었고 그리고 새롭게 성경대로 살기도 어려웠지만 제가 제 모습을 너무나 강력하게 잘못이 되었음을 보았기에 모든 힘을 다해서 예전과 같이 살려고 하지 않고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정말로 단호하게 과거의 모습을 다 버렸습니다. 제 의지가 아니라 제가 너무나 강력하게 저의 잘못된 모습을 보았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년의 세월이 흘러서 예수님 이름의 세례를 받고(1991년 5월 19일) 하나님께 제가 그간에 지은 죄를 용서받고 장유 반석교회의 교인이 되었습니다. 행정고시도 잘 준비를 해서 그동안에 1차에 붙고 대학원 때 다시 다시 1차가 두 번째로 붙어서 신림동 신림동에 가서 2차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함께 모의고사에 참여하면서 2차 준비에 열심이었고 성적도 모든 학생 중에서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또 제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 다음 해 1992년 선민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예배를 초 봄에 드리는데 당시 담임 목사님이셨던 박기수 목사님께서 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셨는데 제 가슴에 빨간색의 불을 품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모습은 우리가 보는 흑백이었는데 그분의 입에서 나온 불은 빨간색의 불이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촛불과 같은 불꽃이 2-3개가 제 가슴에서 일렁거렸습니다. 그리고 손에 땀이 나면서 누군가 아픈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제가 만져주면 나으리란 믿음도 동시에 왔습니다. 그리고 행시에서 1점 차 낙방을 하고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라고 명하셔서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신학교를 가기 위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제가 처음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저는 이렇게 아래 베드로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성경을 받은 경험을 조금도 다름이 없이 하고, 목사가 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이를 전하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그 이후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의 교회와 신학교와 그리고 신부님과 수녀님께도 전하는 목사가 된 것입니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자가 준 성경책을 통해서 저를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순식간에 만드시고 그 이후에 약 40년을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삼으셨습니다. 제 인격이나 노력도 아니고 주변의 사람도 아닌 오직 성경책과 그것도 성경 말씀 짧은 한 장과 하나님의 역사로 이렇게 저는 완전히 거듭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제가 불을 받고 다양한 기적을 체험하고 아픈 사람을 만지면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고 방언을 하고 통변이 되고 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체험한 일을 말을 해도 누가 정확하게 설명을 해 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2010년경 신대원을 졸업하고 논문을 준비하면서 위의 구절을 보았고 그리고 제게 일어난 이후의 일들을 보면서 제가 성령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 전체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임란, 병란, 양란 후에 즉 기존의 유교로 이해도 해결도 어려운 큰 환란이 있은 후에 무언가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청나라에 전도된 천주교는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인과 실학자를 중심으로 천주실의, 칠극 등의 성경의 내용을 전도용으로 핵심으로 뽑은 글들이 새로운 사상과 영적인 갈급함에 목이 마른 식자들에게 읽히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들이 진리를 믿도록 하셨습니다. 말씀을 읽으면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고 말씀과 함께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사람이 변화가 있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생적이던 천주교 연구 무리가 영세도 받고 신부도 생기면서 외국에서도 신부를 파송하면서 믿는 무리가 점점 늘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양반과 천한 사람이 형제가 되고 계급이 무너지고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외국에서 신부가 들어오니 조선 왕실과 양반은 천주교를 사교로 취급하며 무군 무부, 조선의 질서를 허무는 종교로 보고서 탄압과 핍박을 하게 되었으니 모든 한국인이 역사를 통해서 배운 천주교 박해 100년의 역사가 시작이 되고 1만 명 이상의 순교자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무리가 또 천주교를 접하고 성도가 되어서 이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서 타국에서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그리고 뛰어난 실학자들이 성경을 잘 읽으면서 복음의 진수를 잘 이해하고 정하상은 상제전서를 썼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훌륭하고 김대건 신부님의 옥중 서신은 바울의 옥중 서신에 뒤지지 않게 보이니 이는 바울에게 역사하신 성령께서 이들 모두에게 함께 하심으로 약 100년의 박해를 견디고 지금은 온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천주교 국가가 되어서 그 신도가 500만 명이 넘게 믿고 위대한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신앙인과 100분이 넘는 성인이 있는 한국의 천주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천주교가 수천 년을 이어오는 왕정과 양반 계급 세력을 박해와 순교로 맞서면서 승리하면서 성당이 늘고 한국을 새롭게 할 때 일본의 침략과 개국으로 당시 중국과 일본에 있던 선교사가 미국과 영국 등에 조선의 문이 열렸음을 알리고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개신교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150년이 지났는데 수십만 명이 되는 대형교회가 생기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1000만 명에 육박하게 되었습니다. 약 10만 명의 목사와 5만 개 이상의 교회가 선교사를 온 세상에 2만 명이나 파송하는 선교 대국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약 3000년을 이 땅에서 함께 산 한 민족이며 한핏줄이며 대한민국의 한 나라 사람이며 같은 종족입니다. 비록 불교와 유교와 다양한 민속 종교가 있지만 서로 대립보다는 이해를 하고 사는 민족이었습니다. 가족 중심으로 마을 중심으로 오손 도손 평화롭게 살던 형제요 자매로 한 집에서 어떤 사람은 천주교를 믿고 어떤 형제는 개신교를 믿고 어떤 형제는 믿지 않지만 설과 추석과 조상의 제삿날에는 서로 모여서 함께 가족의 정을 나누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개신교 천주교로 서로 다른 교회와 성당에 주일에 출석하고 목사와 신부와 수녀님들이 서로 교류가 없고 성도들에게 믿지 않는 불신자가 3.500만 명이나 있는데 서로를 전도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때론 무엇을 알지 못하고 서로 비난도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성당이 있는 주변이 모두가 천주교인인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서 이들을 전도하려고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다 한 분이시고 같은 믿음의 대상이며 우리가 보는 성경책도 같은 히브리어 헬라어에서 번역이 된 성경입니다. 같은 하나님과 같은 성경책을 보면서 이렇게 서로 대화도 왕래도 없이 이 좁은 한국에서 서로 타국의 개신교, 천주교가 500년을 대립한 것과 같이 서로 대립을 합니다. 이 땅에 크게 천주교,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의 세 교회가 나누어 져서 같은 성경으로 같은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온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예수님께 지체로 붙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한 교회에서 둘로 분열이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큰 고통이 됩니다. 이런 500년이란 긴 역사적인 갈등의 골이 메꾸어지고 교회가 서로 이 갈등을 극복하며 하나가 될 때 예수님께서도 비로소 평화를 누리실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이 역사적인 일을 우리 한국에서 같이 해야 하기에 이렇게 글을 드리는 것입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은 불교의 스님과 왕래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목사와 성당의 신부님과 수녀님과는 왕래도 교제도 별로 없습니다. 같은 성경, 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형제로 지내면서 서로 존중하고 하나가 되는 일이 훨씬 더 쉽고 불교의 스님은 함께 힘을 합쳐서 전도를 해야 되는 대상입니다. 이제 그 여정을 함께 떠나게 될 것입니다. 먼저 모두가 잘 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우리는 같이 살펴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26장에 중점적으로 설명이 되고 다른 성경 예를 들면 로마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여러 성경에 언급이 되는 분이십니다. 흔히 믿음의 조상으로 볼리우는 분이십니다. 함께 같이 같은 성경을 보면서 약 4000년 전의 인물에 대해서 같이 훑어 보고 천국에서 아브라함은 한국에서 온 천주교 순교자들과도 잘 지내고 이후에 올라온 개신교 목사님과도 잘 지내시고 성도들과도 잘 지내십니다. 이렇게 서로 왕래가 없던 소천하신 신부님과 수녀님과 개신교 목사님과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왕으로 계시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계시는 천국에서 서로 형제로 아무런 갈등도 없이 잘 지내시며 이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성당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천국에서 누릴 즐거움을 우리는 이 땅에서도 누리고 서로 화목하게 서로 인정하고 서로 교류도 하면서 즐겁게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얽어 매고 있는 것이 교리가 성경의 내용과 다른 것이라면 우리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되고, 믿지도 않는 무리에게 왜 저렇게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질 것입니다.
먼저 천주교는 그 역사가 약 400년이나 됩니다. 그래서 조상이 잘 믿은 분은 4대 5대가 기본일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도 150년이나 되니 역시 애기때부터 믿은 분이 계시는데 연세대 김형석 교수님은 100세가 넘으신 교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175세에 돌아가셨으니 약 100년의 신앙의 여정이 있습니다. 이 여정이 아주 상세하게 창세기 12장부터 26장까지 잘 설명이 되어 있고 이를 로마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다른 성경이 인용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여정이 중요한 것은 이 분의 신앙을 바울 사도께서 로마서에 인용을 하셨는데 이 인용에 대해서 개신교와 천주교가 서로 다른 교리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기에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좋은 점이 많은데 인정은 하지 않고 한 사람의 신앙과 한 성경을 가지고 서로 다른 교리로 논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논쟁이 유명한 이신칭의 교리의 논쟁으로 500년 전의 독일인 루터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루터도 신부였고 당시에는 독일어로 된 성경도 없었고 당연히 성경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서 갖지 않았던 시대이고 이제는 성경이 온 세상의 언어로 다 번역이 되었고 우리도 한글로 6 개 정도의 번역이 있고 또 영어로 수십 개가 있으며 심지어 헬라어와 히브리어로도 같이 성경을 보면서 서로 대화를 할 충분한 기회가 축복이 있으니 이 기회와 축복을 우리가 함께 누림으로 온 세상의 교회가 서로 서로의 다른 점을 존중하면서 하나가 되어 함께 예수님을 찬양하고 함께 온 세상의 어둠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놀랍고 위대한 일이 한 민족 한 핏줄로 살아온 한국에서 이루어짐이 너무나 당연한 일로 봅니다. 너무 교리에만 치우치지 마시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는 복된 시간이 도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개신교의 오직 믿음의 교리로 로마서와 창세기를 보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더 넓고 깊은 성경의 이해로 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천주교도 개신교의 오직 믿음의 교리를 성경적으로 절대로 문제가 없음을 인정하고 개신교의 놀라운 전도와 선교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기쁨으로 받아 들여아 할 것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가장 쉽고 정확한 이해는 그 사람의 사후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이 평가가 정확하게 신뢰할 만한 기관에서 이루어지면 우리는 먼저 이 사람을 바로 이 평가를 보면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 대한 전능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평가를 하셨다면 이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떠나서 누구나 인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그분을 부르시고 그분과 동행하시며 그분을 때론 명령도 하시고 때론 인도도 하시고 때론 아브라함의 간청과 기도도 들으시면서 그 중심까지 샅샅히 아시는 하나님의 평가를 보면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가장 정확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성령으로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아브라함에 대해서 평을 한 내용을 우리는 그냥 믿음으로 받아서 이해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우리 나름대로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다 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게 그리고 모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신학자나 신부의 주장이나 목사의 주장보다 더욱 더 정확하게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이다 하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욱 더 정확하게 아브함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온 세상의 모든 성도나 신도가 다 수긍할 것입니다.
