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언양김씨 시조단 및 7위선조단 추향대제
顯 貫始祖考彥陽君 之壇
外 七位 先祖壇
(제관은 정읍종친회 종인들이 맡아 제를 모셨습니다)
초헌관 성실(34世 장무공,정읍종친회장)
아헌관 금동(30世 참봉공,참봉공 유사))
종헌관 수녕(33世 도헌공,도헌공파 도유사)
좌집사 성문(34世 장무공)
우집사 종희(35世 도헌공)
대축관 삼성(33세 장무공,대종회장학회이사)
집 례 창조(32世 찰방공,대종회고문)
2018 위열공 784주년 시제헌관
초헌관 병윤(32世,동추공)
아헌관 기원(33世 문열공)
종헌관 명식(32世 동추공)
사진촬영: 김장학 사진작가
【언양김씨 연원(彥陽金氏 淵源)】
시조 선(鐥)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新羅 大輔公 金閼智)의 28세손인 경순대왕(敬順大王)의 입곱째 아들이시고 고려태조 왕건(高麗太祖 王建)의 외손(外孫)이시다. 시조 선(鐥)께서 언양군(彥陽君)으로 봉군(封君)되시어 후손(後孫)들이 언양(彥陽)을 관향(貫鄕)으로 하였다.
【본 관햘 연혁(本 貫鄕 沿革)】
언양(彦陽)은 본래 신라의 거지화현(居知火縣)인데 헌양현(巘陽縣)으로 개칭되었다가 양주(良州)의 령현(領縣)이 되었고, 고려(高麗) 때 울주(蔚州)에 예속(隸屬)하여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그 후 언양(彦陽)으로 개칭(改稱)하였고 조선(朝鮮)에 와서도 그대로 하였다. 1895년 언영군(彦陽郡)으로 승격(昇格)되었다가 1914년 울산에 합병(合倂)하여 언양면(彦陽面)이 되었다. 현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蔚山廣域市 蔚州郡 彦陽邑)으로 개칭되었다.
참조 : 언양김씨 역사<언양김씨 전주종친회> 간행
추향대제를 올리고 오는 길에 김천일 祖 사당(창의사)이 있는 진주성에 들려 한컷을 만들다.
2018년도 언양김씨 시조단 및 7위선조단 추향대제를 모실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하여 주신
언양김씨대종회 남전 회장님과 행사의 모든 준비에 희생을 아끼지 않으신 울산종친회 모든 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018. 11. 4
언양김씨 정읍종친회장 김성실 배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언양현【번역문】
◇ 언양현(彦陽縣)
본디 거지화현(居知火縣)인데, 경덕왕이 헌양(獻陽)으로 고쳐서 양주(良州)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 현종 무오년에 울주(蔚州) 임내에 붙였다가, 인종(仁宗) 계해 년에 비로소 감무를 두고, 뒤에 언양(彦陽)으로 고쳤다.
취서산(鷲棲山) 〔현 남쪽에 있다〕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울산(蔚山)에 이르기 15리, 서쪽으로 밀양(密陽)에 이르기 33리, 남쪽으로 양산(梁山)에 이르기 17리, 북쪽으로 경주에 이르기 10리 이다.
호수는 421호, 인구가 1,458명이며,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 7명, 영진군(營鎭軍) 44명, 선군(船軍) 156명이다.
토성(土姓)이 2이니, 박, 김이며, 내성(來姓)이 3이니, 현(玄) 최, 김이다. 인물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고려 고종 때 사람〕그 아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익대공(翊戴公) 김전(金佺), 그 손자 도첨의 참리(都僉議參理) 문신공(文愼公) 김변(金賆)〔충렬왕 때 사람〕그 증손 도첨의 좌정승(都僉議左政丞) 정렬공(貞烈公) 김륜(金倫)〔충숙왕 때 사람〕이다.
땅이 기름지고 기후는 따뜻하며, 간전(墾田)이 1,518결이다.〔논과 밭이 반반씩이다〕토의(土宜)는 벼, 보리, 콩이며, 토공(土貢)은 꿀, 밀〔黃蜜〕, 칠, 종이, 지초, 마른, 죽순〔乾竹笋〕, 석이〔석용石茸〕, 인삼, 은어, 노루가죽, 사슴가죽, 삵가죽, 수달피(水獺皮)요, 약제(藥材)는 백복령(白茯岺), 인삼(人蔘)이다. 토산(土産은 사철(沙鐵)이 현(縣) 서쪽 석남동(石南洞)에서 나며, 자기소(磁器所)가 1, 도기소(陶器所)가 1이니, 모두 현 남쪽 대토리(大吐里)에 있다〔하품이다〕.
읍 토성(邑土城)은 둘래가 157보이며, 그 안에 우물 둘이 있다. 역(驛)이 1이니, 덕천(德川)이다〔시속에서 잘못 천(泉)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