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의 자동차 이슈 비평] 최근 전기차 판매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친환경차 보급 정책에 따라 구매 보조금 및 혜택이 제공되고, 여러 자동차 업체가 비교적 경쟁력 있는 값에 일반 승용차 수준의 실용성을 갖춘 모델을 내놓고 있는 덕분이다. 소비자들의 전기차에 대한 관심과 심리적인 거부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시장 분위기가 좋아짐에 따라 틈새시장을 노린 제품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국내 중소기업 여러 곳이 최근 개발한 초소형 전기차의 본격 판매를 시작했거나 준비하고 있어, 내년에는 다양한 종류의 초소형 전기차가 거리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는 초소형 전기차 관계 법령의 정비에 나섰다. 지난 11월 13일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안에 이어 12월 14일에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고 국민 의견수렴에 나섰다. 전기차를 비롯한 초소형 자동차를 법의 테두리 안에 넣으려는 것이 목적이다.
이번 법령 개정은 르노삼성이 전기차 트위지가 물꼬를 튼 것이나 다름없다. 4륜 모터사이클 개념의 트위지는 관련법규의 틈새에 있었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로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법령이 개정되어야 국내에서 일반도로를 주행할 수 있었다. 부랴부랴 최소한의 법령 정비를 거쳐 인증과 등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트위지와 같은 종류의 다른 차들도 국내 판매가 가능해진 것이다. 대창모터스, 쎄미시스코, 새안 등 국내 중소 전기차 업체가 최근 시제품을 선보이고 판매를 시작했거나 앞두고 있는 제품 대부분이 비슷한 형태인 이유다.
특히 그와 같은 초소형 전기차는 정부 기준을 충족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일반 전기차보다 값이 싸기 때문에 소비자의 실구매가는 1,000만 원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이에 수요가 적지 않으리라는 판단으로 업체들이 앞다투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개정령안의 주된 내용은 초소형 자동차가 갖춰야하는 구조와 안전 및 성능 관련 장치의 기준을 정하고, 자동차관리법상 세부기준을 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개정령안이 확정 시행되면 시판되는 초소형 자동차는 일반 자동차보다는 수준이 낮지만 탑승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춰야 하고, 자동차관리법상 경차의 하위 범주에 속하게 되어 사용자가 세금, 주차료, 통행료 등에서 경차와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의 이번 관계법령 개정은 긍정적 측면이 크다. 자칫 틈새시장을 노리고 부실한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것을 제도로 막을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이미 ATV나 노약자 및 장애인 이동보조수단의 확장된 형태로 만들어진 제품이 많이 나와 있다. 그 가운데에는 4륜 자동차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일반도로 주행은 불가능하다. 아울러 품질이나 안전 관련 기준 적용이 애매해 소비자가 구매 후 문제가 생겨도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러나 관계법령 개정을 통해 초소형 자동차에 관한 기준이 분명해지면 최소한 수준미달 제품은 시장에 나오기 전에 걸러질 수 있다. 또한, 법규상 차종분류가 뚜렷해지면서 소비자가 여러 제품의 비교 선택할 때 기준을 잡을 수 있고, 구매한 뒤에도 경차와 같은 혜택을 정당하게 받을 수 있게 된다.
다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 가장 큰 것은 과거 저속 전기차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제도정비를 통해 제품 생산 판매는 가능했지만 현실적인 사용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에 저속 전기차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가장 큰 걸림돌인 전기차 보조금 문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트위지를 포함해 자동차 전용도로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여전히 소비자에게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도심형 근거리 이동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초소형 자동차의 특성상 안전을 고려하면 자동차 전용도로 주행제한은 합당한 조치다.
초소형 자동차 개념이 시작된 유럽은 도시에서도 저속으로 달릴 수 있는 곳과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곳의 구분이 뚜렷하기 때문에 초소형 자동차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여건이 크게 다르다. 예를 들어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8차선 대로 같은 곳이나 차로 바깥쪽에 버스전용차로가 있는 일부 도심지 등은 초소형 자동차가 다닐 수 있어도 위험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실제 초소형 자동차를 구매해 사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도로 사용자 전반의 인식개선이 기본이 되어야겠지만, 그와 같은 국내 교통환경에 초소형 자동차가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까에 관한 좀 더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 관계법령 개정 추진에 이어 앞으로 초소형 자동차 사용 환경과 관련한 법령도 개정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의견과 깊이 있는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법령에 반영해야 초소형 자동차가 국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