모두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평가하신 하나님의 평가를 봅니다. 이는 진실로 천주교와 개신교를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 고리 입니다.
창 25:8 וַיִּגְוַ֨ע וַיָּ֧מָת אַבְרָהָ֛ם בְּשֵׂיבָ֥ה טוֹבָ֖ה זָקֵ֣ן וְשָׂבֵ֑עַ וַיֵּאָ֖סֶף אֶל־עַמָּֽיו׃
8 아브라함은 숨을 거두어 스바에서 죽었는데, 그는 선량한 노인이었고 장수했으며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다.(히브리어 원문과 번역)
8 아브라함은 백발이 되도록 천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공동번역)
8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목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 (표준 새 번역)
8 Then Abraham breathed his last and died at a good old age, an old man and full of years; and he was gathered to his people(NIV).
아브라함이 숨을 거두어 죽었는데 그는 선량한 노년이었고, 장수했으며 그러함이 평생에 그러했고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갔다. (NIV 번역)
그리고 선한 삶에 대한 성경의 설명입니다. 함께 보십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자비, 사랑)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8 He has shown you, O mortal,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To act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또 다른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평가는 창세기 26장에 있습니다.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따라 내가 지키라고 일러준 나의 계명과 규정과 훈계를 성심껏 지킨 덕이다."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5 because Abraham obeyed me and did everything I required of him, keeping my commands, my decrees and my instructions.”(공동번역, 개역개정, NIV)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두 번의 사후에 평가를 받았는데 처음은 선량한 사람 즉 착한 사람 혹은 선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았고, 다른 한 평가는 법을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법은 막연한 법이 아니라 명령, 규례 혹은 법령, 그리고 교훈 혹은 법도를 잘 지켰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100년의 신앙의 삶에 대한 평가를 위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는 이를 이제 창세기 12장에서 25장을 보면서 확인만 하면 되는데 더 이상 정확한 평가가 없으니 믿고 찾아 보면 될 것입니다. 아브라하에 대한 모든 연구자와 사람의 평가보다 위의 하나님의 평가를 더 신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삶 혹은 선한 삶은 성경에서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삶을 착한 삶 혹은 선한 삶이라 함을 이해를 하고 진도를 나가야 합니다. 아래는 아브라함이 이동한 경로를 지도로 표시를 했습니다. 지중해와 홍해와 페르시아만 그리고 카스피해. 흑해가 있는 중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강으로는 티그리스, 유브라데 강 그리고 나일강이 무대에 있습니다. 그리고 긴 창세기 12-25장의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 12장 |
아브람의 소명과 애굽 이주.
1-3.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심. 75세/ 고향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4-9. 가나안 도착. 세겜 상수리나무 아래 제단을 쌓음
10-20. 애굽으로 감 (사래 문제)
※ 우르→ 가나안→ 애굽
| 13장 |
애굽에서 나온 후 롯과 헤어진 아브라함
1-4. 아브람 애굽에서 나옴. 벧엘과 아이 사이에 머묾.
5-13. 롯과 아브람이 헤어짐
- 롯: 요단 들녘. 소돔과 고모라 성
- 아브람: 가나안 땅에 머묾.
14-18. 헤브론으로 이주.
※아브람. 사래. 롯 이들의 목자. 애굽 → 가나안 남부(아브람) & 요단 들녘(롯) → 헤브론
| 14장 |
롯의 구출과 멜기세덱과 만남.[key world] 제왕. 롯. 아브라함. 멜기세덱. 가나안 땅. 싯딤 계곡
1-10. 가나안 땅의 전쟁. 싯딤 계곡
ㄱ. 4왕과 시날 왕 아므라벨, 엘라살 왕 아리옥, 엘람 왕 그돌라모엘, 고임 왕 디달.
ㄴ. 다섯 연합국. 소돔 왕 베라. 고모라 왕 비르사, 아드마 왕 시납. 스보임 왕 세메벨. 소알 왕이 싸움
11-16. 롯의 체포와 구출
17-24. 설렘 왕 멜기세덱. 십일조 줌.
| 15장 |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계약
1. 하나님의 아브라함 보호 약속
2-5. 별과 같이 많은 자손 약속
6. 아브람의 믿음과 의롭게 여김: 75-85세 무렵- 첫번째 의롭게 여기심
9-11. 제물 드림
12-16. 이방에서 나그네 신세 됨 예언
17-21. 애굽 경계(겐. 그니스. 갓몬. 헷. 브리스. 르바. 아모리. 가나안. 기르가스. 여부스)로부터 - 유브라데 까지 후손에게 약속하심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 횃불 언약 (뉴욕성경정리 참고)
| 상속자 구함 | 뭇별-네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 |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5:6) 갈 3:6 | |
| 그의 의 | 성자의 의 |
| 언약의 제물 | 삼년 된 암소, 암염소, 수양,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함. |
|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15:16) ⇒ 여호수아에서 실현 (아모리 족속 진멸) | |
|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 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15:18) | |
| 16장 |
하갈과 이스마엘
1-6. 하갈의 임신과 사래의 박대
7-16. 하나님을 만난 하갈. 이스마엘 출생: 아브라함이 86세
| 17장 |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 민족의 어머니 사라. 할례 (아브라함의 복 → 아내. 이삭. 이스마엘)
[key word] 아브라함. 사래. 이스마엘. 이삭. 모든 남자// 행하여 완전할 것 명령하심
1-14. 하나님의 당부.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 할례 의무 아브라함이 99세, 사라가 89세
15-16. 사래의 복 → 사라 민족의 어머니. 아이 가짐
17-19. 이삭 출생 예고
20-22. 이스마엘 축복
23-27. 모든 남자 할례. (아브람 99세 이스마엘 13세) 믿음으로 순종함
※ 하나님은 모두를 배려하심. 첩에서 난 이스마엘.
| 18장 |
아브라함의 하나님 대접과 소돔을 위한 간청.[key word] 아브라함. 사라. 종. 송아지. 의인. 마므레 상수리나무. 소돔이 내려다보이는 곳// 아브
1-15.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대접
버터. 우유. 송아지 대접. 손발 씻고 쉬면서 더위 식힘. 식사 때 곁에서 시중 듦.
사라에게 아기 있을 것 약속하심.// 두 부부가 믿고 굳게 믿고 아기를 갖기 위해 행동함
16-19: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 의와 공도를 해하게 하려고 부르심 아브라함과 함께 하는 사람, 후손
20-33. 아브라함의 소돔을 위한 간청
의인 50→45→40→30→20→10명
| 19장 |
롯의 하나님 대접과 소돔 멸망.[Key word] 롯. 처. 두 딸. 시위. 소돔성 사람. 소돔과 고모라. 소알. 굴속. 모압. 벤암미
1-3. 롯의 하나님의 사자 대접
4-11. 소돔성 사람과의 시비 (롯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내어달라고 요구)
12-22. 소돔성 탈출 (소알로 탈출)
23-29. 소돔과 고모라 멸망. (불과 유황으로 멸망.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됨)
30-38. 롯과 두 딸이 동침. 사이의 자녀(모압. 벤암미)가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됨.
| 20장 |
아브라함과 아비멜렉.[key word] 그랄. 아브라함. 아비멜렉. 사라. 살렘.
1-2. 아브라함의 이주와 속임. (마므제→가나안 남부 그랄) 아비멜렉에게 자신의 처 속임.
3-7.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심.
8-13. 자신의 생명을 위한 아브라함의 변명.
14-18.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화해. 사라에게 1천 개와 땅을 줌.
| 21장 |
이삭 탄생. 이스마엘 떠남.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계약[key word] 사라. 이삭. 아브라함. 하갈. 이스마엘. 아비멜렉. 비골. 블레셋. 바란 광야. 종들과 우물
1-8. 사라가 이삭을 낳음 (아브라함 100세. 사라 90세, 8일 후 할례)
9-21. 하갈과 이스마엘이 떠남. (이스마엘 14세. 바란 광야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
22-32.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계약.
| 22장 |
아브라함의 시험과 나홀의 후손[key word] 아브라함. 이삭. 주종. 숫양. 나홀과 후손. 모리아. 브엘세바. 여호와 이레
1-19. 아브라함을 시험하심. 아브라함이 118-125세 사이
20-24. 나홀의 후손. 밀가와 사이에 8자녀. 그중 브두엘이 리브가를 낳음.
※ 아브라함의 신앙의 성장
| 아브라함의 나이 | 일어난 일 | 비고 |
| 75세 |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남. 창12:1-4 | 첫 믿음, 순종 |
| 15장6절 | 믿음으로 의, 자손 약속, 이신 칭의 | 75-86세 사이 |
| 86세 | 이스마엘 출생. 창 16장 16절 | 사라의 권유 |
| 99세 | 할례 언약,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 명령/ 부르신 목적: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 하심 | 창17장, 18장 |
| 100세 | 의인 10명 없어 소돔, 고모라 멸망, 이삭 출생 | 창21장 |
| 118-125세 | 믿음의 시험 통과, 이삭 번제, 하나님 경외 | 끝 믿음 창 22장 |
| 23장 |
사라의 죽음[key word] 사라. 아브라함. 헷사람. 에브론. 막벨라 땅과 굴
1-20. 사라의 죽음과 막벨라 굴에 장사. : 에브론에게 은 400세겔로 삼: 사라 127세 아브라함 137세
| 24장 |
이삭의 결혼[key word] 아브라함. 나이 많은 종. 이삭. 이브가. 라반. 브두엘. 메소보다미아 성읍. 브엘라해로이
1-9. 아브라함이 종에게 아들을 위한 처녀를 구해줄 것을 부탁. 환도뼈에 맹세.
