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기오
박경선
옥이는 할머니 생신이라고 엄마, 아빠를 따라 시골집에 내려갔다. 마당에 들어서자, 뒷문이 보이는 울타리 안쪽에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었다. 그 앞에서 노란 깃털이 송송 난 병아리들이 엄마 닭과 쫑쫑쫑 봄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옥이는 노란색에 이끌려 가만가만 다가가 보았다. 엄마 닭이 병아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가들아, 먹이를 다 먹고는 부리를 땅에 이렇게 쓱쓱 닦아야 부리가 깨끗해진단다.”
“쓱쓱, 이렇게요?”
“삑삑, 알겠어요.”
노란 병아리들은 뭔가를 열심히 찾아 쪼아 먹고 부리를 땅에 쓱쓱 닦았다.
“너희들, 엄마 말 잘 듣네!”
옥이는 병아리들의 이런 모습이 신기해서 지켜보았다.
“아이고, 내 강아지 왔냐?”
할머니가 반기는 목소리에 옥이는 그만 할머니께 달려가 안겼다.
“할머니 허리 아프다면서요? 내가 엄마, 아빠 마사지 전문이에요. 할머니도 마사지 해드릴 게요.”
옥이는 할머니를 마당에 놓인 평상으로 모셔 가 앉히고, 할머니 허리를 조물조물 마사지해드렸다.
“아이고 우리 옥이 다 컸구나. 다 컸어. 손이 매워 시원하구먼. 배고프지? 얼른 손 씻고 삼겹살 파티하자꾸나.”
엄마와 아빠는 장을 봐온 상자들을 부엌으로 들였다. 삼촌은 벌써 숯불 화덕을 꺼내놓고 불판을 얹고 있었다. 온 가족이 불판 앞으로 몰려갔다. 삼겹살이 올라가자, 엄마 닭과 병아리들도 몰려왔다.
“꼬꼬, 냄새가 좋구먼. 얘들아, 뭘 흘리는지 잘 살펴보고 찾아 먹으렴!”
엄마 닭이 앞장서서 숯불 화덕 주위를 돌며 병아리들을 가르쳤다. 병아리들은 엄마 닭을 따라 열심히 화덕 주위를 돌았다.
“아이고, 너무 가까이 오지 마라. 잘못하면 너희들이 굽히겠다!”
삼촌이 엄마 닭을 무릎으로 슬쩍 밀어내었다. 그때, 옥이는 짜쯕짜즉 걷는 병아리를 보았다.
“할머니, 저 병아리 걸음이 약간 이상해요. 아픈가 봐요.”
“그래. 누구든 아픈 데 없는 걸 감사해야지. 자기 노력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놓고 아픈 생명 무시하고 잘난 체하면 못써!”
“맞아요, 어머님!”
옥이는 할머니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리 저는 병아리에게 조심조심 다가갔다. 뒤에서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노란 깃털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느낌이 났다.
“꼬꼬야, 할머니 허리도 내가 마사지 해드렸어. 너도 마사지 좀 해줄까? 시원하게?”
꼬꼬는 대답하지 않고 저희 형제들 노는 대로 지척지척 따라갔다. 그래도 옥이는 그 병아리가 눈에 밟혔다.
집에 돌아올 때 옥이가 할머니께 병아리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 아까 다리 절던 꼬꼬, 우리 집에 데려가서 키우면 안 될까요? 제가 마사지도 잘해줄 수 있는데….”
그 말에 엄마가 나섰다.
“옥이, 너 노란색 좋아하더니 병아리가 노란 깃털이라서 귀여워서 그러지? 그런데 노란 솜털 사이로 깃털이 나면 솜털은 없어지는데….”
옥이는 엄마가 집에서 병아리 키우는 것을 은근히 싫어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 할머니도 눈이 커지더니 옥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셨다.
“병아리도 제 어미 없이 따로 떨어진다면 얼마나 서운할꼬?”
옥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옥이도 두 살 때 할머니 댁에 맡겨진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났다. 엄마가 새 일자리를 찾아서 할머니 댁에 옥이를 맡겼는데 밤새 울었단다. 그 바람에 엄마는 일을 포기하고 옥이를 찾으러 갔다고 했다. 옥이는 그때 처지를 생각하며 병아리를 포기했다. 그런데 삼촌이 편을 들며 나섰다.
“옥이도 이제 2학년이 되었으니, 잘 키울 수 있을걸요? 2학년 축하 선물로도 딱 좋은데요?”
할머니는 삼촌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더니 마음을 바꾸셨다.
“그래. 잡초도 잘 쓰면 약초가 된다잖아. 옥이가 정성 들여 키우면 아픈 우리 꼬꼬도 잘 크겠지? 한 마리는 외로우니 두 마리 데려가라.”
그렇게 할머니 승낙을 얻어 선물 받은 꼬꼬와, 꼬꼬와 친한 쫑쫑이를 데려왔다.
“꼬꼬야, 쫑쫑아, 우리 집은 마당이 좁아서 좀 미안해. 그리고 엄마랑 형제를 떨어져 오게 한 것도 미안해! 하지만 내가 잘 돌봐줄게.”
