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현경제인사이트에 게재한 글입니다.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한국경제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보려는 노력 자체마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듯하다.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고민하고 노력해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것이 지금 한국경제의 실상인데 고민마저 안 하기 때문이다.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계부채, 저출산과 고령화가 한국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세 가지 큰 난제이다. 이 문제들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바른 답을 찾기도 어렵지만, 답을 찾아 노력해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한 모습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첫째는 대한민국이 진영논리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어느 한쪽에 서서 그 쪽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방책을 내야 조금이라도 지지를 받는 구조이다. 특히 한 자리를 바라는 일부 학자나 활동가들이 더 심하다. 자기가 서있는 쪽이 권력을 잡아야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곡학아세하거나, 자기가 속한 진영을 위해 열심히 뛴다. 조선시대 당파싸움과 거의 비슷하다. 세상의 답은 진영에 관계없는 경우가 많은데 중립적인 시각에서 분석하고 바른 답을 내려고 노력하면 관심을 받기 어렵다. 또 그 답이 채택될 가능성이 더 낮은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두 번째 큰 이유는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는 개혁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잡으면 정권 재창출만을 위해 모든 걸 걸기 때문이다. 과거 역대 정권은 모두 그랬다. 제대로 된 개혁 정책은 일부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반대가 많아야 한다. 주택임대소득세 철저 과세, 의사정원 확대, 금융기관의 신설 등 아주 많다. 이런 정책은 손해를 보는 사람들의 저항이 크니 하는 척만 한다. 돈 풀고 혜택을 늘리는 쉬운 정책만 해왔다. 김대중 정부 때 IMF에 의한 타의적 개혁 끝난 이후 제대로 된 개혁이 없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까지 거의 비슷했다. 그러니 이제는 일부 뜻있는 사람들마저 노력해봐야 소용없구나 하고 포기하는 것 아닌가 한다.
한국경제는 저성장, 과잉 가계부채, 급속한 고령화 등 기조적 문제 이외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 저하, 금융의 후진성과 낙후성, 공정하지 못하고 부실한 조세제도, 지속 가능하지 못한 연금제도, 노동시장의 불균형과 잘못된 보상체계, 소상공인의 취약성, 농업의 경쟁력 약화와 낮은 식량자급률, 지역불균형과 환경문제 등 참 많다. 이것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면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이러한 상황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 같다. 미국은 출산에 지원이 한국보다 훨씬 못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인지 아이들을 꾸준히 낳는다. 이렇게 보면 잘되는 경제와 미래가 없는 경제는 쉽게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에서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나 다 아는 가계부채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가계부채는 박근혜정부 시절 빚내서 집사라 하고 초저금리 정책을 지속함에 따라 급속히 증가했다. 문재인정부 때도 거의 비슷했다. 초저금리는 코비드19를 핑계로 과도하게 유지됐고, 서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쏟아 부었다. 이는 갭투자를 조장하고 추가적인 가계부채의 증가와 집값 상승을 초래했다. 윤석렬정부에 들어 초기에는 국제적인 고금리 추세 등으로 가계부채는 일시 감소하기도 했으나 둔촌주공을 살리기 위한 특례보금자리론 등으로 다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열흘 전쯤 윤정부는 갑자기 가계부채가 터지면 IMF 금융위기 때보다 몇 십 배 위험할 수 있다고 겁을 주었다. 진짜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그렇게 한 것인지, 외국 신용평가사 등의 경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가계부채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것이 연금개혁이다. 한국의 공적 연금제도가 불공정하고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은 노무현정부 때부터 드러났다. 그간 개혁 논의가 무성했지만 실제 개혁은 노무현과 박근혜 정부 때 조금 있었고, 이명박과 문재인 정부 때는 아예 안 했다. 윤석렬 정부는 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아주 불공정하고 지속 가능성도 더 낮은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 연금에 대한 개혁은 논의조차 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분노하고 절망하는 대표적 것이 아마 비싼 집값 집세와 함께 지속 가능하지 못한 연금제도 문제일 것이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와 잠재성장률의 하락추세를 볼 때 개혁을 위해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저성장이 계속되어 경기가 나빠지면 국민의 불만으로 개혁은 더 어렵다.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늘면 노인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니 역시 개혁이 어렵다. 지체할수록 비용과 고통이 커지고 아예 불가능해 질 수도 있다. 한국경제의 미래는 낙관과 비관이 혼재되어 있다. 미래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개혁에 성공하면 미래는 밝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어두울 것이다. 지금 조심하여야 할 사람은 한국이 선진국이 이미 다 된 것처럼 이야기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조선말 나라가 망국의 길로 가고 있을 때, 우리가 소중화라고 떠들던 조선의 선비들과 비슷한 듯하다. 그 때도 사대부라 불리는 양반들에게 조선은 살기 좋은 나라였다.
지금 세계에서 선진국이라고 볼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들 나라의 생활수준, 경제 제도와 운용방식 등을 잘 살펴보면 한국이 지금 선진국인지, 또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의 서울과 대도시는 이들 국가들과 비슷하거나 나은 점도 있지만,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은 주거환경 등 여러 면에서 크게 열악하다. 특히 한국의 농촌은 선진국이라 보기 어려운 동유럽 국가나 튀르키예 등의 농촌에 비해서도 떨어진다. 국토의 균형발전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한국이 1950년대 세계 최빈국의 하나에서 현재 선진국 문턱까지 발전한 것은 많은 국민들이 그간 죽기살기 식으로 노력한 덕분일 듯하다.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은 그런 노력을 않을 것이고, 요구해서도 안 된다. 한국이 선진국 가까이 와 젊은이들의 기대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더 늦기 전에 개혁과제에 대한 논의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대다수 국민을 위한 방책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송현경제연구소에서 중립적 시각으로 문제 제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이것이 한국경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건전한 논의로 연결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