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왕대비 환정(還政)
자성왕대비(慈聖王大妃)(세조의 비)께서 수렴(垂簾)하신지 7년에 정원 벽에 무슨 익명서(匿名書)가 있었다. 그 뜻은 이제 왕의 춘추(春秋) 승성(昇成/정성?)하시니 왕대비의 섭정이 불가하다는 뜻이다. 왕대비 곧 왕에 환정하시다.
그때 왕후 윤씨(尹氏)가 득총(得寵)하여 원자까지 탄생한 후에 점점 왕대비께 효성스럽게 보이지 못하더니 이익 명서가 윤씨의 소위가 아닌가 하고 왕대비는 부지중 의심이 있었다. 사랑하는 손자에게 환정이 그리 급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 가운데 무슨 음모가 없을까 하고 곧 환정하셨다.
왕대비 정원에 하교(下敎)하사 대 모후(母后)가 정치에 간섭함이 일시 편의로 된 것인데 이제 왕의 춘추가 정성하고 또 성학(聖學)이 일진(日進)하니 만기(萬機)를 능히 재결할지라. 이에 환정하고 자금 이후로 짐은 세정을 간섭하지 않고 한가히 여년을 보내려 하노니 정부는 이 뜻을 중외에 반포하라 하시다.
이후로부터 대비 궁중에서 윤씨의 행동을 주의하고 동시에 다른 숙의(淑儀)들이 윤씨의 사랑을 시기하여 대비께 좋은 말을 드리지 않고 윤씨도 이 기미를 알고 또 원자 신변에 무슨 위험을 가하고 주의하던 중 무고(巫蠱)(방자)의 사실이 나타나 윤씨는 그 실물을 발견하여 가지고 왕에게 날마다 참소하여 마지않는지라. 무슨 일인지 원자도 병이 발하여 더욱 불안한 공기가 궁중에 서리었다.
왕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일이 다 왕대비에게 관계있는지라 적지 않게 근심하였고 또 원자를 이 위험한 궁중에 두기보다 어느 신하 중 범절 있는 가정에 양육을 부탁하기로 정하고 판서 강희맹(姜希孟)을 불러 부탁하였다. 강희맹의 부인은 현숙한 부인이라. 원자 양육에 전력을 다한 결과 원자는 병도 없어지고 날마다 잘 놀고 귀엽게 자랐다.
왕이 정사를 맡은 후에 먼저 문신들을 불러 휴가를 주어 독서케 하다. 집현전이 없어진 후에 문신들이 독서할 곳을 얻지 못하고 또 사가(賜暇) 법도 없어 역시 글 읽을 여가가 없어 문신들은 매우 불편이 여기더니 이제 왕이 채수(蔡壽) 권건(權健) 허침(許琛) 유호인(俞好仁) 등을 명하여 휴가를 주어 독서케 하였다. 왕이 또 서거정을 명하여 용산폐사(龍山廢寺)를 수리하여 문신들의 독서당을 삼았더니 그 후에 호당(湖堂)이라 이름 하여 문신들의 독서를 장려하였다. 근세사에 태조로부터 성종까지 제 1기로 정하고 보면 국가의 문화가 성종 때 와서 가장 찬연히 빛나고 조정에 섰던 신하들은 다 독서인이고 겸하여 치체를 아는 학자들이다. 이때가 조선 문화 절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