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朗氣淸 惠風和暢(천랑기청 혜풍화창)
‘날씨는 맑고 따스한 바람 불어 화창하다’는 뜻으로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4세기
동진(東晉) 왕희지(王羲之)의 걸작 서예 작품 난정서(蘭亭序)의 첫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춥고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사람의 마음은 어김없는 자연의 순환에 누구나
일말(一沫)의 소회(所懷)가 생기게 마련이고 온화한 봄바람에 잠시나마
세상 풍파를 잊고 따뜻하고 즐거운 마음을 갖게된다.
고금의 시인들이 봄이 베푸는 아름다움을 수많은 명작 시(詩)를 통해
노래했고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조금은 정화(淨化)되기도 한다.
왕희지가 살았던 동진 시대는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왕희지는
봄이 오자 삼월 삼짇날 문인 친구 40여 명을 풍광 좋은 회계 산음현 난정(蘭亭)에
초대하여 곡수(曲水)에 잔을 띄우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연회를 베풀었다.
이들이 지은 시를 모아 만든 문집의 서문을 왕희지가 썼는데 그것이 바로 난정서이다.
이날 거나하게 술에 취했던 왕희지는 단숨에 글을 썼는데 글의 내용도 명문이었지만
붓글씨 또한 만고의 명필이었다.
왕희지의 난정서 (부분)
그의 난정서는 200년 후 왕희지의 글씨에 푹 빠진 당 태종의 손에 들어갔고
그가 죽을 때 무덤에 같이 묻혀 세상에서 원본은 영영 사라지고
원본을 보고 쓴 모본(模本)만 전해지고 있다.
위의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고개 들어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고
고개 숙여 만물의 풍성함을 살펴본다.
눈으로 즐기며 놀고,
마음 가는 대로 생각을 풀어 놓으니,
보고 듣는 즐거움이 참으로 흥겹구나.
비록 나아감과 머물음,
고요함과 시끄러움도 서로 다르지만,
자신의 처지를 만족하며 잠시나마 기쁘고 흡족하여 자신에게 만족한다.
허나 그 유쾌함 속에서 장차 늙음이 다가옴을 잊어버린다.’
왕희지는 벗들과 늦은 봄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며 우주와
대자연의 무한함과 풍성함을 새삼 깨달으면서도 이 순간이 곧 과거가 된다는 것,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늙음과 죽음으로 언젠가는 이 모든 것과 작별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유한함을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한 문장으로 난정서에서 표현하였고
이를 신필(神筆)로 써 내려갔다.
또한 봄의 정취를 은은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시로
고려시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춘흥(春興)이라는 시가 있다.
봄비 하도 가늘어 방울 맺지도 못하는데
(春雨細不滴 춘우세부적)
깊은 밤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夜中微有聲 야중미유성)
눈 녹아 시냇물은 불어나고
(雪盡南溪漲 설진남계창)
새싹들은 여기저기 돋아나겠네
(草芽多少生 초아다소생)
소리 없이 보슬비 내리는 밤,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집 앞 시냇물이 불어나니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시냇물 소리일까 아니면 여기저기 새싹들이 돋아나는
소리일까 생각하며 잠을 뒤척이는 노 선비 포은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봄이 되어 왕희지와 그의 벗들이 봄날의 연회를 마음껏 즐기며
우주와 자연의 멈추지 않는 순환 속에서 인간의 유한함을 노래하고,
포은이 봄비 조용히 내리는 깊은 밤, 자연의 신비함과 희망을 표현한 것은
서로 다르면서도 상통한다.
이들의 시는 새봄을 맞으며 세속의 어지러움과 갈등, 어려움을 잠시 잊고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삶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