10-27. 리브가를 만난 종. 메소보다미아 성읍.
28-60. 리브가에게 청혼하는 종(아브라함을 대신) 즉시 떠나는 리브가.
61-67. 집으로 돌아온 종과 리브가와 결혼하는 이삭: 이삭 40세 아브라함 140세
| 25장 |
아브라함의 후손. (그두라. 하갈. 리브가→에서. 야곱)[key word] 아브라함. 그두라. 에서. 야곱. 이삭. 이스마엘의 후손. 그두라 후손. 브엘라 해로이. 술과 하월라 사이.
1-6. 아브라함의 첩 그두라의 아들들 (욕산→ 스바. 드단→앗수르. 르두시. 르움미 족속) 아브라함 140세 이상
7-11. 아브라함의 죽음과 장사. (175세). 막벨라 굴에 사라와 함께 장사.
12-18. 이스마엘의 후손: 12부족 (느바욧. 게달. 앗브엘. 밉삼. 미느마. 두마. 맛사. 하닷. 데마. 여둘. 나비스. 게드마) 137세 장사.
19-26. 에서(털보)와 야곱(발꿈치)의 출생. (이삭 40세에 결혼. 60세에 낳음)
27-34.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과 떡 몇 개에 장자권을 팜.
※ 야곱과 에서 출생
| 아브라함 후처 | 그두라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를 낳음) | ||
| 아브라함 죽음 | 175세 (이삭과 이스마엘이 막벨라 굴에 장사) | ||
| 이스마엘 장자 | 느바욧 (이스마엘 137세 죽음) | ||
| 이삭 |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 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25:21) | ||
| 에서, 야곱을 낳을 때 | 이삭 60세 | ||
|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 별명 : 에돔 | ||
| 에서가 판 것 | 장자 명분, 축복권 | ||
|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가볍게) 여김.(25:34) (히 12:16 망령된 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25:23) | |||
먼저 아브라함의 선함에 대해서 위의 정리 자료와 도표를 보면서 같이 보겠습니다. 먼저 선하다는 의미는 복합적인 의미로 정의를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비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히 주와 동행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정의롭게 산 사람인지는 아래 명령을 보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보면서 이해를 합시다.
창 17 :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우리가 아브라함 하면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의 조상이다 하지만 위와 같이 선한 사람이 더 포괄적이며 온전한 평가이며 이렇게 선한 삶의 중요한 요소는 정의롭게 사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시고 그의 부르신 목적이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그리고 권속이 하나님의 도를 지켜서 의롭게 살게 하려 하심으로 정확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에 대한 평가는 아주 긍정적이십니다.
하나님의 도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과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홍수 후 약 350년이 지났으니 온 지구에 인구가 별로 없었으니 사람들이 온 땅으로 퍼져서 사는 것과 번성하는 것이 즉 자녀를 낳고 개척을 하는 삶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고향을 떠납니다. 그리고 롯에게 양보도 아끼지 않습니다. 새로운 땅을 찾아서 개척합니다. 그리고 이집트로 갔다고 여기 저기를 이동도 합니다. 한 곳에 붙어서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발적으로 양보하면서 움직입니다. 우리 민족을 보시기 바랍니다. 메소포타미아야 지방에서 아브라함이 2000km 이상을 이동을 하듯이 우리 민족은 약 노아 홍수 후에 1500년을 바다를 따라서 양보하고 양보하고 이동합니다. 그래서 호남의 전남을 통해서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디고 그리고 또 전남에서 경남으로 전북으로 이동합니다. 정확한 우리 민족과 조상의 역사입니다. 진화론의 주장에 현혹이 되지 마시고 자랑스럽게 수만 킬로를 이동한 우리 민족의 조상을 아브라함과 창세기를 통해 정확하게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불의로 멸망에 처할 위기가 왔을 때 간청을 합니다. 의인이 있는데 멸할 수가 있습니까? 하고 어떻게든 롯과 정의로운 사람을 살리려고 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정의롭게 살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믿고 마음대로 악하게 산다면 절대로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악인은 악인입니다. 회개가 필요할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의는 무엇입니까? 명령에 순종함입니다. 정의로우신 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명령은 다 정의롭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정의로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곧 정의입니다. 홍수가 끝이 나고 온 지구는 다 비었습니다. 이제 노아의 후손이 이 지구를 다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생육하고 번성이며 땅에 충만한 것이 정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니 또 흩어버립니다. 그래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야 흩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세 땅이 만나는 중심지인 가나안으로 이동을 명을 받습니다. 순종합니다. 믿음으로 오는 정의도 있지만 이렇게 순종으로 되는 정의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정의입니다. 불순종해서 선악과를 먹는 것이 불의이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행하라는 명령에 순종합니다. 아들이 있으리란 명령에 순종해서 아내와 잠자리를 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바치하는 명령에 순종해서 아들을 바칩니다. 이것이 정의로움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에 의한 정의는 이후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 땅에 세우려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모세는 율법을 받고 순종하면 축복을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 하나님의 제안을 이스라엘 소개하고 온 이스라엘이 이 제안에 아멘해서 약속이 체결이 되니 구약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뿐만 아니라 순종을 통한 정의는 예수님께서 오셨어도 여전히 강조가 됩니다. 정의로운 법 율법을 완성하러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면 우리가 도시에 너무나 모여서 살고 온 한국의 땅이 시골을 비롯해서 비워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죄악의 온상이 흩어지지 않고 모이고 이도 부족해서 닭장과 같은 아파트로 모이고 원룸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최악의 불순종이며 최악의 불의입니다. 그리고 집도 땅도 없이 모두가 불쌍하게 살고 있습니다.비어 있는 한국의 시골과 산과 들에서도 잘 살수가 있으면 너무나 행복하게 모두가 사는데 서울 경기에 인구의 50%가 모여서 서로 힘들게 삽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런다고 믿고 행동이 없으면 아무일도 없습니다.아브라함은 믿고 행합니다. 믿고 고향을 떠납니다. 믿고 롯에게 양보합니다. 일생을 일군 땅과 우물과 집과 토지를 다 양보하고 새로운 개척지로 떠납니다. 이것이 정의입니다. 그리고 믿고 아내와 잠자리를 부지런히 합니다. 믿고 하나님께 아들을 바칩니다. 그리고 롯이 포로가 되었을 때 움직입니다. 군사를 움직여서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짝을 찾아서 종을 고향으로 보냅니다. 40이 되어서 결혼을 못하는 한국의 딸들과 우리 아버지들은 행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구의 자녀의 결혼을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변의 이웃과 불의를 행치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합니다. 십일조도 다 바치고 아들도 아끼지 않습니다. 땅도 아끼지 않습니다. 무엇을 잡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정의입니다. 가지고 나누지 않는 모든 크리스천은 불의한 것입니다.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누라는 명령에 전적으로 불복하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유럽과 한국에 수도 없는 크리스천들이 아브라함과 같이 믿고 복을 받고자 하면서 정작 아브라함이 산 삶의 여정과 모습은 절대로 알려고도 본 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오직 믿음 합니다. 참으로 안따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정의롭게 행합니다.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경배이며 경외입니다. 경배로 제단을 쌓고 제물을 잘 바칩니다. 경외로 자식도 아끼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정의입니다. 정의로운 율법 모세 오경은 이렇게 하나님께 정의롭게 세상에 대해서 정의롭게 사는 법을 정해 두고 정의의 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너무나 모든 면에서 정의가 넘치고 온전하며 공평한 법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법입니다. 모든 인류를 다 행복하게 살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법이 바로 성경의 율법입니다. 저는 행시 2차에서 1점차 낙방할 정도로 어느 정도 법에 대해서 배우고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인류가 예수님을 믿고 그 후손이 아브라함을 본받아서 정의롭게 살게 하려고 온 인류의 대표로 가장 믿음이 좋고 정의로운 분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동행하시고 가르치시고 복을 주시면서 일생을 온전하게 정의롭게 살게 하신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천주교가 믿고 개신교가 같이 믿는 하나님 이시고 이분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으니 예수님이십니다. 선한 삶의 모습이 겸손히 주와 동행하고 정의를 행한 것은 다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또한 선한 삶이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착하고 사람이 좋은 모습은 그가 군대를 거느리고 종이 많고 말과 낙타와 재력을 갖춘 권력자이었지만 어디를 가든지 그 권력으로 상대방이나 종이나 자녀나 함부로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예의가 바르고 젊잖고 순했습니다. 양보도 너무나 자주 잘 합니다. 온 땅과 터전도 양보합니다. 그리고 버리고 떠나는 삶을 너무나 쉽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명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사랑하고 손자 에서와 야곱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세 아내와 여러 자식을 다 사랑합니다. 며느리도 사랑하고 종들도 공경합니다. 아브라함 집에 수백 명의 남녀가 함께 살았지만 불의한 일이 없고 수백 명이 함께 할례하고 수백 명이 함께 이동하고 그리고 분가하는 자녀나 종들을 선대해서 먹게 살게 합니다. 정말로 선한 사람이란 표현이 너무나 어울리는 분입니다. 작은 인생의 실수가 100년 동안에 왜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실수는 너무나 100년의 온전한 삶에 비하면 너무나 작으니 그 실수가 덮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가림을 받는자가 복이 있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다 가려 주신 것을 인간이 들춰서 아는 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덮으신 것은 인간이 들추면 아니 되는 것이고 이런 사람의 지극히 작은 것도 하나님께서 들추시며 징계를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채도 함부로 하면 아니 됩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많았고 그럴 때 죽을 고통을 느끼면 포기했습니다. 친구의 허물을 덮는 것이 사랑입니다. 천주교 개신교는 서로 그렇게 덮고 살아야 합니다.
