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1-2:1
TS: 하나님만이 회복자이시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창시자인 커넬 할랜드 샌더스는 원래 작은 주유소를 운영하며 치킨을 팔았습니다. 치킨맛이 조금 알려지면서 식당을 냈습니다. 그러나 식당에 원인모를 불이 나서 식당이 전소되는 비극이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커넬은 또다시 조그마한 식당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 초,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경제 불황과 경영부실로 인해 레스토랑은 다시금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환갑이 넘은 커넬은 국가에서 받는 사회보장기금 단돈 105달러로 노숙자와 같은 불쌍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들마저 잃은 충격으로 커넬 샌더스는 정신병까지 앓게 되었고, 정신병 때문에 결국 사랑하던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65세였습니다. 절망과 낙심과 상처 속에 괴로워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노래 소리를 듣고 취한 듯이 그 소리가 나오는 곳으로 따라 갔는데, 그곳은 조그마한 교회 예배당이었습니다. 그 예배당 앞에 어떤 한 미친 여자가 앉아서 너무나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였습니다.
이 찬송소리를 듣고 커넬 샌더스는 그 여자 옆에 앉아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이곳에도 주님이 계시는 군요. 미친 여자가 있는 바로 이곳에도, 주님은 계시는 군요. 제가 평생 예수님 없이 돈만 벌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한참 동안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커넬은 갑자기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날로 병원에서 검진해보니 정신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었다. 진실 된 크리스천이 되어 신앙생활을 하던 중, 어느 날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닭고기를 만들어 팔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게 되어 시작한 KFC는 전 세계적으로 11,000개 넘는 유명한 브랜드 회사가 되었습니다.
KFC의 트레이드 마크는 젊은이가 아닌 할아버지인 이유는 늙었지만, 자신을 버리지 않고 회복케하셔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의 역사가 임하시기를 원합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호세아를 선지자로 부르셨고, 그에게 처음 말씀한 명령은 참으로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선지자로서 창녀인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정한 것을 멀리해야 할 선지자가 가장 부정하고 멀리해야 할 창녀와 결혼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음란한 고멜과 결혼할 뿐만 아니라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백성이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런 명령을 하셨겠습니까? 호세아서는 호세아와 고멜과의 관계를 하나님과 북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의 이름의 뜻은 ‘야웨는 구원이다’이며, 고멜의 이름의 뜻은 ‘가마르’는 말로 ‘완전하다’입니다. 하나님은 고멜의 이름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고 완전하게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배도하고, 거역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고멜과 같은 백성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호세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고멜을 통해서 음란한 자식을 낳았습니다.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도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예후는 북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는 말입니다. 이스르엘은 ‘하나님의 씨를 뿌린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의 씨를 받은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열매 없는 무성한 나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형식과 외식만 남고 삶의 내용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장을 보면 포도원의 노래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땅을 갈고, 돌을 골라내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망대를 세우고, 술틀을 팠습니다. 술틀을 팠다는 것은 좋은 포도를 수확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좋은 포도가 아니라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에게 들포도를 맺은 것이 어찌 된 일이냐며 판단하라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포도원 울타리를 걷고, 담을 헐고, 황폐하게 했습니다. 찔레와 가시를 내게 했고, 구름을 명하여 비를 내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의를 바랬는데 포악했고, 공의를 바랬는데 백성들의 부르짖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범죄한 백성들을 심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꺽으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호세아의 둘째 아이입니다.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약을 오래 쓰면 내성이 생기듯이, 죄에 대해서 마찬가지입니다. 신경이 죽으면 무감각해집니다. 영적 감각 신경이 살아있는 것이 복입니다.
다윗와 사울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윗은 사울보다 더 악합니다. 다윗은 남의 부인을 빼앗은 사람이고, 살인을 사주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에 회개했습니다. 가슴을 치며, 재를 뿌려가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허물과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회복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지만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변명하고 핑계하였습니다. 왕위를 폐지하겠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이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1절을 보면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여로보암은 여로보암 2세를 말합니다. 여기에 네 명의 유다 왕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즉 유다 족속과 북이스라엘 족속의 차이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네 명의 왕들은 어떤 왕들입니까? 웃시야는 초기에는 선한 정치를 하다가 훗날 악정을 하다가 성전에서 제사장 대신 분향하다가 나병에 걸렸습니다. 요담의 웃시야의 아들로 선한 정치를 했습니다. 요담의 아들 아하스는 유다의 왕 중에 가장 악한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하스는 다멕섹 신 제단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운 왕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아사, 여호사밧, 요시야와 함께 선한 왕의 대표입니다.
유다의 네 명의 왕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유다가 북이스라엘보다 130년 늦게 망한 이유입니다. 그것은 북이스라엘과 비교해서 유다의 왕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왕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북이스라엘 왕들은 모두 다 타락하여 악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의 셋째 아이입니다. 8-9절을 보면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리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더 깊어져갔고, 더 심각해 졌습니다. 중고품이라면 고쳐 사용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폐차직전에 놓인 신세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끝났습니다. 구원과 축복은 문은 닫혔습니다.
그런데 10절은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10-11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죄는 미워해도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사랑이 크신 하나님입니다. 은혜가 죄를 삼킵니다. 2장 15절을 보면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고 했습니다. 포도원은 회복되고, 사망과 멸망의 골짜기는 소망의 문이 되었습니다.
이 회복은 2:1절 말씀과 같이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었는데, 하나님도 너희 하나님이 아니었는데, 이제 회복으로 말미암아 내 백성, 내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로루하마, 긍휼히 여겨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긍휼이 여기고 용서하겠다는 루하마라고 했다.
에스겔 37장을 보면 두 가지 환상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마른 뼈 환상입니다. 저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나 큰 군대를 됩니다. 하나님의 군대로의 회복입니다.
두 번째 두 막대기 환상입니다. 하나의 막대기는 유다, 또 다른 막대기는 북이스라엘입니다. 북이스라엘을 앗수르에게 망했고, 유다는 바벨론에 망해서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이 두 개의 막대가 하나의 막대기가 된다는 것은 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되어진 회복입니다.
이런 두 막대기 회복은 본문 1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이스르엘의 큰 날은 장차 다가올 메시야 왕국을 통한 회복의 날을 말합니다. 잃어버렸던 에덴 동산의 회복이요, 완전한 구원과 안식으로의 회복입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전한 구원과 회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회복자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하나님의 회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설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