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일흔일곱 번째
네 이웃을 사랑하라
모든 생명은 정현종 시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디엔가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시인은 나무가 공기에 기대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덩그러니 서 있는 게 아니라 바람에 기대고 있다는 겁니다. 기댄다는 말은 상대에게 나를 어느 정도 맡긴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러려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지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합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합니다. 나태주 시인은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누구든지 처음 만나면 통성명通姓名합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친구가 되고, 그의 삶을 알게 되면 연인이 된답니다. 우린 그렇게 결혼했지요.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저 의례적으로 명함을 주고받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을 담아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답니다. 그러니까 상대가 내게 꽃으로 다가오지 않은 건 순전히 내 잘못인 겁니다. 아무리 내가 상대에게 살갑게 다가가도 상대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나는 그에게 꽃이 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고 가르칩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이웃의 이름을 불러주는 겁니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내가 있어 상대가 편안하고 즐겁고 설레기까지 하는 사람이 되어 주는 겁니다. 상대의 색깔을 알고 모양을 알아주면 사랑이 된다고 시인들은 노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벌을 묻고 고향을 따지고 얼마나 버는지에 따라 그를 봅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게 이웃 사랑이라고 일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