선한 삶의 모습의 마지막 부분은 겸손히 주와 동행입니다. 아브라함의 100년의 삶에서 겸손히 주와 동행한 삶을 보겠습니다. 선한 삶이라 평가를 받으려면 먼저 정의를 행해야 합니다. 이는 살폈습니다. 그리고 자비를 사랑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도 살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부분보다 너무나 더 깊고 포괄적인 의미인 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에서 귀한 가치입니다. 마지막 부분 겸손하게 주와 동행입니다. 먼저 주와 동행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됩니다. 이는 우리는 유한한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하나님을 전능하시고 전지 하신 분으로 그리고 나를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실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고집과 경험과 지식과 욕구를 다 제어하고 나와 생각과 판단이 다른 일을 하나님께서 명하셔서 나의 모든 것을 접고 순종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주와 동행입니다. 그리고 이 또한 한 번이 아니고 정의로운 삶과 사랑의 삶과 같이 일생을 주님과 함께 함을 의미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갈데아 우르에 사는 아브라함에게 오십니다. 나와 함께 가나안으로 가자 하시니 그간의 살아온 모든 터전을 접고 2000km가 넘는 머나먼 길을 젊은 이도 아닌 아브라함이 떠납니다. 이 명령은 아브라함에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60대 중반을 넘긴 모든 한국의 신자에게 같이 명하십니다. 나와 함께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자 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릅니다. 그래서 긴나긴 길을 늙은 몸을 이끌고 갑니다. 목적지로 갑니다. 이제 우리 한국에 사는 모든 60이 넘은 노년의 신자에게 명하십니다. 내 소유를 가난한 이웃에게 다 주고서 나를 따라서 가자고 명령하십니다. 무엇을 하시려고 그렇게 하십니까?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큰 일을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곳에 그대로 안주하고 내가 가진 물질을 손에 쥐고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성도는 내 고집대로 사는 것이지 절대로 겸손하게 주와 동행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일생을 걸쳐서 이렇게 살도록 인도하셨는데 아직도 내가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게 되리라 하십니다. 나이가 무려 75-85세 무렵입니다. 이를 그대로 순종합니다. 믿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믿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동행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또 99세가 되었을 때 다시 나타나셔서 모든 식솔 남자의 할례를 명령하십니다. 수백명이나 되는 남자를 다 할례를 받게 합니다. 지금과 같이 의사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집에서 칼로 벱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순종합니다. 그리고 내년 이맘 때 자녀가 있으리라 하니 믿고 순종합니다. 어떻게 순종합니까? 아내와 잠자리를 합니다. 그리고 아들을 가집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1년 뒤에 이삭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고 고모라를 멸망을 시키고자 하자 아브라함이 무려 4번에 걸쳐서 그 멸망을 막고자 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이웃을 아끼는 마음이 주님과 동행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에도 머뭇거림이 없이 바칩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같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할 수가 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의 본도 보이고, 믿고 의롭게 됨도 보이고, 선하게 살면서 율법을 완성하는 경지도 보이게 합니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산 사람과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일이 맞아서 떨어져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수많은 나라가 나오고, 그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후대에 예수님을 믿으므로 또 그의 자손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그대로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보시면서 고르고 고른 한 사람이 4000년 전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모범적인 삶을 믿음이면 믿음, 행함이면 행함에 있어서 온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함은 정의로웠고 사랑했으며 그리고 떠나고 양보하고 바치는 것을 조금도 머무거림이 없이 떠나고 바치고 양보했습니다. 이는 나중에 보시겠지만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아들까지 바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다시 강하게 약속하십니다.
22: 16 네가 네 아들, 네 외아들마저 서슴지 않고 바쳐 충성을 다하였으니, 나는 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6 and said, “I swear by myself, declares the LORD, that because you have done this and have not withheld your son, your only son,
17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 네 후손은 원수의 성문을 부수고 그 성을 점령할 것이다.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7 I will surely bless you and make your descendants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as the sand on the seashore. Your descendants will take possession of the cities of their enemies,
18 네가 이렇게 내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세상 만민이 네 후손의 덕을 입을 것이다."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8 and through your offspring all nations on earth will be blessed, because you have obeyed me.”
이러한 일생의 변함없는 순종의 삶이 겸손이 동행함을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순종한 내용은 일반인이 쉽게 따라서 할 수가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믿고 떠나고 믿고 행하고 믿고 바치는 행위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들까지 바치는 순종이 인정을 받습니다. 믿고 실제로 행한 행위로 즉 순종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선하다는 의미를 정의를 행함과 사랑의 실천과 그리고 겸손이 일생을 주와 동행하면서 순종하는 삶으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당연히 이런 삶에 기초가 되고 힘이 되는 요소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이런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모두가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 성경을 보고 한 하나님 한 예수님을 믿고 있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무려 3000년을 한 피줄로 한 민족으로 혈통을 유지하며 한반도에서 산 한 백성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기에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온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여건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같은 성경을 보면서 같은 하나님을 보면서 성경의 올바르지 않는 이해로 혹은 부분적인 이해로 서로 반목한다면 이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면서 이 신앙으로 교리가 둘로 나누어져서 이 교리로 인해서 서로 500년을 다투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그 깊은 골로 성경을 통해서 들어가서 둘을 한 손이 하나씩 잡고 연결을 하려고 합니다. 비록 홀로 하나님의 인도로 동행하면서 이 일을 하지만 수도 없는 많은 한국의 크리스천이 저와 같이 되어 서로 다른 교리를 극복하고 천주교와 개신교가 서로 완벽한 형제로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편견없이 성경에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가 서로 화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12-25장의 내용을 요약해서 보여드렸고 도표로도 정리를 했습니다. 100년의 신앙을 성경대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사후의 가장 정확한 평가인 하나님의 평가를 살폈습니다. 먼저 선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법을 지킨 삶에 대해서 같이 보겠습니다. 위에서 설명을 드린 내용과 중복이 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다시 본문을 소개합니다.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따라 내가 지키라고 일러준 나의 계명과 규정과 훈계를 성심껏 지킨 덕이다."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5 because Abraham obeyed me and did everything I required of him, keeping my commands, my decrees and my instructions.”(공동번역, 개역개정, NIV)
하나님께서 명령, 계명, 그리고 율례와 법도 등 다양한 종류의 법을 제시하시면서 아브라함이 다 지켰다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사실 법에 대한 이러한 분류는 모세가 613조항에 달하는 여러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나서 볼 수가 있는 법의 분류인데 이런 복잡한 법의 제시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양한 법을 다 지켰다고 선포하시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가장 보편적인 설명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제시하는 약속을 다 믿으니 의롭다 하셨는데 이 의롭다 하심으로 그의 행동이 법적으로 온전하다는 설명입니다. 이 설명은 믿으니 의롭게 된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개신교의 이신칭의와 그 맥락이 같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 저는 도리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명령 행하여 완전하라는 명령에 잘 순종했고 그리고 아브라함의 부르신 목적 즉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부르신 목적이 맞게 행동을 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보시고 모든 법을 잘 지킨 사람이라 인정을 했다고 보는데 제 주장과 천주교의 해석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확인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분명하게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 부분은 오직 믿음을 넘어서는 정의로운 행위입니다. 정의는 여러가지로 표현이 되지만 우선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정의로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행위가 바로 정의로운 행위로 인정이 됩니다. 그런데 모세 오경의 법에는 이렇게 순종을 해야 되는 규정이 너무나 많기에 모두를 다 지켜서 의롭게 됨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론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도 하시고 때론 덮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불의가 가리움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이런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의롭게도 인정을 받고 법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큰 원칙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서로 허물을 덮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절대로 작은 상대방의 약점을 붙잡고 모든 착한 행위를 비난하는 일을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설명을 드립니다. 이 부분은 이 글의 핵심에 해당합니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서로 비난하고 비판하는 바로 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부님과 목사님께서 각자의 주장을 접고 그냥 성경대로 이해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표로 쉽게 그리고 관련이 된 성경으로 쉽게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누구나 쉽습니다. 절대로 어렵지가 않습니다.
먼저 천주교와 개신교의 너무나 위대한 부분을 말씀드립니다. 약 500년 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 대한 논의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믿는 부분에 대해서 너무나 선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천주교가 약 1500년이란 세월을 구약과 신약을 잘 정비를 해서 신구약 성경을 완성시키고 교회를 통일되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잘 이끌어 왔습니다. 비록 개신교가 로마서 1장 17절의 구절의 해석으로 교리를 세워서 천주교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모든 교리의 대부분은 천주교의 가르침과 다름이 별로 없습니다. 이는 천주교의 올바른 전통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성령론, 성경의 정경성 등이 대부분이 같습니다. 개신교는 이를 자체적으로 신학적으로 교리를 세운 것이 아니라 천주교에서 1500년 동안 발전시켜온 교리를 그대로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같은 부분을 보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칭찬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개신교의 교리는 로마서 1장 17절에 그 내용이 있고 그리고 로마서와 하박국서 갈라디아서 등에서도 발견이 됩니다. 그리고 이 교리는 개신교의 주장대로 그대로 성경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무나 500년 전에 획기적인 발견이었고 이는 예수님을 믿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500년을 통해서 온 세상에 전했으니 천주교에서도 반드시 이 부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개신교 목사가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고 신부님께도 수녀님께도 봐 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는 성경을 공부하는 열기는 온 지구상에서 최고입니다. 성도가 성경을 100독을 하고 여러 번 필사를 하고 다양하게 성경을 배웁니다. 이런 전통은 너무나 귀한 전통입니다.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도 번역하고 그리고 온 세상이 다 자국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일은 개신교의 공으로 돌려서 이를 천주교는 반드시 인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신부외에 성도가 성경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자국어로 된 성경도 없던 시기를 이렇게 온 세상이 다 자국어로 된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한 나라가 없게 전도하고 선교한 것은 개신교가 월등합니다. 제가 전하는 내용이 신부님과 수녀님께도 새로운 내용이면 개신교가 얼마나 필요하고 그리고 온전한 지 천주교는 인정을 하셔야 합니다. 떨어져 나간 형제이기도 하겠지만 당당한 하나님의 나라의 교회임을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의 여정! 100년의 믿음의 여정의 길을 창세기를 따라서 그리고 이를 보고서 의롭다 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등을 동시에 살펴볼 것입니다. 중심이 되어야 하는 성경은 창세기 12장부터 25장까지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한 때와 상황 그리고 횟수 등에 대해서 창세기를 보면서 먼저 확인을 하고 이를 인용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그리고 야고보서 등을 동시에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100년 이라는 아브라함의 삶의 여정을 테스트로 보면서 위와 같이 도표로 정리를 했으니 누구나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신앙의 여정이 이제 신앙을 시작하는 분인지 아니면 40년 50년이 되었는지 아니면 70-90년이 되셨는지 자신의 입장을 아브라함과 비교를 해 보시면 너무나 쉽고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인정을 하신 것은 그의 100년의 신앙 생활 중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 번의 의롭다 하심을 다 보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어느 한 순간의 의롭다 하심을 전부로 보면 일부만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주교 개신교는 정말로 전체를 다 보지 못하고 아브라함의 어느 한 순간의 믿음의 의를 보면서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하는 것입니다. 이제 문제가 다 풀린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한반도에 여행을 온 외국인이 약 1000km가 넘는 한국에 왔는데 한 무리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있는 함경북도에 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에 그곳만 잘 여행을 하고 돌아가서 한국이 어떻다 하고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보지 못한 사람은 그 말을 믿습니다. 그런데 한 무리는 이와는 달리 전라남도에 와서 섬들을 봅니다. 바다를 봅니다. 그리고 날씨와 섬들과 바다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이 두 무리가 만나서 이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가보지 않는 무리에게 설명을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설명하는 한국을 아! 그런가 하고 믿습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를 설명을 하는데 너무나 다른 자연 환경과 말씨와 문화를 설명하면서 서로 내가 틀림없이 한국에 가서 보고 확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이들의 설명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서울도 모르고 경주도 모르고 평양도 모르면서 한국을 안다고 하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야! 한국 전체를 여행 좀 하고 한국을 설명해야지 다시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 보고 한국이 어떻다고 아야기를 해! 이와같이 우리는 믿음으로 의를 설명을 할 때 아브라함의 전체의 믿음의 여정을 살펴야 하고 그 기간은 약 100년의 여정이고 그리고 세 번의 의롭다 하심입니다. 이렇게 루터가 보고서 설명을 했다면 그리고 천주교가 이렇게 보고 왜 너희는 부분만 보냐 했다면 이 문제가 쉽게 풀려서 서로 다투지 않고 500년을 화목하게 한 예수님을 믿는 교회로 잘 지냈을 것입니다. 전체를 보면 답이 다 풀립니다.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가장 정확한 이해로 두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테스트를 설명합니다. 개신교의 루터의 설명대로 너무나 정확하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보고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를 오직 믿음이야 하면 100% 정확합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500년을 조금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본문을 같이 보면서 이해를 합니다.
