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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의 절대적 동기: 타우타스 아콘테스 타스 에팡겔리아스 (ταύτας ἔχοντες τὰς ἐπαγγελίας,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우리가 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까?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까? 결단코 아닙니다! 바울은 6장 마지막에 선포된 "내가 너희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는 그 우주적인 **'약속(Epangelias)'**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포효합니다! 황태자의 신분을 가졌으니, 시장통의 돼지처럼 오물 속에 뒹구는 짓을 당장 멈추라는 것입니다.
성결의 엑스레이: 카다리소멘 헤아우투스 (καθαρίσωμεν ἑαυτούς,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데이비드 갈랜드(David E. Garland)**가 이 명령의 철저함을 해부합니다. '육의 더러움'은 음행, 술취함 같은 외적인 범죄라면, '영의 더러움'은 교만, 시기, 분쟁, 탐욕, 쓴뿌리 같은 내면의 은밀한 마귀적 오물입니다.
"이 두 가지 썩은 오물을 십자가의 피로 완벽하게 '씻어내고(Katharisōmen)',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두려워하는) 영적 긴장감 속에서 너희의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Epitelountes: 끝까지 밀어붙여 완성하라)'!" 성화는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피 터지는 자기 혁명입니다!
II. 사방이 짓눌린 자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 방식 (7:5-7)
(고후 7:5-6)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위대한 사도의 철저한 바닥: 포보이 (φόβοι, 두려움이었노라)
4장에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포효했던 강철 같은 바울도, 현실의 사역 현장에서는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거짓 사도들의 공격(밖으로는 다툼)과 고린도 교회가 잘못될까 봐 밤잠을 설치는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Phoboi)'**에 짓눌려 그의 육체(Sarks)는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위로의 성육신: 호 파라칼론 투스 타페이누스 (ὁ παρακαλῶν τοὺς ταπεινοὺς,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이)
**찰스 스펄전(C.H. Spurgeon)**이 눈물을 쏟으며 부르짖는 대목입니다! 바울이 이 지독한 우울증과 **'낙심(Tapeinous: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짓눌린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신비한 음성을 들려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디도가 옴(Titus's arrival)"**으로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군사의 무너진 심장을, 함께 피 흘리는 영적 전우(디도)의 따뜻한 체온과 그가 전해준 기쁜 소식을 통해 어루만지십니다! 기독교의 위로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형제의 품을 통해 쏟아지는 극강의 리얼리티입니다!
III. 회개의 해부학: 두 가지 종류의 근심 (7:8-10)
(고후 7:9-10)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목회적 징계의 열매: 에이스 메타노이안 (εἰς μετάνοιαν,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바울이 쓴 그 혹독한 '눈물의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의 심장을 찔러 엄청난 '근심(아픔)'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아파한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의 칼날이 수술용 메스가 되어 그들의 썩은 암 덩어리를 도려내고 마침내 **'회개(Metanoia: 존재의 방향을 180도 뒤집어 하나님께로 돌아섬)'**라는 기적을 창조해 냈기에 춤을 춥니다!
존 칼빈(John Calvin)과 존 맥아더(John MacArthur)의 회개론 대폭발 (10절):
이 장의 가장 웅장하고 무시무시한 핵폭탄입니다! 슬퍼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다 같은 회개가 아닙니다. 바울은 인간의 눈물을 완벽하게 두 종류로 찢어버립니다!
세상 근심 (헤 투 코스무 뤼페, ἡ τοῦ κόσμου λύπη): "아,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서 돈을 날렸을까, 내 평판이 왜 이렇게 추락했을까!" 죄가 하나님을 어떻게 모욕했는지에 대한 통곡이 아니라, 죄로 인해 '자신이 입은 피해와 수치' 때문에 흘리는 이기적인 눈물(가룟 유다의 후회)입니다. 이 근심은 인간의 심장을 갉아먹어 결국 우울증과 자살, 영원한 **'사망(Thanatos)'**으로 끌고 갑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헤 카타 데온 뤼페, ἡ κατὰ θεὸν λύπη): "오, 내가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피 흘리신 그 거룩하신 하나님의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았구나!"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쏟는 신적 슬픔입니다! 이 거룩한 근심만이 우리의 영혼을 십자가의 씻음으로 인도하여, 결단코 후회함이 없는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진짜 회개(Metanoia)'**를 폭발시킵니다!
IV. 참된 회개의 7가지 파괴적 열매 (7:11)
(고후 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머레이 해리스(Murray J. Harris)의 연속 폭격 (7개의 액션):
진정한 회개는 "미안합니다" 하고 끝나는 값싼 립서비스가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고린도 교회 안에 일으킨 맹렬하고 폭발적인 7가지 행동을 사자후로 쏟아냅니다!
간절함(Spoudēn): 죄에서 벗어나 진리로 돌아가려는 미친 듯한 갈급함!
변증함(Apologian): 더 이상 핑계 대지 않고 십자가 앞에서 죄를 명확히 고백하는 정직함!
분함(Aganaktēsin): 그토록 더러운 죄에 속아 놀아났던 자기 자신을 향한 무서운 분노와 역겨움!
두려움(Phobon):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심판과 거룩하심 앞에서의 뼈저린 경외감!
사모함(Epopothēsin): 바울(주의 종)과 말씀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목마름!
열심(Zēlon): 죄의 잔재를 불태워버리고 주님을 향해 돌진하는 끓어오르는 영적 질투심!
벌함(Ekdikēsin): 교회를 오염시킨 범죄와 단호하게 결별하고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징계하는 영적 단호함!
"이것이 회개다! 이것이 십자가다!" 이 7가지의 역동적인 영적 화학작용이 없는 회개는 거짓말입니다! 그들은 이 맹렬한 회개 작용을 통해 마침내 자신들이 십자가의 피로 깨끗해졌음을 우주 앞에 입증(Synestēsate)해 내고야 말았습니다!
V. 신뢰의 회복과 사도의 환희 (7:12-16)
(고후 7:13-14, 16)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목회적 환희의 폭발: 카라이 에카레멘 (χαρᾷ ἐχάρημεν,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징계와 눈물의 편지가 이토록 찬란한 회개의 열매로 맺어지자, 바울의 짓눌렸던 심장은 활화산 같은 기쁨으로 폭발합니다!
형제들의 영혼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의 기쁨은, 로마 황제가 세상의 모든 황금을 얻은 것보다 천만 배나 더 거대하고 웅장한 환희였습니다.
완벽한 코이노니아의 회복: 다레인 (θαρρῶ, 신뢰하게 된 것을)
7장의 거대한 피날레입니다!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Tharrō: 100% 믿고 안심하고 내 등을 맡길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었던 사역자와 성도의 관계가, 가짜 회개가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철저한 십자가의 회개'를 통과했을 때,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하고 강력한 영적 신뢰와 코이노니아(Koinonia)로 완벽하게 재창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