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부모의 파산 선고와 십자가의 은혜
제3강. 무능력 (Inability): "나는 내 아이를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에스겔 36:26-27)
기독교 가정의 부모들이 저지르는 가장 무섭고도 끈질긴 이단적 착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올바른 육아법과 규칙을 적용하기만 하면, 내 아이를 거룩하게 뜯어고칠 수 있다"는 맹독성 환상입니다. 폴 데이비드 트립은 오늘 이 3강을 통해, 부모가 스스로 구원자(Savior) 행세를 하려는 그 끔찍한 교만을 망치로 부수어 버립니다. 우리에게는 아이의 영혼을 변화시킬 능력이 단 1퍼센트도 없습니다! 이 철저한 '무능력(Inability)'의 인정 없이는, 참된 기독교 양육은 단 한 발자국도 시작될 수 없습니다.
첫째, 부모는 '성령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의 위대한 선포를 똑똑히 보십시오! 돌같이 굳어버린 죄인의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럽고 순종적인 새 마음을 창조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부모의 훌륭한 설득입니까? 완벽한 훈육 시스템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성령)'만이 하실 수 있는 주권적인 창조 사역입니다.
아이가 변하지 않을 때 부모가 분노하며 소리를 지르는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심 "내가 이만큼 희생하고, 이만큼 가르쳤으니 너는 마땅히 변해야 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모가 성령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여 스스로 신이 되려는 반역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일 뿐, 그 심령을 자라나게 하시고 생명을 창조하시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임을 뼈저리게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 내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을 때 '육적인 무기'를 들게 됩니다.
자신에게 영혼을 바꿀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부모는, 필연적으로 조종과 협박이라는 육신의 무기를 꺼내 듭니다. 아이의 반항을 꺾기 위해 더 큰 소리로 공포감을 조성하거나(협박), 얄팍한 논리로 아이를 굴복시키려 하거나(논리적 압도), 선물을 주며 행동을 매수하려 합니다(보상).
그러나 인간의 타락한 마음은 외부의 압박이나 뇌물로 결코 거듭나지 않습니다. 외부의 억압은 아이를 위선자로 만들 뿐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통제하려고 혈기를 부리는 그 모든 순간은, 사실상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내 힘과 내 기만술로 이 아이의 영혼을 개조해 보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불신앙의 극치입니다.
셋째, '절대 무능'의 선언이 가져오는 영광스러운 해방과 기도.
그렇다면 부모가 자신의 무능력을 철저히 깨달을 때 가정에는 어떤 기적이 일어납니까? 놀랍게도 그곳에 참된 자유와 평강이 임합니다!
부모가 구원자 행세를 포기하는 순간, 아이의 실패를 보고도 미친 듯이 분노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 어떻게 됩니까? 맹렬한 '기도'의 자리로 엎드리게 됩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이 아이의 돌 같은 마음을 단 1밀리미터도 깎아낼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진리를 대언하는 것뿐이오니, 성령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사 이 아이의 심장을 찢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어 주시옵소서!"
기독교 부모여, 당신은 변화의 주체가 아닙니다. 오직 진리의 도구일 뿐입니다.
아이를 고쳐 쓰겠다는 오만함을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당신의 한계와 무능력을 핑계로 절망하는 대신, 가장 완벽한 능력을 가지신 성령 하나님께 아이의 영혼을 전적으로 의탁하십시오! 부모의 두 손이 무기력하게 들려질 때, 비로소 하늘의 권능이 당신의 가정에 맹렬하게 역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