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8 15:55
휴가철이 다 지난 팔월 하순
일부러 들뜬 마음 가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두사람이 강원도로 여름휴가라고 하기에는 철지난 여행을 했다
아이들 어릴때 가장 많이 간 휴가 그 행선지가 늘 강원도였다
회사에서 복지차원으로 마련해준 숙박시설인 호텔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몇해를 두고 여름휴가를 강원도로 갔었기에 친정집에 다니러가는것 같은 그곳은 낯익었다
아이들에게 우유를 많이 먹이면 키가 큰다고 아는것처럼
많은것을 보여줘야 견문을 넓힌다고 믿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열성적인 그때만 해도 원기 왕성한 젊은 부모였다
집에 승용차도 없었는데 이 먼곳을 어떻게 다녔을까?
잠시 의아했는데 버스로 김포로가 속초까지 비행기로 갔다는 생각을 해냈다
그 때 반바지의 우리 꼬맹이들 모습이 어렴풋 생각난다
성인이 된 지금 그아이들은 천진함이 성숙함으로 바뀌었다
이제 중로의 부모가 되어 바쁜 아이들은 대동하지 못하고
두사람만이 예전 그시절 그곳인 강원도를 찾아갔다
가는길도 그 시절로 묻히게 하는것 같았다
허름한 막국수집에서 예정에도 없이 요기를 하고
호젓하고 느슨하게 도착한 강원도는
화창한 서울과는 달리 비가 간간히 오락가락 하는 우기였다
강원도에서는 비가 와 축축했는데
서울에 오면 해가 쨍쨍 하던것도 여전하다
흥분될것도 의식할것도 없는 수십년을 산 두사람의 여행은
이제 미리 예약도 하지 않고 무계획의 나들이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믿는구석이 무언의 생각으로
예전 거의 이십년전에 해마다 휴가왔던 그곳을 찾아간다는것이고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 그점이 설레기도했다
설악산 국립공원안에 있는 설악산관광호텔이 그곳인데
요금을 내고 들어가 공원 안에 자리잡은곳이다
밖에 으리으리한 호텔들이 수 없이 자리하고 있지만
아마 이곳은 이쪽에 처음 세워진 호텔이라서 이렇듯 설악 공원안에 지을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를 맞이하는 그호텔은 이상하리만치 예전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개발제한 구역의 집인지 외관부터 달라진것이 없었다
지금도 간직한 사진에는 호텔 본 건물 옆에 위치한
별관 테라스에서 내가 끈만 있는 옷입은채 슬리퍼 신고 딸아이와 장난치는 모습이 있어
그장소를 열심히 찾았지만 호텔별관이었던 곳은 없어져버렸다
대신 그자리로 추측되는곳에 주차장이 새로 들어서있다
이십여년전엔 지금처럼 주차문제가 중요하지 않았는데
이제 주차장이 생겼어도 차들이 밖에까지 늘어 서있는것이
그때와 변한 점이었다
착하고 순박해 보이는 후런트 직원이 예약도 안하고 온
우리들에게 객실 열쇠를 건네주었다
휴가철이 지나 그럴것 같다
붉은 카펫에 얼룩이 그대로인 계단은 엘레베터도 없는 5층 건물인데 이제는 예전의 고급스러움을 잃고 있지만 그래도 품위를 간직하고 단정했다
호텔은 그대로인데 나의 눈높이는 변해 나무로 된 객실문이 초라하게 보인다
객실안은 요즘은 위생상 좋지 않아 깔지 않는 카펫으로 덮여있다
화장대와 가구들도 지금것이 아니라 고전적으로 70년대 풍이고
욕실의 타일도 우리가 젊을때 많이 보던 스타일의 흰색 일색에
헐은채 구식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명색에 호텔이니 침대 시트와 침구들은 하얀 무명 천으로 소독 냄새가 날듯하게 정갈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족실처럼 두사람에게 트윈침대와
싱글침대 두개가 놓인 방을 주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따로 자야했다 침대 하나를 그냥 놀리기 아까워
일인용 침대에서 잔일 없는 나는 불편해 자다깨다
결국 넓은 침대로 이사해갔다
자연히 나는 아이들과 이 호텔에 왔던 추억을 회상하며
꼬맹이들과 같이 놀아줄랴 힘들었던 지난 그때가 그리웠다
객실을 어지럽히며 쉬던일 여행 짐도 많았던일
아이들이 놀 때 틈틈이 김용옥 교수의 철학책을 읽었다
그책의 서두에 성기를 호칭하는 것을 써 놓은 부분이 많아 아이들이 볼까 빨간책처럼
몰래 숨겨두고 보다 그만 객실에 잊고 온 일이 생각 났다
처음 몇 장만 읽은 책이라서 아까웠다
마침 입은 내 옷에 단추가 떨어져 예전엔 실과 바늘을
서랍에 상비해 두었던것이 생각나 찾았더니 없다
그전에는 색색의 작은 실 묶음과 바늘을 공짜라고 챙겨오기도 한것 같았다
호텔 이름이 새겨진 욕실에 타월까지 집으로 가져가는 사람이 있어 비품을 가져가지 말라는 안내문도 본것 같다
욕실에 걸린 그때와 같은 타월을 보며 그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네 식구가 한방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보낸일이며
예전 어린 아이들을 보살피고 보냈던 휴가지 곳곳에서
지난 그 애들의 개구장이적 신나 뛰어노는 모습과
곳곳에 여러가지 흔적들이 서려있는것 맞춰가며 기억해내었다
그때 이랬는데 하면서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곳을
다시 가보는 여행이 주는 묘미가 마냥 즐겁다기 보다
뒤로 가고있는 나의 다시없는 그 젊은 시절이 아련하고 그리워
쓸쓸하고 그래서 우수에 젖는다
다시는 고풍스럽고 낡은 그 호텔에 호기심으로 찾지 않을것이다
앞으로 흔들바위를 보러올때는 새로 지은 세련된 곳에 묵으며
또 펼쳐지는 인생을 관조하며 여유롭게 누리고 싶다
숙제하기 바빴던 내 젊은 날의 사진을 꺼내 본 것 같은 그곳이여 잘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