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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세상 중심, 임자가 따로 없다>의 줄거리:
오래전 한 인기 가요 중에 '둥글둥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그만이지'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세상의 중심은 임자가 따로 없습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세상의 중심이 객관적으로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가 각자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세상의 중심이 되면 뭘 하나? 나는 중심 되고 싶은 마음 전혀 없는데' 하는 분도 계시지요? 아니요, 복음을 바로 받으면 싫어도 되는 것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세상 중심, 임자가 따로 없다
(이사야 60:1~22)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6.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7. 게달의 양 무리는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느바욧의 숫양은 네게 공급되고 내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되리니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세상 중심, 임자가 따로 없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세상 중심, 임자가 따로 없다’
오래전 인기 가요 중에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이지”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회전의자는 사장님의 의자입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자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도 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호주 대륙 한 가운데 지구의 배꼽 혹은 세상의 중심이라는 별명을 가진 거대한 바위가 있습니다. 울루루(Uluru)입니다. 이 바위가 얼마나 큰지 해발 고도가 867미터에 이르고, 땅에서 실제 오를 수 있는 높이만 330미터, 둘레는 9km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마치 섬처럼 광야에 고립되어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암석이라고 합니다. 울루루는 호주 원주민 에보리진(Aborigine)족이 성지로 여기는 곳으로서 ‘그늘이 지나간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늘이 지나갔으니 광명의 장소, 빛의 장소인 셈입니다.
그늘이 지나간 빛의 장소이니만큼 바위의 색깔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울루루를 제대로 즐기려면 하루 종일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일출 때에는 오렌지색, 이른 아침에는 적갈색, 정오가 되면 호박색, 해질 무렵이 되면 짙은 선홍색이 된다고 합니다. 거칠고 메마른 광야 위에 우뚝 선 바위가 빛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을 세상의 중심 혹은 지구의 배꼽으로 부르며 경이롭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눈에 띠는 부분을 보면 3절에 ‘네 빛으로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고 하였고 4절에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5절에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고 하였고, 7절에 ‘다 네게로 모일 것이요, 네게 공급되고’라고 하였습니다. 10절에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며’라고 말했고 11절에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고 하였습니다. 12절에 ‘너를 섬기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파멸하리니 그 백성들은 반드시 진멸되리라’하였고, 14절에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에 엎드려’라고 하였습니다. 읽다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나를 중심으로 한 말씀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장에서는 내 마음에서 가장 가까이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마음으로 하나님을 붙잡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밀착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죄악이라고 하였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전철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몸이 밀착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붙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지만 마음으로 끌어안지 않는다면 진정한 밀착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을 제칠 때에 쓰리콤보의 죄악이 발생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장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피해가기 위해 마음이 비틀리는 죄악이 히브리어 아원(עֲוֹ֨ן)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밀착시키는 것이 표적에서 빗나간다는 뜻의 히브리어 하타(חַטָּ֣את)였고, 그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 이외의 대상에게서 기쁨을 찾으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돈으로도 얼마든지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반란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페샤(פֶ֭שַׁע)였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에서 기쁨을 추구하겠다는 주체성의 반란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러한 쓰리콤보의 죄악을 중단하면 나타나는 일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제치기를 중단하고 순리대로 제일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을 붙잡고 밀착하면 세상의 중심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든지 않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중심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늘이 지나간 빛의 장소로 불리는 울루루조차도 세상의 중심이라 불릴 뿐이지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세상의 중심이 존재합니다. 내 마음이 항상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존재가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항상 빛이 비치고 밝게 보이고 있는 그 장소를 마음의 울루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인 성 과부에게는 독자 아들이 마음의 울루루였습니다. 사업을 하며 늘 흑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흑자가 마음의 울루루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에게는 재물이 마음의 울루루였고, 가룟 유다에게는 이스라엘 나라의 독립과 권력을 얻는 것이 마음의 울루루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항상 잘 보이고 밝히 보이는 장소가 세상의 중심이 됩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울루루가 세상의 중심이라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말로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단 한 가지 하나님 제치기를 멈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따랐을 뿐인데 너무 다른 세상이 주어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1절에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임했다’라는 것은 마음에서 하나님만을 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영광은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라는 무대에서 하나님께만 조명이 비춰지니 하나님만 보이는 상태입니다.
