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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수의 얼굴에는 미소가 넘친다 ⓒ손춘근 |
과감히 챌린저스리그 택한 K리거 황지수, 양주에서 보낸 행복한 2년 결혼에 득녀, 그리고 효도까지 “축구 인생 되돌아본 의미 있는 시간” 선수들 도전 의식 - 구단 동기유발 결여 아쉬워 “지금부터가 중요” 지금으로부터 2년전, K리거 황지수(30, 양주)가 챌린저스리그 행을 발표했을 때 모두가 ‘쓸쓸한 내리막길’을 생각했다. 당시 그는 파리아스 감독의 총애를 받았으며 국가대표팀에도 이름이 오르내리던 선수였다. 그러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팀을 나와야만 했다. 2년의 공백은 치명적이었다. 모두가 상무가 아니라면 경기력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편견이었다. 양주에서 뛴 지난 2년, 황지수는 한 순간도 포항 복귀를 준비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이제 10월이면 포항으로 돌아가는 황지수. K리그 복귀를 앞둔 그는 자신의 목표와 챌린저스리그의 희망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
챌린저스리그에서 맞닥트린 장학영과 황지수 ⓒ이상헌 |
때로는 두 탕의 훈련, 여기에 개인훈련까지.. 경기력 유지 충분해 그는 2년전 포항을 나와 고향인 동두천으로 향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6년간 내 집처럼 생활했던 숙소에서 짐을 싸 들고 나와 승용차의 핸들을 잡았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불안했어요. K리그에서 챌린저스리그로 간 선수가 없어서 아무런 정보가 없었으니까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그런 것 때문에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 끝인가 하는 이상한 생각도 들었고... 만감이 교차했죠.” 황지수는 팀을 나오기 전까지 포항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당시 파리아스 감독이 이끌던 포항은 또 다른 전성기였다. 황지수는 친정팀 포항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훈련소에서 접했다. 4주간의 훈련소를 퇴소한 그는 곧바로 양주의 동계훈련에 합류했다. 낮에는 일을 했고, 밤이 돼서야 운동을 했다. 그렇지만 목표가 뚜렷하니 흔들리지 않았다. “팀 훈련은 최대한 안 빠졌고, 개인적으로도 웨이트 트레이닝, 런닝, 수영 등을 꾸준히 했죠. 그래야 후회가 안 들 것 같아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열심히 했어요.” “어차피 상무 선수들도 4주 훈련은 다 하고 나온다고 생각하고, 나와서 바로 양주 동계훈련에 들어갔죠. 지금은 주중에 세 번 운동하고 주말에 경기를 하는데, 동계훈련 때는 매일 운동했죠.” 팀 훈련과 개인 훈련의 병행으로 몸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낮에 일을 하니 힘들 때도 있었지만 운동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다. 동료나 상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당시 챌린저스리그(K3)의 실력은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어요. 제가 생각한 수준이 높아서 동료들에게 뭐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제가 동료들의 수준에 맞춘 면도 있지만, 제가 할 것을 열심히 하면서 조언을 하니까 팀이 좋게 된 것 같아요. 저 뿐만 아니라 김태영, 조진수 등 좋은 선수들이 많이 오면서 양주의 젊은 선수들이 보고 배우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물론 챌린저스리그와 K리그는 비교가 무의미 할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K리그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하는 사이 챌린저스리그 선수들은 주어진 업무를 해야 하며, 선수단의 컨디션 조절도 힘들다. 그리고 챌린저스리그가 주로 천연잔디장에서 펼쳐진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저는 업무보조 일을 했어요. 복사도 하고, 쌀배달도 하고, 눈 오면 제설작업도 했죠.(웃음) 힘든일이 있으면 많이 빼주시고 편의를 많이 봐 주셨죠. 눈 많이 오면 삽질해야 되는 게 제일 싫었어요.(웃음)” “우리는 밤 8시에 운동을 하는데, 시간이 밥을 먹기가 애매한 시간이에요. 그리고 밤에 훈련하다 보니까 낮 경기를 하면 적응도 잘 안 되고요.” “인조잔디도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천연잔디 경기장을 가면 너무 좋았어요. 더 잘 돼고 더 편하고… 그런데 저희가 인조잔디에서 훈련을 하니까 천연잔디 구장을 가면 죽 쑤는 애들이 몇 명 있어요. 천연잔디랑 인조잔디는 많이 달라요.” 황지수의 활약과 함께 양주는 강팀으로 도약했다. 양주는 작년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올해도 통합승점 1위를 달리고 있는 강력한 우승후보다. |
딸 예은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황지수 ⓒ손춘근 |
양주에서의 2년, 인생 의미 되찾은 재충전의 시간 그렇다고 황지수가 축구만 한 것은 아니다. 황지수는 양주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결혼했고 어여쁜 딸도 얻었다. 게다가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부모님 곁에서 지낼 수 있었다. 생전 처음 축구가 아닌 다른 일(사무보조)도 경험해 봤다. 그는 지난 2년을 통해 스스로 철이 더 많이 들었다고 말한다. “딸 이름이 예원이인데, 10월이면 첫 돌이 돼요. 돌잔치 하고 포항으로 내려가는 거죠. 양주에 와서 결혼도 하고 딸도 얻고 좋았어요. 프로에서 6년을 뛰면서 계속 타이트하게 돌아갔는데, 2년 정도 와이프, 아기,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면서 개인적으로 충전도 많이 됐어요. 밖에 나와서 보니까 포항에 대한 마음도 더 간절해졌고요.” 양주에서의 2년은 단지 개인적인 행복만 얻은 것이 아니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친정팀 포항에 대한 간절함도 뼈저리게 느꼈다. 한 발짝 떨어져서 포항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 것. 그는 프로 생활을 포항에서만 해온 ‘원클럽맨(One Club Man)’이다. 그만큼 포항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포항에 있을 때는 절실함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포항이 정말 좋았구나, 내가 좋은 곳에서 운동을 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요.