옥이는 자기 방에서 쫑쫑이와 꼬꼬를 라면 상자에 넣어 키웠다. 꼬꼬와 쫑쫑이는 모이를 먹고 놀 때 부리에 묻은 것도 서로 뜯어주며 잘 지냈다. 학교 다녀오면 모이통과 물통을 살펴보고 바닥에 눈 똥을 닦아주는 등 병아리 시녀가 되어버렸다.
어떤 날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꼬꼬와 쫑쫑이를 보여주었다. 그 뒤로 친구들은 학교에 가면 꼬꼬와 쫑쫑이 이야기를 묻곤 하였다.
“어, 이상하지? 같은 병아리인데 꼬꼬는 꽁무니 깃이 먼저 나오고, 쫑쫑이는 벼슬이 먼저 자라더라니깐.”
“그래? 또 물 먹을 때 하늘 쳐다본다는 노래도 있잖아. 정말 하늘 쳐다보면서 먹어? 난 그게 궁금해!”
“맞아. 그리고 엄마 몰래 쌀도 한 줌씩 갖다 줬더니 잘 먹더라고. 그런데 걱정이야. 몸이 점점 커지니 밖에서 키워야 될 것 같아.”
그 말에 순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밖에서 키우려면 집이 필요할 텐데. 어때? 우리 집에 안 쓰는 강아지 집이 있는데 갖다 줄까?”
“정말? 내가 받으러 가도 돼?”
옥이는 이렇게 순구네 강아지 집을 얻어와 쫑쫑이와 꼬꼬의 집을 마련해주었다.
“사람을 따르며 먹고 싸고 삑삑거리며 온 마당을 돌아다니니 마당이 그득 찬 것 같아!”
엄마 말에 옥이도
“저 귀여운 것이 우리 집에 즐거움을 주려고 온 것 같지요? 마당도 살아있는 마당 같지요?”
하며 좋아했다. 순구도 이때부터는 옥이의 쫑쫑이와 꼬꼬 이야기에 반쯤 주인공이 된 듯 끼어들기도 했다. 그 뒤로도 쫑쫑이와 꼬꼬는 날마다 옥이에게 자랑거리를 주었다. 쫑쫑이는 날이 가면서 깃털 색깔과 꽁지깃이 화려해지고 울음소리도 힘 있고 길게 변해갔다. 먹이를 발견하면 자기가 먹지 않고 꼬꼬를 먼저 불러 양보했다. 더운 여름날은 나무 그늘에서 모래 목욕도 했다. 가을 어느 날, 아침나절에는 꼬꼬의 울음소리가 ‘꼬덱꼬꼬꼬꼬 꼬덱꼬꼬꼬꼬’ 수다스럽게 들려 나가보았다. 꼬꼬가 화단의 비밀스러운 구석 아늑한 곳에 알을 낳았다. 동글하고 노르스름한 알을 만져보니 따스하고 신비한 생명의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야, 꼬꼬야! 네가 알을 낳았구나. 이 알을 품으면 병아리가 깨어나니?”
옥이는 평소에 달걀부침을 먹어도 별생각 없이 먹었는데, 꼬꼬가 낳은 알이라 생각하니 신비롭고 황금알처럼 더 귀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옥이네 집 옆에 대단지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포크레인 소리와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주민들은 시달리며 지냈다. 쫑쫑이는 그때마다 자기가 더 큰 소리로 ‘왜 이러노오오오오올!’ 하며 항의를 토해내듯 울었지만, 신경이 유별나게 예민한 꼬꼬는 놀라서 흙 마당을 구석구석 뛰어다니며 담벼락에 부딪히기도 하고 퍼덕대더니 결국 시원찮던 한 발마저 더 오그라들어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옥이는 친구들에게 이런 쫑쫑이와 꼬꼬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파트 공사장 소리 때문에 꼬꼬 다리가 오그라들었다고? 믿기지 않는데….”
“정말이야. 꼬꼬의 오그라든 발에 양말도 만들어 신겨줬어. 우리 엄마는 진정제도 먹였다니까. 그래도 걷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이며 몸을 움직여! 그래도 쫑쫑이 따라서 목청 가다듬는 연습은 열심히 해!”
“꼬꼬가 기특하네!”
혜정이 말에 옥이는 문득 꼬꼬의 모습이 시장통 길바닥에 배를 대고 기어가던 아저씨 모습으로 보였다. 슬픈 노래가 울리는 노래를 틀고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을 팔던 아저씨의 배밀이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아이고, 우리 꼬꼬가 힘겹게 살고 있구나! 그래도 고 예쁘게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하듯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데?’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옥이는 고양이가 담을 타고 들어와서 꼬꼬를 괴롭히는 모습을 보았다. 쫑쫑이가 나서서 꼬꼬를 지켜주느라 고양이에게 대들다가 깃털이 몇 개 뽑혀나갔다. 꼬꼬는 ‘꼬꼬 꼬오’ 하며 뒷걸음을 쳤다.
“꽈아아악!”
쫑쫑이가 목의 깃털을 세우고 날개를 부풀려 고양이에게 매섭게 덤벼들었다. 고양이는 잠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저러다가 쫑쫑이가 다치면 어쩌지?’