창 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예수님을 믿고 로마서를 쓴 바울 사도는 이렇게 인용을 합니다.
로마서 4장 [개역개정]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로 말미암은 언약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그리고 로마서 5장에서도 그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십니다.
로마서 5장 [개역개정]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갈 3: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이 75세에 집을 떠나서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기 전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의롭다 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냥 믿으니 의롭다 하심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누구도 반박이 불가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인용을 합니다. 개신교의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 너무나 정확합니다. 여기까지 누구도 반박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믿고 개신교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강조하고 성경을 배우고 전도하고 선교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 것을 천주교는 그래 정확하다 우리가 보지 못한 성경의 부분을 발견하고 소개하고 전파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상에 너무나 잘 세웠다 잘했다 고맙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여기서 죽었다면 즉 여기까지 살고 86세 이전에 죽었다면 개신교의 주장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완벽하게 올바른 교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아직도 100년을 더 살고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도 두 번이나 더 남아 있습니다. 이는 저와 여러분에게 똑같이 적용이 되니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고 각자를 살피셔야 합니다. 목사님 바로 우리 목사 장로의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나 정확하지 않습니까? 목사님과 장로님께서 처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아브라함과 같이 의롭다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여전히 잘 믿는 분도 있고 타락한 분도 있고 아예 목사도 장로도 버리고 사업을 하든지 교회도 나가지 않고 여자를 붙들고 외국에서 산다든지 얼마든지 다양한 일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살피십니다. 성도를 살펴서 바로 가게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늘 함께 하시고 우리를 감동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마치 옛 이스라엘이 1000년 동안에 하나님을 괴롭히듯이 하면서 살면서 너무나 이들 장로 목사가 믿음으로부터 멀어져서 이제는 돈만 밝히고 이제는 여자를 밝히고 이제는 권력에 맛이 들어서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더 좋게 여겨지는 세상의 악에 정신이 나갔을 때 정의로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절대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악에 물이 든 그분의 백성을 의롭다 하지 않습니다. 음란하다 하시고 패역하다 하시고 불의하다 하십니다. 천 년의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보시면서 그렇게 틀림없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분명하게 불의한 놈아 답답한 놈아 하십니다. 믿다가 타락한 사람과 더욱 믿음이 깊어지는 믿음의 대표이자 기초인 아브라함은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겔 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런데 우리 조상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떤 상태로 있다가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지 봅니다. 여기를 루터는 보고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했어야 했습니다.못 보았으면 이제라도 바로 잡으면 됩니다. 루터는 제게 보기에 절대로 아브라함의 인생 전체의 즉 100년의 여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봅니다. 이제 두 번째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장면입니다.
창세기 17장 [개역개정]
할례: 언약의 표징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창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분명하게 아브라함과 사래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요 사라는 89세입니다
그런데 이를 로마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우리는 이 부분을 풀고 가야 합니다. 분명하게 세세하게 기록을 하는 창세기는 웃었다고 하였는데 로마서는 같은 부분을 설명하면서 더욱 굳게 믿었다고 기록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앞에서 본 75-85세 때의 상황이 아닙니다. 이를 창세기는 세부적으로 기록하고 로마서는 전체적으로 기록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재미가 있게 이 부분을 설명을 할 수가 있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1년 이라는 기간입니다. 즉 임신이 9-10개월 기간이 있은 후에 출산이 있으니 아브라함과 사래는 약 2-3 개월의 자녀를 가질 여유가 있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86세에 하갈과 자고 이스마엘을 낳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라는 임신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을 다시 하시자 이들이 할례도 행하고 잠자리도 시도합니다. 아브라함의 씨라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부부는 임신에 성공합니다. 여기에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이를 저는 아래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림으로 표현을 해서 모두가 이해가 되게 했습니다.
이제 로마서 4장 17-22절의 하나님의 설명이 너무나 정확함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맥락을 보면서 이 정도는 이해를 해야 목사도 되고 신부도 되고 수녀도 된다고 믿습니다. 일 년이라는 기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라야 합니다. 동정녀 탄생이 아니 됩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설명이 4장 17-22절로 분명하게 잘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 후에 정확하게 이삭이 태어납니다. 이렇게 성경적으로 분명하게 단서를 주었는데 위와 같이 이해가 없는 모든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께서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서 그렇습니다. 분명하게 오직 믿음도 아니고 오직 믿음 + 행위도 아닌데도 오직 교리에 정신이 팔려서 성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신 것입니다. 두 교회가 다 바로 보셔야 합니다.
답은 무엇입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이 태어날 것이라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래는 1년의 기간이 있습니다. 서로 몸이 늙어서 이전에 잠자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웃었던 것입니다. 마른 나무에 꽃이 핀다니 웃은 것입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두 부부가 그냥 믿자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더 확실하다 믿자 그래 해 보자 하니 이 순간에 믿으니 불뚝하게 된 것이고 서로 잠자리를 신나게 하니 임신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즐겁고 기쁜 순간입니까? 이렇게 멋진 불가능한 일을 우리 모두에게 하실 수가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되니 한 번만 합니까? 시도 때도 없이 두 부부가 잠자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모든 불임 부부가 이렇게 믿고 임신이 가능합니다. 믿고 기도하고 행하시면 기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행함이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부부가 사랑하고 잠자리를 통해서 즐거움도 얻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밤에 즐거움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래는 즐거움이 있으리요 했지만 아기를 가지는 즐거움과 남편과 자는 즐거움이 동시에 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믿기만 했는데 이삭이 생겼다고 할 인간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믿고 행해야 한다고 이제는 완벽하게 맞습니다. 개신교가 마음이 아파도 이렇게 100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오신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는 천주교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믿으니 불뚝 불뚝하고 아내는 준비가 되었는데 가만이 있는 즉 잠자리를 즐겁게 행하지 않는 모든 부부는 이상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치고 자신을 따르면 천국의 모든 좋은 것으로 너무나 분명하게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그냥 그래도 불순종하고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즉 부자가 되어도 가난한 이웃이 죽어가도 그냥 손에 쥐고 사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이 행함이 싫어서 성경의 내용도 부정하면 이는 참으로 큰 일이 날 사람입니다. 우리 믿음이 여기에 머물면 아니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제 죽었다면 여기까지가 답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살아서 이삭을 키우고 여러가지 일들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잘 하고 있습니다. 행하여 완전하라는 명령도 잘 지키고 의와 공도도 잘 지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데 또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만 아니라 수십 년을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는 아예 성령께서 내주 하시면서 쉬지 않고 점검을 하십니다. 성령이 소멸이 되신 분은 그냥 감각도 없이 삽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같이 쉬지 않고 처음과 끝이 똑같이 잘 믿는 분은 성령의 인도로 물질에 여자에 권력에 눈이 팔리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의 기쁨으로 사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온 시험은 감당이 어려운 시험입니다 마지막 테스트입니다. 세번째 테스트입니다.
창세기 22장 [개역개정]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시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주신 곳으로 가더니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는 이 사건을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약 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이제 118-125세가 된 아브라함은 마지막 하나님의 믿음에 대한 시험을 이렇게 통과를 합니다. 성경의 기록이지 천주교의 억지가 아닙니다. 성경이 이렇게 기록이 되었다면 목사님 장로님은 그냥 성경대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한데 또 초기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시고 의롭다 한 내용만 기억하고 오직 믿음이면 돼! 하면 맞기는 맞지만 일생의 아브라함의 신앙을 소개하는 데는 분명하게 부족합니다. 그냥 이대로 행해서 의롭게 되었음을 깨끗하게 인정하시면 성경대로 잘 믿는 것이 됩니다. 어거지가 뭐가 필요합니까? 처음 믿고 의롭게 되어서 십 년이 지나고 50 년이 지났는데 어떤 이는 80 년도 되었는데 아직도 어린이 신앙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행함도 없고 바침도 없이 산다면 얼마나 얼마나 성경의 내용과 다르게 삽니까? 왜 아브라함을 본다고 하면서 그의 초기의 신앙만 보시고 중기와 말기의 아름답고 수천 년을 가는 신앙은 보지 못하십니까? 그리고 이제 우리는 곧 하나님을 뵈옵기 전에 아브라함과 예수님을 만날 것인데 아브라함이 뭐라 하실 것입니까? 너무나 높이 있는 아브라함을 보기는 하겠지만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어쩌면 그 때 이후에 의롭다 인정이 취소가 되어서 천국도 못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짜 입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행하셔야 합니다. 물질을 바치면 천국에서 참 된 생명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원리 대로 믿고 장로, 목사, 그리고 천주교 성도가 오늘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집도 없고 땅도 없는 약 국민의 70%에 해당하는 3500백만 우리 국민에게 집도 땅도 나눈다면 한국의 모든 문제는 하루만에 다 해결이 됩니다.
