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땀이 좀 덜 나나 싶던 초가을, 그래도 여전히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을 뒤적이며 들어 선 밥집은 대낮이지만 술 좀 하시는 분들의 재담이 흐릅니다.
슬 못하는 저로서는 여간해 듣지 못하는 권주 어귀가 오고갑니다. 예컨대
“아 술 퍼져요(국수 붇듯 하다는 뜻?) , 얼른 잔 비우세요.” 킥킥
“낮술 취하면 부모도 몰라본다니까...”
에그머니나, 말들이 걸쭉합니다.
그러다, 그러다, 남자분들 모임에 의례 등장하는 레퍼토리는 역시....
하지만 누군가는 민망한 얼굴로 실토를 합니다.
“내가 PX 방위였을 때...”
쏟아지는 좌중의 멸시에 멋쩍은 웃음을 흘리는 사나이는 그중 가장 튼튼해 보이고 훤칠한, 가진 재주 마음껏, 발휘해 슬프고 감사한 평화의 소녀상 작업한 조각가입니다.
“저 사람이 그 때 결핵을 앓았대요.”
아내의 변입니다. 공동 작업한 환상의 작가이지요.
질병 종류의 나열에 제가 빠질 수 있나요?
“우리처럼 훌륭한 사람은 다 그래요. 나처럼 군대 안 간 사람 빼고. 히히”
저를 보는 시선은 ‘내 그럴 줄 알았지’였지만요.
밥 말고는 먹을 게 없는 저는 듣기만하다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싶었습니다. 주로 1987년 6월 항쟁 시절이니까요.
그 시절 살던 곳은 대학이 몇 군데 있는 동네였습니다.
언덕배기에서 학생들의 함성이 흘러내리면 옆집의 여섯 살짜리 계집애는 “데모다....!” 외치면서 냉큼 화장지 두 도막을 뜯어 그 조그만 콧구멍에 밀어 넣고는 밖으로 내달립니다. 그 매운 최루탄을 나름으로는 방비하는 비책인 셈이지요. 그 고약한 가스탄 만드는 회사는 얼마 후 재벌이 되었고요.
어정쩡한 나이의 저는 비겁하게도 공부만 했는가봅니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솟아 물만 들이키며 숟가락을 놓은 차에 그 날 처음 본, 87 항쟁에서 억척스레 싸웠을 듯한 사나이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질문을 그야말로 내던집니다.
“근데, 마리오 란자가 부르는 세레나데가 나오는 영화 말이에요, 모여서 맥주 마시는 곳이 어딘지 아시는 분?”
자꾸 미안해지는 마음을 만회할 순간이 왔나봅니다.
“뢰벤브로이.”
“아! 뢰벤브로이요오오....”
“감사합니다, 알려주는 분이 없었어요.”
감사씩이나, 사실 덧붙일 말도 있었지요. 그 영화의 제목부터 그 영화가 우리나라에 상영된 후 거리에 넘쳐나던 ‘건배의 노래(Dsrinking Song)’ 가 더 유명했노라는 전설의 고향 같은 줄기까지요. 하지만 그냥 다물고 말았습니다.
술 좋아하는 선생님들 따라 물마시며 녹초가 되고, 어른 앞에서 취한 티 안 내려 애써 눈에 초점 모으던 후덕한 친구, 후배들이 갑자기 그리워집니다.
가을이 깊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수송동 근처에서 얼근해지면 네 명 타는 택시에 다섯이 엉겨 붙어 ‘언니 더 숙여’를 연거푸외치면서 가장 체구 작은 저의 목을 술김에 죄어오던 후배, 그렇게 한강 근처의 낯익은 술집에 가면 하릴없는 저는 더러 노래나 불렀지요.
마리오 란자가 시원하게 내뿜는 도나우디의 가곡 <아름다운 얼굴>. 그것도 대강의 뜻만 아는 이탈리아어로 불러 제치곤 했습니다.
이리저리 시달리는 와중에 주변의 고마운 분들에게 징징거리며 귀찮게 괴롭혔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분들이 다 <아름다운 얼굴>인데요.
의사들이 궁금해 할까봐 가서 다시 조언 듣고 내일 오후쯤엔 모처럼 한창 나이에 무대에서 쓰러져 먼 곳으로 떠난 그 사나이 불러 내 <아름다운 얼굴>, 벨리니의 가곡 <은은한 달빛> 이런 노래들으며 무척 오래전, 그러나 여전히 빌빌대던 그 시절로 한 번 되돌아가 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마냥 건강한 채로 노래 몇 곡 들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