2절에서는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서는 하나님을 가리는 그늘이 지나가고 하나님께 조명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빗겨가게 하고 제치려는 마음의 움직임이 중단된 것입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돈이나 일의 성공과 형통을 울루루로 삼고 살아갑니다. 가족 안에서조차도 차이가 심한데 밖에 나가면 더 합니다. 직장에 가면 모든 사람이 승진이나 월급이 마음에서 울루루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하나님을 마음의 울루루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 살펴보았던 말씀대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20절에서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라는 말은 제일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붙잡은 결과로 마음이 항상 밝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마음은 천국의 빛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육체에 가해지는 아픔과 고통을 느끼기보다,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이 용서받기를 원할 정도로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천지가 무너져도 마음에 빛이 있으면 끄떡없습니다. 마음의 밝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또 ‘슬픔의 날이 끝나리라’는 의미도 말씀대로 마음에 기쁨과 만족이 가득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의 울루루가 되시면 곧 하나님만이 최고로 보입니다. 그동안에는 배우자나 자녀가 울루루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재물 건강 출세 인기 등의 것들이 울루루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바라보는 동안에는 마음고생만 합니다. 그것만 바라보며 잘 되기를 바라지만 삶과 마음은 늘 먹구름에 덮여있습니다. 가짜 빛을 바라보고 사노라니 365일 중에 밝은 기분으로 살 수 있는 날이 고작 며칠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마음의 울루루로 바라보는 자들은 스데반 집사님과 같은 마음의 광명과 기쁨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가 세상에 중심이 되는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5절을 보면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기쁘다보니 깜짝 놀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해상무역으로 생겨난 부가 내게로 오고 또 이방 나라들의 재물들이 내게로 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유입니다. 실제로 그런 재물이 나에게 온다는 것이 아니라, 돈이 부족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님을 붙잡으면 내 삶에서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뜻하시는 일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 노숙자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마음에서 하나님을 울루루로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가렸던 그늘이 사라지고 하나님만 밝히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마음에 기쁨과 만족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삶에는 이 노숙자에 대한 하나님이 계획이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노숙자를 재벌로 삼으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면 그에 필요한 재화와 기회를 다 끌어 모으실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봅니다. 어떤 재벌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마음에서 하나님을 울루루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 재벌도 마음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재벌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쓰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이 재벌은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하였고 돈이 없어졌으나 하나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주시고자 하는 부족함이 없는 삶의 모습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밝히 보는 동안에는 내 삶의 주체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돈을 다 끌어 모으셔서라도 주실 것이고, 내게 돈이 필요 없다고 여기신다면 돈 한 푼 없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즉 돈이 부족하지 않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 기쁘고 만족하는 삶에는 세상에서 돈을 벌거나 돈을 씀으로써 기쁨과 만족을 얻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던 주님을 통해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는 돈이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을 끌어오지 않으셨을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나의 울루루가 되시면 지금 지갑에 만 원밖에 없을지라도 남아도는 돈이 됩니다. 나의 기쁨을 위해서는 세상에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만 원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조약돌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대로 될 일입니다. 우리가 십억을 벌겠다고 책을 들여다보며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을 밝히 보는 상태가 되면 돈에서 자유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자녀보다 배우자보다 건강보다 하나님을 더욱 밝게 보게 된다면 돈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10절부터 보면 사람이 나에게로 모이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으로 기쁘고 만족할 때에 이번에는 돈이 아닌 사람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얼마든지 끌어 모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동력자로 파트너 등으로 모이게 하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성사시켜 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모습입니다. 나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울루루가 되시면, 내 몸으로 살아가는 삶은 세상의 중심이 됩니다.
이것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여기에 이른바 진공의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진공은 공기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폐쇄된 공간이 진공상태가 되면 바깥쪽은 상대적으로 기압이 높은 상태가 됩니다. 고기압에서는 저기압을 향해서 이동이 일어나고자 하는데 이 원리가 진공청소기와 같습니다. 모터를 통해서 청소기 안을 극도의 저기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청소기 바깥은 상대적으로 고기압이 되기 때문에 바람은 청소기 안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빨아들이는 힘으로 청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울루루로 보는 동안에는 마음에서 세상이 없어집니다. 기존의 마음에서 밝히 보았던 내 몸을 비롯하여 재물 배우자 자녀 성공 건강 등이 다 없어지고 마음은 진공상태가 되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에 내가 원하지 않아도 세상이 빨려 들어오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밝히 보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거대한 울루루로 보느냐에 따라서 마음에서 세상은 더욱 진공상태가 되어갑니다. 진공청소기가 흡입구로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듯이, 내 마음에서 세상이 빠져나간 만큼 세상이 빨려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기존의 마음에 세상을 담았던 것처럼 무질서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중심으로 통치를 펼치시고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질서정연하게 빨려 들어옵니다.
“벽을 넘어 세상의 중심에 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자기계발서의 일종인데 세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제약들을 극복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가난이나 인종차별 혹은 장애 등의 벽들을 넘어서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그렇게 넘어서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의 중심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담고 있는 한 세상이 나의 중심이 되고 나는 세상의 주변인물일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 내가 중심에 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면 대중들이 나의 중심에 있을 뿐입니다. 연예인들이 인기를 먹고 산다고 합니다. 그들의 중심에는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을 논하고 세상을 생각하고 세상을 얘기하고 세상을 바라고 욕구하는 한 세상의 중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세상이 중심인 상태에서 주변인물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밝히 보아서 마음의 울루루로 삼은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을 보는 마음에서 세상은 비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진공상태의 마음으로 세상이 빨려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 진공의 원리에 의해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밝히 볼 때에 돈이 있든 없든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과, 또 인간관계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울루루는 그늘이 지나간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울루루가 되시면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의 중심이 되게 됩니다.
가장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붙잡는 방법은 세상을 담았던 마음을 진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배우자를 담았던 마음을 십자가에서 죽입니다. 자녀를 담아서 걱정하던 마음을 십자가에서 죽입니다. 병이 나서 고민이던 마음을 십자가에서 죽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담기는 세상의 모든 대상들에 대해 죽으면 십자가의 약속을 따라 내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오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쫓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대해 죽음을 반복하다보면 하나님이 들어오시고 하나님만 보이게 될 것입니다. 욥은 세상 것을 다 잃고서야 비로소 듣기만 했던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욥의 마음에서 하나님이 울루루가 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마음에서 울루루가 되시면,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만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질서정연하게 빨려 들어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중심에는 임자가 따로 없습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해서 마음을 세상에 대한 진공상태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마음을 오직 하나님으로 채운 자만이 세상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마음에서 집중하여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울루루가 십자가 생활화를 통하여 다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만 나의 울루루가 되셔서 세상에서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 기쁨과 만족을 얻게 하시고,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빨려 들어오는 중심의 자리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