딤전 6장 17-19절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목사님 신부님께서 명령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제 우리는 100년 동안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께 믿음의 테스트를 받고 합격을 했는지 누가 쉽게 이해가 되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한 번이 아니고 세 번입니다. 그리고 그 강도가 점점 더 올라갑니다. 그리고 다 통과를 했고 그때마다 의롭다 하심을 통과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의 믿음을 일생을 통해서 여러 번 점검을 하십니다.여러분은 얼마나 시험을 받으시고 통과를 하셨습니까? 80년 전에 오직 믿고 의롭게 되었다 믿고 그대로 타락해서 살면서 여전히 나는 의롭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국의 모든 80-90대 70대 성도에게 위와 같이 나누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런데 얼마나 나눕니까? 아브라함의 신앙이 점점 더 나이가 들수록 단단 해지고 무엇이든 바치라면 조금도 아낌도 없이 바치는 신앙을 얼마나 실천하십니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우리와 직결되는 문제를 반드시 점검하고 가야 합니다. 어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로 바칠 수가 있었습니까? 전 날 명하시니 주저하지 않고 다음 날 새벽에 바로 아들을 잡아서 태워서 바치기 위해서 준비를 다 하고 산으로 갑니다. 과연 아버지가 아들을 칼로 잡고 죽여서 장작으로 태워서 번제를 바치는 일을 바로 감행할 수가 있었습니까? 성경대로 하나님을 경외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들이 죽어서 없어지면 대가 끊어지고 하나님과 모든 약속이 다 물거품이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내 아들을 잡아서 바치라고 하는구나 하면서 아들을 잡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전능성을 믿고 어떤 경우에도 내 아들을 살려서 내 아들이 또 자녀를 낳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을 이루실 분으로 굳게 믿고 즉 어떤 경우에도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아들을 조금도 주저없이 잡습니까? 저는 후자로 굳게 믿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와 여러분에게 이와 똑같은 믿음을 모든 신자에게 하나님께서 요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아브라함의 신앙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아브라함이 믿는 신앙보다 약한 강도의 신앙을 요구하지 않고 도리어 더 강한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정말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다 60 후반 70이 넘으신 분은 약 30 년 안에 거의 100%가 죽습니다. 우리 보다 30세가 많은 분은 한국 전체에도 0.01%도 살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 죽었고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리 살려고 해도 다 죽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예전과 같이 흙에 시신이 묻히는 분은 드뭅니다. 대부분 화장을 해서 재가 되어서 보관을 하거나 흩어 버립니다. 저와 모든 분이 죽어서 이렇게 재가 되고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믿습니까? 여러분이나 저나 바로 닥친 문제입니다. 어떻게 내가 작은 부분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다 사라졌는데 육체로 다시 살아납니까? 여러분 그것을 믿어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 재가 되어서 다시 살아날 것이란 믿음은 본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삭에 대한 것이지만 이젠 저와 여러분이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믿어야 하는 단계에 오신 것입니다.
이 신앙이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좋지도 못하고 세상을 여전히 사랑하는 죽는 것도 두려운 분께 올 수가 있습니까? 너무나 가진 것이 많고 아직도 벌어야 되는 일이 많은 분께 언제 어떻게 이런 신앙이 옵니까? 믿고 행해 보지도 않고 믿고 바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무엇을 했다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재가 되고 흙이 되어서 사라진 우리를 뭐가 아쉽고 뭐가 좋아서 부활까지 즉 온 지구상의 과학과 돈을 다 바쳐도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해 주실 것이라 믿을 수가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고 행했느냐 믿고 바쳤느냐 물으신다면 무엇이라 합니까? 순교자는 한 분도 빠짐없이 부활을 굳게 믿고 생명도 바칩니다. 몸도 다 바칩니다.그런데 이 세상에서 피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물질도 바치지 않고 불순종의 삶을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하나님께 부탁을 드립니까? 내가 나를 절대로 부활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나는 재가 되고 흙이 되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반드시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나와 같은 모습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영원히 살 사람으로 부활을 시켜 주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믿음과 함께 내 믿음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일생의 믿음을 보시고 행위를 보시고 살려 줄까 말까 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를 굳게 믿고 아들을 바치는 일을 쉽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잘 믿고 그 믿음이 강해졌으며 그리고 순종이 일생을 걸쳐서 쉬지 않고 행해졌었기에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노후를 주님을 만날 기대에 있는 분들이 한국에도 많을 줄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부디 아브라함의 일생을 믿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부디 날로 강해지는 믿음을 따릅시다. 부디 믿고 행하고 무엇이든지 바칠 수가 있는 신앙인으로 갑시다.
그리고 천주교 신부님 수녀님께 묻습니다. 믿고 + 행해야 의롭게 된다고 하시는 데 신부님이나 수녀님 모두가 초기에 어떤 신앙이었습니까? 그리고 성당이나 교회에 막 출석하신 분이 바로 믿고 행하는 일이 쉽습니까? 그리고 일생을 믿어도 바치는 것이 어려운데 처음부터 바치는 신앙이 가능합니까? 예수님께서도 3년을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친 후 바로 세상에 가서 전하게 하시지 않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우선 믿기를 원하시고 믿으니 의롭다 하셨으니 약 75-85 세부터 99-100 세 때 까지입니다.적어도 불신자가 교회에 와서 5-10년은 되어야 믿고 행해라 하는 말이 실감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믿고 행하는데 가르쳐야 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아브라함 말기 가장 최후 최고의 신앙을 보면서 초신자에게 그렇게 믿고 행하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도리어 개신교의 주장이 더 타당합니다. 믿고 행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개신교의 오직 믿음에 대한 부분을 인정하고 그 공로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당에 오신 분께 믿고 행하고 믿고 바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아브라함의 일생의 신앙을 보면서 서로를 용납하고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를 세워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온 100년의 신앙을 다 보시고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에게 로마서 1장 17절을 그대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보실 것입니다.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개역개정)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함과 같습니다. (제가 영어로 다시 정확하게 번역을 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아브라함의 신앙을 잘 보시고 100년의 신앙을 다 아시는 분은 위의 구절이 바로 이해가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맞습니다. 아브라함의 초기의 신앙으로 정확하게 창세기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증거합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믿음 + 행위도 역시 아브라함의 99세부터 175세까지 믿음이기에 역시 정확하고 이를 야고보서에 그리고 로마서 4장 17-22절에서 정확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확합니다. 이렇게 서로 정확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보시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맞지만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라고 반드시 못을 박아 두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첫 믿음부터 죽을 때까지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의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믿고 그냥 의롭게 됨도 아니고 믿고 무언가 행위를 해서 의롭게 됨도 아닌 믿고 매일 매일 사는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고 행하면서 그 믿음이 매일 매일의 믿음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이 없이 잘 믿었습니다. 그래서 선량한 사람이라 불리운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셔야 이신칭의 즉 믿으므로 의롭게 됨을 잘 이해를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믿고 있습니까? 이렇게 성경적으로 증거가 분명한데 여전히 오직 믿음에 머물고 그리고 믿고 행함을 오늘 믿는 초신자에게도 강요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이글을 보시면 바로 여러분의 신앙이 점검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으면서 여러분의 양들에게 어떻게 믿으라고 하십니까? 내가 믿음에서 이미 타락한 상태로 나의 형편도 고치지 못하면서 목사라고 신부라고 성도에게 믿어라 믿고 행해라 이렇게 하십니까? 계속 제 글을 보시면 정확하게 여러분의 상태가 보입니다. 부디 끝까지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앞의 긴 글에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전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신앙인이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100년의 신앙의 삶을 그의 사후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평가로 살펴 보았습니다. 첫째는 그가 선량한 사람이었다는 평가로 미가서 6장 8절의 선한 삶의 정의로 정의를 행하는 사람, 자비 즉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그리고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서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가 평가가 그가 하나님의 법, 율례, 명령, 교훈 등을 잘 지킨 사람인 것을 살펴 보았는데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통해서 먼저 살피고 그 다음에 법을 잘 지킬 정도로 하나님을 잘 순종하고 행한 부분을 나누어서 살피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앞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과정을 개신교와 천주교의 예를 동시에 들면서 각 교회가 아브라함의 일생의 믿음을 설명하는데 모두가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지적했고 그 올바른 이해를 100년의 전체의 삶을 통해서 로마서 1장 17절로 다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법을 잘 지킨 것이 믿음으로 오는 의를 통해서 대부분의 분들이 많이 설명을 하는 것을 소개합니다. 위의 믿음으로 오는 의를 통해서 비록 아브라함의 삶이 온전하지 않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믿었기에 의롭다 인정을 받아서 그분의 사후에 그의 의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창세기 26장 5절과 같이 아브라함이 법을 잘 지켰다고 인정해 준다는 견해입니다.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따라 내가 지키라고 일러준 나의 계명과 규정과 훈계를 성심껏 지킨 덕이다."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5 because Abraham obeyed me and did everything I required of him, keeping my commands, my decrees and my instructions.”(공동번역, 개역개정, NIV)
저는 이도 역시 참고를 할 만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명령과 그를 부르신 목적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위의 평가를 받을 만큼 올바로 온전하게 살았음을 믿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앞에서 소개가 된 내용도 있습니다. 먼저 다시 앞에서 보신 구절을 다시 봅니다. 저는 믿고 행함이 아래 문구와 명령에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온전히 이루어져서 하나님께서 그의 행위를 보시고 위와 같이 계명을 잘 지켰다고 평가를 하시는 것으로 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에 비록 그 행위가 조금 부족함이 있어도 의롭다 인정을 받았다는 견해도 충분히 경청할 만한 의견이라고 보면서도 저는 아래의 명령에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브라함이 합당하게 반응을 했고 그리고 행함이 법적으로 준법적이었기에 그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법을 잘 지켰다고 인정을 해 준 것으로 봅니다. 그에 대한 설명입니다.
