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중용 23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의역해 보았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정성이 들어가게 되고
정성이 들어가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나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되고
감동한 사람들은 변화가 되고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변화 된다.
그래서 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려는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자기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
1.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바울의 사명감은 자신을 빚진 자로 여김에서 드러난다. 빚진 자는 빚을 갚을 의무가 있듯 바울은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빚진 자는 그 빚을 갚기 전까지는 발을 뻗고 못자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롬1: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다. 사약을 마신 그는 차가운 감방 안에 누워 죽어가면서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제자 크리토(Crito)에게 매우 힘겹게 입을 열어 말했다.
“여보게 크리토, 내 청을 하나 들어주게나.” 크리토는 말해보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에게서 수탉 한 마리 빌려먹은 빚이 있네. 자네가 내 대신 갚아 주게나.”
멋있는 사람은 빚이 없이 사는 사람이다. 거기에 비하면 정말 보잘 것 없이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살면서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운전 학원에서 운전 강습을 받는 수강생들 중에는 합격을 하고 면허증을 받으러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감사의 표시로 음료수나 빵을 사가지고 온다. 강사님들은 많은 수강생들을 가르치니까 사실 수강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감사의 표시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분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합격만 하면 은혜를 입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합격을 하면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린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별달리 잘 챙겨주지도 않았는데 감사를 표시하고 돌아간다. 그런 데서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바울의 사명감은 빚지지 않으려는 정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살후 3: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 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아름다운 사람은 지나간 곳이 깨끗하다. 아름답지 못한 사람은 빚을 많이 지고 죽는다. 죽은 후에 유가족들에게 여기저기서 빚 독촉이 들어오고, 인간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서 장례식장이 싸움터가 되기도 한다. 갚아야할 빚을 너무 많이 지고 죽었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아예 상속 포기를 한다.
나는 바울이 가지고 다녔던 여행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때인가 그는 짐 안에 겨울에 입는 외투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아서 디모데에게 외투를 가져 오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그의 짐에 최소한의 짐만 들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딤후 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2. 최선을 다해야 한다.
(딤후 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이 글은 바울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바울이 가지고 오라고 한 가죽 종이에 쓴 것은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일까? 성경 중 일부일까? 아니면 다른 사도들의 글일까? 어떤 글일까? 그것은 확실히 잘 모른다. 그러나 이미 나이가 많고 죽을 날이 가까워 오고 있는 바울이 가죽에 쓰여져 오래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한 그 태도는 우리의 모범이 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편지를 보낼 때 30년의 설교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책을 읽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경험을 했고 신비한 기적을 경험 했고 천국까지 갔다 온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책을 읽으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성경이 된 신약 성경의 절반을 바울이 썼지만 바울은 여전히 책을 읽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고 최선을 다하여 설교하고 최선을 다하여 전도하는 사람이었다.
(롬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할 수 있는 대로'라는 말은 "최선을 다하여"라는 뜻이다. 할 수 있으면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사명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솝이 지은 이야기 중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쥐들이 모여서 자신들을 괴롭히는 고양이를 어떻게 피해 다닐 것인가에 대하여 의논했다. 그들 중 한 쥐가 말하기를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아 놓으면 고양이가 올 때 딸랑 거릴 것이므로 피해 다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제안을 했다. 쥐들이 다들 박수를 치며 좋은 방법이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늙은 쥐가 말하길 ‘그러면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러 가지?’라고 했을 때 아무 쥐도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견에는 찬성했지만 아무도 희생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뜻은 실현되야 한다.
진정한 '아멘'은 예배당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 뿐이고 현실로 드러나지 않는 신앙은 우상 숭배이다. 우상은 들어도 응답이 없다.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는 말만 있고 열매는 맺히지 않는 것이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상 숭배의 반대는 진정한 예배이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한 응답과 현실에서 실현해 내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거리의 고아를 도와주면서, 목마른 아이 물 한 컵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나중에 그녀에게 와서 칭찬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때 나는 주님께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칭찬받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사야는 삶의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비난했다.
(사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부르지 않고 소돔과 고모라 백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예배가 우상 숭배나 다름 없다고 말한다.
이사야는 삶에서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
(사 1: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