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신도시, 이렇게 둘러보면 좀 달라 보입니다[경기 별곡 성남 2편] 청주 한씨, 한산 이씨가 남긴 문화적 유산들이 있는 분당신도시
분당신도시, 이렇게 둘러보면 좀 달라 보입니다
[경기 별곡 성남 2편] 청주 한씨, 한산 이씨가 남긴 문화적 유산들이 있는 분당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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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상 성남시 분당구에 속해 있지만, 존재감은 성남을 훨씬 뛰어넘는 분당신도시의 이야기로 이번 탐방을 시작하려고
한다. 분당은 첫 입주를 한 지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겼지만 도시는 여전히 젊은 기운들로 가득하다.
오래된 아파트와 주택이 많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잘 정비된 인상을 준다.
분당으로 접근하는 교통편도 다른 수도권 도시들에 비해 훌륭하다. 차를 이용할 경우에 경부고속도로는 물론 수도권 외곽순환도로, 분당 수서 간 고속화도로 등으로 충분히 빠르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고, 분당선은 물론 신분당선 등의 전철망도 훌륭하기에 서울과의 접근성도 괜찮은 도시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신도시로만 알고 있는 분당도 역사의 흔적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분당의 대표적인 공원으로 알려진 분당중앙공원과 율동 자연공원에는 분당의 역사를 알려주는 장소가 더러 있는데, 우선 서현역으로 가서 그 답사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분당신도시의 중심상권이라 볼 수 있는 서현역은 AK백화점을 중심으로 로데오 거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특히 은행과 증권사 금 거래소가 밀집해 있다. 그리고 대형 서점과 각종 프랜차이즈들도 몰려 있었다. 하지만 서현역에서 제일 존재감이 강한 장소는 아무래도 백화점이다. 바로 지하에는 전철이 지나가고 있고, 백화점의 제일 중심부에는 넓은 중앙광장과 시계탑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번화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이기에 분당사람들의 약속의 장소는 물론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꽤나 쓰인다고 한다. 번화가마다 비슷한 상가건물, 똑같은 프랜차이즈들로 인하여 별다른 특징을 느끼지 못했지만 백화점 건물 안의 광장과 시계탑으로 인하여 뚜렷한 인상을 남기게 되니 랜드마크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실감하게 된다.
이 서현역에서 머지않은 거리에 분당구청과 그리고 분당중앙공원이 위치해 있다. 성남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탄천은 분당구청 근방에서 분당천과 만나게 되는데 이 분당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제법 넓은 공원을 마주하게 된다.
요즘 신도시마다 훌륭한 호수공원과 산림공원은 더러 있지만 분당중앙공원은 겉으로만 보았을 때 별다른 특별한 점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공원의 속살에는 분당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역사와 문화재들이 숨어있다.
원래 공원으로 바뀌기 전에는 한산 이씨의 묘역과 집성촌이 있던 장소였다. 한산 이씨는 고려 말을 대표하던 목은 이색의 후손이다. 이곳은 나라에서 한산 이씨를 위해 하사했던 사패지로 수백 년을 이어오다가 분당신도시 계획으로 인해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1989년 분당신도시 개발계획에 따라 묘역 전체가 수용당해 이전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계와 문중 어른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 일대는 문화재 보존지구로 지정되었고, 문화재와 공원이 공존하는 분당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로 탈바꿈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분당중앙공원에서 우선 가봐야 할 장소는 연당지라 불리는 호수와 2층 누각이 있는 중앙광장이다. 일단 누각에 올라 공원과 연못의 전체적인 풍경을 감상했다. 나름 분당이 소득이 높고 도시계획이 잘 갖춰져서 그런지 조경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듯한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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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중앙공원의 전경 분당중앙공원은 분당신도시 한 복판에 자리해 많은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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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광장의 한쪽에는 보통 공원에서 보기 힘든 초가집 한 채가 슬그머니 자리해 있는데, 일명 수내동 가옥이라 불리는 한산 이씨 가문의 살림집 중 하나다. 원래 가옥이 위치한 수내동 지역은 1980년대까지 약 70호가량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중 한산 이씨가 30여 호가량 되는 집성촌이었다.