창 17 :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우리는 앞에서 정의롭게 행한 것, 사랑을 실천한 것, 그리고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한 삶을 일일이 아브라함이 산 삶을 통해서 살펴 보았고 그 삶이 선량한 삶(정의를 행한 것, 사랑을 실천한 것, 겸손이 주와 동행을 한 것)으로 손색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설명을 드릴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혹 궁금하신 분은 다시 앞으로 가셔서 확인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의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준법에 대해서 당시에 모세 오경의 율법과 같이 세부적인 조항이 없었는데 율례, 규례, 교훈 등을 말씀하시며 마치 모든 율법을 망라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과 같은 의미를 찾을 수가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이제 하고자 합니다. 나중에 모세를 통해서 주신 613 조항의 율법을 모두를 통칭해서 규례, 율례, 규칙, 명령, 그리고 크게 율법으로 이야기 하는데 이 법의 정신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마태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선량한 삶의 요소와 법의 율법의 정신이 전적으로 동일합니다. 겸손히 주와 동행이라는 말은 곧 신실함으로 표현이 가능합니다. 일생을 주님과 동행하면 주께서 아브라함을 신뢰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실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미 정의롭게 살면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면서 그리고 하나님과 일생을 동행하면서 모세 오경의 법의 정신을 다 지켰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하는 사람, 믿음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을 바울 사도는 아래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아브라함이 선량한 사람으로 일생을 평가를 받았으니 정의를 행했으므로 율법을 잘 지킨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함으로 모든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믿음 생활을 잘 해서 역시 율법을 굳게 세운 사람입니다. 이제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하셔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비록 모세 시대와 같이 세부적인 율법의 조문이 없어도 모든 율법, 규례, 명령, 교훈을 다 지킨 사람으로 인정을 하셔도 조금도 무리가 없습니다. 즉 오직 믿고 마음대로 산 사람을 의롭다 하시고 모든 계명을 잘 지킨 것으로 보신 것 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 행위가 모든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울 정도로 흠이 없었기에 아브라함이 법을 잘 지겼다고 하나님께서 그의 사후에 평을 하시는 것으로 저는 봅니다. 그래도 한 두 가지 여러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조금 이상하게 행동한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0년 이라는 긴 세월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며 잘 믿고 행한 것을 보시면 한 때 조금 이상한 행위는 덮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체를 보면서 올바로 이해를 해야지 하나님께서 덮으신 허물을 들추어 내는 행위는 불경이라 저는 믿고 그렇게 들추어 내고 싶은 분께 하나님께서 그분의 너무나 못난 행위를 일일이 들추어서 너는 어떻냐 물으실 때 온전히 그분 앞에 서실 분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으리라 믿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평가를 그대로 믿고 성경을 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모세 오경이 있기 전에 인물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은 400년 전에 그리고 약 개신교는 150년 전까지 성경(율법)이 없으니 무엇으로 하나님께 사람을 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 지구상에 산 사람을 다 최후의 심판 때 심판을 하시는데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롬 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롬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타락하지 않은 양심은 바로 선량의 삶의 정의로운 삶, 사랑을 실천하는 삶, 그리고 신실한 삶에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악을 행할 때 그 사람을 각성시키거나 찌르면 그 양심대로 사는 것이 바로 율법을 지키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비록 이 민족의 조상 중에서 율법을 모세에게 받지 않았지만 아브라함과 같은 우리 조상이 많았고 양심을 따라서 흰 옷을 즐겨입고 평화를 사랑하고 보복을 행치 않고 많은 분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믿고 우리 조상이 천국에 수도 없이 있으리라 믿는 사람입니다. 제가 고향에서 그리고 여러분이 60년 전에 고향에서 보았던 어르신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을의 삼대가 함께 오손 도손 사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완벽하게 십계명 중에서 5-10계명을 지금 예수를 믿는 사람보다 다 잘 지켰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우리 민족의 조상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싶어서 잠시 끼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본래 요지로 갑니다. 왜 아브라함이 율법을 다 조문 조문 다 지켰다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결코 어렵지 않고 너무나 귀한 성경의 핵심임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는 율법이 비록 613조문이나 되고 방대하지만 예수님께서 두 계명으로 요약을 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하셨으면 우리는 아! 율법이 사랑에 대한 규정이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규정이라 믿으면 율법이 너무나 쉽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정신에 대해서 위와 같이 정의와 사랑과 신실함에 대한 규정이다 라고 믿으면 아!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리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속성을 그대로 율법에 넣으시고 우리가 율법대로 살기만 하면 정의로운 세상이 되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되고 서로 신뢰하는 세상이 됨을 믿고 이를 위한 법이 율법이다 믿으면 율법이 또 너무나 쉽게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율법에 대해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을 믿으면 율법이 너무나 쉽고, 너무나 고맙고, 너무나 희망이고, 너무나 찬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보시겠습니다.
신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선포하는 이 모든 법만큼 바른 규정과 법규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 어디 또 있겠느냐?
8. And what other nation is so great as to have such righteous decrees and laws as this body of laws I am setting before you today?
율법은 3500년 전에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법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법으로 지금 세상의 국가의 헌법과 비교를 했을 때 이들 법과 조금도 비교가 되지 않게 모든 지구상의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입니다. 절대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법이 정의로운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이 법을 우리는 잘 배우고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 개신교 모든 성도의 의무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모든 율법의 규칙, 규례, 명령과 교훈을 잘 지킨 것으로 평가를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이에 대해서 완벽하게 증명을 하신 분이 바로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 사도의 로마서는 이렇게 실제로 믿고 율법을 완성하는 삶을 아브라함과 같이 사라는 뜻으로 기록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신칭의의 믿음의 논쟁에 매여서 500년을 보냈지만 이제는 더욱 중요하고 긴급한 주제로 속히 이동을 해야 합니다. 두 교회가 이신칭의를 상호 보완적으로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더욱 깊은 영적인 이해로 가서 함께 속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전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온 세상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그 내용을 같이 봅니다.
바울 사도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성경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를 잘 이해를 하면 바울 사도의 영적인 여정과 삶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가 있으니 바로 아브라함의 삶과 100% 일치합니다.
먼저 바울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베냐민 지파의 사람으로 아브라함 후대의 모세의 율법과 그 이후 약 3500년의 이스라엘의 전통과 구약의 이해와 그리고 당시 그리스와 로마의 변화에 대해서 정통하고 언어도 여러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어, 헬라어, 그리고 히브리어, 그리고 지방의 언어를 다 사용했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당대 1인자에게 잘 배웠고 율법으로 흠이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던 사람입니다. 즉 율법을 조문 조문 잘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가두던 사람입니다. 구약은 알되 신약은 모르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분의 사역을 위해서 간절히 찾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약의 율법을 잘 아는 선생이 예수님께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러므로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예수님께) 받은 모든 율법학자(율법을 가르치는 선생)는 그 주인(예수님께서)이 자신의 보물 창고에서 새 보물도 꺼내서 나누어 주고 옛 보물도 꺼내서 나누어 주는 것과 같다. (때에 따라서 신 구약 말씀을 나누심, 반드시 이렇게 예수님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잘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임)
그런데 바울을 비롯해서 율법학자들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형식에 치우치고 율법의 정신이 의와 자비와 신실함을 잊고 위선자로 살고 있으니 위선자야! 독사의 새끼야! 하시니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고서 자신들에게 도전한다 덤빈다 생각하고 너무나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잡아서 죽이려고 하고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저도 역시 그렇게 예수님을 못을 박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너무나 크신 은총으로 새롭게 되어서 이렇게 온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모든 것이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정통해서 성경을 진실로 올바로 이해할 사람이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 때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글을 신약 성경으로 갖고 구약도 함께 가지고 다 보면서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를 하는데 구약이 없이 우리는 절대로 예수님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절반도 알 수가 없기에 반드시 구약에 정통한 율법학자가 천국에 대해서 즉 복음을 듣고 배우고 이를 예수님 즉 신 구약 성경을 다 나눌 수가 있는 천국에서 살다가 오신 분께 배우면 자신이 하는 사역을 할 수가 있는데 모두가 덤비니 결국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 하신 후 천국에 올라가 계시다가 직접 오셔서 바울을 회개를 시키시고 천국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께서 하시던 말씀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셨으니 우리가 보는 로마서이고 다른 바울 서신이라 믿습니다.
저도 예수님께 불을 받고 행정고시에 실패하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그리고 이렇게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한국인으로 율법을 듣지도 배우지도 지키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행정고시 공부가 나름대로 율법에 대해서 조금 쉽게 다가갈 수는 있었지만 대부분의 한국의 성도가 그러하듯이 저도 모세 오경의 법을 별로 알지도 배우지도 관심도 가지 못하고 신앙 생활을 어느 정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독한 가난과 세상의 밑바닥에서의 불의에 대한 시달림과 절망끝에 율법을 보았을 때 저는 빛을 보고 희망을 보고 이 세상을 반드시 정의롭게 할 수가 있다는 믿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어려운 삶으로 간 것이 아니라 저를 이렇게 낮은 곳으로 고난으로 밀어 넣고 진리를 보게 하신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세상의 법은 왔다 갔다 하고 독재자가 함부로 무시하고 권력자가 자신에게 우리하게 만들고 국가는 절대로 타국을 점령이나 노략의 대상으로 보지 자국과 같이 보호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법이지만 정의롭고 사랑이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 율법은 공정하고 공평하고 수천 년이 가도 글도 한자 변함없이 언제나 진리로 있으니 얼마나 큰 빛이며 희망입니까? 율법을 온 세상의 크리스천이 성령의 도움으로 지킨다면 진실로 온 세상이 다 천국으로 됩니다. 이 진리를 절대로 놓치면 아니 되니다. 바울과 같이 되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시던 사역을 하시던 겉과 같은 사역을 할 모든 목사 장로 권사 그리고 신부님고 수녀님께서는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 바울과 같이 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양들에게 저절히 보물 창고 성경에서 구약도 꺼내서 나누어 주고 신약도 꺼내서 나누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무시하고 경히 여기고 배우지도 지키지도 않는 모든 목사 신부 수녀님은 절대로 그런 예수님의 사역을 할 수가 없고 바울과 같이 전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 어느 신부님께서 지적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현장으로 우리는 가야 합니다. 바울 사도를 이해하는 길이 로마서를 잘 이해하는 길이리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먼저 로마서 1장 17절에서 바울 사도는 믿음 생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해야 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하루하루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의롭게 인정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누구에게 내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았어 하고 별로 말도 아니 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그 믿음 생활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말씀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서 7장 6절의 구절입니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아브라함과 다른 믿음의 환경에서 살고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는 이 시대에서 성령으로 일생을 사신 분의 기록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삶을 조망합니다. 꼭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성령으로 살기에 가능한 일을 아브라함은 어떻게 100년의 신앙속에서 잘 하시고 인정을 받으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즉 율법을 잘 지킨 내용을 우리는 이에 논할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사역의 이해가 없이는 절대로 이해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누리고 산 삶이며 우리도 틀림없이 이와 같이 누리고 살아야 할 삶입니다.