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도 많이 깨달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의 언행에는 여유가 흐른다.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운동선수로서 서른 살이면 과거에는 노장으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축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됐다. 황지수는 35살까지도 충분히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챌린저스리그에서 뛴 지난 2년에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85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얻는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아요.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도 많이 깨달은 것 같고, 어떤 식으로 노력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 것 같아요. 부모님과 같이 지내면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2년간 철이 많이 든 것 같아요.” 물론 양주에서의 삶에도 매력을 느꼈다. 홈 구장인 고덕운동장의 아담한 분위기, 열성적인 팬들, 무엇보다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따뜻함이 최고의 매력이다. 황지수는 현역 은퇴 후 양주로 돌아오는 것에 굉장히 긍정적이기도 했다. “제가 동두천 출신이거든요. 그런데 심정으로는 양주가 고향인 것 같아요. 편해요. 양주 고덕운동장이 분위기도 굉장히 좋아요. 넓지도 않고 아담하면서도 관중도 많이 오신다고 생각하거든요. 솔직히 인기 없는 내셔널리그 팀보다는 훨씬 많이 오신다고 생각해요.”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관중의 소중함을 많이 느꼈어요.(웃음) 텅 빈 운동장 보다는 응원을 많이 해주시고 많이 찾아주시면 훨씬 낫죠. 그런데 전반전에는 많이 없다가 후반전 되면 어디서들 오시는지 많아져요. 경기 끝나고 상품을 나눠주시니까요.(웃음)” |
이제 포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이상헌 |
포항으로의 새로운 도전, 그리고 챌린저스리그 황지수의 총명한 눈빛은 전보다 더욱 반짝이는 듯 했다. 목소리는 또렷하며 얼굴에는 미소가 흐른다. 2년 전 미래를 불안해 하며 양주로 돌아오던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챌린저스리그에서의 2년, 포항 복귀를 앞둔 현재 불안감은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다. “K리그에서 뛸 때의 몸이 100이라고 보면 지금은 65~7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안 다치고, 안 아파야 뭐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포항에 들어가서 2~3달 운동하면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 있습니다.” “제가 챌린저스리그에서 2년을 해봤잖아요. 여기서 운동해도 경기력은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은퇴를 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돌아갈 것인가만 확실히 한다면 충분히 복귀해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감에 찬 그의 각오는 다부지다.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포항에서 ‘제2의 전성기’를 열어가겠다는 것. 그리고 챌린저스리그 출신으로서 챌린저스리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전에 포항에 있을 때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저 친구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이 나이에 무엇을 해야 되는지, 선배 형들이 어떻게 했는지도 봤으니까 운동장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알아요. ‘제2의 전성기’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것을 포항에서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챌린저스리그에서 와서 다시 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실 텐데, 그런 의구심을 다 떨쳐버리고 싶어요. ‘챌린저스리그에 갔다 와도 잘 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작년 삼척신우전자(해체)와의 플레이오프(승부차기 패배) 경기를 가장 아쉬운 경기로 꼽는 황지수. 그의 활약 덕분에 양주는 올해도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 지었다. 그러나 황지수는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 “같이 우승을 한 다음에 포항으로 돌아가고 싶으니까 아쉽죠. 그렇다고 저의 최종 목표가 포항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는데, 기회를 놓칠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지난 2년간 챌린저스리그에서 몸을 날렸던 그는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챌린저스리그의 발전을 위한 아프지만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선수들의 도전의식이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젊은 선수들이 많지만 상위리그로 가려는 생각보다는 안주하려는 선수가 많은 것 같아요.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잘 돼서 좋은 팀으로 가는 선수가 나와야 동기유발도 되고 사고전환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책임감을 느끼고요. 그래야 리그 수준도 올라갈 것이고, 활성화도 많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팀들도 선수들이 동기유발을 할 수 있도록 수당제를 도입하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수당이 없는 구단도 있거든요. 선수들끼리 ‘어떤 구단은 돈을 내고 다닌다’라고 농담식으로 말하는데 정말 안타까워요. 선수들이 동기유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글=손춘근 * 'KFA 리그신문' 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
첫댓글 멎있다 황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