그 많은 집중 오직 수내동 가옥만이 중앙공원으로 옮겨지고 모두 철거되었다. 초가집이지만 보존 상태가 괜찮았고, 지붕만 초가일 뿐이지 규모가 어느 양반집 못지않다. 다만 현재는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담장 안으로 빼꼼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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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내동 가옥의 전경 성남시의 유일한 전통가옥인 수내동 가옥은 분당중앙공원 중앙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산 이씨의 가옥이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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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원의 정체성을 만든 한산 이씨의 묘역을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한다. 이 묘역은 목은 이색의 4대손인 이장윤이 사망하자 그의 손자이자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 선생이 영장산 자락에 그의 묘를 쓰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분당중앙공원의 뒤편 언덕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에 묘역이 분포되어 있다.
판서, 정승 등을 두루 지냈던 한산 이씨 후손들 답게 묘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조선 중기의 무덤 양식과 석물들이 다채롭다. 그러나 그 많은 무덤들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충신 이경류의 무덤과 그의 애마가 묻어있는 애마 총(말무덤)이다.
이경류 선생은 병조좌랑으로 경상도를 침범하고 한양으로 올라오는 왜군을 막기 위해 상주로 갔다가 전사하고 말았는데, 며칠 후 선생이 아끼던 말이 피 묻은 옷과 유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와서 전사를 알렸다고 한다.
500리를 달려와 주인의 죽음을 알리고 3일간 먹지도 않고 슬퍼하던 말도 연이어 죽으니 이를 가상히 여긴 후손들은 이경류 무덤 아래 애마 총을 따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대대손손 내려오다가 정조 임금의 왕명으로 어제 제문과 사액이 내려졌다고 하니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그밖에도 공원 한쪽 구석에는 한산 이씨 삼세 유사비라 하는 이장윤과 그의 아들 이질, 그리고 손자인 이지숙의 신도비도 남다른 규모로 보존되어 있었다. 예전 한산 이씨가 분당 일대를 주름잡던 가문이란 걸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중앙공원을 나서기 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장소가 하나 더 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란 명제를 분당신도시에서 한번 더 실감하는 순간이다. 분당중앙공원에는 분당 지역을 개발하면서 확인된 지석묘 10기를 모아놓았다.
지석묘가 분당 지역에 상당수가 분포했다는 사실은 청동기 시절부터 분당 지역이 살기 좋았다는 하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분당중앙공원을 둘러보니 새삼스레 분당 시민들이 부러워진다. 다시 분당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또 하나의 훌륭한 공원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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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분당저수지가 있는 율동공원 분당신도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율동공원은 피크닉장은 물론 주민들의 산책코스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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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분당저수지를 중심으로 81만 평의 너른 대지 위에 들어선 율동공원은 성남시민이 즐겨 찾는 피크닉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야외조각공원, 번지점프장, 책 테마파크들의 부대시설을 두루 갖추어 단순한 공원이 아닌 하나의 관광명소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여기도 분당중앙공원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청주 한씨의 집성촌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그 흔적들을 공원의 많은 장소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호수가 바라보이는 터가 좋은 언덕에 청주 한씨 문정공파의 사당과 재실 그리고 묘역이 있으며 그 신도비들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중 한계희는 훈구파에 속하는 유학자로서 <경국대전>, <의방유취> 간행을 주관했으며 비문은 그의 친구인 당대 최고의 유학자 서거정이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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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동공원의 청주 한씨 묘역 율동공원이 만들어 지기 이전부터 이 일대는 청주 한씨의 집성촌과 묘역들이 집중적으로 분포했었다. 분당의 공원 여기저기에서 숨겨진 문화재들을 마주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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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책로 중간에는 신간회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한순회 선생의 묘소와 3.1 운동과 물산장려운동을 펼쳤던 독립운동가 한백봉 선생의 집터까지 있어서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청주 한씨의 내력이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보았을 때 역사와 아무 관련 없던 분당신도시도 많은 역사적 스토리를 품고 있으니 자기 고장에 애착을 가지고 관심 있게 지켜본다면 달리 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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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동공원의 번지점프대 율동공원에는 책테마파크, 피크닉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거대한 번지점프대다. 예능프로에 다수 출연하기도 했었다. |
ⓒ 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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