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교회에 부임하여 사역한 지 3년이 지났다. 그간 흘러간 세월을 회고하면 기뻤던 일, 괴로웠던 일, 즐거웠던 일들이 교차한다. 기뻤던 일은 새신자가 생겨 주 안에서 그 신앙이 날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다시 새로운 사역지인 상주(尙州) 용담(龍潭)교회로 이동하게 되었다. 본래 목회자는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흐르는 물처럼 자주 이동하는 것이 스스로 나태해지고 부패하는 것을 막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964년 교단 총회가 서울 중학동에 있는 종로교회(서울제일교회 전신)에서 개최되었다. 총회가 끝난 뒤, 총회 임원들이 나를 찾았다. 임원회의가 진행중이었다. 총회장이던 김용해 목사는 상주 용담교회로 이동하는 것이 어떠냐고 나의 의사를 타진해왔다. 용담교회에서 목회자 청빙을 총회 임원회에 의뢰했던 것이다. 그 당시 용담교회는 분열 직전에 있었다. 교인 가운데 3분의 2가 용문산 기도원의 영향을 받아 신비적이고 열성적인 데 반하여 나머지 3분의 1은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신도들이었다. 이 두 집단의 대립이 날로 치열하게 심화되어가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용문산기도원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예배 때에도 이질감을 자아냈고, 다른 교인들과 서로 융화가 잘 되지 않았다.
용담교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였다. 같은 마을에서 교회가 갈라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 막는다는 판단으로 이들은 다시 회합을 가지고 합의를 했다. 열심파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는 목회자를 온건파가 청빙하면 그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그 결과로 양쪽은 공히 청빙서를 작성하여 총회에 참석했던 것이다. 총회임원회는 서로 의논한 결과 나를 적임자로 선정했다. 나는 총회의 명령이 주님의 뜻으로 믿고 순종하기로 결심했다.
교회 대표들을 만났다. 그들은 교회의 합의서를 보여 주었다. 합의서는 열성파 신도들이 작성한 것이었다.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우리가 용문산기도원을 출입하는 것을 용납하라. 둘째, 우리가 어떤 강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열어도 용납하라. 셋째, 우리의 자유스러운 신앙생활과 행위(통성기도 등)를 용납하라.
나는 모두 승낙했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부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헤어졌다. 나의 인사이동은 총회임원회에서 책임지고 주선하게 되었다. 임원 중 한 분이 강릉교회에 내방하여 교인들에게 나의 인사에 대해 설명하고 양해를 얻어냈다.
나는 이제 이사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사 날짜를 정하고 지역사회 인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짐을 꾸렸다. 그런데 이사할 날짜가 내일로 다가왔는데 이사할 돈이 없었다. 당시는 목회자들에게 저축한 돈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오직 그날그날 일용할 양식이 있을 뿐이었다. 강릉교회에서는 용담교회에서 이사할 돈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고, 용담교회는 아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그저 속을 끓이며 기도할 뿐이었다.
저녁에 이웃 교회의 김홍래(金洪來) 전도사가 찾아왔다. 그는 떠나는 내게 인사차 왔다고 하면서, 초등학교 교사인 여동생이 그동안 모아 놓은 십일조를 전해달라고 해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 여교사를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째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김전도사의 여동생이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금액이 우리가 이사할 만한 돈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준비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마침내 예정대로 차질없이 강릉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늦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당일 아침 일찍이 기차역에 나갔다. 여러 교인들도 배웅을 나왔다. 나와 내 가족을 보내는 성도들이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뒤 돌아서서 흐느껴 우는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우리 아이들은 모처럼 긴 여행이라 무척 즐거워했다. 검푸른 동해를 지날 때는 환호성을 질렀다. 태백산맥의 푸른 숲과 아름다운 산천을 지나 도계역에 도착했다. 전부 기차에서 내려 도보로 산꼭대기에 올라가 다시 다른 차에 올랐다. 그리고 또 달렸다.
기차는 오후 상주지방 백원역에 도착했다. 용담교회 성도들이 우리 가족을 영접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함께 2km쯤 걸어서 용담교회에 도착했다. 그 날은 마침 금요일이라 밤 예배의 종소리와 함께 성도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성도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내 설교가 평가를 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예배가 끝나고 웅성웅성 인사를 나누었다. 어디선가 귀엣말로 “통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마 오늘 나의 설교가 성공한 모양이다.