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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3일 수요일
성동구청 신우회 예배 설교
제목: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요한복음 19:18~19
설교를 위한 묵상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노래한 사람은 다윗이다. 하나님의 대리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대리인들이 세상을 통치하는 방법이다. 기울어진 거울이 그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의 대리인들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언제 오시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떠나셨기 때문에 그들이 수치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때가 곧 온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종은 마침내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다. 그것이 십자가다. 그들의 죄를 담당하셨다면 그들은 이제 용서받고 다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살 수 있는가?
예수님이 담당하신 그 백성의 죄란 무엇일까? 사망을 낳게 하는 죄는 소명의 거부나 불이행이다. 그것은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하나님 아닌 것(돈money, 성 sex, 권세 power)에게 마음과 뜻과 힘을 바치면 그것의 지배를 받는다. 그 결과 그것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그것이 죄의 종살이이며 그 결과는 사망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제자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며 그들의 죄가 용서되었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그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통하여 세상을 다시 회복하신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다. 그래서 십자가가 그들의 죄를 사하는 능력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키는 권세를 가졌으며, 동시에 죄와 악의 모든 권세를 정복하는 능력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일으키는 능력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걸어가야 할 길임을 깨달았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부활을 통하여 그 승리가 확증되었다.
설교 개요
1.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
3. 하나님 나라의 길,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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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때 나무에 매달아 놓은 판자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귀가 써 있었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로마인들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이 사람이 나사렛 예수인데 너희들이 말하는 유대인의 왕이다.’ 유대인의 왕은 이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또 유대인의 왕을 세워서 로마에 대항한다면 이런 식으로 죽는다고 위협하기 위함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마태복음에서 읽을 때 거기에는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기는 베들레헴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동방의 박사들은 그 아기에게 예물을 드립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아기는 어떻게 됩니까? 그 아기는 헤롯궁으로 옮겨져서 왕이 되기 위하여 왕궁에서 양육되지 않습니다. 그 아기는 헤롯 왕의 살해 위협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갑니다. 그리고 헤롯 왕이 죽기까지 거기서 살게 됩니다.
유대인의 왕이 어떤 존재이기에 성경은 예수님을 태어날 때부터 왕으로 소개하고 또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유대인의 왕으로 죽으셨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성경의 민족인 유대인들이 즐겨 읽은 예언들을 참고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6~7
이것은 이 세상을 다스리실 어떤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 예언에 의하면 그 아기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입니다. 6절을 표준새번역성경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 아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이 땅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통치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아기, 그가 곧 다윗의 나라를 세우는 왕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왕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분이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설교에서 가장 먼저 외치신 구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즉,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메시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이 왔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이 어떻게 옵니까? 그것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시는 분, 한 아기로 태어나 자기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는 분, 그분이 이 세상을 통치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매달린 패에 적힌 글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은 그저 조롱의 글이 아니라 예수님이 곧 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분임을 드러낸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메시아이시며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메시아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제가 오늘 생각해 보고자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왜 유대인의 왕이십니까? 즉,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분은 왜 그렇게 죽으셔야 합니까?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셨는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십자가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하여 한 아기를 보내신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보내실 그분에 대하여 새로운 예언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종으로 표현됩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이사야 42:1~4
마태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마태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편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태는 이렇게 그 사건을 해설합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2:17~21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삶과 행적을 보면서 이분이 바로 그분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로 그분이심을 산 위에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바로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4:17).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당하실 고난에 대한 예언도 있습니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이사야 52:13~1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이사야 53:4~9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어떻게 행동하시고 어떻게 죽임을 당하시게 되는지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십자가입니다. 그렇게 보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아들을 보내리니 그는 자기 백성을 귀하게 여기리라.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나무에 달려 죽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고난을 받음으로
그는 마침내 높이 받들어 높이 들려서 존귀하게 되리라.
3. 하나님 나라의 길, 십자가의 길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 사도 바울이 나중에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십자가에 대한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보냅니다. 그 글은 매우 잘 정리된 것으로서 아마 초대 교회에 널리 공유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신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1~11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곧 십자가임을 일깨워줍니다.
공동번역개정판으로 위 본문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이렇게 다른 버전으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니까?
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습니까?
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주십시오.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2:1~11, 공동번역 개정판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다스리신다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골로새서 1:13). 이 말은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들어와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에서 사는 우리의 방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왜 그렇게 사실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한복음 8:29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사는 삶, 그것에 하나님 나라의 삶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우리를 십자가로 안내할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예수님이 정복하신 죄와 악의 권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