성령에 대해선 너무나 다양한 주장과 이론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국의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님께서 성령에 대해서 너무나 강조하시고 성령으로 전도하시고 치유하시고 목회를 하셔서 75만 명이나 되는 이 세상에서 단일 교회로 가장 큰 교회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도들의 합력으로 세운 줄로 믿습니다. 바울이 성령을 받는 과정을 보면 먼저 예수님을 만나서 눈이 멀고 먹지 못하고 3일을 보내면서 자신이 완전히 잘못 되었다는 것을 믿고 회개합니다. 이전의 삶을 완전히 버립니다. 예수님을 직접 뵈옵는 것은 이렇게 한 인생의 모든 것이 바뀌는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일을 당하니 어찌 이전과 같이 삽니까? 죽여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순한 양이 되어서 아나니야를 만나서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간의 지은 죄를 다 용서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십니다. 이제 바울을 거듭나게 되고 새 사람이 되어서 아라비야 사막에서 예수님께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습니다. 구약의 말씀이 이제 비로소 열립니다. 모든 구약이 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임이 확실이 믿어집니다. 그리고 삼층천에도 가서 눈으로 천국을 봅니다. 그리고 이전에 꿈도 꾸지 못한 다양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그를 선한 삶으로 아브라함고 같이 선한 삶으로 그리고 복음의 증인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약 20년을 경험하고 로마서를 고린도에서 로마로 보내는 것입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주장하십니다. 로마서 7장 6절입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율법은 찬양의 대상입니다. 경배의 대상입니다. 구약의 백성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조금도 다름이 없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정말로 잘 이해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율법없이 이 세상에 설 수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나라가 설 뿐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픈 사람이 법을 무시하고 율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을 공경하고 잘 배우고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에도 가고 큰 자가 되는 비결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천주교와 개신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보시겠습니다.
예수와 율법(개역개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의 완성(공동번역)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하고 찬양의 대상인 율법을 인간은 구원을 받았다는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어떤 대상의 중요성을 잊으면 일생을 수고해도 헛된 수고로 끝이 납니다. 일생을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경도 모르고 살다가 지옥에 가는 인생은 마지막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후회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교회에 출석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리에 대해서 마음의 문들 닫고 오직 개신교면 개신교 교리에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천주교면 천주교 교리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면 만약에 천주교나 개신교 중에 하나만 옳다면 그 사람의 일생의 신앙의 수고는 헛된 일로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일생의 시간에 우리는 얼마나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깊이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합니까? 이제는 성경이 모두가 자국어로 번역이 되고 그 번역도 여러 버전이 있고 영어로도 100개가 넘고 헬라어 히브리어로 직접 확인이 가능한데 모든 세상의 일에 바빠서 확인도 하지 않고 믿는다고 한 모든 행위가 헛되게 결론이 나면 어찌합니까? 오늘 이 구절도 이렇게 잘못 알고 잘못 믿으면 큰 낭패를 당하는 구절입니다.
먼저 한국어로 개역개정과 공동 번역은 즉 천주교와 개신교의 대표적인 번역은 너무나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제가 위해서 주장한 인간이 절대로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거룩하고 영적인 존재인 율법을 함부로 다루고 있고 방법의 문제를 오해하는 번역을 해서 본문의 의미를 너무나 잘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신교는 150년의 역사가 있다고 해서 그렇다 해도 천주교는 400년의 역사가 있는데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이렇게 해석을 한 것이라 보는데 바로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부분에 대해서 올바르지 못하면 바로 잡기를 바라시는 분이시지 절대로 바로 처벌을 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믿기 바랍니다.
제가 너무나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어떤 이가 결혼을 해서 이제는 결혼한 몸이 됩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표기를 했다고 합시다.
신랑은 이제 신부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신랑의 몸은 낡았으니 신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신랑의 몸에 문제가 많으니 이제는 신부를 중심으로 살고 신랑의 몸은 어찌 되던 관심을 갖지 말아라 하는 말과 같이 들립니다. 사실은 이 말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신랑과 신부는 이제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홀로 살 때 행하던 행실을 접고 이제는 신부와 같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7장 6절은 두 가지 삶의 태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던 바울 사도와 같이 율법을 잘 배우고 조문 조문 지키면서 살던 옛날에 섬기던 방법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서 성령으로 섬기는 새로운 방법으로 살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즉 방법의 문제를 율법이 낡았다는 쪽으로 잘못 성도가 이해하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절대로 율법은 낡을 수도 없고 새로울 수도 없는 거룩하고 신령하고 모든 우주보다 인간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낡았다는 표현이 지극히 불경스러운 말씀이며 율법의 낡은 것이란 표현도 역시 큰 불경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가장 큰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경을 범합니다. 이 불경된 말씀을 수백 번 읽고 그대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니 율법과 무관하게 살자 하면 바로 지옥(예수님의 마태복음의 말씀)입니다.
제가 영어를 다시 번역을 해 봅니다. 누구라도 다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두 가지 삶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첫째는 율법을 잘 배웠고 조문 조문 지키면서 의롭게 되고자 했고 그러나 형식에 그쳤고 둘째는 예수님을 뵙고 성령을 받아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섬기는 방법도 이제는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 되었고 이렇게 후자의 삶으로 사라는 말씀입니다. 너무나 쉬운 이해입니다. 율법을 어떻게 하라는 말이 아니고 낡았다고 버리라는 말도 아니고 그냥 성령을 따라서 살아라 즉 오늘 믿음 생활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을 따라서 살 때 우리는 놀라운 반전이 있으니 이 비밀이 바로 율법으로부터 자유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바울 사도의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여기까지 완벽하게 위에서 본 아브라함의 삶과 일치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으로 또 사랑의 사람으로 선한 삶을 살아서 나중에 율법을 잘 지켰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래 부분은 조금 이해가 어렵습니다. 바울로 보면 바로 이해가 되지만 아브라함은 어떻게 성령의 도우심이 언급되어 있지 않는데 아래 말씀대로 살았다고 평가를 받는가 입니다. 다윗 같은 경우는 성령에 감동이 된 사람이다 란 표현이 있습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성령을 따라서 살 때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서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룹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으로 성령을 따라서 섬겼드니 도리어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다 이루었다 말씀하십니다. 즉 예전의 방법으로 율법을 의식하고 조문 조문 지키려고 애를 쓰지 않았는데 성령께서 복음을 전하면서 사랑을 실천함으로 선한 삶을 살므로서 예전이 하지 못했던 율법의 완성을 본 것입니다. 즉 성령께서는 결국은 우리를 인도하셔서 율법을 지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에스겔은 정확하게 미리 예언으로 밝혔습니다.
겔36: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제 아브라함의 평가와 바울의 평가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첫째는 선한 삶입니다. 에스겔서 2장 10절에서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을 따라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웁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습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리고 행함이 바울은 성령의 인도로 완벽하게 아브라함이 사후에 평가를 받았던 모습대로 삽니다. 두사람이 너무나 일치합니다. 다른 부분은 아브라함은 성령에 대한 부분이 우리가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죄인에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거듭나고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합니다
바울의 부름의 목적과 아브라함의 부름의 목적이 일치합니다. 아브라함은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불렀다고 하셨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역시 복음을 전하면서 율법을 완성합니다. 이는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류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 분의 말씀 즉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모든 인류에 대한 뜻입니다. 그분의 의와 그분의 나라가 이렇게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한 번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완벽한 본을 보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역시 율법대로 사는가 보시고 복과 저주를 내리시고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새롭게 된 우리가 율법을 완성하도록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세워지는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성령의 도움으로 율법이 완성된 나라 모습
이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 길게 왔습니다. 여기까지 이해하신 모든 분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정확하게 로마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율법을 완성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창세로부터 말세까지의 뜻은 그분의 법(율법)대로 통치되는 나라가 이 땅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율법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최후에 심판을 하십니다. 그 나라를 이해하고 우리는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서로 존중하고 연합해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긴글로 모든 분께 전하게 됨은 첫째는 성경책입니다. 그리고 전도자의 전도 행위입니다. 단지 아무 말도 없이 성경책만 주었지만 그 성경책이 저를 이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셔서 저를 성경을 통해서 회개를 시키시고 교회를 통해서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성령께서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입니다. 성령님의 인도이십니다. 감동이십니다. 그리고 저를 잠실교회와 담임목사님과 성도가 한결같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수도 없는 믿음의 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첫 아내 천주교인이었던 아내는 사랑할 구석이 없는 사람을 품고 사랑을 해 주었는데 이 아내의 사랑으로 죄인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소천하신 어머니와 동생은 일생을 저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와 아들은 어려운 가운데서 참고 저의 사역을 지지했습니다. 최근에 모든 것이 어려운 가운데 박영희 권사님과 주 목사님께서 참으로 영적으로 물질로 저를 도우고 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천만의 로마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의 회원과 이웃들 그리고 쉬지 않고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면서 격려해 주신 분들의 도움으로 8년을 쉬지 않고 전했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시길 바랍니다. 저를 택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 흉악한 죄인을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해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온 세상에 이렇게 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구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나라를 속히 정의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문제가 많고 우리 힘으로 바로 잡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의롭게 투쟁하는 모든 분께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속히 이 나라에 평화와 질서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여!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힘을 주시고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