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4 節 東西分立時代 (918年~1305年)
統一王國時代의 聖殿理想이 挫折되면서 이 王國은 南朝와 北朝로 分離되어 南北朝分立時代가 400年間 繼續되었으므로 이 時代를 蕩減復歸하는 東西分立時代가 오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基督敎王國도 分立되어 처음에는 東西 프랑크와 伊太利로 分裂되었다가 東 프랑크는 神聖 로마 帝國 을 繼承하여 伊太利 王을 兼任하였으므로 事實上 東西로 分立된 것과 같으며 이스라엘의 中心이 南朝에 있었던 것과같이 이 分立된 王朝의 中心 도 神聖 로마 帝國인 東 프랑크에 있었다.
統一王國時代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國王은 祭司長의 命을 받아 聖殿理想을 이루어야할 것이었던 것같이 이 時代에 있어서의 王은 敎皇의 命令 에 의하여 基督王國의 理念을 實現해야될 것이었다.
이 時代에 있어서 事實上 帝國의 實權은 敎皇에게 있었음으로 敎皇 그레고리 7世는 獨逸 皇帝 헨리 4世를 破門할 수 있었으며 敎皇 이노센트 3世 는 佛國王 필립 2 世를 屈伏시켰고 英國王 존을 破門하는 等 敎皇權은 이 時代에 그 絶頂에 달하여 基督王國 全盛時代를 이루었던 것이다.
南北朝分立時代에 있어서 이스라엘 民族들이 이 聖殿理想에 背馳되는 立場에 서게될 때마다 하나님은 先知者들을 보내시어 內的 廓淸運動을 일으키시었다. 先知者 엘리야를 中心한 4大先知와 12小先知를 보내신 理由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東西分立時代에 있어서도 敎皇廳이 腐敗 함에 따라 그 內的 廓淸運動은 修道院에서 일어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프랑시스 敎團 等이 나타난 것은 모두 이러한 攝理의 目的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民族이 先知者들에 의한 內的 廓淸運動에도 悔改하지 아니함으로 埃及 갈대아 수리아 앗수리아 바벨로니아 等 異邦들에게 붙여 外的廓淸運動을 일으켰던 것과 같이 敎皇廳이 修道院에 의한 內的廓淸運動에도 悔改 하지 않고 墮落과 腐敗가 尤甚하여지매 그들도 異邦人들에게 붙여 外的廓淸運動을 일으켰으니 이것이 곧 十字軍戰爭이다.
예루살렘 聖地가 카리프 帝國에 속하여 있을 때는 그들은 基督敎人의 巡禮者들을 厚待하였는데 카리프 帝國이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s)에게 망하여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占領을 당한 後에는 그들은 巡禮者들을 虐待 하였다. 이에 憤慨한 敎皇은 이 聖地를 回復하려고 十字軍을 일으킨 것이다.
十字軍戰爭은 1096年에 시작되어 約200年 間에 7回의 遠征을 하였으나 敗戰을 거듭하였고 雪上加霜으로 蒙古帝國의 西侵에 의하여 東西로 分立 된 基督王國은 崩壞되어 하나님의 攝理는 새로운 方向으로 展開된 것이다. 十字軍 戰爭은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못한 基督王國을 廓淸키 위한 것이 그 目的이다.
하나님의 直接的인 攝理에서 이루어진다고 믿고있던 基督王國이 異敎徒 에 의하여 敗戰을 거듭함에 따라 敎皇權은 그 權威와 信望을 완전히 잃게되자 또한 國民精神의 中心을 잃어버렸다. 한편 封建社會를 維持하던 領主들과 騎士의 戰死로 인하여 政治的인 基盤을 잃고 말았으며 또 長期間 에 걸친 戰費에 의하여 經濟的인 困窮에 빠지게되어 封建社會는 崩壞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