옥이가 ‘야-’하고 소리를 지르며 고양이 쪽으로 뛰어가자, 그제야 고양이가 담 위로 올라가 뒷집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그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일이 벌어져 있었다. 쫑쫑이 날갯죽지가 빠져 있고 목이 물려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 내 어릴 때 엄마가 읽어준 동화처럼 쫑쫑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보면 안 될까요?”
“엄마도 그 이야기 기억 나. 교문 앞에서 산 병아리가 눈을 감자, 병원에 입원시켜 그다음 날 치료 잘되었다는 병아리를 찾아갔지? 그 소식에 병아리를 같이 산 친구들도 죽은 병아리를 살리려고 그 병원으로 몰려갔지. 설마 너도 그처럼 죽은 쫑쫑이를 다른 산 닭으로 바꿔치기하고 싶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건 아니야. 쫑쫑이가 목이 물려 죽은 것이 억울하고 믿기지 않아서요.”
“그래, 쫑쫑이가 우리 집에 와서 우리와 꼬꼬에게 얼마나 활기를 줬니? 혼자 남은 우리 꼬 꼬는 얼마나 더 외로울까? 내일이 석가 탄신일이라 공휴일이니, 쫑쫑이를 할머니 댁에 묻 으러 가자꾸나.”
옥이는 그날 밤 쫑쫑이와 꼬꼬를 자기 방에 담요를 깔아 뉘이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옥이네 식구들은 쫑쫑이와 꼬꼬를 할머니 댁으로 데려갔다. 미리 소식을 전해 들은 삼촌은, 쫑쫑이 무덤을 감나무 밑에 반듯하게 파놓았다. 옥이가 들여다보니 크기도 하고 깊이도 엄청 깊어 보였다.
“삼촌, 왜 저렇게 깊이 팠어요?”
“응, 얕게 묻으면 동물들이 행여나 쫑쫑이를 해칠 수도 있잖아.”
삼촌은 '저렇게까지 쫑쫑이를 생각해 주는구나!’ 생각하니 삼촌이 고마운데 아무래도 쫑쫑이 혼자 들어가 눕기는 커 보였다. ‘저기에 쫑쫑이를 묻어야 하다니….’ 옥이는 쫑쫑이를 안고 한참 망설이다가 삼촌에게 넘겨주었다. 삼촌은 아기를 잠자리에 뉘듯 쫑쫑이를 내려놓았다. 그 자리가 쫑쫑이에게 딱 맞았다. 그래도 혼자 보내기가 애처로웠다. 옥이는 꼬꼬의 깃털 하나를 쫑쫑이 품에 안겨주며 말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리고 혼자 가면 외롭겠지? 꼬꼬의 깃털이라도 안고 가렴!”
그러자 성당에 다니는 할머니는 성호를 긋고 쫑쫑이를 굽어보며 진심을 담아 말씀하셨다.
“쫑쫑아, 하필이면 울대를 물려 죽어 저승에서 울지도 못 하겠구나. 그래도 꼬꼬를 지키려던 마음! 우리도 알고 하느님도 아실 거야. 나도 장기 기증을 신청해 두고 산다만, 누구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으면 다른 생명으로 다시 살아날 거야.”
“쫑쫑아,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날이네.…”
엄마가 말을 잇지 못하자 아빠가 대신 나섰다.
“그래, 쫑쫑아, 너도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생명을 사랑하다 갔으니 우리 모두 너를 잊지 못할 거야. 고맙다. 미안하고!”
삼촌은 입을 굳게 다물고 서 있다가 삽을 들고 흙을 한 삽 떠서 쫑쫑이 몸 위에 말없이 뿌렸다. 옥이는 삼촌 보기에도 죄인 같았다. 모두 흙을 한 삽씩 떠서 뿌리자, 엄마한테 안겨 있던 꼬꼬는 ‘꼭기오.’하며 쫑쫑이 흉내를 내며 목을 빼서 울었다. 옥이네 식구들은 꼬꼬의 기도 소리를 알아들었다. ‘꼭(꼭 들어주세요) 기(기도합니다. 쫑쫑이를 좋은 곳에 데려가 주세요) 오(오직 저를 위해 죽은 친구랍니다).
‘꼬꼬가 저런 소리를 내려고 그동안 목청 가다듬는 연습을 피 토하게 했구나.’
식구들은 돌멩이를 모아 쫑쫑이 무덤 위에 십자가 모양으로 올렸다. 그리고 꼬꼬처럼 ‘꼭 들어주세요. 쫑쫑이가 좋은 곳에 가도록, 기도합니다. 오직 친구를 위해 죽은 생명입니다.’하며 기도했다.
옥이는 쫑쫑이를 무지개다리 건너 떠나보낸 날 밤에 쫑쫑이를 찾아서 꿈길을 끝없이 걸었다. 그 길에 옥이가 좋아하는 금계국 노란 꽃잎들의 노래가 노란 꽃 대궐로 이어졌다.
‘꼭꼭 꽃꽃꽃!’
꼭, 노란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살아라. 하는 기도의 노래였다.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